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328년]] - [[1402년]] [[3월 22일]]. == 개요 == 여말선초의 인물. [[조선]] [[세종(조선)|세종]]대의 재상 [[황희(조선)|황희]]의 아버지이다. == 생애 == [[1328년]] [[전라도]] [[남원시|남원부]]에서 참찬 황균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 때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를 지냈으며, 조선 건국 후에는 [[충주]]절제사를 역임했다. 1394년에는 제주도안무사에 임명돼 [[제주도]] 백성들을 위무했고, 1395년 제주도에서 [[개경]]으로 귀환했다. 황군서는 도안무사로 있으면서 매년 섣달 암말을 잡고 포를 떠서 바치는 제주도의 풍속을 [[태조(조선)|태조]]에게 보고한 뒤 이를 중지하도록 할 것을 요청했다. 이후 강릉대도호부의 판사를 지냈다. == 가족 관계 == 황군서에게는 본처 외에 첩[* 감문위호군 김우의 딸인 용궁 김씨라고 한다.]이 하나 있었다. 이 첩이 낳은 아들이 바로 [[세종(조선)|세종]]대의 재상 [[황희(조선)|황희]]다. 전설에 따르면 황희가 출생한 집은 [[고려]] 말의 선각왕사 나옹 혜근이 황군서에게 점지해준 땅이라고 한다. [[분류:고려의 인물]][[분류:조선의 관리]][[분류:1328년 출생]][[분류:1402년 사망]][[분류:장수 황씨]][[분류:남원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