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95년 출생]][[분류:1946년 사망]][[분류:함부르크 출신 인물]][[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 제국의 군인]][[분류:나치당원]][[분류:슈투름압타일룽/인물]][[분류:친위대(나치 독일)/인물]][[분류:질서경찰/인물]][[분류:독일의 남성 정치인]][[분류:교수형된 인물]] [include(틀:슈츠슈타펠/장성급 지휘관)] |||| {{{#!wiki style="margin: -4px -9px" [[파일:예켈른1.jpg|width=100%]]}}}|||| ||<#666> {{{#FFF 이름}}} ||<(>'''Friedrich August Jeckeln'''[br]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예켈른|| ||<#666> {{{#FFF 출생}}} ||<(>[[1895년]] [[2월 2일]], [[독일 제국]] 함부르크 || ||<#666> {{{#FFF 사망}}} ||<(>[[1946년]] [[2월 3일]], [[소련]] 리가 || ||<#666> {{{#FFF 신장}}} ||<(>181cm || ||<#666> {{{#FFF 복무}}} ||<(>[[친위대(나치 독일)|슈츠슈타펠]] (1930년 ~ 1945년) || ||<#666> {{{#FFF 최종계급}}} ||<(>[[슈투름압타일룽]] [[중장]] (집단지도자) [br]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대장(계급)|대장]] (상급집단지도자) [br] [[질서경찰]] [[대장(계급)|대장]] || ||<#666> {{{#FFF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br] [[제2차 세계 대전]] || [목차] [clearfix] == 개요 == [[나치 독일]]의 정치인이자 친위대 대장. '''<예켈른 방식>'''이라 불린 학살로 악명높은 [[전범]]이다. == 초기 행적 ==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예켈른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인 [[1914년]]에 [[독일제국군]]에 입대해 포병으로 근무했다. 중위로서 2급 철십자 훈장과 상이훈장을 수상한 그는 전쟁말기에는 비행조종사로서 훈련을 받기도 했다. == 나치당과 친위대 입대 == [[1929년]] [[10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한 예켈른은 [[1930년]] [[3월 15일]]에 [[무장친위대]]에 입대했다. [[1932년]] [[7월]]부터 [[나치당]]의 [[국회의원]]을 지낸 예켈른은 [[1931년]] [[9월]]부터 [[1933년]] [[1월]]에 걸쳐 제 4 친위대 지구의 사령관으로 일했는데 [[1933년]] [[1월]]부터 [[7월]]까지 친위대 남방집단의 사령관 및 브라운슈바이크 정치경찰직을 겸무했다. 친위대 중장으로 승진한 예켈른은 [[1933년]] [[11월]]부터 [[7월]]까지 친위대 상급지구 북서사령관으로 있으면서 대장으로 승진해 [[1941년]] [[6월]]까지 친위대 상급지구 서구 사령관 및 친위대 경찰고급지도자로도 일했다. == [[제2차 세계 대전]] == [[제2차 세계 대전]] [[서부전선]]의 해골사단 제 2 보병연대 사령관으로 종군하며 [[1941년]] [[6월]]부터 [[동부전선]]에 파견되었다. 남러시아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로 임명된 예켈른은 [[9월 29일]]부터 [[9월 30일]]에 벌어진 [[키이우|키예프]]의 대학살에 관여해 실행에 옮겼다. [[1941년]] [[11월]]부터 독일의 패전까지 예켈른은 자신의 지배지구인 동부지역에서 [[아인자츠그루펜]]의 유대인 및 빨치산 살해활동을 감독하기도 했다. == 예켈른 방식 == 예켈른은 '''<예켈른 방식>'''이라 불린 조직적인 대량학살을 즐겼는데, [[1941년]] [[11월 30일]]부터 [[12월 8일]]에 걸쳐 룸블라 숲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당시 주민들을 500~1,000명 가량 나란히 배열시킨 후 10km 떨어진 남쪽의 처형장으로 이동하게 한 다음 희생자들의 옷과 금품을 뺏은 다음 나체가 된 포로를 총살하여 구덩이로 밀어넣었다. 룸블라의 학살당시 약 25,000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 전후 재판과 최후 == || [[파일:예켈른2.jpg|width=100%]] || || 소련 군사법정에서의 예켈른 || [[1945년]] 1월부터 2월까지 제5 SS 산악군단장으로 일한 예켈른은 독일이 패하면서 [[소련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 [[1946년]] [[1월 26일]]부터 [[2월 3일]]에 걸쳐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열린 소련의 군사법정은 2월 3일 사형을 선고한 후 선고 당일 바로 예켈른을 [[교수형]]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