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 여배우]][[분류:1920년 출생]][[분류:1935년 데뷔]][[분류:1963년 은퇴]][[분류:2015년 사망]][[분류:호도가야구 출신 인물]] ||<-2> '''{{{+1 하라 세츠코}}}[br][ruby(原, ruby=はら)] [ruby(節子, ruby=せつこ)] | Setsuko Hara'''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etsuko_Hara_in_Late_Spring_2.jpg|width=100%]]}}} || || '''본명''' ||아이다 마사에 ([ruby(會田, ruby=あいだ)] [ruby(昌江, ruby=まさえ)]) || ||<|2> '''출생''' ||[[1920년]] [[6월 17일]] || ||[[일본 제국]] [[가나가와현]] 타치바나군 호도가야정[br](現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호도가야구)|| ||<|2> '''사망''' ||[[2015년]] [[9월 5일]] (향년 95세) ||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제국)] →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 '''직업''' ||[[배우]] || || '''신체''' ||165cm || || '''활동 기간''' ||[[1935년|1935년 – ]][[1963년]] || || '''부모''' ||^^'''아버지'''^^ 아이다 후지노스케(會田 藤之助) [br] ^^'''어머니'''^^ 아이다 나미(會田 ナミ)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배우. == 특징 == [[키네마 준보]] 선정 [[20세기]] 일본 영화 여배우 1위에 선정됐다. 현대에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같이 출연한 [[만춘]](1949), [[동경이야기]](1953) 와 같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상징하는 착한 딸, 착한 며느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영원한 성처녀' 라는 이미지로 유명[* 오즈 야스지로의 또 다른 페르소나 [[류 치슈]]는 영원한 아버지로 유명하다.]. [[만춘]](1949)에서는 홀아버지 때문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노처녀]] [* [[1960년]]작 '늦은 가을'([[가을햇살]]) (秋日和)은 일종의 [[리메이크]]작인데, 여기서도 출연하였다. 단 여기서는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기 싫어 시집을 가지 않으려는 딸을 시집 보내고자 하는 어머니 역으로 나온다 ], [[동경이야기]](1953)[*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설문조사에서 [[시민 케인]], [[현기증(미국 영화)]], [[게임의 규칙]],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함께 다섯 손가락에 드는 영화이다.]에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도 시부모를 정성을 다해 모시는 둘째 며느리 등 일본 홈드라마에서의 '착한 딸/며느리'의 이미지를 영원히 굳히게 되었다. 1937년 [[레니 리펜슈탈]]과 작업했던 아놀드 팡크 감독의 독일-일본 합작 제국주의 선전 영화인 〈새로운 대지〉[* 新しき土][* 독일어 제목은 Die Tochter des Samurai로 사무라이의 딸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 를 통해 데뷔하여 [[2차 대전]] 전에 이미 일본의 최고 인기 여배우로 군림하였다.〈새로운 대지〉에서 "대지"가 뜻하는 것은 [[만주]]로서 일본의 [[만주사변]]을 대놓고 정당화 하기 위해 만든 국책 영화 였으며 제작 배경에는 [[일본]]과 [[독일]]의 정치・군사적 접근 계획의 일환이었다.[* 특히 주축국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만든 [[방공협정]]의 영향도 컸다.] 나치독일의 [[인종주의]]는 유색 인종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치독일 측은 주축국 동맹인 일본의 이미지를 상승시켜 동맹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한 것이다. 이후 하라 세츠코는 독일 순방을 가 환영받았고 [[히틀러]]와 [[괴벨스]][* 괴벨스는 선전장관이었기 때문에 검열과 최종 허가를 위해 미리 관람 했는데 자신의 일기에 일본의 생활과 사고 방식을 아는 데는 좋으나 지루하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내용이 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도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이후 2012년 4월 7일 동일본대지진 부흥의 일환으로 일본에서 재개봉되었다.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 영화를 찍었던 적도 있는데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은 1943년작 〈망루의 결사대〉[* 1963년 제1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이마이 다다시 감독의 작품이며 항일 게릴라를 토벌하는 스토리의 영화다. 