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카이사르)]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5세기)] ||<-2> '''{{{#fecd21 로마 제국 카이사르[br]{{{+1 Patricius | 파트리키우스 }}}}}}''' || || '''휘''' ||파트리키우스[br](Patricius)|| || '''생몰 년도''' ||미상 ~ 미상|| || '''카이사르 재위 기간''' ||470년 ~ 471년|| || '''아버지''' ||[[아스파르]]|| || '''형제''' ||아르다부르|| || '''아내''' ||레온티아||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의 [[카이사르(칭호)|카이사르]]. 470년 아버지 [[아스파르]]의 압력을 받은 [[레오 1세(황제)|레오 1세]]에 의해 카이사르 칭호를 수여받았지만 471년 실각했다. == 생애 == 동로마 제국 초기의 권신이었던 [[아스파르]]의 아들이다. 형제로 아르다부르가 있었다. 450년 [[집정관]]에 선임되었고, 470년 아스파르의 압력을 받은 [[레오 1세(황제)|레오 1세]]에 의해 카이사르로 선임되었으며, 레오 1세의 딸 레온티아와 결혼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이 [[아리우스파]] 신자인 그가 황제의 사위가 될 수는 없다며 폭동을 일으키자, 아스파르와 레오 1세는 파트리키우스가 황제가 되기 전에 정교로 개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471년 아스파르와 자식들의 권세를 두려워한 레오 1세는 아스파르와 자식들을 궁전으로 초대한 뒤 환관들이 칼을 들고 공격하게 했다. 아스파르와 아르다부르는 참살당했고, 파트리키우스는 부상을 입은 채 달아났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레온티아는 그 대신에 [[마르키아누스]] 황제의 외손자인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와 결혼했다. [[분류:카이사르]][[분류:로마 제국 집정관]][[분류:5세기 집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