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이베리아 국왕)] ||<-3><#808000> '''{{{#FFF 이베리아 왕국 29대 군주}}}''' [br] {{{+2 {{{#FFF '''თრდატი | 트르다트'''}}}}}} || ||<|3><#808000> '''{{{#FFF 제호}}}''' ||<#808000> '''[[한국어|{{{#FFF 한국어}}}]]''' ||트르다트 || ||<#808000> '''[[조지아어|{{{#FFF 조지아어}}}]]''' ||თრდატი || ||<#808000> '''[[라틴어|{{{#FFF 라틴어}}}]]''' ||Trdat || ||<-2><#808000> '''{{{#FFF 생몰 년도}}}''' ||미상 ~ 406년 || ||<|4><-2><#808000> '''{{{#FFF 재위 기간}}}''' ||394년 ~ 406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베리아 왕국]] 29대 군주. == 생애 == 카르틀리 왕실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이베리아 왕국 24대 군주 [[레브 2세]]와 아르메니아의 [[티리다테스 3세]]의 딸인 살로메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은 티리다테스 3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딸을 [[아스파쿠레스 3세]]와 결혼시켰다. 394년 아스파쿠레스 3세가 사망했을 때, 아스파쿠레스 3세의 두 아들 [[파라스마네스 4세]]와 [[미흐르다트 4세]]는 아직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카르틀리 왕실 연대기는 그가 12년간 왕국을 통치했으며, 경건한 사람이었고 페르시아인들에게 공물을 바쳐서 침략을 막았다고 호평했다. 이로 볼 때, 그는 기독교를 탄압하여 불경건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은 [[아스파쿠레스 2세]], [[미흐르다트 3세]], 아스파쿠레스 3세와는 달리 기독교인들을 존중하고 가급적 탄압하지 않으려 애썼던 것으로 보인다. 406년 사망한 뒤 아스파쿠레스 3세의 장남 [[파라스마네스 4세]]가 왕위에 올랐다. [[분류:이베리아 국왕]][[분류:40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