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몽골 제국 대칸)] [include(틀:역대 원 황제)] ||<-2> {{{#fff '''원 제11대 황제'''}}}[br]'''{{{#fff {{{+2 惠宗 | 혜종}}}}}}''' || ||<-2> {{{#fff '''몽골 제국 제15대 대칸'''}}}[br]'''{{{#fff {{{+2 ᠤᠬᠠᠭᠠᠲᠤ ᠬᠠᠭᠠᠨ | 우카가투 칸}}}}}}'''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Toghon_Temur.jpg|width=100%]]}}} || || '''[[묘호|{{{#fff 묘호}}}]]''' ||'''[[혜종]](惠宗)'''[* 북원 추증.] || || '''[[시호|{{{#fff 시호}}}]]''' ||선인보효황제(宣仁普孝皇帝)[* 북원 추증.][br]순황제(順皇帝)[* 명 추증.] || || '''[[칸호|{{{#fff 칸호}}}]]''' ||우카가투 칸(ᠤᠬᠠᠭᠠᠲᠤ ᠬᠠᠭᠠᠨ)[br](烏哈噶圖汗 / 오합갈도한) || || '''[[성씨|{{{#fff 성}}}]]''' ||[[보르지긴]](ᠪᠣᠷᠵᠢᠭᠢᠨ)[br](孛兒只斤 / 패아지근) || || '''[[휘|{{{#fff 휘}}}]]''' ||토곤테무르(ᠲᠣᠭᠠᠨᠲᠡᠮᠦᠷ)[br](妥懽帖睦爾 / 타환첩목이) || || '''{{{#fff 부모}}}''' ||<(> 부황 [[명종(원)|명종]][br]모후 정유휘성황후 || || '''[[연호|{{{#fff 연호}}}]]''' ||지순(至順, 1333년)[br]원통(元統, 1333년 ~ 1335년)[br][[지원(연호)|지원]](至元, 1335년 ~ 1340년)[* 이미 세조 때에 썼던 연호를 다시 사용했다. 같은 국가에서 동일한 연호를 사용한 유일한 사례.][br]지정(至正, 1341년 ~ 1368년)[* 본 연호에서 유래하여, 《[[원사(역사책)|원사 元史]]·[[명종(원)|명종본기 明宗本紀]]》에선 혜종을 지정제(至正帝) 또는 지정주(至正主)라 부르기도 한다.[[http://thesaurus.itkc.or.kr/search/view?dataId=3457&sType=_detail&q=&secType=uf&&fq=cateType2_fct%3A%EC%9D%B8%EB%AA%85%2F%EC%99%95%EC%8B%A4%2F%EA%B5%AD%EC%99%95&fq=catePeriod1_fct%3A%EC%A4%91%EA%B5%AD&fq=catePeriod2_fct%3A%EC%A4%91%EA%B5%AD%2F%EC%9B%90]]][br]지정(至正): 1368년 ~ 1370년(북원) || || '''[[황후|{{{#fff 황후}}}]]''' ||[[다나시리 황후|타나실리 황후]][br][[바얀 후투그 황후]][br][[보현숙성황후 기씨]](기황후)[br][[무나시리 황후]] || || '''{{{#fff 생몰 기간}}}''' ||1320년 5월 25일[* [[경신|경신년]]에 태어났다하여 섭자기(叶子奇)의 저서《초목자 草木子》에선 경신제(庚申帝)라 불렀다. 《삼원필기 三垣筆記》에서는 경신군(庚申君)이라 불렀다. 혜종 재위기를 기술한 원말명초 문인인 권형(權衡)의 저작 《경신외사 庚申外史》 또한 이러한 혜종의 별칭에서 유래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6127680]] ] ~ 1370년 5월 23일 (50세) || || '''{{{#fff 재위 기간}}}''' ||1333년 7월 19일 ~ 1370년 5월 23일 (36년 10개월)[* 원나라 황제 중 가장 오랜기간 재위했으며, [[쿠빌라이 칸]]을 제외한 모든 황제들의 재위기간을 합한 것에서 겨우 2년 모자란다.] || [목차] [clearfix] == 개요 == [[몽골 제국]]의 제15대 [[카간|대칸]]이자, [[원나라]]의 제11대 [[황제#s-2]]. 