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대 그리스]][[분류:병과]] [[분류:병과/고대~근세기]] [목차] == 개요 == πεζέταιροι Pezhetairoi / Pezhetairos 페제타이로이[* [[그리스어]]로 "걷는 벗들"이라는 뜻으로, "걷는다."는 뜻의 "πεζεύω"와 "벗"를 의미하는 "έταιροι"의 합성어.]는 [[마케도니아 왕국]]과 [[디아도코이]] 왕국 특유의 [[팔랑크스]] 보병 부대로, 이들 부대의 중추에 해당하는 부대였다. 가로 16명 세로 16명으로 한 부대에 총 256명으로 구성[* 이를 신타그마(σύνταγμα)라고 부른다. 256명의 보병 말고도 신타그마타르크라고 불리는 지휘관, 나팔수, 기수, 부대 전령이 포함되있었으며, 경우에 따라 독전관이 있기도 했다.] 되어 있었다. == 특징 == [[팔랑크스]] 보병이지만 [[폴리스#s-2]]들이 팔랑크스 방진을 짜는 데 썼던 [[호플리테스]]와는 차이가 있었다. 투구는 [[프리기아]]식 투구를 썼고, 무엇보다도 경량화를 위해 [[청동]] 흉갑 대신 [[아마포]] 흉갑을 착용하고 호플론 방패도 지름 60cm로 사이즈를 줄였다. 대신에 방패에 가죽 끈을 달아 어깨에 걸어 무게를 지탱하므로 들지 않고 왼팔뚝에 매는 것만으로도 방패의 조작이 가능하며 그렇게 비는 왼손을 오른손과 함께 써서 4m 길이의 [[사리사]] 장창을 들기 때문에 호플리테스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전진하며 강하게 찌르는 것이 가능했다.[* 팔랑기테스는 그렇게 했지만 히파스피스트( Ὑπασπιστής) 같은 병과는 기존의 호플리테스 처럼 지름 1m 정도의 방패와 3m 짜리 창으로 무장했다.] [[필리포스 2세]]부터 [[알렉산드로스 3세]]까지는 위에서 말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디아도코이]] 시대에는 팔랑크스 대 팔랑크스로 싸우는 경우가 많아 방패 크기도 커지고, 창도 5~6m 정도까지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 역사 == [[필리포스 2세]] 때 군제 [[개혁]]으로 모습을 드러낸 페제타이로이는 완전한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였다. 이들은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펼친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망치와 모루]] 전술의 '''모루''' 역할을 완벽히 해내며 화려한 데뷔전을 펼친다. 이후 그들의 진정한 활약은 [[알렉산더 대왕]]의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 정벌에서 나타난다. [[알렉산드로스 3세]]를 만나기 이전, [[페르시아 전쟁]] 당시 페르시아 군대는 주로 [[전차]]와 [[기병]]을 중심으로 한 전술을 펼쳤고, 보병대는 창, 검, 도끼, 화살 같은 무기로 무장해 전방의 기병이나 전차를 지원하는 동시에 적 보병이 무너지면 돌격하여 전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원거리서 활로 공격 한 뒤에 도끼나 창, 검으로 근접전을 시도하다 보니 페르시아군 보병대는 방호구에 그렇게 많이 투자하지 않았고[* 갑옷 정도는 있었지만, 투구나 [[정강이]] 보호대가 없었으며, 방패도 [[버드나무]]로 짜서 만든 방패가 전부였다.] 그 결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투구, 방패, 정강이 보호대로 중무장한 그리스 동맹군의 [[호플리테스]]에게 근접전에서 [[마라톤 전투|일방적으로]] [[테르모필레 전투|얻어터지기]] [[플라타이아이 전투|일쑤였다.]] 그렇다보니 후기 페르시아 제국군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동맹의 호플리테스에게 호되게 당한 교훈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호플리테스 마냥 2~3m 가량의 장창과 그리스식 호플론을 든 카르다카(Kardaka)라 불리는 중장보병 집단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아나바시스]]》에서 나온 것 처럼 [[그리스]]에서 호플리테스를 [[용병]]으로 불러와 카르다카랑 같이 전방에 배치해 운용하기도 했다. 다만 4~5m 짜리 [[장창]]으로 무장하고 있는 마케도니아군의 팔랑기테스 앞에서는 호플리테스고 카르다카고 결과는 [[끔살]] 밖에 없었다. 마케도니아 팔랑기테스가 무장한 [[사리사]]는 창의 무게와 보병이 앞으로 달려나가[* 이 방식을 오티스모스(Οθισμός)라 부른다. 마케도니아군의 팔랑기테스는 그리스 호플리테스가 쓰던 방식처럼 적을 밀어 붙이는 전술을 썼는데, 물론 방패로 밀어붙인다는 것이 아니라 긴 창으로 창의 사정거리 내에 든 적을 쓰러트리며 밀어붙인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찌르는 무기인데 창 자체의 무게와 보병이 앞으로 달러나가면서 나오는 순간적인 힘이 더해져 무지막지한 위력을 보였고, 기껏해야 3m 길이의 창을 가진 카르다카나 호플리테스는 4m 이상의 사리사를 든 팔랑기테스에게 상대가 되지 못 했다. 