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9990908000024453.jpg|width=450]]}}} || ||<-2>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 시절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20061017205007.676.0.jpg|height=600]]}}} || ||<-2> 선수생활의 마지막인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시절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pho1.jpg|width=450]]}}} || ||<-2> 은퇴 후 동호인 농구에서 뛰고 있는 前 국가대표 센터. || || '''이름''' || 표필상(表必尙) || || '''본관''' || [[신창 표씨]][* 망우정파(忘憂亭派) 21세 필(必) 항렬.] || || '''생년월일''' || [[1968년]] [[2월 17일]] ([age(1968-02-17)]세) || || '''국적''' ||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출신학교''' || 아미초등학교-[[건국중학교]]-[[동아고등학교]]-[[중앙대학교]] || || '''포지션''' || [[센터(농구)|센터]] || || '''신체 사이즈''' || 2m[* 착화신장. 실제 키는 198cm 정도라고 한다. 당시는 2m 2cm이상이면 면제였는데, 표필상은 상무에서 18개월 간 병역을 이행했다. 이게 1973년생부터 196cm이상 면제로 바뀌었다가 1980년생 이후부터 면제가 없어졌다. 표필상과 동시대에 활동하던 선수 중,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서장훈은 실제 키도 2m가 넘어서 당시 면제되었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 기준이 다른 시대에 신검을 받기는 했다. 참고로 현재는 2m가 넘으면 보충역이라 사회복무(공익근무)를 해야한다.(다른 질병이나 사유가 없을때)] || || '''실업입단''' || 1992년 [[안양 KGC인삼공사|SBS]] 입단[* [[정재근(농구)|정재근]], [[이상범(농구)|이상범]], 남경원과 함께 창단멤버였다.] || || '''소속팀''' || '''[[안양 KGC인삼공사|SBS/안양 SBS 스타즈]] (1992~2002)''' [br] [[창원 LG 세이커스]] (2002~2003) [br] [[서울 삼성 썬더스]] (2003~2004) [br]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4~2007) || || '''등번호''' || 33[* 97 시즌~98-99 시즌 안양 SBS 시절, 창원 LG 시절, 서울 삼성 시절, 인천 전자랜드 시절], 00[* 99-00 시즌 안양 SBS 시절], 0[* 00-01 시즌~01-02 시즌 안양 SBS 시절] || || '''국가대표팀''' || 1990 아르헨티나 세계선수권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베이징 아시안게임]][* 중앙대 3학년때 첫 선발] [br] 1991 고베 ABC || || '''수상내역''' || 농구대잔치 리바운드상 1회 (1993) [br]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orange 동메달}}} [br] 1991 고베 ABC 준우승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농구인. == 선수 시절 == 부산 동아고 시절부터 하드웨어는 좋으나 같은 학년의 마산고 [[정재근(농구)|정재근]], 군산고 [[이창수]], 광주고 채명석 등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센터였다. 장신 센터 덕후(?)였던 중앙대 정봉섭 감독의 스카웃으로 중앙대에 입단한 후 혹독한 조련끝에 본인의 하드웨어를 활용할줄 알게 되면서 중앙대의 주전센터로 자리잡았고, 3학년이던 1990년 중앙대를 대학 3관왕[* 춘계/추계연맹전, 전국체전. [[1990 대학농구연맹전]] 항목 참조]으로 이끌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2m의 신장임에도 기존의 국가대표 센터들과 달리 빼빼 말랐거나(ex> [[김유택]], [[한기범]]) 부상에 시달리지(ex> 서대성, 김윤호) 않는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 국가대표팀에서 중국의 장신센터들을 상대로 맹활약 해줄것이라며 떠들썩 했었다. 많은 기대를 받으며 1990년 아르헨티나 세계선수권과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라이벌 정재근과 함께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으나.... 체격은 탄탄했으나 일단 너무 느렸고, 팔이 짧고 점프력은 거의 없다시피하여 중국의 장신 센터들은 물론 가드진의 돌파에 대해서도 림 프로텍션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배 [[정경호(농구)|정경호]]는 표필상보다 더 발전한 블록을 보여주었다.] 결국 대표팀의 골밑은 또다시 88kg밖에 안나가는 [[김유택]] 혼자 애쓰면서 막아야만 했고 ~~원조 [[김주성(농구)|국대 노예]]~~, 이후 더 크고 빠른데다 잘하기까지 하는 [[서장훈]]이 등장하면서 표필상은 1991 고베 ABC를 끝으로 다시 국대에 선발되지 못했다.[* 단신(193cm)이었으나 운동능력이 탈아시아급으로 좋고 슛거리도 길어 3,4번까지 소화가 가능했던 [[정재근(농구)|정재근]]은 이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때까지 꾸준히 국가대표로 뽑힌 반면, 이들과 함께 1990~91년 대표팀의 일원이자 힘만 엄청 세고 느렸던 최병식(193cm, 현대전자 센터)은 [[전희철]], [[현주엽]] 등이 가세한 이후 국대에 뽑히는 일이 없었다.] 