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from=소패, other1=소시오패스의 줄임말, rd1=소시오패스)] [[분류:장쑤성의 현]][[분류:삼국지/지명]][[분류:중국의 도시]] [include(틀:장쑤성의 행정구역)] [[파일:패현.png]] {{{+1 沛縣/沛县}}} 페이현 / 패현 [목차] == 개요 ==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에 위치한 현이다. [[늪]]이 많아 한때는 패택(沛澤)이라고 불렸다. [[한나라]]를 건국한 [[한고조]] 유방의 고향이다. 현급시인데도 무려 120만이 넘는 인구를 자랑한다. 물론 면적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쉬저우 시의 시내 인구에 근소한 차이로 못 미치는 수준이다. == 역사 == * [[춘추시대]]: 초기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宋)의 영토였으며, 패읍(沛邑)이 설치되었다. [[제나라]],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 [[위나라]] 등이 주도권을 다투었다. * [[진나라]](秦): [[군현제]] 체제에서는 사수군(泗水郡)이 설치되고 그 아래에 패현(沛縣)이 놓이게 되었다. * [[초한전쟁]]: [[한고조]] 유방과 주요 공신 대부분이 패현 출신이었다. 한나라 개국 초기에 이 동네 출신 재상이 4명이다. [* 재상이라고 퉁쳤지만 소하와 조참은 신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인 상국이었고, 소하와 조참이 죽은 뒤(그리고 여산이 죽은 뒤) 상국 자리가 사실상 공석이 되고 나서야 왕릉과 주발이 임했던 승상(상국의 비서)이 최고의 벼슬 취급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한나라 시대에 패현은 "천고의 용이 나는 땅 제왕과 장수 재상의 고을(천고용비지, 제왕장상향 - 千古龍飛地,帝王將相鄉)"이라고 불렸다. * [[전한]]: 한고조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자, 사수군은 한나라의 제후국 초국(楚國)의 영토가 되었다. [[오초칠국의 난]] 이후 초국 영토를 대거 삭감하면서 사수군 중 초국에서 떼어낸 부분으로 패군(沛郡)을 만들었다. 패현은 패군에 속했다. 또 양나라가 처벌을 받으면서 옛 양나라 땅 5현을 가져왔는데, 옛 소하의 봉국인 차현(酇縣)과 나중에 조조의 고향이 되는 초현(譙縣)도 이때 패군으로 넘어왔다. * [[후한]]: 패군은 패국(沛國)으로 바뀌었다. 이전 패군의 서남부는 [[여남]]군에 이관되었다. * [[위(삼국시대)|위나라]]: 패국 초현 출신인 [[조조]]는 [[보저우|초현]](譙縣)을 기반으로 초군(譙郡)을 설치하고, 패군의 영역을 대부분 떼어냈다. 패군은 불과 9개 현을 가진 작은 군으로 축소되었다. 이제 한의 천하는 끝나고 위의 천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한고조의 고향 패현에 치소를 둔 패군에 속했던 본인의 고향 초현을 패군에서 분리승격시켜 초군을 설치함으로써 보여주었다. * [[남북조시대]]: [[북제]]에서 패현이 폐지되며, [[북주]](北周)에 의해서 패군은 [[팽성]]군에 편입되어 사라졌다. * [[수나라]]: 패현이 다시 설치되었다. 넓게 보면 이 동네에서만 개국 군주가 3명이나 나왔다. 바로 [[한고제|유방]]과 조조, 그리고 [[주원장]]이며[* 본적이 이곳이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조조가 멸망시킨 것은 유명하다. 그 외에도 [[전한]]의 개국공신들의 대다수가 이 동네 출신으로, 이 동네 [[한고제|한량]]은 황제가, [[번쾌|개백정]]과 [[하후영|마부]]는 장군이, 동네 [[소하|관리]]와 [[조참|교도관]], [[왕릉(전한)|건달]], [[주발|병졸]]은 [[재상]]이 돼 버린 묘한 동네다. 그래서 나온 말이 '풍패지향(豐沛之鄕)'인데, 한고조 유방의 고향이 '풍읍 패현'이라서 건국군주의 고향을 일컫는 관용어로 쓰였다. 심지어 중국도 아닌 한국의 [[조선시대]]에는 태조 [[태조(조선)|이성계]]의 고향인 [[함흥시]]나 본관인 [[전주시]]를 가리켜 '풍패지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소패(小沛) == 소패는 [[전한]]·[[후한]] 시대 [[예주]] 패국 패현의 별명이었다. 본래 패국의 중심지가 패현이었으나, 치소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패국과 패현을 구분해서 불러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에 '작은 패'라는 별칭이 붙은 것이다. [[위(삼국시대)|위나라]] 시기에 패국의 치소가 패현으로 다시 돌아왔다. 소패의 성에 [[촉한]]의 소열제 [[유비]], 군웅 [[여포]] 등이 주둔하였다. 과정이 상당히 복잡한데, 우선 유비가 서주목 [[도겸(삼국지)|도겸]]의 요청을 받고 소패성에 주둔했다.[* 소패는 당시에는 예주 소속이었지만, 서주의 주요 도시인 팽성과 딱 붙어 있어서 서주의 세력권으로 취급되었다. 지금도 강소성의 북서쪽으로 튀어나온 [[땅거스러미]]에 위치해 있어 강소-하남-산동-안휘 4성의 경계 근처에 있고, 말이 강소성이지 위치가 위치라 강소성의 '소'를 담당하는 소주(쑤저우)와 '강'을 담당하며 성도인 난징과는 성 내에서 거의 대척점에 있으며 여러모로 강남ㆍ회하보다는 화북ㆍ중원에 가깝다. ] 유비가 서주목이 되자 여포가 유비에게 의탁해왔고 유비는 여포가 소패성에 주둔할 수 있도록 한다. 유비가 여포에게 [[뒤치기]]당해 서주를 빼앗기자 유비는 여포와 협상 끝에 소패에 주둔하였고, 그러다가 여포의 공격을 받아 소패에서 쫓겨나게 된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패, version=100, paragraph=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