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슐레스비히홀슈타인/행정구역)] ||<-6>
'''{{{#ffffff {{{+1 플렌스부르크}}}[br]Flensburg[br]Flensborg^^덴마크어, 저지독일어^^}}}'''[* [[덴마크어]] 발음은 '플렌스보리'] || ||<-6><:>[[파일:플렌스부르크 문장.svg|width=150]] || ||<-6> '''{{{#ffffff 휘장}}}''' || ||<-6>{{{#!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독일 플렌스부르크, 너비=100%)]}}}|| ||<-6> '''{{{#ffffff 플렌스부르크의 위치}}}''' || ||<-6> '''행정''' || ||<-2> '''국가''' ||<-4>[[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2> '''시간대''' ||<-4>(UTC+1/+2) || ||<-2> '''주''' ||<-4>[[슐레스비히홀슈타인]] || ||<-6> '''인문환경''' || ||<-2> '''면적''' ||<-4>56.74km² || ||<-2> '''인구''' ||<-4>92,550명^^(2023년)^^ || ||<-2> '''인구밀도''' ||<-4>1,631명/km² || ||<-6> '''정치''' || ||<-2> '''시장''' ||<-2> [include(틀:독일 사회민주당)] ||<-2>지모네 랑게 || [목차] [clearfix] == 개요 == [[파일:external/phonebookoftheworld.com/city-of-flensburg2.jpg]] [[파일:external/a2ua.com/flensburg-001.jpg]] [[파일:external/www.orangesmile.com/flensburg--1770407-2.jpg]]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는 9만 2천여명.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북쪽 끝의 [[발트 해]]에 딸린 피오르드에 면하며, [[덴마크]] 국경 부근에 위치한다. 현재 독일에서 거의 최북단에 위치하는 도시이다. == 역사 == [[13세기]]부터 문헌에 언급되고 자치시로 인가받았으며, 이후 [[https://ko.wikipedia.org/wiki/%EC%8A%90%EB%A0%88%EC%8A%A4%EB%B9%84%ED%9E%88_%EA%B3%B5%EA%B5%AD|슐레스비히 공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는 처음에는 [[덴마크인]] 상인들에 의해 세워진 후 [[독일인]] 상인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역사학자들은 해당 위치에 도시가 세워진 것은 해당 수역의 높은 [[청어]] 어획량과 [[함부르크]]-[[유틀란트]]간 무역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도시 초기의 역사는 여러모로 수난이 많았는데, 플렌스부르크가 위치한 [[슐레스비히]]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권역 밖이었으며 [[한자 동맹]]의 일부도 아니었기에 무역에도 어느정도 어려움이 존재했으며 [[북해]]의 강풍과 파도는 자주 도시를 손상시켰다고 전해진다. 다만 [[16세기]] 이후 [[한자 동맹]]의 몰락으로 플렌스부르크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도시들 중 하나로 발전하였고 [[지중해]], [[그린란드]], [[서인도 제도]] 등지와도 교역하였다. 북해의 [[청어]]와 서인도제도의 [[설탕]], 그리고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고래고기]]가 주로 무역되었고 추후 [[30년 전쟁]] 이후에는 플렌스부르크의 설탕 무역은 [[럼]] 무역으로까지 발전된다. 이 호황기에 더불어 플렌스부르크는 [[코펜하겐]]에 버금가는 [[덴마크]] 제2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다만 전술한 [[30년 전쟁]]에 한때 타격을 받기도 하였고 북독일 지역의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근세 시기 플렌스부르크 도심은 [[개신교]]화와 독일화가 상당수 진행되었다. 19세기 [[민족주의]] 발흥으로 슐레스비히 지역의 독일인들과 덴마크인들간 갈등 와중 비화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가 결국 [[1864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종결되면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으로 귀속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전 이후 [[1920년]], [[국제연맹]]이 덴마크-독일 국경은 주민투표로 조정할 것이며 [[슐레스비히]]를 분단시키기로 결정, 주민투표 결과에 의해 플렌스부르크 북부의 구획들을 포함한 북부 슐레스비히는 덴마크로 넘어갔으나, 플렌스부르크 시는 절대다수가 독일 잔류를 지지하여 계속 독일에 남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 다른 도시들과 달리 폭격에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지만 [[1943년]]엔 유치원이 폭격당하여 원생 20명이 죽고 전후 무기고 폭발로 피해가 일어나는 등 우여곡절이 있기도 했다. 또한 [[베를린 함락]] 후 [[나치 독일]]의 잔당들의 임시 정부가 이 곳에 들어서 [[플렌스부르크 정부]]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서 [[카를 되니츠]] [[제독]]이 [[연합국]]에 항복했다. 따라서 플렌스부르크는 나치 정권의 마지막 수도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에는 [[전후세대|전후 베이비붐]]과 동부 지역[*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와 [[소련]]에 귀속된 [[실레시아]], [[프로이센]] 등]에서 [[전후 독일인의 추방과 도주|추방된 실향민]]들의 유입에 힘입어 [[1950년]]에는 인구가 10만을 넘기기도 했었다. 또한 전후 상당기간동안 플렌스부르크 시정은 친-덴마크계 정당들이 강세를 띄며 남슐레스비히의 덴마크 귀속을 주장하던 때도 있었다. == 여담 == * [[덴마크]]와의 국경에 자리잡았고, 과거 덴마크의 영토였기 때문에 덴마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덴마크인|덴마크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덴마크어]]도 들을 수 있고, 덴마크어로 된 간판도 많이 볼 수 있다. * 자서전이자 평전록인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의 저자이자 독일 국방군의 기갑병과 최연소 대령인 [[한스 폰 루크]]가 [[1911년]]에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다. *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 3개국의 여왕이었던 [[마르그레테 1세]]가 [[1412년]] 플렌스부르크의 항구에 정박된 선박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하였다. [[분류:슐레스비히홀슈타인]][[분류: 독일의 도시]][[분류:독일의 옛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