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고려의 문하시중)] [include(틀:고려의 배향공신)] ||<-2> '''칠대실록 편찬 책임자[br]{{{+1 황주량}}}''' || || '''{{{#white 시호}}}''' ||'''경문공(景文公)''' || || '''{{{#white 문산계 품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 '''{{{#white 본관}}}''' ||황주 황씨(黃州 黃氏) || || '''{{{#white 이름}}}''' ||주량(周亮) || || '''{{{#white 생몰연도}}}''' ||?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초기 [[고려]]왕조의 문관. 다수의 고려 초 인물처럼 생몰년도나 본관, 개인의 생애는 알 수 없다. 고려사 기록으론 최소 [[목종(고려)|목종]], [[현종(고려)|현종]], [[덕종(고려)|덕종]], [[정종(고려 10대)|정종]] 네 임금을 섬겼으며 [[광종(고려)|광종]] 대부터 시작된 과거제로 조정에 들어온 신하이다. == 상세 == 황주량은 목종 대 실시된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당시 시험관(지공거)는 [[최항(972)|최항]]이다.] 목종 대의 조정에 들어갔으며 현종 대엔 어사대(御史臺)[* 고려의 감찰기관이다.]의 시어사(侍御史)[* 어사대의 서열 3위급 직위.] 직에 임명되어 조금씩 승진하기 시작했다. ||<-2> '''[[사관(역사)#고려|{{{#670000,#fedc89 현종조 사관(史館) {{{-2 국가기록원 관료[br]고려 7대사적 편찬자}}}}}}]]''' || ||<-2> '''{{{#670000,#fedc89 감수국사(監修國史) {{{-2 사관 장관}}}}}}''' || ||<-2> 이부상서(吏部尙書) - 참지정사(叅知政事) [[최항(972)|최항]] || ||<-2> '''{{{#670000,#fedc89 수국사(修國史) {{{-2 사관 차관}}}}}}''' || ||<-2> 예부상서(禮部尙書) 김심언 || ||<-2> '''{{{#670000,#fedc89 수찬관(修撰官)}}}''' || || '''시어사(侍御史) 황주량''' || 우습유(右拾遺) [[최충]] || || 예부시랑(禮部侍郞) [[주저]] || 내사사인(內史舍人) 윤징고 || 여요전쟁으로 인해 고려왕실이 제작한 실록이 사라졌다. 현종은 자신의 앞 7명 국왕의 기록을 다시 모으고자 했고, 이에 사관[* 지금의 [[국가기록원]]과 비슷한 부서.]을 재정비해 이른바 '칠대사적(七代史籍)'을 편찬하였다. 황주량은 사관에서 낮은 직위를 겸했지만 기록 수집 및 정리를 주도하여 칠대실록 제작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되었다. 총 36권을 편찬하는데 성공했고, 이 공로를 인정 받아 계속 진급하여 [[중추원]][* 고려의 최고위 정부기관 중 하나.]의 차관인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었다. 현종이 붕어하고 그의 [[태자]] 덕종이 즉위하였다. 덕종 대엔 한림원[* 임금의 명령을 문서화하고 기록하여 전달하는 부서.]의 장관인 판한림원사(判翰林院事)가 되어 [[국왕]]의 측근이 되었다. 황주량을 가장 중용한 왕은 덕종의 동생 정종이다. 정종은 아버지, 형을 보좌해온 황주량을 요직에 임명해 신뢰를 드러냈다. 황주량은 상서성의 예부(禮部), 호부(戶部)의 장관을 거치고 [[중서문하성]][* 중추원과 더불어 고려의 최고위 정부기관이다.]의 참지정사[* 중서문하성의 서열 3위급 직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중서문하성의 서열 2위급 직위.] 직까지 올랐다. 고려의 [[제후]]로 들어온 [[여진]]의 분쟁을 처리하고 두 번이나 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주최했다. 정종이 봉한 황주량의 최종 관작은 다음과 같다: * '''공신호:''' 추충진절문덕광국공신(推忠盡節文德匡國功臣)[* 광국공신호.] * '''문산계 품계:''' 특진(特進)[* 정 2품 품계. 문산계 중 두번째로 제일 높다.] * '''직위:''' [[문하시중]](門下侍中)[* 중서문하성의 장관.] -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 상서성 소속인 이부의 장관.] * '''수직:''' 수태보(守太保) * '''훈위:''' 상주국(上柱國)[* 1등급 훈위.] 정종 ~ [[문종(고려)|문종]] 시기에 죽은 것으로 보이며 황주량 사후 정종은 시호 경문(景文)을 내렸다. 선종은 황주량을 정종의 묘정에 배향하고 종 1품 문산계 품계인 개부의동삼사를 추증했다. 황주량은 현대에 와선 그다지 유명한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제작한 칠대사적은 [[조선]]시대까지 내려와 [[고려사]]의 주 인용자료가 되었다. 조선왕조나 [[대한민국]]이 고려 초기 역사에 대해 연구할 때 큰 도움이 된 셈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고려사)] [[분류:문하시중]][[분류:고려의 배향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