[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지진)] [include(틀:대한민국 주요 지진)] ||<-3> {{{#ffffff {{{+1 '''1681년 양양 근해 지진'''}}}}}} || ||<-2> {{{#ffffff 발생장소}}} || 조선 강원도(현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 ||<|2> {{{#ffffff 발생일시[br]^^(UTC+9)^^}}} || '''1차''' ||1681년 6월 12일 신시(오후 3~5시경) || || '''2차''' ||1681년 6월 26일 || ||<|2> {{{#ffffff 최대진도[br]^^(추정)^^}}} || '''1차''' ||<#632523>{{{#fff '''Ⅷ'''}}}[*KMA 대한민국 기상청 추정진도] || || '''2차''' ||<#4c2600>{{{#fff '''Ⅷ~Ⅸ'''}}}[*KMA] || ||<|2> {{{#ffffff 규모[br]^^(추정)^^}}} || '''1차''' ||M,,L,, '''6.1'''~'''6.7''' || || '''2차''' ||M,,L,, '''6.7'''~'''7.5''' / '''M,,j,, 7.5''' || ||<|4> {{{#ffffff 피해상황[br]^^(추정)^^}}} || 총계 ||불명 || || 해일 ||'''있음''' || [목차] [clearfix] == 개요 == ||<-5>
{{{#ffffff '''별도의 문서가 존재하는 한반도 지진''' }}} || || [[1643년 울산 대지진]] || {{{+1 → }}} || ''' [[1681년 양양 대지진]] ''' || {{{+1 → }}} || [[1810년 부령 지진]] || 1681년 양양 근해 대지진은 1681년(숙종 7년) 6월 12일과 6월 26일 두 차례에 걸쳐서 발생한 규모 M6~7급의 [[대지진]]이다. 특히 1681년 6월 26일 발생한 지진은 화산성 지진을 제외하면 '''한반도 사상 최대규모의 지진'''이다.[* 참고로 두 번째로 강한 지진은 [[1643년 울산 대지진]](M 6.3~'''7.4''')이며, 진도는 해당 지진이 더 높다.] == 1차 지진 == 1차 지진은 1681년 6월 12일 발생했으며, 한국기상청 및 산하 지진연구소는 추정진도를 VIII, 추정규모를 '''M 6.5^^±0.5^^'''로 본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간방(艮方, 북동쪽)으로부터 곤방(坤方, 남서쪽)까지 지진이 있었는데, 집이 몹시 흔들리고 창(窓)과 벽(壁)이 흔들렸으며, 길을 가던 사람 중에는 말이 놀라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다.《朝鮮王朝實錄》 >경기감사 서목의 내용이다. 광주 등 34개 읍에서 올리기를, “지난 4월 26일(己酉) 신시(오후 3시-5시)에 지진이 있었다”고 하였다.《承政院日記》 >공청감사 서목의 내용이다. 지난 4월 26일(己酉) 두루 도내에 지진이 있었는데, 건물이 흔들렸으며, 창문이 모두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두려워 물러났으며, 초목이 흔들렸다. 5월 초 2일에 홍주 등 16개 읍에서 또 지진이 있었다. 26일과 마찬가지로 동요하였다. 변이에 관계된 일이다.《承政院日記》 >강원감사 서목의 내용이다. 4월 26일(己酉) 신시(오후 3시-5시)에 측정하였다. 지진이 있었으며, 오래되어서야 그쳤다. 식경(식사를 할 만한 시간)에 또 지진이 있었다가 곧 그쳤다. 또 5월 초 2일 인시(오전 3시-5시)에 지진이 있었는데, 더욱 심하였다. 신시(오후 3시-5시)와 해시에 또 지진이 있었다. 하루 안에 3회에 이르렀다. 담벽이무너졌으며 건물의 기와가 날라 떨어졌다. 전후 지진은 변이 비상한 일이다. 《承政院日記》 == 2차 지진 == 2차 지진은 1681년 6월 26일 발생했으며, 1차 지진으로부터 불과 2주일 후에 다시 발생했다. 한국기상청 및 미국 NGDC에서는 추정진도를 VIII~IX, 추정규모를 '''M 7.5'''로 본다. 한국기상기록집(역사지진목록)에 따르면, 양양과 강릉, 삼척 지역에 걸쳐 VIII~IX의 진도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반도 거의 전역에서 지진동이 감지되었다고 한다. 실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가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쓰나미|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 및 계조굴의 거암이 모두 붕괴[崩頹]되었다. 삼척부 서쪽 두타산 층암은 옛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모두 붕괴되었다. 그리고 (삼척)부의 동쪽 능파대 수중의 10여 장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 혹은 5, 60보 노출되었다. 평창 · 정선에도 또한 산악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 이후 [[강릉시|강릉]] · [[양양군|양양]] · [[삼척시|삼척]] · [[울진군|울진 · 평해]] · [[정선군|정선]]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地動)하였는데, 이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 숙종실록 11권, 숙종 7년(강희 20년) 5월 11일 계해 1번째 기사 == 이전, 이후의 타임라인 == || 발생일자 || 추정최대진도 || 추정규모 || 발생지 || 사상자 || 비고 || 출처 || || 1643. 7. 24. || '''VIII~X''' || '''M6.5~7.4''' || [[1643년 울산 대지진|울산광역시 인근 해안]] || 불명 || 쓰나미 발생 || 조선왕조실록[br]한국기상기록집[br]NOAA || || 1668. 7. 25. || '''XII''' || '''M8.5''' || 중국 산둥성 || 사망자 42,758명 || '''진도 XII''' || NOAA || || 1668. 7. 31. || '''VI''' || '''M6.4''' || 황해 || 불명 || || 김소구 교수 논문[*A 김소구, 1982년, '한반도와 그 인접지역의 지진'] || || 1681. 6. 12. || '''VIII''' || '''M6.5''' || 강원도 양양군 인근 해안 || 불명 || || 한국기상기록집[br]KMA 지진연구소 논문[*B 2002년, '1681년 6월 12일, 17일, 그리고 26일 양양-삼척 근해에서 발생한 지진기록의 분석'] || || 1681. 6. 26. || '''VIII~IX''' || '''M7.5''' || 강원도 양양군 인근 해안 || 불명 || 쓰나미 발생 || KMA, NGDC || || 1703. 12. 31. || '''7''' || '''M8.2''' || [[겐로쿠 대지진|일본 보소 반도 남서쪽 바다]] || 사망자 5,233명 || 쓰나미 발생[br]최대높이 10.50m || NOAA || || 1707. 10. 28. || '''7''' || '''M8.6~9.3''' || [[호에이 대지진|일본 난카이 해역]] || 사망자 5,000여 명 || 쓰나미 발생[br]최대높이 '''25.70m''' || NOAA || ※1668년 4월과 1702년에는 백두산이 분화하였고, 1707년 호에이 대지진 이후에는 후지산이 폭발하였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지진/19세기 이전)] [[분류:지진/대한민국]][[분류:조선(17세기)]][[분류:18세기 이전 지진]][[분류:양양군의 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