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가톨릭 교황)] ||<-5><#806600> [[교황|[[파일:교황 문장.svg|height=40]] '''{{{#FFF 가톨릭 교회의 교황}}}''']] || ||<-5> [[파일:174_clemente_III.png|height=125]] || || 제173대 [[그레고리오 8세]] || → ||<#806600> '''{{{#FFF 제174대 클레멘스 3세}}}''' || → || 제175대 [[첼레스티노 3세]] || * [[라틴어]]: Clemens III * [[이탈리아어]]: Clemente III * [[영어]]: Pope Clement III * 생몰년: 1130년 ~ 1191년 3월 27일 * 재위기간: 1187년 12월 19일 ~ 1191년 3월 27일 로마 태생으로 본명은 폴 스콜라리(Paul Scolari) 였다. [[알렉산데르 3세]] 재임 시절에 수석 사제로 서품되었고, 1180년에는 주교급 추기경이 되었다. [[그레고리오 8세]]가 선종한 뒤 1187년 12월 19일 클레멘스 3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수십년 간 문제가 돼 온 로마 시민들과의 행정관 선출 및 총독 임명 문제의 갈등을 조정하고자 했다. 그 결과 로마 시민들이 행정관을 직접 선출하되 교황이 총독을 임명 할 수 있는 권한은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교황은 로마에 정주할 수 있게 되었고[* 한편 너무 적은 숫자의 추기경단을 보충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추기경을 대거 서임하여 20여명이던 추기경단을 30명으로 늘리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3차 십자군]]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우선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의 싸움을 중지시키고, 독일 황제에게 [[프리드리히 1세]]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십자군 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따라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일시적으로 전쟁을 멈췄고, 독일 황제에게 십자군 참여 약속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얼마안가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전쟁은 재발했고, [[헨리 2세]]의 자식들은 발란을 일으켜 내전까지 벌어지게 된다. 그나마 십자군 참여를 약속했던 [[프리드리히 1세]]도 도강하다가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3차 십자군 운동은 지지부진해지게 된다. 클레멘스 3세는 [[프리드리히 1세]]를 이어 즉위한 [[하인리히 6세]]를 독일 황제로 인정하였으나 그를 견제하기 위해 [[탕크레드]]를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는 데에도 동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 클레멘스 3세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3차 십자군]]의 출정 및 [[하인리히 6세]]의 대관을 보지 못하고 1191년 3월 27일 선종하고 만다. [[분류:1130년 출생]][[분류:1191년 사망]][[분류:이탈리아인 교황]][[분류:로마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