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프랑크인의 왕)] [include(틀:역대 메로베우스 왕조 국왕)] ||<-3><#483d8b> '''{{{#FFF 프랑크인의 왕}}}''' [br] {{{+2 {{{#FFF '''Childebert IV | 킬데베르 4세'''}}}}}} || ||<-3> [[파일:킬데베르 4세.gif|width=100%]] || ||<|2><#483d8b> '''{{{#FFF 제호}}}''' ||<#483d8b> '''[[한국어|{{{#FFF 한국어}}}]]''' ||킬데베르 4세 || ||<#483d8b> '''[[프랑스어|{{{#FFF 프랑스어}}}]]''' ||Childebert IV || ||<-2><#483d8b> '''{{{#FFF 생몰 년도}}}''' ||679년 ~ 711년 || ||<|2><-2><#483d8b> '''{{{#FFF 재위 기간}}}''' ||프랑크인의 왕 || ||<#fff>695년 ~ 711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메로베우스 왕조]] [[프랑크 왕국]]의 왕. == 행적 == 679년 [[테우데리크 3세]]와 클로틸데 왕비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했다. 형으로 [[클로비스 4세]], 여자 형제로 프룸의 베르트라다[* [[피핀 3세]]의 아내 라온의 베르트라다의 할머니다.]가 있었다. 695년 형 클로비스 4세가 사망한 뒤 왕위에 올랐지만, [[피핀 2세]]가 왕국의 궁재로서 전권을 휘둘렀고, 그는 공의회와 법정에 참석하는 것 외엔 뚜렷한 행적을 보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대 역사가들로부터 '정의로운 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형에 비해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데 나름대로 공헌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편, 피핀 4세는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장남 드로고를 샹파뉴 공작으로 선임했고, 막내아들 그리모알드를 노르데베르트 공작으로 삼았다. 711년 4월 14일 오이세 궁전에서 병사했다. 이후 에도나 왕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다고베르 3세]]가 왕위에 올랐다. [[분류:프랑크인의 왕]][[분류:메로베우스 가문]][[분류:679년 출생]][[분류:71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