묘호는 혜종(惠宗), 시호는 선인보효황제(宣仁普孝皇帝) 혹은 순황제(順皇帝). 휘는 토곤테무르(妥懽帖睦爾)[* 몽골어로 [[철(원소)|철]]로 된 [[솥]]이라는 뜻이다.].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명나라]]에 의해 [[몽골 고원]]으로 쫓겨간 [[북원]]의 초대 황제. 다양한 기물을 만든 손재주 때문에 노반천자(魯班天子)라 불리기도 했다.[* [[공수반|노반]](魯班)은 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톱과 대패, 끌을 발명하였다는 얘기가 있으며 도교에서 목수(木手)의 신으로 신격화되었다.] 한국에선 [[고려]]인이었던 [[보현숙성황후|기황후]]의 [[남편]]으로도 인지도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원 순제'로 불리는데, 드라마 기황후의 영향으로 '타환'(妥懽)으로도[* 휘 토곤테무르의 앞부분 '토곤'을 몽골어 말고 [[한국 한자음|한자 발음]]대로 읽으면 이렇게 된다.] 알려졌다. == 생애 == 원 혜종 토곤테무르는 [[원명종|명종 황제]] 쿠살라의 장남이었으며, 원래라면 동생 린칠반이 아니라 그가 숙부인 [[원문종|문종]] 투그테무르의 후계자가 되어야 했으나, 그의 어머니의 가문이 명문가가 아니라는 것과 당시 토곤테무르가 문종을 독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에 [[엘테무르]]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때문에 황제에 오르기 전에는 [[고려]]의 [[대청도]]와 중국 남쪽 [[광서성]] 지역 등을 오가며 사실상 추방당한 삶을 살았다. 이런 과거 때문인지 나라가 망할 경우에는 [[제주도|탐라]]로 튈 계획도 세웠었다고. [[원영종|영종]] 린칠반의 사후 즉위는 했지만 엘 테무르가 죽을 때까지 정식 즉위는 하지 못했으며, 엘 테무르가 사망한 뒤로도 내부 정쟁 때문에 실제로 실권을 갖고 있던 기간은 길지 않은 편이었다고 한다. 이 영향인지 [[야사(역사)|야사]]에선 토곤테무르의 어머니가 [[송공제]]의 [[첩]]이었다가 후에 명종 쿠살라의 후비가 된 정유휘성황후 카를룩씨(貞裕徽聖皇后 罕祿魯氏)이고[* 정유휘성황후의 이름은 매래적(邁來迪)이다. 정사에서는 토곤테무르의 어머니가 [[카를룩]] 부족 출신이었다고 적혀있는데 매래적이 카를룩족 출신이다.] 친아버지는 명종이 아니라 [[송공제]]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1336년 6월, 원순제는 선대 황제들처럼 서방에 사절을 보냈다. 교황 [[베네딕토 12세]]는 그 답례로 32명의 사절단을 대도로 파견하였다. 고려 역사상 최악의 폭군 [[충혜왕]]을 귀양보낼 때, '''"그대의 죄는 너무 커 그대의 피를 천하의 개들에게 줘도 부족할 지경이나, 짐은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으므로 [[귀양]]을 친히 보낸다"'''라는 내용을 보냈다고 한다. 참고로 [[몽골]] 문화에서 피를 흘리게 하는 방법으로 죽이는 것은 철천지 원수 내지는 대역 죄인에게나 쓰는 방법으로, 특히 왕족이 땅에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엄청난 행위로 취급받았다. ||<:>[[파일:Red_Turban-1.png|width=500]]|| ||<:>'''[[원말명초]]당시 군웅들의 세력'''|| 이전부터 몽골 제국은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치세때 본격적으로 제국의 붕괴가 시작했다. 1335년 [[일 칸국]]이 해체되고 1340년 [[킵차크 칸국]]이 조공을 중단하고 원나라와의 관계를 끊었으며[* 다만 킵차크 칸국, 특히 본가인 백장 칸국 쪽은 원래 원나라 및 칸국들과 갈등이 심했다. 