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quot War [목차] == 개요 == [[파일:external/www.fairfield-sun.com/Fairfield-pequotwar.jpg]] 1637년 북[[아메리카 원주민]] 피쿼트 족과 뉴잉글랜드 이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인디언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전투다. == 발단 == [[뉴잉글랜드]] 초기 정착민들은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서 [[옥수수]], [[콩]], [[감자]], 호박 등의 작물을 기르는 방법이나 새로운 농사 기술들을 배우고 교역을 할 때 그들과 파트너로 일하는 등 우호 관계를 유지했고 그들에게서 땅을 사거나 그들이 버린 땅을 통해서 이득을 보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에게서 그들의 문화나 [[종교]]를 배웠고 그들 중에는 개종하거나 부분적으로 동화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도 점점 다른 정착지들처럼 백인들의 토지에 대한 과다한 욕심으로 인해 점점 양 인종 사이의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등이 돌출된 이유는 뉴잉글랜드의 종교 지도자들의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에 있다. 이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신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원주민들이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원주민들은 순식간에 고마운 이웃에서 야만인 [[이교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런 다툼은 코네티컷 강을 두고 본격화되었다. 피쿼트 부족은 코네티컷 강을 이용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정착민들은 이 [[코네티컷]] 계곡을 자신들이 차지하려 들었다. 정착민들은 이 근처 지역을 구매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였고 피쿼트 족은 이에 대해서 반발하면서 대립이 시작되었다. 이 때 내러갠셋 부족과 피쿼트 부족에서 분리된 [[모히칸]] 족이 정착민들의 편을 들면서 대립이 격화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영국인 정착민 한 명이 살해된 사건이었다. 사실 이 정착민은 백인 정착민들 간의 다툼으로 죽은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지만 플리머스 의회는 이걸 모호크 족에 의한 살해라고 판결해 버렸다. 이전에 네덜란드 정착민이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와핑거족 80여명에 대한 [[학살]] 명령이 떨어졌던 것처럼 정착민들은 피쿼트 부족에 몰려가서 살인범을 내놓으라고 주장했 당연히 그런 적이 없는 피쿼트 족이 이를 거부하면서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다. == 전개 == [[파일:external/media1.britannica.com/123641-004-1827792B.jpg]] 결국 1637년 영국 정착민 일부가 피쿼트 족에 대한 선공을 시작했고 피쿼트 족 역시 정착지에 대한 공격으로 반격이 이뤄졌다. 영국 정착민 병력이 모히칸 부족, 내러갠셋 부족과 연합해서 피쿼트 부족을 공격해서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300여명을 학살하면서 실질적으로 전쟁이 끝났다. 이 전쟁은 결국 정착지의 확장을 노리는 정착민들과 기존 영역을 유지하고 싶어했던 원주민들이 대립했다는 것, 이 과정이 악의에 가까운 모함으로 시작해서 실질적으로는 원주민들의 일방적 학살로 끝난다는 것, 이들에 대한 평가가 상당 기간 동안 원주민들의 약탈만 강조하는 등 불공정했다는 것 등 인디언 전쟁의 전형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사실 피쿼트 전쟁과 [[필립왕 전쟁]] 항목을 보면 인디언 전쟁의 주요 양상은 거의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후 == 이 전쟁 과정에서 본래 600여명이었던 피쿼트 부족은 최소 500여명이 사망했으며 나머지 인원은 도주하던 중 추격당하여 죽거나 모히칸과 내러갠셋의 노예로 팔려갔고 피쿼트 부족의 영지는 모호크 족이 차지했다. 이 사건으로 피쿼트 부족은 사실상 절멸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1983년]]에 생존자들이 부족의 존재를 미국 정부에 알리고 본인들의 존재의 인정을 끈질지게 요구하면서 멸족이 취소되고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2000년대에는 1000~2000명의 피쿼트족 후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각주] [[분류:인디언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