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f5f5f5,#191919> {{{+1 '''프루이트 아이고'''}}}[br] '''Pruitt-Igoe'''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ruitt-igoeUSGS02.jpg|width=100%]]}}} || || '''위치''' ||[[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미국]] [[미주리|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 || '''건설 기간''' ||1951년 ~ 1955년|| || '''철거''' ||1972년 ~ 1976년|| || '''층수''' ||지상 11층|| || '''세대 수''' ||33개동 2,762가구|| || '''설계''' ||야마자키 미노루(山崎 實)|| ||<-2>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The Pruitt-Igoe, 너비=100%, 높이=100%)]}}} ||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아파트]] 단지. 프루이트 아이고라고 서술할 때도 있지만 프루이트 이고라고 서술될 때도 있다. [[건축가]] 야마자키 미노루(1912~1986)가[* '''[[세계무역센터(붕괴 이전)|붕괴 전 세계무역센터]]'''의 설계자다. 그리고 이 건물의 몰락과 더불어 또다른 대표작인 [[세계무역센터]]도 [[9.11 테러]]로 붕괴되어 야마자키 미노루는 '''비운의 건축가'''로 불린다.] 설계하였다. 수많은 [[건축]]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이후 여러 사정이 겹치고 겹친 끝에 폐건물로 방치되다 해체된 그야말로 '''[[아이고#s-1|아이고]]'''였다. == 상세 == === 시작 === [[세인트루이스]]의 도시화가 가속되고 인구 유입이 늘면서 남부지방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올라온 이주민에게는 [[직장]]에서 가까운 도심지의 [[거주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거주지는 고급주택 외에는 [[슬럼|슬럼가]] 밖에 없는 상태였고, 주 정부는 슬럼가를 밀어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주택단지를 짓기로 결심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ThepruittIgoe1.jpg|width=100%]]}}} || ||<#ddd,#555> '''완공 당시''' || [[1951년]]의 현상설계에서 일본계 미국 [[건축가]]인 야마자키 미노루의 안이 당선되고, [[1954년]]에 완공되었다. 33개동의 11층 공공아파트에 2,762세대, 12,000여 명의 주민이 이주하기로 계획되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철학의 연장선으로, 이 단지는 '''모더니즘의 정상이자 주택단지 설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사회학자]]와 [[심리학자]]의 자문을 받아가며 설계한 이 단지는 미국건축가 협회의 상을 받으며 그 화려한 [[역사]]를 시작했다. === 몰락 === 하지만 프루이트 아이고의 주요 거주자는 극빈층, 그리고 대부분 [[흑인]]이었다. 이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집앞의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무시하고 고층단지로 지어졌으니 이 건물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상황에서 주 정부는 한 술 더 떴다. 정부는 [[복지]]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거주자의 삶을 제한했는데, [[성인]] [[남자]]는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었고 [[텔레비전]]과 [[전화]] 사용도 금지되었다. 사실상 밥먹고 자는 것 외엔 아무 의미가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 그리고 예측과는 달리 세인트루이스의 인구는 이후 감소추세를 보였기 때문에 [[중산층]], [[백인]]은 이런 불편한 단지를 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버렸고 이 때문에 거주자 중 흑인 비율은 98%가 되었다. 지금도 세인트루이스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정치가]]들의 [[삽질]] 또한 [[비범]]했다. 제 몫을 챙기려고 단지 [[건설]]을 지지했던 이들은 이후 [[세금]]으로 단지를 관리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당연히 주거민 대다수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다.''' [[벽]]에 금이 가고, [[깨진 유리창 이론|유리창은 깨진 채로 방치되었으며]]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 [[폐건물]]이 되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ThepruittIgoe4.jpg|width=100%]]}}} || ||<#ddd,#555> '''폐건물이 된 프루이트 아이고''' || 이 단지의 입주율은 60%를 넘은 적이 없었으며, [[1970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건물 33개동 중 27개동이 빈집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빈 곳에서는 [[범죄]] 및 [[사회]]의 어두운 손길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외부인이 침입하여 [[강간]], [[약탈]] 등 [[범죄]]를 저질렀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거주민을 [[범죄자]]로 인식하여 차별대우를 받았다. [[1969년]] 이들은 집세 지불 거부 운동을 벌였지만 반응은 "[[어디에다 대고 신성한 우리 영해에 불질이야|어디에다 대고 신성한 집세를 안 내는 거야!]]"였다. 거주자 중 한 명이 단지 내에서 형이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히는 당시의 상황은 [[망했어요]]. 거주자의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지은 실내의 홀은 [[마약]] [[거래]]를 하는 데 안성맞춤이었고, [[미디어]]는 단지의 [[실패]]와 공공기물 파손 등의 [[반달리즘]]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다. === 결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ThepruittIgoe2.jpg|width=100%]]}}} || ||<#ddd,#555>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프루이트 아이고''' || 결국 지방 정부에 의해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22분''', 단지는 [[발파]]되어 완전히 [[철거]]되었다. 