마케도니아군은 이렇게 팔랑기테스 부대가 '''모루'''로써 적 보병을 분쇄하고 [[헤타이로이]]가 팔랑기테스에 압도당하는 적 부대를 후방에서 두들기는 '''망치'''의 역할로 적들을 분쇄해 나갔고, 마케도니아군은 [[그라니코스 전투]], [[이소스 전투(기원전 333년)|이소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 [[히다스페스 전투]] 같은 큰 규모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이후 [[인도]] • [[중앙아시아]]를 정벌하는 동안 마케도니아 페제타이로이엔 [[페르시아인]]들이 많이 입대하게 된다. 이렇게 완전히 [[헬레니즘]] 군대의 중장보병으로 자리잡은 페제타이로이는 형태가 조금씩 바뀌면서 [[디아도코이]]들에게도 애용되었으나, [[로마 공화국]]의 정벌에 [[디아도코이]]들이 몰락[* [[셀레우코스 제국]]은 B.C. 63년 [[폼페이우스]]에 의해 로마의 직할 [[속주]]가 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B.C. 30년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멸망했다.]하면서 함께 자취를 감춘다. == 장단점 == 이들의 방진은 '''"사과를 던졌을 때 사과가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잘 짠 방진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빽빽했는데, 이는 전열의 지속 시간을 압도적으로 늘려 [[망치와 모루]] 전술 구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호플리테스]]들과 똑같이 측면 공격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건 틀린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호플리테스와는 다르게 마케도니아 팔랑기테스는 지름 60cm 정도의 작은 방패를 갖춰 [[미늘갑옷]]처럼 호플론을 겹쳐 아군을 서로 보호해야 했기에 기동력이 느렸던 호플리테스 보다 방향 전환이나 기동력 부분에서 우수했다.] 전장이 평지가 아니라 울퉁불퉁할 때는 기동 중 전열에 금이 가기도 했다. 물론 이런 한계도 있었지만, 마케도니아인들도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은지라 중장보병보다는 경무장이지만 다른 경보병에 비해 중무장을 갖춘 히파스피스트나 토라키테스 같은 엄호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는 기존의 그리스식 팔랑크스보다 유연한 움직임을 갖춘 전열이기도 했다.[* 나팔 소리와 깃발 신호에 따라 병사들은 신속하게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장비가 [[호플리테스]]의 그것에 비해 매우 작고 가벼운 편인지라 서로를 보호해야 하기에 똘똘 뭉쳐다녀야 했던 호플리테스보다는 기동력이 매우 빨랐다. 게다가 금속제 흉갑과 큰 방패 때문에 체력 소모가 엄청났던 호플리테스에 비해 가벼운 장비를 갖춘 팔랑기테스는 전투 지속 시간이 길었기에 기계처럼 계속 적을 찌르고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은 필리포스 2세 ~ 알렉산드로스 3세까지 유지했지만 팔랑크스 대 팔랑크스로 싸워야 했던 [[디아도코이]] 시대쯤 되면 팔랑크스의 유동성이 전보다 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평지에서는 고대 세계의 최고의 강자 중 하나였으나 그 외의 전장에서는 위태로웠으며 보조병과[* 위에서 말한 히파스피스트나 토라키타이 같은 병력들]가 꼭 측면을 받쳐줘야 했던 것이다. 이 [[페제타이로이]]의 약점은 [[피드나 전투]]나 [[키노스케팔라이 전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다만 여기서 염두에 둘 것은 위의 두 전투는 "[[로마]]의 [[군단병]]이 우수하고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라는 2차원적인 해석은 애매하다. [[피드나 전투]]나 [[키노스케팔라이 전투]]는 지형 자체가 마케도니아 측에 매우 불리하기도 했지만 당시 마케도니아 병력의 수준이나 숙련도가 많이 떨어져 있었던 상태였다. 지형도 팔랑크스에 불리한 지형인데 병사들 수준까지 떨어지는 악운이 겹쳐 나타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위의 두 전투는 마케도니아 측의 사상자가 많았기에 논란이 있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던 조건들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로마 군단병과 [[파르티아]] & [[사산 왕조]]의 [[카타프락토이]]들에게도 적용 시킬 수 있다. [[카르헤 전투]] 같이 중장보병 집단이 기병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역으로 군단병들이 돌격해오는 중장기병이 타고 있는 말의 복부를 칼로 찌르거나 필룸으로 던져 기수를 죽이는 등 기병대를 저지시키기도 한 사례도 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어느 병과가 우수하냐 열등하느냐가 아니라 전투 내에 있는 수많은 변수에 따라 전투에서 아군이 박살나거나 적군이 박살나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