정작 이마이 타다시는 전후에는 반전 좌파적인 시선을 견지했다. 영화는 [[수업료(영화)|수업료]]처럼 의외로 퀄리티가 좋다고 한다 ]에서 조선-만주 국경 지대를 수비하는 일본 장교의 아내로 출연했다. 현재의 [[자강도]]에서 촬영했고 [[단성사]]에서 개봉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내가 고자라니]]로 유명한 [[심영(배우)|심영]]도 나온다. 이때 수많은 국책영화들에 출연하며 일본 군국주의 선전에 앞장서는 [[흑역사]]를 남기기도 했다.[[http://blog.daum.net/mybrokenwing/535|#]] 전후에는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나루세 미키오]]와 같은 1950년대 일본영화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많은 작품에 출연하였다. 참고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우리 청춘에 후회 없다]]나 [[백치]] 등에서 풍기는 인상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서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youtube(6_n7Pz1ANzw)] '만춘'에서의 모습. == 여담 == 그녀를 짝사랑하던 것으로 알려진 [[오즈 야스지로]]가 암으로 사망한 1963년 이후 갑자기 은퇴하여 도쿄 인근 가마쿠라에서 독신으로 은둔생활하며 대중에게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은둔 후에 가끔 동료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이였고 매스컴 노출을 매우 꺼렸다. 1993년 [[류 치슈]] 장례식 때 몰래 온 게 포착된 이후로는 대외 활동 자체도 없었다. 그나마 사진이 있는 것도 비공식적으로 도촬한 것이다. 인터뷰도 1973년 전화 인터뷰가 마지막이다.] 매스컴의 노출을 워낙 철저하게 차단하고 살았기에 하라 세츠코의 존재 자체가 일본 영화계 최대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이러한 은둔 성향에서 유래한 별명이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인데, 기묘하게도 두 사람 모두 [[평생 독신으로 산 인물|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것도]] 똑같다. 하지만 그레타 가르보는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파파라치에 의해 찍힌 사진이나마 있지만 하라 세츠코는 1979년 59세 때의 모습이 찍힌 게 [[https://entertainment-topics.jp/images/443520|마지막이다.]]] [[NHK]]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9월 5일에 이미 [[http://www3.nhk.or.jp/news/html/20151125/k10010319561000.html|타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도가 나온 게 11월 25일이었다. 생전에 본인이 자신이 죽더라도 절대로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에 관계자들이 의도적으로 주변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전에 워낙 철저히 은둔생활을 한 탓에 은퇴 이후의 자료가 전무하다시피 해서 매스컴에서 사망소식을 보도할 때도 현역시절의 흑백사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사후 몇몇 매스컴에서 하라 세츠코의 친척에게 접근해서 인터뷰를 시도해보기도 했는데 인터뷰에 응한 조카[* 이 조카의 경우 하라 세츠코가 아직 살아있을 때도 가끔씩 매스컴과의 인터뷰에 응해 하라 세츠코의 근황을 전해주기도 했다.]의 말에 의하면 하라 세츠코는 말년에 오래 서있는 것이 불편했던거 빼고는 무난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주로 신문이나 티비를 보는 걸 좋아했고 80대때만 하더라도 산책을 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정정했지만 90대 들어서 몸이 불편해진 바람에 외출을 자제했다고 한다. 이러한 하라 세츠코의 은둔성 일화는 [[콘 사토시]] 감독이 2001년에 제작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천년여우]]의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물론 [[천년여우]]의 주인공인 치요코와 하라 세츠코의 이미지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데, 천년여우의 치요코는 시대극에서 SF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로 묘사되지만, 하라 세츠코는 당대의 인기를 양분하던 대배우인 [[다나카 기누요]]나 [[다카미네 히데코]] 등에 비하면 사실 연기의 폭은 좁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이에 대해 "세츠코만큼 이해심이 깊고 능숙하게 연기하는 여배우는 드물다."고 반박한 바 있다.] [[후지모토 겐지]]에 의하면 [[북한]]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가 하라 세츠코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