후에 건축역사가 찰스 젱크스(Charles Alexander Jencks, 1939~2019)에 의해 이 순간은 "[[모더니즘]]이 끝난 순간"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이기도 했다. 하나의 [[사상]]을 끝내고, 다른 사상을 탄생시킨 건축으로서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어떤 [[의미]]로는 [[불멸]]의 건축물이 되었다. 건축가인 야마자키 미노루는 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영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철거 이후 해당 부지는 공원화되어 [[숲]]이 조성되었다. 그렇게 프루이트 아이고는 결론적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고]]"라는 한 마디 [[탄식]]으로 설명이 가능한 건축물이 되어버렸다. == 건축학적 반론 == 프루이트 아이고의 건축적 [[가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평가절하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단지가 몰락한 이유는 건축가가 [[저소득층]] 거주민에 대해 고려가 부족했던 점도 있지만 정부와 정치가의 무능이 훨씬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폭파]]라는 너무나 극적인 결말은 미디어의 집중포화 때문이었다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주 저소득층이 워낙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국]] 같은 경우에도 많은 저소득층용 아파트([[임대아파트]] 등)가 지어졌지만 저것과 같은 문제가 도출된 적은 없다. 지나치게 서방 위주의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다. 사실 [[북미]], [[서유럽]]과, 나머지 [[대한민국]], [[중국]] 등의 지역에서 주택을 생각하는 방식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다만 동유럽권에서 이 정도로 이미지가 극악하게 나쁜 것까지는 아니며, 도심지에 위치해 있다는 점 때문에 수요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공산주의]] 시절에 지어졌던 아파트들은 오래되어 외형이 허름하고 대량공급을 위해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를 대량으로 밀집시킨 모양새 때문에 공산주의의 상징이라며 아파트를 그리 좋지 못하게 보는 경우도 적지는 않다.] 서구권은 아파트 단지를 영구임대용으로 주로 공급했고, 중산층은 대도시 지역에 사는게 아니라면 목조 2층 단독주택을 고집했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자체가 곧 [[빈곤]]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단독주택]]에서 [[감천문화마을]]같은 저소득층 이미지[* [[달동네]]와 [[무당|무당집 깃발]], [[넝마주이|폐지 줍는 노인]] 등.]를 떠올리는 것과 완벽하게 대비된다. 다만 서구권이라도 대도시 지역은 얘기가 달라서 아파트도 비싸다. 한국도 [[1970년대]] 초반 [[시민아파트]]가 지어지던 시절에는 아파트가 저소득층 주거로 통용되었다. 물론 당대에도 고급아파트가 있기는 했지만 [[부실공사]]와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로 인해 이미지가 추락하여 기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필두로 한 중산층 대상 대단지가 등장하고 기존의 [[슬럼가]]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었으며, 반대로 단독주택 지역은 주택공급 드라이브 하에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으로 대체되면서 인식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는 비슷한 도시 개발 양상이 나타난 [[중국]] 등 신흥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미국의 경우에도 [[1963년]] 입주한 [[시카고]]의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910782&cid=42664&categoryId=42664|마리나 시티]]를 대표로 하는 도심부 고층 분양 주택은 오히려 [[상류층]]의 주거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여전히 중산층의 주거 지향은 교외의 단독주택을 선호하고 있다. 심지어 [[실리콘 밸리]]처럼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조차 저밀도 개발이 일어난다. 이는 개활지가 많고 기본 정서가 [[개인주의]]적이어서 주변 사람과 얽히기를 기피하는 미국 문화에 맞지 않은 탓일 수 있다. == 대중매체에서 == * 이 건물이 [[대중문화]] 속에 자리 잡게 해 준 일등공신은 [[컬트]] [[클래식]]으로 꼽히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인 [[코야니스카시]]인데, [[영화]] 중반에 프루이트 아이고의 [[발파]] 철거 장면이 10분 동안 등장한다. 사운드 트랙은 [[필립 글래스]]가 [[작곡]]했는데, 영화가 개봉하고 20년이 좀 지나서 [[Grand Theft Auto IV]]의 [[https://www.youtube.com/watch?v=M80K51DosFo|첫 번째 티저 트레일러]]에 해당 [[음악]]이 쓰이고 영화 [[왓치맨(영화)|워치맨]]의 [[닥터 맨해튼]] [[https://www.youtube.com/watch?v=yGbUcqCXe14|소개 장면]]에도 다시 사용되면서 영화와 건물의 존재를 다시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를 했다. [youtube(nq_SpRBXRmE)] * [[2011년]]에는 The Pruitt-Igoe myth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 건물의 역사를 다루기도 했다. 이 영화는 [[서울건축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파일:attachment/ThepruittIgoe3.jpg|width=350]] [[분류:공동주택]][[분류:미국의 없어진 건축물]][[분류:세인트루이스]][[분류: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