동부의 청장 칸국은 타 칸국들과 비교적 우호적으로 지낸편], 1348년 [[차가타이 칸국]]이 분열되었다.[* 차가타이 칸국은 [[원무종]] 사후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원나라와의 관계가 1순위였다, 다만 일 칸국과 분쟁이 심했으며, 에센 부카 등 원나라에 적대적인 칸도 일부 있었다.] 거기에 동시기 '''[[중세 흑사병]]'''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으로 인한 실크로드 무역로의 위기는 물론 [[교초]] 화폐의 지속적인 실패로 경제 파탄까지 연이어 겹치며, 각지에서 원나라계 군벌, 한족계 군벌이 난립하는 막장 상황이 터진다. 1336년 잇다른 기근, 수해, 역병으로 재정 위기를 겪자 세금을 늘리고 소금 매매를 국가에 귀속시켜 재정 위기를 극복하려 하나 반발만 산건 물론, 운하 건설로 백성들에게 잦은 노역을 시켜 가중된 불만은 결국 [[방국진]]의 반란을 기점으로 곳곳에서 반란군이 발생해 [[홍건적의 난]]이 되었다. ||<:>[[파일:4955_13781_526.jpg|width=500]]|| ||<:>'''[[이븐 바투타]]의 여행로'''|| 1347년 [[델리 술탄 왕조]]가 보낸 명마 100필과 백인 노예 100명, 노래와 춤에 능한 인도 소녀 100명, 다양한 종류의 옷감 1200필, 금과 은으로 만든 촛대와 대접, 비단옷, 모자, 화살집, 검, 진주로 장식된 장갑, 환관 15명등의 진상품을 받았으며, 당시 사절단의 대표로 [[이븐 바투타]]가 있었다. 그러나 이븐 바투타는 토곤 테무르를 직접 알현하지는 못하고 돌아갔다. 1353년 [[토크토아]]의 죽음 이후 아유르시리다르를 황제로 옹립하려는 세력과의 극심한 권력다툼이 있었다. 이중에는 토곤 테무르가 총애했던 기황후도 있었다. 또한 1363년 [[최유(고려)|최유]]가 1만의 군대로 고려를 침공하나[*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왕위에 앉히려 했다.][* 여기서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는 데 기여한 [[유인우]]도 같이 침공했으나 고려군에게 패해 죽고 만다.] 실패하고 최유가 다시 고려의 공격을 요청하나, 원의 감찰어사 유련이 그의 간사함을 폭로하자 공민왕을 복위를 승인하는 조서를 보내고 최유를 고려로 압송시키는데, 최유는 고려에서 처형당하고 만다. 1364년 [[베이르테무르]]는 다통에서 대도로 진군하여 칸 휘하의 중앙정부를 장악하였다. 기황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라는 타이위안으로 달아나 [[코케테무르]][* [[차칸테무르]]의 양자.]의 지지를 구하였다. 1365년 황태자는 코케테무르와 함께 베이르테무르를 공격했는데, 베이르테무르는 부하에게 배반을 당한 뒤, 코케 테무르에게 사살되었다. 그러나 1368년 세력을 키워 [[명나라]] 건국을 선포한 [[주원장]]이 군대를 이끌고 화북으로 진격해온 끝에 수도 [[대도]]를 무너뜨리자 혜종을 비롯한 원 세력은 응창부[*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 [[츠펑시|츠펑 시]] 커스커텅 기]로 쫓겨나면서 [[북원]]으로 전락했고, 2년 후인 1370년에 사망했다. 그의 사후 기황후의 소생 아유시리다라가 북원의 황위를 물려받았다. 