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500년 출생]] [include(틀:역대 막 왕조 황제)] ||<-5> '''{{{#d4cd99 막조 2대 황제[br]{{{+1 太宗 文皇帝 | 태종 문황제}}}}}}''' || ||<-5> [[파일:막등영.jpg|width=300]] || || '''[[묘호|{{{#d4cd99 묘호}}}]]''' ||<(> '''[[태종]](太宗)''' || || '''[[시호|{{{#d4cd99 시호}}}]]''' ||<(> 흠철문황제(欽哲文皇帝) || || '''[[연호|{{{#d4cd99 연호}}}]]''' ||<(> 다이찐(大正, 1530년 ~ 1540년) || || '''[[성씨|{{{#d4cd99 성}}}]]''' ||<(> 막(Mạc / 莫) || || '''[[휘|{{{#d4cd99 휘}}}]]''' ||<(> 당조아인(Đăng Doanh / 登嬴 / 등영) || || '''{{{#d4cd99 생몰 기간}}}''' ||<(> 1500년 ~ 1540년 || || '''{{{#d4cd99 재위 기간}}}''' ||<(> 1530년 ~ 1540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월]] [[막 왕조]]의 제2대 황제. 묘호는 '태종'(太宗)이며 다른 이름은 막프엉조아인[* Mạc Phương Doanh / 莫方瀛 / 막방영. 《명실록》과 《명사》 <안남전>(安南傳)의 기록.]이다. 태조 [[막당중]]의 첫째 아들이며 태종의 치세 동안 대월 제국의 [[남북조시대]]가 개창되었고 동시에 막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 생애 == [[1517년]], 부친 막당중이 [[후 레 왕조]]의 권신 [[쩐쩐]]과 친분을 맺기 위해 막당조아인으로 하여금 쩐쩐의 딸과 결혼하도록 했다. 막당중은 반란 진압에서 공을 세워 점차 정권을 장악했고, [[1522년]]에 [[레 소종]]의 명의를 빌려 막당조아인을 '''육미후'''(Dục Mỹ hầu / 毓美侯)로 봉하고, 금광전(金光殿)을 관리하도록 했다. [[1527년]], 막당중이 제위를 찬탈하고 [[막 왕조]]를 세운 후 첫째 아들 막당조아인을 황태자로 책립했다. 다이찐 원년([[1530년]]) 정월 초하루, 막당중이 연로함을 이유로 막당조아인에게 양위하고, 스스로 태상황을 칭하고 물러나 응이즈엉 현(宜陽縣) 고재(古齋)의 상광전(祥光殿)에 은거하며 물고기를 잡는 것을 업으로 삼고 노닐며 즐겼다. 이렇게 막당조아인이 마침내 즉위했다. 그러나 당시 후 레 왕조의 유신들의 세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막당중은 은퇴했지만 여전히 조정의 정치를 멀리서 통제하고 있었고, 실제 목적은 아들 막당조아인을 밖에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같은 해, 타인호아 사람 레이(黎意, 여의)가 스스로 후 레 왕조 종실의 외손이라고 칭하며 자주(椰州)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막당중은 진압군을 이끌고 레이를 마텃 강(馬漆江)에서 공격했으나 막 왕조의 군대가 연전연패하자 어쩔 수 없이 [[하노이|탕롱]]으로 물러났고, 태사(太師) 인국공(麟國公) 막꾸옥찐(莫國楨)을 남겨 방어하도록 했다. 막꾸옥찐 또한 전투에서 패하였고, 레이가 서도성(西都城, 현재의 타인호아)을 공격해 들어가자 세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그해 8월, 태종 막당조아인이 타인호아로 진격해 막꾸옥찐의 군사와 호앙호아 강(弘化江)에서 합친 뒤 레이의 반란군과 교전했으나 두 차례의 전투에서 레이에게 대패했고, 태종 막당조아인은 탕롱으로 퇴각했다. 