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체코의 前 축구선수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erger_Profile.jpg|width=100%]]}}} || ||<-2> {{{#000000,#e5e5e5 ''' 이름 ''' }}} || ''' {{{+1 파트리크 베르게르}}} [br] Patrik Berger''' || ||<-2> {{{#000000,#e5e5e5 ''' 출생 ''' }}} ||[[1973년]] [[11월 10일]] ([age(1973-11-10)]세) / [br]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프라하]] || ||<-2> {{{#000000,#e5e5e5 ''' 국적 ''' }}} ||[include(틀:국기, 국명=체코)] || ||<-2> {{{#000000,#e5e5e5 ''' 신체 ''' }}} ||185cm, 80kg || ||<-2>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 ^^은퇴^^) || || {{{#000000,#e5e5e5 ''' 소속 ''' }}} || {{{#000000,#e5e5e5 ''' 선수 ''' }}} ||[[AC 스파르타 프라하|스파르타 프라하]] (1989~1991 / ^^유스^^)[br][[SK 슬라비아 프라하|슬라비아 프라하]] (1991~1995)[br]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5~1996)[br]'''[[리버풀 FC]] (1996~2003)[br]'''[[포츠머스 FC|포츠머스]] (2003~2005)[br][[아스톤 빌라]] (2005~2008)[br]→ {{{-1 [[스토크 시티 FC|스토크 시티]] (2006~2007 / ^^임대^^)}}} [br][[AC 스파르타 프라하|스파르타 프라하]] (2008~2010) || ||<-2> {{{#000000,#e5e5e5 ''' 국가대표 ''' }}} ||2경기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슬로바키아]] / 1993)^^ [br] 42경기 18골^^([[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 / 1994~2001)^^ || [목차] [clearfix]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erger_liverpool.jpg|width=100%]]}}} || 체코의 前 축구선수. [[UEFA 유로 1996]]에서 조국의 준우승을 함께 한 주역이었으나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일찍 전성기를 마감한 비운의 선수이다. == 플레이 스타일 ==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나 때때로 윙어로도 출전한 베르게르는 폭발적인 돌파 이후 왼발로 때리는 파괴적인 중거리 슛이 전매 특허였으며, 리버풀의 팀 동료였던 [[스티븐 제라드]]는 자신이 본 왼발 스트라이커 중 단연 최고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 클럽 경력 == 1989년, 그는 로컬팀인 [[AC 스파르타 프라하|스파르타 프라하]]의 유소년팀에 입단했으나 정작 프로 데뷔는 2년뒤 라이벌 구단인 [[SK 슬라비아 프라하|슬라비아 프라하]]에서 뛰었을 때였다. 베르게르는 1군 멤버로 자리 잡은 뒤 [[1. 체스카 폿발로바 리가|자국 리그]]에서 4년동안 90경기 25골을 기록하며 체코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거듭났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체코 리그에서 한창 활약 중이던 1995년, [[오트마어 히츠펠트]]가 지휘하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50만 파운드에 이적했다. 그의 데뷔전은 8월에 열린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DFL 슈퍼컵]] 경기였으며. 팀은 1:0으로 묀헨을 꺾고 타이틀을 따냈다. 시즌 동안 히츠펠트 감독은 본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6번 자리에서 더 많은 경기를 뛰었다. 리그 27경기동안 14번의 교체 출전하여 4골을 기록,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면서 2연속 [[마이스터샬레]] 획득에 기여했다. 시즌이 끝난 뒤 치러진 [[UEFA 유로 1996]]에서 발군의 활약으로 준우승을 이끌자 여러 팀들의 관심을 받았고, 특히 [[리버풀 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적극적이었다. 결국 그는 [[카렐 포보르스키|포보르스키]]를 선택한 맨유 대신 리버풀의 계약 제안을 수락했고, 그 해 8월 이적을 완료했다. === [[리버풀 FC]] === 리버풀로 이적한 베르게르는 1996년 9월 7일, [[사우스햄튼 FC|사우스햄튼]]과의 [[프리미어리그]]경기에서 교체 출전으로 처음으로 [[안필드]] 무대를 밟았다. [[레스터 시티 FC|레스터 시티]]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그는 [[스탄 콜리모어]] 대신 하프타임에 교체 출전하며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첼시 FC]|첼시]를 5:1로 격파한 홈경기에서도 멀티골을 성공시켰으며, 뒤를 이어 핀란드의 밀리코스켄과의 [[UEFA컵 위너스컵]] 경기에서 골을 추가하며 4경기동안 5골을 기록했다. 그는 첫 달 동안 적응기간 따위 필요없는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팬들과 선수들에게 큰 신뢰감을 주었고, 1996년 10월에 리그 9월 이 달의 선수에 선정되며 순조롭게 적응했다. 괜찮았던 첫 시즌과 달리 두번째 시즌은 다소 적은 기회를 받았다. 1997년 10월, 첼시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강하게 자신을 어필했지만 [[로이 에반스]] 감독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입지는 여전했다. 