그가 중국에서 쫓겨날 당시 원나라의 영향력은 서쪽으로 알타이 산맥에, 북쪽으론 시베리아에, 남쪽으론 내몽골에, 동쪽으론 연해주에 이르렀지만, 한때 세계를 호령한 제국의 말로 치곤 굉장히 초라했다. 승상 [[메르키트 바얀|백안]]이 유난히 한족 문화를 배격하고 한족 백성들을 핍박하려고 하면서 몽고족과 한족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었고, 그가 실각한 후 [[토크토아|탈탈]]이 유화정책을 실시해서 갈등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긴 했으나 이미 민심이 악화되어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났다고 한다. == 묘호/시호에 대하여 == 토곤 테무르가 몽골 초원으로 물러나서 그곳에서 사망한 후, [[북원]]에서는 그에게 혜종이라는 묘호와 선인보효황제라는 시호를 따로 추증했다. 그러나 원나라를 이어 중국을 통일한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은 하늘의 '''순리'''대로 몽골로 물러가면서 자신에게 황위를 양위했다며 순이라는 [[시호]]를 따로 올렸다. 즉, 유목세계를 계승한 북원에서 올린 묘호는 혜종이고, 중화세계를 계승한 명에서 올린 시호는 순황제(順皇帝)이다. 홍무제 당대에 성급하게 만드느라 날림으로 악명 높았던 원사를 [[중화민국]]시기에 [[커샤오민]]이 다시 정리한 《[[신원사]]》는 원나라와 북원의 역사를 모두 담아 본기에서 묘호인 혜종으로 표기하였다. [[https://www.scribd.com/doc/6293433/%E6%96%B0%E5%85%83%E5%8F%B2-%E4%B8%8A|신원사 – 상]]. [[명나라]]가 이미 [[원나라]]를 몽골 고원으로 몰아내고 중원의 정통 왕조가 되었으니 이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순황제라고 부를 수 있겠고, 원나라가 남송이나 남명처럼 비록 쫓겨갔지만 엄연히 국체를 유지하고 후손으로부터 묘호와 시호를 받은 건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혜종이나 선인보효황제(보황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현지에서는 대체로 한족 민족주의자들이 전자에 해당하고 다른 이들, 특히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한족들 및 비한족계(특히 [[몽골인|몽골계]]) 중국인들이 후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표기가 어느 쪽이든 원칙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 가족관계 == 황후 * 정궁황후(正宮皇后) → 폐위: [[다나시리 황후|바야우트 다나슈리]](伯岳吾 答纳失里) - 태사(太師)를 지낸 태평왕(太平王) [[엘테무르]](燕鐵木兒)의 딸. 혜종의 1대 정궁황후로 입궁하였으나 오빠 텡기스[* 한자어로 말하면 당기세]의 반란에 연루되어 폐서인되었으며 승상 [[메르키트 바얀|메르키트 뱌얀(백안)]]에게 주살당했다. * 정궁황후(正宮皇后): [[바얀 후투그 황후|옹기라트 바얀 후투그]](弘吉剌 伯顏忽都) - 원 무종의 황후 첸게의 질녀로 육덕왕(毓德王) 베이르테무르의 딸이자 [[메르키트 바얀]]의 사촌조카. 타나시리의 폐위 이후 새로운 2대 정궁황후에 책봉된다. * 7남: 진금 황자(眞金 皇子) * 8남: 설산 황자(雪山 皇子) * 제2황후 → 정궁황후(正宮皇后): [[보현숙성황후 기씨|보현숙성황후(普顯淑聖皇后) 기씨(奇氏)]] - 바얀 후투그 황후 시기에 2황후에 책봉되어 있다가 바얀 후투그 황후 사후에 3대 정궁황후에 오른 인물. 