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일제강점기 조선의 구제전문학교)] ||[[파일:22c6be08-f6de-4e.jpg]]|| || 평양의학전문학교 본관 || [목차] == 개요 == [[파일:1d272397-s.jpg]] [[https://dl.ndl.go.jp/info:ndljp/pid/1274496|평양의학전문학교일람]] 참조 平壤醫學專門學校 (평양의학전문학교, 줄여서 평양의전) 1933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의학전문학교]]로 인가된 [[구제전문학교]]이다. 당시 평남도립 평양의원에 부설되어있던 도립의학강습소를 모체로 창설되었다. 해방 이후 '''평양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가, [[김일성종합대학]]에 흡수되었다가 2019년 다시 [[평양의학대학]]으로 독립하였다. == 역사 == === 태동 === 1910년 한일합방 후 평양동인의원이 공립 평양자혜의원으로 개편되었다. 1923년 4월 평양자혜의원 내부에 의학강습소로 평남도립 의학강습소가 설치되었고, 1925년 4월 1일 평양자혜의원이 평남도립 평양의원으로 개편되며 의학강습소도 평남도립 평양의원 부속 의학강습소가 되었다. 1926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개강함에 따라 실습 병원이 사라진 [[경성의학전문학교]]가 이전한다는 소문이 돌아 각 도에서 유치전에 나섰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유아사 구라헤이는 경성과 평양의 의학전문학교로 충분하다는 견해를 피력하여 평양의전 설립이 가시화 된다. 1929년 7월 총독부의 인가를 득한 평남도립 평양의학강습소는 4년제 [[의학전문학교]]에 준하는 의학교가 되었고, 조선내에 한정해 통용되는 의사 자격을 졸업생들에게 부여하기 시작했다. === 정립 === 1933년 3월 공립학교 관제 개정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평안남도]] 도립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인가해 평양의학강습소를 의학전문학교로 승격시켰다.[* 이 때 [[경상북도]] 도립 [[대구의학전문학교]]도 인가되어 [[대구의학전문학교]]가 개교하였다.] 교지는 [[풍경궁]] 부지 옆인 남정(南丁)에 위치했으며, 1937년 본관 건물이 준공되었다. 1939년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 교수는 28명, 학생은 36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1945년 광복 이전까지 14회 졸업생까지 배출했다. === 해방 === 1945년 8월 [[소련군정 조선|소련군정]] 당국에 접수된 평양의학전문학교에 평안남도 인민위원회는 1945년 10월에 [[정두현]]을 교장으로 초빙했으며, 1946년에는 정두현 교장 명의로 졸업장이 제15회 졸업생들에게 수여된다. 이후 평양의전은 평양의과대학이 되었고, 그 학장인 정두현은 9명으로 구성된 종합대학창립준비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1946년 10월 평양에 소재한 2개의 [[구제전문학교]]인 평양의학전문학교와 평양공업전문학교(舊대동공업전문학교)[* 폐교된 숭실전문학교의 자산을 대동학원이 인수하여 설립한 대동공업전문학교를 모체로 하며, 1944년 조선총독부로 이관되어 관립 평양공업전문학교가 되었다. 해방 이후 1946년 평양의학전문학교와 함께 김일성종합대학을 만드는 데 모체가 되었다. 1948년 평양공업대학으로 다시 분리되었고, 1951년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를 모체로 창설된 [[김일성종합대학]]의 설립 작업을 주도한 후 초대 의학부장이 되었고, 평양의과대학은 김일성대 의학부가 되었다. 1948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공학부가 평양공업대학(현 [[김책공대]]), 농학부가 사리원농업대학, 의학부가 평양의학대학으로 분리되었다. 2010년 다시 김일성대에 흡수되었다가 2019년 다시 [[평양의학대학]]으로 독립한 상태다. [[https://mixi.jp/view_bbs.pl?comm_id=432914&id=49051560|사진]] 참조. [[분류:일제강점기의 교육]][[분류:의과대학]][[분류:일본의 구제교육기관]][[분류:구제전문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