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헤로데 왕조 국왕)]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erod_Agrippa_II.jpg|width=100%]]}}} || [목차] [clearfix] == 개요 == '''[[서력기원]] 27년경 ~ 94년경 혹은 100년 이전.'''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의 아들로 헤로데 아그리파 2세라고도 한다. 헤로데 왕가의 마지막 왕으로, 사실상 [[영주(중세)|영주]]나 [[공]](prince)정도로 분류한다. == 생애 == 아버지가 죽을 때 겨우 17세였기에 4년간을 더 로마에서 머물렀다가, 헤로데 5세(칼시스)가 죽자 왕위를 계승하러 갈릴래아로 왔다. [[사도 파울로스]]가 잡혀서 [[로마 제국|로마]]로 압송되기 직전 복음을 전하는 헤로데왕은 이 헤로데왕이다. [[사도 파울로스|바울로]]가 죄가 없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기독교|그리스도교]]인이 되지는 않은 듯하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요세푸스]]를 후원하고 AD 50년대 [[네로]] 등에게서 영토를 더 할양받는 등 영화를 누렸으며, 헤로데 왕가 치고는 70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친 유대교적인 정책을 폈고, [[제1차 유대-로마 전쟁]](AD 66~73)을 겪으면서도 초기엔 로마에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군중들 앞에 나와 설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비해 신망이 높지 않아,[* 누나 [[베르니케]]와의 스캔들 등으로 사생활이 좋지 않았다.] [[열심당]]의 결론이 결국 강경한 봉기로 이어지자 진압에 앞장서는 등 분란은 끊이질 않았다. 서기 100년인 [[트라야누스]] 때까지 살았다는 기록도 있으나, 흔히 향년 70세 사망에 근거해 95년경 사망설을 정설로 한다. 여하간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를 마지막으로 130년의 헤로데 왕조는 끝나게 된다. 유대 봉기와 헤로데 왕가의 몰락으로 [[예루살렘]]과 [[유대교]]는 그야말로 전례 없는 철퇴를 맞았고, 예루살렘이라는 이름마저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1세기 로마의 가장 특이한 준자치 지역이던 헤로데 왕가 유대 왕국의 끝이었다. 그 외 북시리아왕으로 헤로데 대왕의 손자 헤로데 5세(AD 48년 졸)와, 그 아들 아리스토불로스가 따로 있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헤로데, version=79)] [[분류:헤로데 왕조 국왕]][[분류:망국의 군주]][[분류:27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