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개요 == 1990년대를 풍미한 전설로 남은 [[홍콩]]의 톱스타인 네 명의 가수를 뜻하는 말이다. 1992년 미스홍콩선발대회에 1990년대 스타가수인 [[장학우]], [[유덕화]], [[여명]], 그리고 당시 기준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곽부성]]이 하객으로 참여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는데, 사대천왕은 이 자리 이후에 등장한 개념이다. 홍콩에서 가요계의 사대천왕의 개념이 성립된 후에 제5대 천왕의 후보로 [[주화건]], 이극근, [[정이건]] 등이 거론되었으나 이들까지 정식으로 가요계의 천왕으로 포함된 적이 없었다. 대만에서는 제진, [[주화건]], [[왕걸]], 동안격이 1990년대 대만 가요계의 사대천왕으로 불렸다.[[https://zh.m.wikipedia.org/wiki/%E5%8F%B0%E7%81%A3%E5%9B%9B%E5%A4%A7%E5%A4%A9%E7%8E%8B|참고 링크]] [[소유붕]], [[오기륭]], [[금성무]], 임지영(한국에서 임지령으로 알려졌지만, 임지영이 맞는 표기)[* 영을 령의 두음법칙 변화로 생각하고 과도교정을 한 것 같은데, 穎자는 원래 음이 영이다. 임지령은 대만의 다른 여성 연예인인 린즈링의 한국어 발음이다.]이 대만 가요계의 사소천왕[* 한국의 일부 언론 기관은 대만의 사소천왕을 대만의 신 사대천왕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대만에서는 [[주걸륜]], [[왕리훙]], [[임준걸]]이 대만 신 사대천왕으로 불리며, 나머지 한 명은 [[나지상]]으로 언급한 곳도 있고 도철(陶喆)이나 반위백(潘瑋柏)으로 언급한 곳도 있다.]으로 불렸다. 홍콩 사대천왕으로 불린 네 명이 [[배우]]로도 활동하기 때문에 한국인 중에서 일부가 '홍콩 사대천왕'이라는 호칭을 홍콩 영화계의 사대천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사대천왕은 홍콩 대중 [[가수]] 영역에서 비롯된 표현이지 홍콩 영화계와는 관련없는 호칭이라고 한다. 참고로 사대천왕보다 먼저 가요계에서 인기를 얻었던 1980년대 [[알란탐]], [[장국영]], [[매염방]]은 '무적 3인방'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홍콩 박스오피스를 휩쓸었던 [[주윤발]], [[주성치]], [[성룡]]을 쌍주일성(雙周一成)이라고 불렀다. 이후 주윤발, 성룡이 할리우드 진출을 하면서 견고했던 쌍주일성 체제가 무너지고 곽부성, 정이건 주연의 풍운, 정이건, 진소춘 주연의 고혹자 시리즈가 홍콩 박스오피스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이 홍콩 사대천왕이라는 표현은 원래 홍콩 미디어에서 먼저 썼던 표현이지만, 한국으로 그대로 수입되어 1990년대 초반 한국 연예 미디어[* 방송보다는 스포츠신문과 주간지에서 많이 사용했다.]를 달구었다. 그리고 한국에도 이 표현이 관용적으로 남아서 '~의 [[사대천왕]]'이라 불리고 있다. [[사대천왕]] 문서 참조. == 구성원 == [include(틀:홍콩 사대천왕)] 장학우, 여명은 [[가수]]로 데뷔하여 [[배우]] 활동을 겸하고 있다. 유덕화는 1981년에 배우로 먼저 데뷔했으며 1985년부터 가수 활동을 겸하고 있다. [[댄서]]로 데뷔하여 배우 활동도 해온 곽부성은 1990년부터 가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홍콩영화가 인기였던만큼 이들 중 유덕화가 가장 유명했고[* 물론 홍콩배우 전체로 치면 [[성룡]], [[주윤발]], [[장국영]] 등에 비해 인지도가 밀리나, 유덕화는 출연한 영화도 많아서 한국에서 홍콩 연예인 인지도 선두권은 됐다.], 다음으로 여명이 유명했다. 유덕화는 한국에서 장국영에 이어 투유 초콜릿 광고에도 출연했으며 본인 생애 첫 콘서트를 한국에서 할 정도였고, 앨범과 영화 홍보차 내한해서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여명 역시 1990년대 한국에서 한국어 노래[* 물론 발음은 21세기 K팝 외국인 가수들처럼 철저하게 배우진 못했는지 많이 어설펐다.]와 영어 노래로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분류:홍콩의 남배우]][[분류:홍콩의 남가수]][[분류:인물 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