흔히 기황후라 불린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 장남: 원 [[소종(원)|소종]](昭宗) 보르지긴 아유르시리다라(孛兒只斤愛猷識理答臘) * 제3황후: 옹기라트 무나시리(弘吉剌 木納失裏) 궁중 칠귀(七貴) * 숙비 용서교(淑妃 龍瑞嬌) * 숙비 정일녕(淑妃 程一寧) * 숙비 과소아(淑妃 戈小娥) * 여빈 장아원(麗嬪 張阿元) * 여빈 지기씨(麗嬪 支祁氏) * 재인 응향아(才人 凝香兒) * 재인 영영(才人 英英) 기타 * 여빈 진씨(麗嬪 陳氏) * ? * 차남: 오왕(吳王)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 * 3남: 촉왕(蜀王) 도선첩목아(都先帖木兒) * 4남: 익왕(益王) 테구스테무르 - 북원 제3대 황제 [[천원제]](天元帝) 우스칼 칸 * 5남: 제왕(齊王) 연태(燕台) * 6남: 초왕(楚王) 화태랄(和台剌) * 9남: 실독아 태자(失禿兒 太子) * 10남: 만만 태자(巒巒 太子) * 장녀: 정국공주(鄭國公主) - 진동무성왕 박공목소특(鎭東武成王 博供穆素特)에게 하가(下嫁) * 차녀: 초국공주(楚國公主) - 요왕 홍길랄 색평지만사특(遼王 弘吉剌 色坪持滿思特)에게 하가(下嫁) * 3녀: 연국공주(燕國公主) - 정남충성왕 홍길랄 초삭극포태가파(征南忠成王 弘吉剌 礎朔克布台可巴)에게 하가(下嫁) * 4녀: 완국공주(宛國公主) - 평북무헌왕 홍길랄 시금(平北武獻王 弘吉剌 時金)에게 하가(下嫁) * 5녀: 촉국공주(蜀國公主) - 안평왕 파통격만(安平王 把通格滿)에게 하가(下嫁) == 대중매체에서 == * [[징기스칸 4]] 파워업키트에서 시나리오 4에 등장하지만, 원나라가 몰락하는 시대라 전망이 그리 좋진 않다. 물론 이 게임 주인공이 징기스칸이다보니 몽골 지역 자체가 몽골기병 병종을 비롯해 강력하게 디자인돼있다보니 성이 하나뿐인 1370년 북원이라도 하드코어급으로 어렵진 않다. 원혜종 자체는 왕조를 망쳤다는 결과 때문인지 능력치는 좋지 않은 편이다. 전투 37, 전투 51, 지모 47. 특기는 문화, 병과 적성은 보병 C, 궁병 C, 기병 B, 수군 E로 암울 그 자체. 시작시 북원의 세력이 성 4개를 가진 명나라에 비해 암울하지만 북원 최후의 명장 '''[[코케 테무르]]'''가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자. 그리고 [[토곤테무르]]와 아들인 [[소종(원)|아유르시리다라]]는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으니 얼른 둘째 자식을 낳아야 한다. 북원을 AI가 할 경우 보통 명의 둔황까지는 점령하는데 토번의 라싸는 점령 가능성이 반반이고 초기 인물들이 다 죽으면서 듣보잡 클론 장수들이 북원의 황제가 된다. 아니면 시작하자마자 나이가 젊어서 자식을 볼 확률이 더 큰 아유르시리다라에게 양위하는 것도 좋다. 다만 명의 주력군은 북원보다는 고려 원정 또는 바다 건너 일본 원정을 자주 하며, 북원의 카라코룸은 몽골기병과 화포병을 징병할 수 있고 개발할 수 있는 땅이 워낙 많기에 등용 특기가 있는 코케테무르로 초반에 5천 금을 들고 북경에 간첩 유닛으로 잠입해서 세이브 로드 신공으로 배반 커맨드를 계속 쓰다 보면 내정에 굴릴 수 있는 요광효와 시작 나이가 어리고 이 게임의 중국 문화권 장수들 중 최강인 [[주체]]를 빼낸 다음 남경으로 가서 주체 다음으로 강력한 무장인 [[서달]]을 영입할 수도 있고 클론 장수들을 고용하면서 건설 러시로 목축, 전술, 무기, 의술의 도시가 되고 나면 높은 무력을 가진 몽골 출신 아들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까지 고난이도는 아니다.