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폐지된 바둑 기전)] [[파일:1988-1fu.jpg]] 제1회 후지쯔배 초대 우승자인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우승 결정 직후이다. 상대는 [[린하이펑]] 九단. [[파일:후지쯔_우승컵.jpg]] 후지쯔배 우승컵을 들고 있는 마지막 우승자 [[박정환(바둑기사)|박정환]]. 우승컵이 항아리로 되어있는 특이한 모양새를 확인할 수 있다. [목차] == 개요 == 후지쯔배(世界囲碁選手権富士通杯)는 [[일본기원]]에서 [[1988년]] 창설한 국제 바둑 기전이자 최초의 메이저 세계 바둑 대회. 이 타이틀은 본래 [[응씨배]]가 가져갈 예정이었지만, 당시 바둑 최강국으로서의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응씨배 창설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기원]] 측에서 전자 회사 [[후지쯔]]의 후원을 받아 급조한 것이 유래. 이후 창설된 [[토요타덴소배]]와 함께 유이한 일본 창설 메이저 국제 기전이었다. == 역사 == 대회는 1988년 1회부터 해마다 열리며, 세계 각국에서 예선을 통과한 24명[* 제1회는 16명, 마지막인 2011년 24회는 32명 - 7개 지역구 예선을 거친 29명(대한민국 6명, 일본 13명, 중국 6명, 대만·북미·남미·유럽 각 1명)과 전 대회 3위내 입상자]이 단판승부를 통해 [[토너먼트(스포츠)|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형식으로, 결승전도 단판승부이다. 경기룰은 생각시간 3시간에 1분 초읽기 10회[* 2002년 15회까지는 덤이 5집반이었지만 2003년 16회부터 한국처럼 6집반. 그리고 마지막인 2011년 24회는 생각시간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이 형태는 바로 이전의 6시간에 육박하는 장기전 위주의 바둑에서 탈피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 훗날 하나둘씩 창설되는 바둑 세계 대회 룰의 본보기가 되어왔다.], 우승 상금은 1500만엔. 이는 20년간 같은 금액을 유지했다.[* 중간에 2000만엔으로 잠깐 인상시킨 적은 있었으나, 후원사의 재정 문제로 16회 때 다시 복구시키고 준우승 이하의 상금은 오히려 대폭 줄이기도 했다.] 1회 대회 당시 16명 중 한국 기사는 3명이 초대되었는데,[* 해당 기사는 당연히 [[조훈현]], [[서봉수]]가 발탁되었지만, 나머지 한명은 [[장두진]]이 선발되는 약간의 이변이 있었다.] 3명 모두 조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창설국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5회 대회까지 일본 기사들이 우승을 독점했지만 6회 [[유창혁]]의 우승을 기점으로 한국 기사들이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 5~24회까지 단 4번을 제외하고 한국이 우승을 쓸어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우승자 연혁을 봐도 [[유창혁]],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바둑)|박영훈]], [[박정상]], [[강동윤]], [[박정환(바둑기사)|박정환]] 등 쟁쟁한 한국 기사들이 번갈아가며 우승을 차지하는 식이었으니 어찌보면 한국 바둑의 전성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기념비적인 기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 바둑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2000년대 우승한 기사만 봐도 당시 한국 바둑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 중국도 4번의 우승 기록이 존재하긴하나, 중국 바둑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대 초반에 후지쯔배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만의 무대로 남아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24회를 마지막으로 후지쯔배의 폐지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최초의 바둑 세계 대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http://www.cyberoro.com/news/news_view.oro?div_no=12&num=516023|#]][* 마지막 우승자는 [[박정환(바둑기사)|박정환]] 九단. 박정환의 우승은 이세돌 이후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전부터 후원사 후지쯔의 지속적인 경영 악화와 일본 바둑의 몰락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무엇보다 [[도호쿠 대지진]]으로 직격탄을 맞은것이 큰 원인. 때문에 마지막 대회는 [[간사이]] 지방에서 32강 토너먼트를 5일 만에 속행시키는 등 차질이 많았다고 한다. == 대회 목록 == * [[1988년]]: [[제1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89년]]: [[제2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0년]]: [[제3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1년]]: [[제4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2년]]: [[제5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3년]]: [[제6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4년]]: [[제7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5년]]: [[제8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6년]]: [[제9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7년]]: [[제10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8년]]: [[제11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1999년]]: [[제12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0년]]: [[제13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1년]]: [[제14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2년]]: [[제15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3년]]: [[제16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4년]]: [[제17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5년]]: [[제18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6년]]: [[제19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7년]]: [[제20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8년]]: [[제21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09년]]: [[제22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10년]]: [[제23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2011년]]: [[제24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대회 이력 == || '''{{{#FFFFFF 회차}}}''' || '''{{{#FFFFFF 년도}}}''' || '''{{{#FFFFFF 우승자}}}''' || '''{{{#FFFFFF 전적 }}}''' || '''{{{#FFFFFF 준우승자}}}''' || || '''{{{#B40404 1}}}''' || 1988 ||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 1:0 || [[린하이펑]] 九단 || || '''{{{#B40404 2}}}''' || 1989 ||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 1:0 || [[린하이펑]] 九단 || || '''{{{#B40404 3}}}''' || 1990 || [[린하이펑]] 九단 || 1:0 || [[녜웨이핑]] 九단 || || '''{{{#B40404 4}}}''' || 1991 || [[조치훈]] 九단 || '''기권승'''[* 첸위핑 九단의 병세 악화로 결승전 직전에 쓰러져서 국제 [[바둑 기전]] 사상 첫 기권승이 나왔다.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기록. 여담으로 3위결정전도 기권승이 나왔다.] || [[첸위핑]] 九단 || || '''{{{#B40404 5}}}''' || 1992 || [[오타케 히데오]] 九단 || 1:0 || [[왕리청]] 九단 || || '''{{{#B40404 6}}}''' || 1993 || [[유창혁]] 六단 || 1:0 || [[조훈현]] 九단 || || '''{{{#B40404 7}}}''' || 1994 || [[조훈현]] 九단 || 1:0 || [[유창혁]] 六단 || || '''{{{#B40404 8}}}''' || 1995 || [[마샤오춘]] 九단 || 1:0 ||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 || || '''{{{#B40404 9}}}''' || 1996 || [[이창호]] 九단 || 1:0 || [[마샤오춘]] 九단 || || '''{{{#B40404 10}}}'''[* 여담으로 당시 대회에선 한국기원 소속의 선수들이 16강에서 전부 탈락하며 세계 바둑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때는 한국 바둑이 대회 초창기같은 약체가 아니었고, 떨어진 기사들이 무려 [[리즈 시절]]의 서봉수, 이창호, 유창혁이었다. 물론 한국기원 소속이 아닌 한국 국적 기사를 포함하면 조치훈이 8강에 진출하긴 했다.][* 고바야시 九단의 이 대회 우승은 2022년 11월 기준으로 일본 국적 기사의 마지막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다.] || 1997 ||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 || 1:0 || [[왕리청]] 九단 || || '''{{{#B40404 11}}}''' || 1998 || [[이창호]] 九단 || 1:0 || [[창하오]] 八단 || || '''{{{#B40404 12}}}''' || 1999 || [[유창혁]] 九단 || 1:0 || [[마샤오춘]] 九단 || || '''{{{#B40404 13}}}''' || 2000 || [[조훈현]] 九단 || 1:0 || [[창하오]] 九단 || || '''{{{#B40404 14}}}''' || 2001 || [[조훈현]] 九단 || 1:0 || [[최명훈]] 八단 || || '''{{{#B40404 15}}}''' || 2002 || [[이세돌]] 三단 || 1:0 || [[유창혁]] 九단 || || '''{{{#B40404 16}}}''' || 2003 || [[이세돌]] 七단 || 1:0 || [[송태곤]] 四단 || || '''{{{#B40404 17}}}''' || 2004 || [[박영훈(바둑)|박영훈]] 六단 || 1:0 || [[요다 노리모토]] 九단 || || '''{{{#B40404 18}}}''' || 2005 || [[이세돌]] 九단 || 1:0 || [[최철한]] 九단 || || '''{{{#B40404 19}}}''' || 2006 || [[박정상]] 七단 || 1:0 || [[저우허양]] 九단 || || '''{{{#B40404 20}}}''' || 2007 || [[박영훈(바둑)|박영훈]] 九단 || 1:0 || [[이창호]] 九단 || || '''{{{#B40404 21}}}''' || 2008 || [[구리(바둑기사)|구리]] 九단 || 1:0 || [[이창호]] 九단 || || '''{{{#B40404 22}}}''' || 2009 || [[강동윤]] 九단 || 1:0 || [[이창호]] 九단 || || '''{{{#B40404 23}}}''' || 2010 || [[쿵제]] 九단 || 1:0 || [[이세돌]] 九단 || || '''{{{#B40404 24}}}''' || 2011 || [[박정환(바둑기사)|박정환]] 九단 || 1:0 || [[추쥔]] 八단 || == 여담 == *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최택]]이 후지쯔배에 참가해서 우승했던 에피스드가 있었다. 그런데 내용이 골때리는 게 [[성덕선]]에게 기념품이랍시고 우승컵을 선뜻 넘겨버린 것. 위 사진처럼 모습은 영락없는 항아리인지라 받자마자 실망하는 기색을 내며 고작 파김치 담그는(...) 용도로 쓰려다가 항아리의 정체를 알아본 [[성노을]]이 말리자[* "안돼 안돼 안돼!!! 미쳤어...?"라며 정말 격하게 말린다.] 실체가 우승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최택이라는 캐릭터가 [[이창호]] 九단을 [[모티브]]로 했고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스토리가 짜여졌긴 해도 실제랑 기간이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응답하라 1988]] 에피소드 중 [[성선우|선우]]가 준우승만 3번한 대회라는 언급이 있었는데 이 대회는 1988년에 창설된 대회이다.[* 최택의 모티브가 된 [[이창호]] 九단은 이 대회에서 우승 2번, 준우승 3번을 했다. 시기상으로 맞지는 않지만 준우승을 3번 하긴 했다.] 그리고 최택이 1988년 우승자라고 했는데 초대 우승자는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이다. * 후지쯔배 우승컵을 [[프러포즈]] 용도로 사용한 사례가 실제로 존재한다. 후지쯔배에서 우승한 [[유창혁]] 九단이 아내에게 프러포즈 할 때 후지쯔배 우승컵을 선물한 적이 있다.[[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bullpen2&id=4141887|#]] * [[2009년]] 대회에서 [[왕밍완]] 九단과 [[우치다 슈헤이]] 三단의 대국에서 국제 바둑 기전 최초로 [[장생]]이 나왔다. 국제 프로 [[바둑 기전]]에서 장생이 나온 것은 이 대국이 현재까지 유일하다. [[분류: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