중앙대 졸업 후 연세대 [[정재근(농구)|정재근]], [[이상범(농구)|이상범]], 중앙대 동기 남경원과 함께 신생팀 [[안양 KGC인삼공사|서울방송(SBS)]]의 창단멤버로 합류 [[1992-93 농구대잔치]]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SBS를 6위에 올려놓았고, 다음시즌엔 [[국군체육부대|상무]] 소속으로 팀을 [[1993-94 농구대잔치]] 결승까지 진출시키는데 기여한다. 제대 후에도 [[오성식(농구)|오성식]], 정재근 등과 함께 실업팀 SBS의 주전센터로 뛰며 팀을 강호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나, 우승까지는 매번 한뼘차이로 모자라곤 했다.[* 94-95 농대 4강, 95-96 농대 8강, 96-97 농대 6강] KBL 출범 원년,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는 데이먼 존슨(196cm)을 시작으로 찰스 메이컨(195cm), 데릴 프루(200cm) 등 센터 포지션의 외인을 선발하였고, 실업시절 주전센터였던 표필상은 수비용 백업선수가 되었다. 00-01 시즌 팀이 데니스 에드워즈(192cm)-[[리온 데릭스]](205cm)-표필상의 트리플 포스트 전략을 내세워 돌풍을 일으킬 때[* 플레이오프 4강까지 올라 [[주희정]]-[[아티머스 맥클래리]]-무스타파 호프의 수원 삼성에 1승 3패로 탈락했다.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 삼성]]은 해당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잠시나마 주역으로 복귀하였으나, 이후 출장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창원 LG 세이커스|창원 LG]], [[서울 삼성 썬더스|서울 삼성]],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에서 벤치멤버이자 라커룸 리더 역할로서 뛰다 은퇴했다. KBL 출범 당시 29세였던 선수가 39세까지 무려 '''11시즌'''을 뛰었다는 것만 보아도, 단순히 느리고 몸빵밖에 없는 선수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특히 2000-01 시즌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의 트리플 포스트 시스템은 가드 [[은희석]], 슈터 [[김성철(농구)|김성철]] 외에 빅맨 포지션을 볼수있는 선수 세명을 동시에 투입하며 수비력 강화 및 느린 템포의 패턴 플레이가 중심이 되는 전략이었는데, 이때 표필상은 수비시엔 [[리온 데릭스]]를 대신해 상대 장신센터들을 마크하는 것은 물론, 공격시에도 "포인트센터" [[리온 데릭스]][* 00-01 시즌 평균 5.8 어시스트]에 못지 않은 의외의 패싱 센스를 보여주며 팀의 패턴 플레이의 한 축이 되기도 했다. == 은퇴 후 == 현재 [[은평구]]에서 농구교실을 운영하면서 [[은평구]] 농구연합회 회장을 맡는 등 동호회 농구계에서 활동 중이다. [[은평구]]에 위치한 불광중학교 및 연신중학교 에서 스포츠클럽 선생님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동호회 농구계에서 [[샤킬 오닐]] 놀이를 하고 있다.~~ == 여담 == 선수 시절 국내 선수들 중 몇 안 되는 "훅슛을 던지는 왼손잡이 센터"였다. 사실 지금의 [[함지훈]] 같이 주무기로 쓴다고 말하기엔 모자랐고, 파워로 골밑까지 몸싸움해서 들어간 후 왼손으로 "올려놓는 듯한" 훅슛을 자주 구사했다. 당연히 국내선수들 상대로만 통했고, KBL 출범 후엔... 상술했던 00-01 시즌 "트리플 포스트" 시절에는 중거리슛도 자주 던졌는데 성공률이 꽤 높았다. 아들 표경도(表京到, 1996. 12. 16 ~ )가 명지대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키가 193cm로 아버지 표필상보다는 작지만 명지대의 팀 사정상 [[파워 포워드|4]]-[[센터(농구)|5번]]을 맡고 있다. 하지만 묵직하고 팔이 짧은 체형의 표필상과 달리 팔이 길고(윙 스팬 2m 1) 날렵한(193cm, 83kg) 체형이다. 그러나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하면서 부자(父子) 프로농구 선수의 꿈은 이루지 못할 듯 싶다. 실업팀 SBS 시절, 팀의 특성상 SBS 방송출연이 잦았다. 당시 "TV 전파왕국"이란 주말 예능프로가 있었는데, 주장이었던 표필상이 나와 농구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덩크 슛]]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자, 이번에는 덩크슛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덩크슛이란 블라블라~~ 한번 보시죠." 하고는 2m의 신장이 무색하게 [[덩크 슛]]을 정말 아주 간발의 차이로 성공(이라기엔 레이업 후 림 잡기)시켜 당시 센터라면 [[샤킬 오닐]]만 보던 꼬맹이 농구팬들에게 참 멋없던 기억(...)을 심어주었다. == 관련 문서 == * [[농구 관련 인물(한국)]] * [[안양 KGC인삼공사/선수단]] * [[창원 LG 세이커스/선수단]] * [[서울 삼성 썬더스/선수단]]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선수단]]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1968년 출생]][[분류:1992년 데뷔]][[분류:2007년 은퇴]][[분류:센터(농구)]][[분류:창원 LG 세이커스/은퇴, 이적]][[분류:서울 삼성 썬더스/은퇴, 이적]][[분류: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은퇴, 이적]][[분류:동아고등학교 출신]][[분류:중앙대학교 출신]][[분류:신창 표씨]][[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상무 농구단/전역]][[분류: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