이 전투는 막 왕조로 하여금 레이의 이름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들었다. 다만 오래지 않아 레이가 교만해져 방비를 하지 않았고, 결국 자주에서 막꾸옥찐의 기습을 받아 사로잡힌 뒤 탕롱에 압송되어 거열형에 처해져 죽었다. 레이의 잔당은 서쪽 애뢰(哀牢, [[라오스]])로 달아나 후 레 왕조의 유신인 [[응우옌낌]]에게 의탁했고, 이는 응우옌낌의 부흥 세력을 강대해지게 했다. 다이찐 4년([[1533년]]), 응우옌낌은 스스로 레 소종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레닌(黎寧, 여녕)을 찾아내 그를 황제로 옹립하고, '응우옌호아'로 개원하니 이가 곧 [[레장종]]이며, [[후 레 왕조]]를 중흥시켰다. 이들은 서도성을 공격해 들어갔으며, 점차 대월 제국의 남부 지역을 점거했다. 태종 막당조아인은 북부 지역으로 물러나 지키니 이것이 [[남북조시대]]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레 장종은 [[명나라]]로 사신을 보내 스스로 후 레 왕조의 자손이라고 칭하며 막씨가 제위를 찬탈한 일을 고하였다. 세종 [[가정제]]는 함녕후(咸寧侯) 구란(仇鸞)을 총독군무(總督軍務)로 삼고, 병부상서(兵部尙書) 모백온(毛伯溫)을 참찬군무(參贊軍務)로 삼아 군사를 징집해 베트남으로 진공할 준비를 하게 하니, 전쟁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다이찐 11년 정월 25일([[1540년]] [[3월 3일]]), 막당조아인이 붕어했다. [[시호]]를 '''흠철문황제'''(欽哲文皇帝), [[묘호]]를 '''태종'''(太宗)으로 했다.[* 《大越通史·逆臣傳·莫登瀛傳》:“(元和)八年庚子,乃明嘉靖十九年也。正月二十五日戊午,登瀛死,僭位十一年。登庸立其子福海,伪谥曰太宗钦哲文皇帝。”] 첫째 아들인 [[막푹하이]]가 뒤를 이었다. == 정치 == 태종 막당조아인의 재위 기간 동안 막 왕조는 [[1532년]], [[1535년]], [[1538년]]에 세 차례에 걸쳐 과거를 시행하였다. 저명한 인물인 [[응우옌빈키엠]](阮秉謙)은 1535년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이 되었다. 태종 막당조아인은 문화와 교육을 매우 중시하여 [[1536년]]에 겸군공(謙郡公) 막딘코아(莫廷科)를 파견하여 국자감(國子監)을 중수하도록 했으며, [[1537년]]에는 친히 태학(太學)을 시찰하였다. == 가족 == *부친: [[막당중]] *모친: 응우옌티응옥뚜옌(阮氏玉璇) - 통군공(通郡公) 응우옌티웅(阮時雍)의 딸, [[레 공황]]의 황후의 자매. *형제: *홍왕(弘王) [[막찐쭝]] *정왕(定王) 막푹선(莫福山) *강왕(康王) 막년푸(莫仁甫) *광왕(廣王) 막꽝카이(莫光啓) *막년꽝(莫仁廣) *막다이카인(莫大慶) *가왕(嘉王) 막다이중(莫大用) - 요절 *? - 이름 실전 *? - 이름 실전 *자매: *서녕공주(瑞寧公主) 막응옥토(莫玉壽) *태안공주(泰安公主) 막응옥쩌우(莫玉珠) *보화공주(寶華公主) 막응옥꽝(莫玉光) *막응옥뜨(莫玉姿) *막홍응옥(莫洪玉) - 요절 *막투이뚝(莫端肅) - 요절 *막응옥란(莫玉蘭) - 요절 *아내: *쩐씨(陳氏) - [[쩐쩐]]의 딸 *부씨(武氏)[* 《[[http://www.guoxue.com/shibu/24shi/mingshi/ms_321.htm 明史·安南傳]]》:「(阮)敬有女,嫁方瀛次子敬典,因與方瀛妻武氏通,得專兵柄。」] *자녀: *[[막푹하이]] *녕왕(寧王) 막푹뜨(莫福滋) *겸왕(謙王) 막낀디엔 *막리티엔(莫履禪) 또는 막리뜨엉(莫履祥) *막리호아(莫履和) *막히엡타이(莫協泰) 또는 막히엡꿍(莫協恭) *응왕(應王) 막돈니으엉(莫敦讓) *막까인후옹(莫景貺) [각주] [[분류:대월 황제]][[분류:154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