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 하기룡(河起龍)[* 河'''{{{+1 基}}}'''龍이라고도 한다.] || ||<|2><:> '''출생''' || [[1969년]][* 1988년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입학 직후 자퇴, 재수하여 [[육군사관학교]]에 [[http://news.joins.com/article/2999410|49기로]] 입학하였다.] || || [[부산시]] [[중구(부산)|중구]] [[영주동(부산)|영주동]] || ||<:> '''학력''' || [[부산대학교]] {{{-2 ([[영어영문학]] 88 / [[중퇴]])}}}[br][[서울대학교 법과대학]] {{{-2 ([[법학|사법학]] / [[제적]])}}} || ||<:> '''가족''' || 형 하성룡[*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5011000239139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5-01-10&officeId=00023&pageNo=39&printNo=22910&publishType=00010|1995년 1월 10일 조선일보 기사]]]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기간''' || 1993년 ~ 1995년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2 (49기)}}} || ||<:> '''최종계급''' || [[중위]] || ||<:> '''최종보직''' || 위탁교육생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군인]]이자 [[범죄자]]. == 생애 == 1969년 [[부산시]](現 [[부산광역시]]) [[중구(부산광역시)|중구]] [[영주동(부산)|영주동]]에서 태어났다. 1988년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입학 직후 자퇴했고 이후 [[재수(입시)|재수]]를 통해 이듬해인 1989년 [[육군사관학교]](49기)에 입학했다. 1993년 육군사관학교를 전체 14등으로 졸업한 뒤 [[보병]] [[소위]]로 임관했으며 [[군법무관]]이 되기 위해 같은 해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사법학과]] 2학년에 편입해 [[위탁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994년경에 우연히 빠져든 [[경마]]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공부를 점점 게을리하게 되었으며 결국 같은 해 치러진 군법무관 임용시험에도 탈락했다. 게다가 이러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 점점 더 경마에 빠져든 데다 고급 술집을 전전하는 바람에 결국 총 4억 5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다. === 육군 장교 강도 사건 === 일이 이 지경까지 가게 되자 하기룡은 결국 모교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생 신분으로 들어가서 [[사관생도]] 내무실에 비치되었던 [[K2 소총]] 1정을 훔쳐서 나온 뒤 그 [[소총]]으로 은행강도를 했다. 하기룡은 1995년 1월 9일 오후 3시 35분경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능동(광진구)|능동]](現 [[광진구]] [[능동(광진구)|능동]]) 246-9번지에 있던 [[국민은행]] 능동출장소에 침입했다. 하기룡은 바바리 코트에 숨기고 있던 K2 소총을 꺼내 "가스총을 풀라" 며 [[청원경찰]] 임승재(任承宰)를 위협했고 임승재가 거세게 저항하자 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려서 쓰러뜨렸다. 하지만 임승재는 다시 일어나서 말 그대로 하기룡과 격투를 벌였고 이에 같이 일하던 [[은행]] 직원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임승재를 도와 하기룡을 제압하기 시작했지만 하기룡은 이들을 뿌리치고 [[서울어린이대공원]]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비디오제작사 영업사원 지영철(池泳哲)이 임승재를 자신의 차량에 태워 하기룡을 추격한 끝에 대공원 담벽에서 하기룡을 쓰러뜨렸다. 임승재는 하기룡을 체포해서 경찰에 신변을 인도했는데 잡고 보니 '''육군사관학교 출신 현역 [[대한민국 육군]] [[장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절초풍했다. 이 때문에 임승재와 지영철은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부터 용감한시민상을 받으면서도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 이후 === 보통군사법원에서는 하기룡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으나 단순 은행강도인 데다 미수에 그쳤고 인명피해가 아예 없었던 점을 감안하여 징역 4년으로 형량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현역부적합 전역 조치되었다. 따라서 육군사관학교 동문회에서도 [[영구제명]]당했다. 하기룡은 [[소대장]] 임무만 수행한 후 곧바로 위탁교육을 받았고 [[참모]]나 [[중대장]]을 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기룡의 군 경력은 사실상 1993년 한 해 동안 소대장을 한 게 전부였다. == 사건이 없었더라면? == 만약 경마에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학업에만 전념하여 군법무관 루트를 타는 데 성공했더라면 대령으로서 군법무감으로 재직할 가능성이 높았으며 설령 군법무관 시험에서 탈락했다고 하더라도 일반사관으로 진로를 수정한 뒤 [[대위 지휘참모과정]]을 수료했으면 야전에서 [[중대장]] 1회 보직 이후 장기복무로 동기들과 함께 장성까지 진급했을 것이고[* 육군사관학교 49기 동기들은 2019년 하반기 장성급 장교 인사에서 첫 준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2021년 하반기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다.] 실제로도 3기수 선배인 [[강신철]]이 교수사관을 지망했다가 보직이 꼬이는 바람에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해서 일반사관으로 진로를 수정한 뒤 [[대장(계급)|대장]]까지 진급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올랐다. [[대위 지휘참모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사단 본부대로 발령나서 [[행정보급관]]의 장교 버전인 행정장교를 보직한 후 5년차 전역을 해서 군대를 나온 뒤 대기업에 취직해서 잘 살았을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지 분명 경마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저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안 좋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 여담 == * 육사 49기 동기로는 [[김흥준(군인)|김흥준]], [[문병삼]], [[어창준]], [[이승오]], [[서진하]], [[류승민]], [[최성진(군인)|최성진]], [[김수광(군인)|김수광]], [[박춘식(군인)|박춘식]], [[강관범]], [[김진익]], [[박재열(군인)|박재열]], [[오병석(군인)|오병석]], [[오혁재]] (이상 소장), [[석용규]], [[조용근(군인)|조용근]], [[박정환(육사49기)|박정환]], [[김병기(군인)|김병기]] (이상 준장) 등이 있다. == 참고 기사 == * [[http://news.joins.com/article/2999421|뉴스 기사(검거 과정)]]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5/1999358_13447.html|뉴스 기사(재판 과정)]]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하기룡,version=31)]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중구(부산) 출신 인물]][[분류:1969년 출생]][[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49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