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피트나(Fitna,فتن)는 유혹, '''내전''' 등의 뜻을 가지는 아랍어 단어이다 == 피트나 목록 == === [[1차 피트나]](656~661) === ||원인 : 우스만 피살 전개 : 무아위야 vs 알리 결과 : 우마이야 왕조 성립, 카와리지 출현|| 제3대 정통 칼리파 [[우스만]]의 암살 이후 벌어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아이샤 빈트 아비 바크르]], [[무아위야 1세]] 간의 내전을 말한다. 제4대 정통 칼리파 알리는 자신이 우스만 시해의 공범이라는 의혹에 대해 봉기한 두 세력 중 아이샤를 '''낙타 전투'''에서 제압했다. 이어진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와의 '''시핀 전투'''에서도 우세를 점했으나, 무아위야 측에서 요구한 협상에 응했다가 승리의 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에 실망한 알리 측의 주전파가 이탈하여 '''[[카와리지]]''' 세력이 되었고, 알리는 이들을 공격해 거의 괴멸시켰으나 그 잔당에서 파견한 자객에게 시해되었다. 무아위야에게도 자객이 보내졌으나 그는 살아남았고, 알리의 사후 칼리파로 추대된 [[하산 이븐 알리]]와 협상해 후자의 지위를 보장하는 대가로 자신이 단일 칼리파로 즉위했다. 이로써 최초의 세습 칼리파조인 [[우마이야 왕조]]가 세워졌다. === [[2차 피트나]](680~692) === ||원인 : 칼리파위 세습, 후세인 피살 전개 : 우마이야 조 vs 무크타르 vs 주바이르 조 vs 카와리지 결과 : 우마이야 조의 승리, 시리아 아랍인 중심 중앙집권화|| 무아위야 1세가 붕어하면서 선출이 아닌 아들 야지드에게 칼리파위를 물려주자, 이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란이다. 알리 지지파들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차남 [[후세인 이븐 알리]]를 초청했지만 그는 [[카르발라]]에서 전사했다.([[카르발라 참극]]) 한편 메디나의 [[이븐 주바이르]]도 반란을 일으켰으며, 칼리파를 칭하고 이라크와 이집트 등 제국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이 주바이르의 반란은 제5대 우마이야 칼리파 [[아브드 알 말리크]]의 대에 와서야 진압되었다. === [[3차 피트나]](744~750) === ||원인 : 우마이야 조의 부패, 이라크인 & 마왈리 차별 전개 : 우마이야 조 vs 쉬아, 카와리지, 아바스 가문 결과 : 우마이야 조 멸망, 아바스 조의 성립, 호라산 아랍인 정국 주도|| 우마이야 칼리파조 말에 일어난 대봉기로, [[호라산]]의 [[아부 무슬림]]이 주도한 반란군이 우마이야 칼리파를 격파하고 [[아바스 왕조]]의 성립을 불러왔다. 이때 우마이야가와 사이가 나쁜 [[시아파]]와 [[카와리지]] 등도 참여했지만, 아바스 칼리파조 설립 이후 이들은 그대로 팽당했다. === 4차 피트나(811~827) === ||원인 : 알 아민과 알 마문 형제의 계승 분쟁 전개 : 우마이야 부흥군 vs 알 아민 vs 알 마문 결과 : 알 마문의 승리, 지방 분권화 심화[* [[타히르 왕조]], [[아글라브 왕조]] 등 반자치 왕조 탄생], 이란 정체성 부활의 진전|| 아바스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가 붕어한 이후, 그의 두 아들이었던 알 아민과 알 마문 사이에 일어난 내전을 의미한다. === 5차 피트나(865~866) === ||원인 : 알 무스타인과 사마라 튀르크 군부 간의 갈등 전개 : 바그다드의 알 무스타인 vs 튀르크 군부와 알 무타즈 결과 : 튀르크 장군들의 실세 등극, [[툴룬 왕조]] 성립 등 압바스 조의 쇠퇴|| * 자세한 내용는 [[알 무스타인]] 문서 참조 사마라의 혼란기에 아바스 칼리파 [[알 무스타인]]의 바그다드 정부와 [[알 무타즈]]를 옹립한 사마라의 튀르크 군부 간에 벌어진 내전인데 후자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 [[알안달루스]] 피트나(1009~1031) === [[후우마이야 왕조|코르도바 칼리파국]] 말기에 일어난 내전으로, 최종적으로 칼리파국이 해체되고 제1차 [[타이파]]시대가 열린다. [[분류:이슬람의 역사]][[분류: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