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독일의 前 축구선수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103409066-christian-lell-157tfbcAzZec.jpg|width=100%]]}}} || ||<-2> {{{#000000,#e5e5e5 '''이름'''}}} || '''{{{+1 크리스티안 렐}}} [br] Christian Lell''' || ||<-2> {{{#000000,#e5e5e5 '''출생'''}}} ||[[1984년]] [[8월 29일]] ([age(1984-08-29)]세) [br] [[서독]] [[뮌헨]] || ||<-2> {{{#000000,#e5e5e5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28]] || ||<-2> {{{#000000,#e5e5e5 '''신체'''}}} ||183cm || ||<-2> {{{#000000,#e5e5e5 '''직업'''}}} ||[[축구선수]]([[라이트백]] / ^^은퇴^^) || || {{{#000000,#e5e5e5 ''' 소속 ''' }}} || {{{#000000,#e5e5e5 ''' 선수 ''' }}} ||[[알레마니아 아헨]] ( ~1993 / ^^유스^^) [br] '''[[FC 바이에른 뮌헨]] (1993~2001 / ^^유스^^)''' [br] '''[[FC 바이에른 뮌헨]] (2001~2010)''' [br] [[1. FC 쾰른]] (2004~2006 / ^^임대^^) [br] [[헤르타 BSC]] (2010~2012) [br] [[레반테 UD]] (2012~2014) || ||<-2> {{{#000000,#e5e5e5 '''국가대표'''}}} ||없음 ||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의 전 축구선수. 한때는 [[필립 람]]과 함께 바이에른을 이끌 유망주로 평가받았으나... == 선수 경력 == === [[FC 바이에른 뮌헨]]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299813116-christian-lell-12e9.jpg|width=100%]]}}}|| [[알레마니아 아헨]]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1993년 [[FC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당시에 함께 라이트백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선수가 바로 [[필립 람]]이었는데 이때 무려 람을 왼쪽으로 밀어내고 주전 라이트백으로 뛰기도 했다. 2001-02 시즌에 리저브 팀으로 승격되어 10경기에 출전했다. [[FC 바이에른 뮌헨 II]]에서의 2시즌 후, 렐은 2003년 10월 4일, [[헤르타 BSC]]전에서 84분에 [[미하엘 발라크]]와 교체 투입되어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루었고, 뮌헨은 4-1 승리를 거두었다.그는 이후 시즌 총 3경기 출장을 하였다. 그뒤 경험을 쌓기 위해 [[1. FC 쾰른]]으로 2시즌 임대를 가게 된다. 2006-07 시즌, 바이에른으로 복귀하며 계약기간을 2년 연장했고, 1군 경기에 12경기, 리저브팀 경기에 8경기 출장하였다.[* 유소년시절부터 함께였던 [[필립 람]]은 왼쪽에서 포텐이 터지며 점점 멀어졌다.] 그다음 시즌인 2007-08 시즌은 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였는데, 팀의 부주장이자 주전 [[라이트백]]이었던 [[윌리 사뇰]]이 장기 부상을 당하자, [[오트마어 히츠펠트]] 감독은 렐을 주전 라이트백으로 기용했다. 이 시즌에 리가 29경기에 출전하였으며, 경력 첫 분데스리가 득점을 기록하며 4번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DFB-포칼]] 8경기에 출장하였고, [[UEFA 컵]]에서는 11경기에 출장하여 1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8-09시즌 시즌 초반에는 그럭저럭 하다 갈수록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수비진의 구멍역할을 제대로 했고, 팬들의 가슴을 불태웠다. [[2009년]] [[9월 1일]], 이적 시장 문이 닫히기 직전, [[프리미어 리그]]의 [[스토크 시티 FC]]로의 이적 합의까지 접근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렐에게 알리지 못하는 바람에 협상이 실패하였다. 이미 전력에서 제외되어있었기에 2009-10 시즌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 [[헤르타 BSC]]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uer-schuldig-befunden-hertha.jpg|width=100%]]}}}|| 7년동안 뛰었던 FC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2010년 6월 23일, [[헤르타 BSC]]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1년계약이었으며, 팀이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면 자동으로 계약이 2년 연장되도록 하였다. 그는 헤르타의 수비 핵심이 되어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그의 활약에 힘입어 분데스리가로 승격했다. 하지만 2011-12시즌을 16위로 마감했고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루게 되었는데 이 경기에서 [[볼프강 슈타르크]]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모욕을 한 행동에 대해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토마스 크라프트]]와 안드레 미야토비치도 징계를 받았고, 미야토비치는 함께 방출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6월, 계약기간 만료로 방출되었고 2012년 8월에 레반테 UD로 이적하였다. === [[레반테 UD]] === 2014년 은퇴를 발표했다. == 여담 == 국내에서 크게 유명한 선수는 아니지만 사생활적으로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NTR|동료에게 2번이나 여자친구를 빼앗겼다는 점]]이다. 렐은 2010년 [[미하엘 발락]]에게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를 뺏겼다고 주장했다. 렐의 당시 여자친구는 다니엘라 아우마이어라는 여성이었고 렐과 사귀기 전에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여자친구로 유명했다. 즉 다니엘라는 이른바 축구선수 킬러였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프로 축구선수가 워낙 선망을 받는 직업이다보니, 주구장창 축구선수만 노리고 교제나 결혼을 반복하는 여성들이 있다. 비슷한 예로 [[메수트 외질]]의 전 여자친구였던 안나마리아 라거블롬도 이러한 케이스에 속한다. [[베르더 브레멘]]에서만 2명이나 사귀었다. 물론 유럽에서도 이런 여성들에 대한 시선은 [[골드 디거]]라며 별로 곱지는 않은 편이다.] 다니엘라가 슈바인슈타이거에서 렐로 갈아타면서 그녀는 렐의 여자친구가 되고 관계가 깊어져서 렐의 아이도 갖게 된다. 그러나 다니엘라가 발락과 동침한 걸 알게 되고 이에 분노하여 뒤늦게 이 사실을 폭로해버리게 된다.[* 다만 발락과 여자친구의 관계가 길지 않았던데다 시기 상 '뱃속의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 모르겠다'는 렐의 드립은 좀 심한 무리수였고, 본인도 동료의 여자친구를 환승시키다시피 해서 사귀었으면서 자신은 그렇게 만난 여자친구가 바람났다고 자기 아이를 가진 여자친구가 만삭일 때 굳이 폭로한 그의 행태를 두고 바람으로 시작한 관계는 바람으로 끝난다며, 자업자득이라고 손가락질한 축구팬들도 있었다.] 이후 발락과는 2년 후에 우연히 화해했다.[[https://www.bild.de/sport/fussball/bundesliga/bundesliga-startseite-52368768.bild.html|기사]] 그런데 2014년에 '''또''' 독일 일간지에 [[메수트 외질]]이 자기 여자친구였던 멜라니 리킹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고백했다. 이 폭로로 인해 외질은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 맨디 카프리스토와 결별까지 갔다. [[분류:1984년 출생]][[분류:독일의 축구선수]][[분류:알레마니아 아헨/은퇴, 이적]][[분류:FC 바이에른 뮌헨/은퇴, 이적]][[분류:1. FC 쾰른/은퇴, 이적]][[분류:헤르타 BSC/은퇴, 이적]][[분류:레반테 UD/은퇴, 이적]][[분류:200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아랍에미리트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