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튀니지의 대외관계)] [include(틀:레바논의 대외관계)] || [[파일:튀니지 국기.svg|width=100%]] || [[파일:레바논 국기.svg|width=100%]] || || [[튀니지|{{{#ffffff '''튀니지'''}}}]] || [[레바논|{{{#fff '''레바논'''}}}]] || [목차] [clearfix] == 개요 == [[튀니지]]와 [[레바논]]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아랍 연맹]], [[이슬람 협력기구]], [[프랑코포니]]의 회원국들이다. == 역사적 관계 == === 고대 === 오늘날 레바논에서는 자국 역사의 직계 기원으로 고대 [[페니키아]]를 꼽고 있으며, 튀니지는 [[고대 카르타고]]를 자국 역사의 직계 기원으로 두고 있다. 오늘날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북부 해안 지역에 거주하던 고대 페니키아인들은 오늘날 튀니지 동부에 [[우티카]]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한 이후 다시 서진하여 [[카르타고]]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하는데, 이 카르타고는 도시 국가를 넘어 [[시칠리아|시케리아 섬]]과 이베리아 반도 해안지대를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닌 국가가 되었다. 본래 카르타고는 페니키아 본토의 [[티레]]에 조공을 바칠 의무가 있었으나, [[티레 공방전]]의 결과 티레가 멸망한 이후 [[시돈]]에게 상납금을 바쳤으며 이후 시돈이 몰락하자, 카르타고가 페니키아 도시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게 되어 외려 카르타고가 우티카 같은 먼저 건설된 식민도시들은 물론 심지어 페니키아 본토의 여타 페니키아 도시들로부터 상납금을 받게되었다.[* 하지만 티레가 페니키아인들에게 가진 상징성이 워낙 강했다보니, 그 카르타고마저도 티레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의 도시로 복원되자 상징적인 의미로 상납금을 보냈다고 한다.] 페니키아의 도시들은 주변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강대국들의 공격에 휘둘렸던 것과 반대로, 카르타고의 경우는 북아프리카 본토에서 카르타고를 위협할 만한 세력이 부재했고, 오히려 레바논 본토보다 더 비옥하고 광활한 토지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도시 국가의 형태를 너머 영토 국가로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다. 고대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들의 식민지에서 출발한 국가이다보니, [[페니키아어]] 그리고 [[페니키아 문자]]를 사용하였다. 한 편으로 카르타고인들이 믿던 신 역시 페니키아인들이 믿던 [[바알]]이었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페니키아 본토에서는 [[이슈타르]] 숭배와 연계된 바알 신앙이 우세했던 반면[* 티레의 모도시였던 [[비블로스]]의 수호신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이슈타르]]였다. 그리고 페니키아인들은 이슈타르의 남편을 주님이라는 뜻의 바알이라고 불렀다.] 카르타고에서는 바알의 부인이자 그림자, 달의 여신으로 여겨진 타니트를 숭배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카르타고에서는 바알 숭배보다 타니트에 대한 숭배가 오히려 더 유행하였지만, 타니트는 페니키아 본토에서는 숭배되지 않던 신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페니키아 본토의 여러 도시들은 현지 부족장 유력자들에 의해 운영되던 소왕국 형태의 정치체제가 우세했던 반면,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에 비해 [[고대 그리스]]인들과 일찍이 교류가 활발했던 이유에다,[* 시케리아 섬 영토를 두고 [[시라쿠사]] 등 그리스 폴리스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루었던 바 있다.] 식민도시로 시작했다는 이유 등으로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그것과 유사한 [[공화정]]으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티레 공방전]] 이후 멸망했던 티레가 다시 복구되는 과정에서 일부러 카르타고를 모방하여 도시를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변경하기도 하였다. 이는 카르타고의 위상과 페니키아 본토의 문화적 위상이 역전되었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페니키아 도시들이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그리고 뒤이은 [[헬레니즘 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에도 독립과 번영을 구가하던 [[고대 카르타고]]는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로마 공화정]]이 [[포에니 전쟁]]을 통해 북아프리카를 정복하고 이후 지중해 전역을 정복하면서 양지역은 [[고대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고대 로마의 속주가 된 이후 양 지역의 문화적 분리는 가속화되는데, 카르타고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지역은 [[우티카]] 등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던 페니키아어와 푸닉어가 점차 사멸되고 [[라틴어]]가 우세한 지역이 된 반면, 지중해 동부의 페니키아 해안지대 역시 고대 페니키아어가 점차 자리를 일고 [[코이네 그리스어]]와 [[아람어]]가 일상생활에서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 고대 말 === 서기 4세기 기독교가 유행하면서 양 지역을 연결해주던 바알-함몬 신앙도 타격을 입었으며, 양 지역은 라틴어권과 그리스어-아람어권으로 분리되기 이른다.