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황남대총)] [[파일:황남대총 청동거울1.jpg]]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2458&cid=42665&categoryId=42666|사진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청동거울]] [목차] == 개요 ==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황남대총]]의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청동거울.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황남대총 청동거울3.jpg]] [[황남대총]] 남분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청동거울로, 제작 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서기 300~400년대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황남대총 조문박국경이라고도 불리며, [[청동]]으로 조형을 뜬 거울에 각종 동물과 글자 형상 무늬를 새겨놓은 것이다. 당시 황남대총 북분에서는 쇠거울이, 남분에서는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다. [[파일:황남대총 청동거울2.jpg]]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거울]]이 사용된 시기는 [[청동기 시대]]였다. 당시 한국의 청동기인들은 온 대지를 밝게 비추는 [[태양]]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거울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빛을 신비롭게 여겼고, 그 빛에는 하늘의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지상에 사는 이들의 소망도 실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4세기 경 [[신라]] 국왕의 정치적 위상이 매우 높아지자 이에 신라의 왕들은 과거 청동기인들처럼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하여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왔음을 강조하였고, [[중국]] 왕조와는 별개로 정기적으로 우리나라만의 하늘과 조상에게 따로 제사를 지내며 [[한반도]]만의 독자적인 제례 문화를 완성한다. 이때 국왕이 제사를 주도하였는데, 청동거울은 고대 신라 왕실이 지닌 제의적 성격의 상징물이었다.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이 청동거울은 1,700여년 전 한국인들의 하늘과 땅을 이어주던 매개체 중 하나로, 당시의 관념적 사상 및 금속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분류:신라의 공예]]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분류:경주시의 문화재]] [[분류:황남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