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명나라의 인물, rd1=해수(명나라))]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사]]에서는 두 사람이 존재하는데 모두 [[백제/인물|백제 사람]]이다. 이들의 혈연관게는 불명이지만 [[대성팔족]] [[해(성씨)|해씨]]로써 혈연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 [[백제]] [[전지왕]]대의 [[대신]] [[解]][[須]] == [include(틀:역대 백제 상좌평)] 解須 생몰년도 미상 [[백제]] [[전지왕]]대의 대신. [[대성팔족]]중 일원인 해씨가문 출신으로 전지왕의 [[외척]]이다. 전지왕 3년 407년 당시 [[왜]](倭)에서 돌아온 전지왕의 즉위에 있어서 해씨가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졌고[* [[해충(백제)|해충(解忠)]]의 경우에도 보여지듯이 [[부여설례]]가 [[왕위]]를 [[찬탈]]하는 [[반역]]이 벌어지며 긴박했던 국가 내부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 전지왕이 오를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에 대한 [[논공행상]] 차원에서 벼슬을 내린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비유왕]] 3년째인 429년 10월 [[상좌평]] [[부여신]](扶餘信)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상좌평에 올랐다. == [[무왕(백제)|무왕]]대의 [[좌평]]/[[장군]] [[解]][[讎]] == 解讎 생몰년도 미상 [[백제]] [[대성팔족]] 중 하나인 해씨(解氏). 602년 [[신라]]가 백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무왕은 [[아막성 전투|좌평 해수에게 보기 4만명의 병력을 주어 막게 하였다.]] 해수는 이들 병력을 이끌고 신라의 소타(小陀), 외석(畏石), 천산(泉山), 옹잠(甕岑) 4개성을 공략했으나 신라 장군 건품(乾品)과 무은(武殷)이 군대를 이끌고 저지를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백제군이 불리해지자 해수는 군대를 천산 서쪽의 큰 연못 한가운데로 후퇴시킨후 [[복병]]을 배치시킨채 신라군을 기다렸다. 이때 신라군의 장수 무은이 중무장한 보병 1천을 이끌고 큰 연못까지 쫒아왔고 이때 [[매복]]해둔 복병을 동원해 신라군을 공격하니 무은이 말에서 떨어졌다. 무은을 지키기 위해 무은의 아들 귀산(貴山)과 [[소장(계급)|소장]](小將)인 추항(箒項)이 격렬히 [[황산벌 전투|싸우다 전사하자 이를 본 신라군이 분노해 백제군을 쓸어버렸고]] 해수는 [[역관광|겨우 목숨만 살아 홀로 돌아왔다고 한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해수, version=88)] [[분류:동명이인]][[분류:백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