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나뉘어진 뒤에는 마그레브가 서로마 제국에 속하고 지중해 동부 일대는 동로마 제국에 속했다. 서기 5세기 들어서는 북아프리카에 [[도나투스파]]가 등장해 기존 교단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레반트 지역에서는 [[시리아 정교회|야코부스파]]가 등장하여 6세기 들어서는 아예 현지 사회의 주류 종파로 자리매김하기 이른다. 야코부스파에 반발한 현지 정교회 신도들 중 일부가 레바논 산악 지대로 피신하는데 이들은 후일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교회]]의 기원이 된다. 서로마 제국이 약화되자 북아프리카에는 [[반달족]]들이 [[반달 왕국]]을 세웠다. 이렇게 양 지역 사이의 관계는 축소를 거듭하다 반달 왕국 시대에 들어 단절되기 이른다. === 중세 === [[반달 왕국]]의 멸망을 계기로 양 지역 사이의 교류는 다시금 복구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치하의 동로마 제국은 멸망한 서로마 제국의 영토까지 재정복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서기 6세기 북아프리카는 다시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8세기에 [[우마이야 제국]]이 지중해 동부 일대와 [[북아프리카]] 전역을 정복하면서 동로마 제국이 축출되고 양 지역은 모두 아랍화 되었다. 그리고 현지 주민들이 대부분 [[이슬람교]]로 개종했지만, 일부 기독교인들은 레바논 산악지대로 피신하는데 이들은 오늘날 [[마론파]] 등등 레바논 기독교인들의 기원이 되었다. 한 편 북아프리카 튀니지 일대에서 발흥한 [[파티마 왕조]]는 이집트를 거쳐 레반트 지역까지 확장하였다. 파티마 왕조의 6대 칼리파 [[알 하킴]]의 지지자들 중 일부는 레바논 산악지대로 피신하였는데 이들은 오늘날 레바논과 시리아 일대의 [[드루즈교]] 신도로 남아있다. === 근세 === [[오스만 제국]]이 레바논 일대와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면서 양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레바논 산악 지대 일대는 [[종교적 소수자]]들이 은산하기 적합한 장소로 [[순니파]] 이외 [[정교회]], [[드루즈교]], [[시아파]] 등의 여러 종교를 믿는 주민들이 많이 거주했다. 반면 튀니지의 경우 일부 [[세파르딤]]들을 제외하면 순니파 이슬람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 튀니지나 레바논 모두 제국 영내 교역보다는 바다 건너 유럽 기독교 국가들과의 무역에 열을 올리던 상황이었고, 양 지역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 규모는 대단찮은 수준이었다. === 19세기 === 19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튀니지 일대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레바논 일대도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 20세기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레바논 지역은 시리아와 함께 [[시리아-레바논]]이란 프랑스령 지역이 되었다. 이중 레바논 지역은 [[마론파]] 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분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시리아가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튀니지와 레바논은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다. 독립국이 된 튀니지와 레바논에서는 고대사를 공유한다는 동질감에서 양국간 민간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고 튀니지로 기반을 옮겼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830601?sid=104|#]] === 21세기 === 양국은 [[아랍 연맹]], [[이슬람 협력기구]], [[프랑코포니]]의 회원국들이다. 양국은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양국은 [[세속 국가]]에 속해 있고 언어, 문화, 종교 등에서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양국은 [[프랑스]]와 협력을 자주 하고 있다. == 문화 교류 == 양국은 [[아랍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튀니지와 레바논에서 쓰이는 아랍어는 [[아랍어 방언]]에 속해 있고 표준아랍어와는 차이점이 크다. 그리고 둘 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어]]는 주요 외국어에 속해 있다. 양국은 [[무슬림]] 비중이 높지만, 세속 국가에 속해 있다. 그리고 레바논에는 종교, 종파가 다양하기 때문에 튀니지와 마찬가지로 세속 국가에 속해 있다. == 교통 교류 ==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 기타 == 양국 모두 성폭행범이 결혼시 처벌을 면제하는 법을 폐지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2894705?sid=104|#]] == 관련 문서 == * [[튀니지/외교]] * [[레바논/외교]] * [[아랍 연맹]] * [[이슬람 협력기구]] * [[프랑코포니]] * [[튀니지/역사]] * [[레바논/역사]] * [[마그레브 아랍인|튀니지인]] / [[레바논인]] / [[아랍인]] / [[아랍계 기독교인]] * [[아랍어]] / [[아랍어 방언]] / [[프랑스어]] / [[이슬람교]] / [[순니파]] / [[시아파]] / [[드루즈교]] / [[마론파]] / [[정교회]] / [[오리엔트 정교회]] / [[동방 가톨릭 교회]] * [[대국관계일람/아프리카 국가/북아프리카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분류:튀니지-레바논 관계]][[분류:프랑코포니]][[분류:나무위키 아프리카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