[* 문화 건물을 지을 공간이 부족하면 이주 유닛을 만들어 카라코룸의 지배 범위를 줄이고 지배 범위 밖의 건물들을 군대로 약탈해서 빈 땅으로 만들고 증축으로 빈 땅을 다시 수복 하면 된다. 어차피 몽골 출신 장수들은 약탈을 해도 충성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면 고려의 개성까지도 가도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고려까지 쳐들어가거나 간첩질을 통해 [[이성계]]를 영입하는 것도 좋다. 원나라의 주력군인 몽골기병 운용에는 주체보다는 연사와 화공을 동시에 가진 이성계가 훨씬 적합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렸다는 걸 반영한 건지 초기에 설정된 충성도가 다소 낮은 편이라서 주체나 요광효보다는 손쉽게 빼 올 수 있으며 명이나 일본이 초반에 고려를 정복할 때도 있으니 이때 재야로 내려갔거나 명이나 일본에 등용된 이성계를 데려오는 것도 좋다. 참고로 여기서 토곤테무르의 아내로 기황후나 무나시리 황후가 아니라 가공 인물인 '미르자'라는 몽골 출신 여인이 나온다. 실제로 기황후는 북원으로 쫓겨갈 때쯤부터는 더 이상 기록에 나오지 않으므로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이 게임이 그리 고증을 열심히 지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경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도 등장하는데, 플레이 가능한 마지막 시나리오가 1337년이다.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등장하긴 하나, Jade Dragon DLC 이전엔 중국이 구현되어 있지 않은 게임의 특성상 세력이 매우 약했다. 덤으로 트레잇마저 욕정, 태만, 탐욕 같은 좋지 않은 특성들이 붙어 있다. Jade Dragon부터는 1337년 시나리오에서 오프맵 세력인 중국 황제로 등장한다. * 드라마 [[신돈(드라마)|신돈]]에서는 [[이석구]]가 맡았는데, 기황후와 그녀가 부리는 라마승들의 방중술에 사로잡혀 국정은 완전히 뒷전인 암군으로 묘사된다. * [[기황후(드라마)|드라마 기황후]]에서는 배우 [[지창욱]]이 연기했다.[* 개요에 서술됐다시피, 한국에 잘 알려진 타환이라는 이름은 이 드라마의 영향이다. 자막에서 한자 표기가 토곤과 같은 妥懽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기황후 타환 이름 표기.png]]] * 무협소설 [[의천도룡기]]에서는 이름만 나오다가 대도에서 행차하는 장면에서 잠깐 등장한다. 2019년에 제작된 드라마에서는 나라를 망치는 암군으로 자주 언급되는데, 오죽하면 원나라 황족인 조민마저 황제 암살을 추진하고, 그녀의 아버지 여양왕 역시 황제의 실정을 비난하는 장무기에게 '나라고 모를 것 같냐'며 옹호를 포기한다. [[주원장]]은 '괜히 황제를 죽였다가 나라가 안정되면' 봉기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며 교단 지도부의 황제 암살 주장을 억누른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원사)]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순제, version=80, title2=원순제, version2=39)] [[분류:몽골 카간]][[분류:원나라의 황제]][[분류:망국의 군주]][[분류:보르지긴 가문]][[분류:의천도룡기의 등장인물]][[분류:1320년 출생]][[분류:1370년 사망]][[분류:이질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