이에 불만이 가득찬 베르게르는 1998년 3월, [[볼튼 원더러스]]를 상대로 교체 출전을 거부하기까지 이르었고 감독은 경기 후 그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시즌 종료 후 판매한다고 밝혀 둘의 사이는 더욱 파국으로 치달았다. 5월에는 같은 국적의 감독인 [[즈데넥 제만]]이 이끄는 [[AS 로마]]나 포르투갈의 [[SL 벤피카]]가 유력한 행선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문에 무색하게 에반스가 떠나고 [[제라르 울리에]]가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분위기는 180도로 바뀌었고, 이는 베르게르가 안필드를 떠나지 않고 잔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울리에의 지휘하에 베르게르는 정기적인 출전으로 리그 32경기 7골을 기록, 선수로서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다음 시즌에는 리그 9골을 넣으며 어느덧 리버풀의 필수불가결한 선수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2000년 11월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으로 2000-01 시즌 대부분의 경기를 출전할 수 없었고, 미국에서 무릎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2001년 3월까지 재활에 몰두한 베르게르는 이후 회복되어 [[UEFA 컵]]과 [[FA컵(잉글랜드)|FA컵]] 결승전에서 활약했으며, 리버풀은 두 경기 모두 이기며 트로피를 차지한다. 특히 [[아스날 FC|아스날]]과의 FA컵 결승전에서 [[마이클 오언]]의 결정적인 득점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200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채리티 실드]]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2001년 8월 다시 한번 부상을 겪어 무릎 수술을 받았고, [[UEFA 슈퍼컵]]에서 제외되었다. 2001년과 2003년 사이에 반복되는 부상으로 유리몸화가 되어버린 베르게르는 점점 1군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시즌 동안 그는 벤치만 달구며 2002-03 시즌동안 4번 출전에 그치고 말았고, 결국 시즌이 끝난 뒤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에 리버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 [[포츠머스 FC]] === 계약이 만료된 베르게르는 [[해리 레드냅]]이 이끄는 승격팀 [[포츠머스 FC|포츠머스]]로 이적했다. 레드냅 감독은 그의 영입에 상당히 만족해하며 기대감을 드러냈고, 베르게르도 이에 보답하듯 빌라와의 개막전에서 팀의 2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2003년 10월 13일, 친정팀 리버풀과의 경기에서는 전반 4분 우측에서 올라온 얼리 크로스를 박스 안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귀중한 3점을 가져가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 달 후에는 리즈와의 맞대결에서 팀의 첫 번째 골과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6:1 대승을 이끌었다. 박싱 데이에 치러진 [[토트넘 홋스퍼]]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는 환상적인 프리킥 두 방으로 2:0 승리를 견인했다. 특히 첫 번째 득점은 32m 거리의 프리킥 골이었다. 그의 환상적인 킥력을 볼 수 있는 대목. 그러나 이듬해 2월에 다시 한번 무릎이 또 말썽을 일으키며 수술을 받게 되면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부상에서 회복한 베르게르는 2004-05 시즌이 시작된 뒤 8월 21일, [[찰턴 애슬레틱]]을 상대로 후반 8분에 [[https://www.youtube.com/watch?v=xmQkgW9sgJ4|발리슛]]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으나 팀은 후반 종료 3분을 남겨두고 데이비드 언스워스의 자책골로 1:2로 패했다. 20일 뒤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25야드(23m) 거리에서 쏘아올린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팀의 3:1로 승리에 기여했다. 2004년 10월 2일, [[노리치 시티]]와의 8라운드에서 25야드 프리킥으로 다시 한번 득점을 기록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리그 골이었다. 그러나 베르게르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2005년 연초부터 4월까지 12경기 중 단 1승만을 거두며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었고, 이에 따라 2005년 4월 7일, [[알랭 페랭]]이 포츠머스의 새 감독으로 임명된 후 팀을 잘 추스리는데 성공하며 16위로 시즌을 마쳤다. 베르게르는 다가오는 여름에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팀이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스톤 빌라 FC|아스톤 빌라]]와 2년 계약을 채결했다. 그는 [[데이비드 오리어리]] 감독의 존재가 빌라를 선택한 주된 이유라고 언급했다. === [[아스톤 빌라 FC]] 그리고 [[스토크 시티]]로의 임대생활 === 애석하게도 빌라에서의 커리어는 썩 좋지 못했다. 이는 베르게르의 고질적인 부상이 주된 이유였고, 이적하고도 초반에는 부상으로 인해 경기 출전을 하지 못했다. 결국 첫번째 시즌에는 9경기 출전에 그치고 말았다. 두번째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마틴 오닐]]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뒤 경기 결장이 잦아졌다. 2006년 11월, 그는 2007년 1월 4일까지 [[EFL 챔피언십]]의 [[스토크 시티]]에 임대로 보내졌다. 이후 리저브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주간의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으며, 스토크에 있는 동안 그는 7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단 한 경기의 선발 출전에 나머지 6경기는 교체로 출전했다. 스토크에서 돌아온 후 그는 오닐에게 건강상태에 대해 칭찬을 받았고, 2007년 4월 7일, 그는 [[블랙번 로버스]]를 상대로 1골 1어시를 기록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며 오래간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선발로 경기에 나선 그는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37라운드에서 다시 한번 득점을 기록했다. 