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93년/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 육군/사건 사고]][[분류:종로구의 사건사고]][[분류:철원군의 사건사고]][[분류:인질극]] [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w61IjNqE3_I)]}}}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ucJrmaQOskM)]}}} || ||<-2> 관련 영상 || * 당시 [[KBS]] 9시뉴스 보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27713|보기]] *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4426_19418.html|보기]][* 이 보도를 한 기자가 바로 김장겸이다.] 그 당시 긴박했던 현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상 후반에 죽을 뻔한 운 좋은 아저씨가 나온다. 그분 왈 "나한테, 4번을 쐈어." 정말 4발 다 안 맞은 게 천만다행인 정도다.] [[http://map.daum.net/?panoid=1028660861&pan=235.9&tilt=-0.8&zoom=-3&map_type=TYPE_MAP&map_hybrid=true&map_attribute=ROADVIEW&urlX=499301&urlY=1135719&urlLevel=3|로드뷰]] [[1993년]] [[4월 19일]]에 [[강원도]] [[철원군]] 소재 [[대한민국 육군]] [[제15보병사단]] [[전차]][[중대]]에서 현역병으로 복무 중이었던 당시 [[육군]] [[일병]] 임채성이 부대를 [[탈영#s-3.2|무장탈영]]하여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서 [[서울특별시]]로 차를 몰게 한 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에서 군의 추격부대와 [[시가전]]을 벌인 사건. 영화 [[터미네이터(영화)|터미네이터]] 같은 모습이 연출되었다고 해서 '''터미네이터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 경과 == 당시 22세였던 임채성 일병은 자신이 복무 중이던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에 위치한 육군 부대에서 [[K1 기관단총]]과 실탄 130여 발, [[수류탄]] 22발을 탈취하여 [[탈영#s-3.2|무장탈영]]을 강행하고 부대 인근 민가로 들어가 민간인을 인질로 잡은 뒤 인질 소유의 자동차인 [[기아 베스타]] 승합차를 인질에게 운전하도록 시켜 철원을 지나 [[경기도]]에 진입하여 [[포천시]], [[연천군]], [[동두천시]], [[의정부시]]를 경유하며 [[서울특별시]]에 다다랐다. 도중 수차례 검문소를 거쳤지만 그는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상태라 검문소 측에서 바로 통과시켜 버렸다. 그러다 [[서울특별시]]로 들어가는 길목 격인 광릉내 검문소에 가서야 제지를 받게 되었는데 결국 검문에 불응하고 서울 방향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서울특별시]] 각지를 수색하던 [[수도방위사령부]] [[헌병]][* 현. 군사경찰]들 중 일부가 이스턴호텔([[http://map.daum.net/?panoid=1028745735&pan=175.9&tilt=-26.1&zoom=-3&map_type=TYPE_MAP&map_terrain=off&map_attribute=ROADVIEW&urlX=502277&urlY=1130962&urlLevel=3|로드뷰]])에서 그를 목격했으나 상부에 무전으로 보고하는 사이에 그를 놓쳐 버렸고 [[혜화동]]-[[명륜동(서울)|명륜동]] 근방에서 자신이 발각되었음을 눈치챈 그는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근처에 있던 민간인들에게 총기와 수류탄을 난사했다. 당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서울과학고등학교]] 주변은 비상사태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경찰공무원|경찰]]에 포위되었으나 고작 [[리볼버]]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은 K-1 기관단총 앞에 상대가 되지 않았고 대치가 이어지던 중 출동한 [[수도방위사령부]] [[대한민국 국군 군사경찰/특수임무대|특별경호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복부]]와 후두부에 총상을 입었으나 숨이 붙어 있어서 생포되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되었다가 군사재판을 받아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이 난동으로 7명이 중경상을 입고 그 중 1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사망자는 당시 [[혜화동]]에서 채소 가게를 운영하던 고성주 씨였는데 1남 4녀를 힘겹게 키우느라 그 날도 식사도 거른 채 일하고 있다가 변을 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탈영병을 만나자 놀라서 차 뒤에 숨었지만 흥분한 임채성이 달려들어 왼쪽 머리에 총을 쏴 버렸다. 주민들이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서 응급처치를 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숨지고 말았다. 어린이 1명과 10대 소녀 1명이 인질로 잡혔으나 어깨에 총상을 입은 여성 인질을 빼고 모두 무사했다. 당시 사건 현장 바로 근처에 있었던 [[서울대학교병원]]에선 외과 계열 의사들을 전부 호출하여 응급 수술에 투입하였다. 무장 탈영병 사건 중에는 이보다 희생자 수가 많은 사건이 있어 왔으나 이 사건은 현장의 긴박함이 방송으로 생생하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그 어떤 무장 탈영 사건보다 큰 충격을 주었다. == 범인에 관해서 == 이 사건의 범인인 임채성은 1992년 2월에 단기하사관 장학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며 동네에서 자주 말썽을 일으켰으며 입대 직전인 같은 해 7월 친구들과 어울려 서울로 갔다가 용돈 마련을 위해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갈취를 하다 경찰에 구속된 전적이 있다. 같은 해 8월에 [[육군부사관학교]]에 [[부사관후보생]][* 당시 육군하사관학교 하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으나 양성교육훈련이 진행 중이던 11월에 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탈영했으며 이후 [[아버지]]의 설득 끝에 자수하여 육군 병(兵)으로 다시 입대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관심병사로 지정되었고 병으로 다시 입대한 후에도 말썽을 자주 일으키다 보니 평판이 좋지 못했다. 당시 나이는 22세였다.[* 고등학교 시절 유기정학을 3회 당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사관학교에서 훈련받는 조건으로 군 장학금을 받았다. 부사관후보생으로 군입대를 해서도 부적응하며 제 멋대로 행동했다. 부사관후보생 당시 탈영 동기는 친구를 만난다는건 표면적이고 실상은 양성교육훈련과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정확한 탈영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군 복무에 대한 염증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이 사건으로 해당 부대 사단장과 제5군단 헌병대장[* 현 군사경찰대장]이 해임되고 중대장과 소대장, 당직사관 등은 [[구속(형사절차)|구속]]되었다고 한다.[* 물론 탈영이 일어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범인 임채성이 탈영 전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총기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 중무장을 하고 탈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탓이다.] 또 최초로 임 일병을 발견했으나 놓친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들은 불필요한 보고로 일을 키웠다며 상부로부터 무자비하게 비난을 당했다. 여담으로 [[하나회]] 때문에 [[김영삼]]에게 찍힌 [[이필섭]] 합참의장에게도 불똥이 튀어 결국 강제예편을 당하게 되었다. 아무튼 [[대한민국 국군]]의 [[흑역사]] 중 하나이다. == 여담 == * 해당 사건이 발생한 날 공교롭게도 충청남도 논산시에 위치한 모 신경정신과병원(현.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무려 [[논산 정신병원 화재|34명이 사망한 참사]]가 있었으나 무장 탈영병 총격 사건에 의해 그대로 묻혀 버렸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27716|기사]] * 넷플릭스 드라마 [[D.P.]] 시즌1 6화에서 탈영 사건과 관련되어 언급되었다. == 관련 문서 == *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