이후 볼튼과의 최종전을 마지막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5월 28일, 리그 막바지 괜찮은 활약으로 팀과 1년 연장계약을 채결했다. 베르게르는 2007-08 시즌을 앞두고 프리시즌에서 또 다시 부상을 당하며 2007년 10월까지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이후 부상 당한 부위가 또 재발하며 다시 상당수의 경기에 제외되었다. 2008년 5월 6일, ~~에이전트 B~~ 베르게르는 주장 [[가레스 배리]]에게 자신이 뛰었던 [[리버풀 FC|리버풀]]로의 이적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기도 했다.[* 몰론 감독인 오닐의 거절로 무산됐으며, 도리어 팀 분위기를 해쳤다는 이유로 주장직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1년뒤 [[맨시티]]로 이적한다.~~] 고질적인 부상으로 3시즌간 28경기밖에 뛰지 못한 베르게르는 팀에서 쓸쓸히 방출되었다. === 고국으로 리턴 === 어느덧 만 34살의 노장이 된 베르게르는 14년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황혼기를 맞이하기 위해 자국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자신의 유스팀이었던 [[AC 스파르타 프라하|스파르타 프라하]]와 2년 계약을 맺고 이적을 완료했다. 그는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2008년 11월, SK 클라드노와의 리그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작렬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이후 팀은 2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 예선 진출 자격을 확보했다. 베르게르는 리그 6골로 팀내 최다 득점자였다. ~~6골이..??~~ 2009-10 시즌에는 초반 2경기 활약 후 ~~잊을만 하면 터지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전반기를 날렸고 2010년 1월 6일, 회복에 실패한 베르게르는 은퇴를 선언했다. === 깜짝 복귀? === 2010년 8월, 체코 6부리그에 소속된 아마추어 클럽 돌니 사브리에 입단하면서 40살이 넘은 현재에도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 국가대표 경력 == 이미 유소년 시절부터 다양한 연령대 대표팀을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고, 1988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연령대 대표팀에서 49경기 6골을 기록하며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또한 1990 UEFA U-16 챔피언십 결승전 유고슬라비아와의 맞대결에서 득점에 성공시키며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1993년 3월 23일, [[키프로스 축구 국가대표팀|키프로스]]와의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A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듬해 9월 6일, [[몰타 축구 국가대표팀|몰타]]와의 유로예선에서 본인의 A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는 [[UEFA 유로 1996]]에서의 활약이었다. 그는 본선 전 경기를 모두 출전했으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과의 결승전에서는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1:2로 무릎을 꿇으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대회가 끝난 후 1997년부터 1998년까지 그는 대표팀 감독과의 갈등으로 한동안 대표팀에서 제외된다. 그는 17개월간 대표팀 경기를 결장했고 이후 후임자로 요제프 호바네츠 감독이 임명되고 나서야 대표팀에 복귀했다. 그는 1998년 10월 14일, [[에스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스토니아]]와의 유로 예선전에서 프리킥으로 2골을 터뜨리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이후 [[UEFA 유로 2000]] 본선에도 참가했지만 1,2차전은 결장했고, 3차전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덴마크]]와의 경기에서 대회 첫 출전을 했다. 2002년 3월, 다소 이른 나이였던 28살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겪고 있는 중에 A매치까지 소화하기에는 무리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수상 내역 == === 선수 === ==== 클럽 ====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분데스리가|독일 분데스리가]] : 1995-96 * [[DFL-슈퍼컵]]: 1995 * [[리버풀 FC]] * [[FA컵(잉글랜드)|FA컵]]: 2000-01 * [[채리티 실드|FA 채리티 실드]]: 2001 * [[UEFA 컵]] : 2000-01 * [[EFL 컵|풋볼 리그 컵]] : 2000-01 ==== 대표팀 ==== *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 준우승([[UEFA 유로 1996|1996]]) ==== 개인 ==== * [[프리미어리그]] 이 달의 선수 : 1996년 8월 * 체코 올해의 축구선수 : 1996 ([[카렐 포보르스키]]와 공동수상) * 체코 골든 볼 : 1999 [각주] [[분류:1973년 출생]][[분류: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선수]][[분류:체코의 축구선수]][[분류:SK 슬라비아 프라하/은퇴, 이적]][[분류: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은퇴, 이적]][[분류:리버풀 FC/은퇴, 이적]][[분류:포츠머스 FC/은퇴, 이적]][[분류:스토크 시티 FC/은퇴, 이적]][[분류:아스톤 빌라 FC/은퇴, 이적]][[분류:AC 스파르타 프라하/은퇴, 이적]][[분류:UEFA 유로 1996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분류:프라하 출신 인물]][[분류:2010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