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1930년]] [[8월 6일]],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크게 회자된 실종 사건이다. == [[판사]]의 실종 == 실종자 조지프 포스 크레이터 [[판사]]는 당시 41세로 [[뉴욕]] 주 1심 법원[* Supreme Court of the State of New York. 뉴욕 주는 다른 주들과 달리 대법원이 아닌 1심 법원을 Supreme Court라고 부른다.] 판사로 재직 중이었다. 크레이터 판사는 [[펜실베이니아]] 주 출신으로 라파예트 대학과 [[콜럼비아 대학교]]의 [[로스쿨]]을 거쳐서 [[1913년]]에 [[변호사]]가 되었다.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서 맨해튼의 민주당 당원모임 회장이 되었고 민주당 뉴욕 지부와 긴밀한 연계를 통해 [[1930년]] [[4월]], 뉴욕 주 대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다. 크레이터는 [[사생활]]에서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부인인 스텔라 휠러는 크레이터가 변호사이던 시절에 [[이혼]]소송을 의뢰하면서 만났고 소송이 마무리된 후 [[1917년]] 크레이터와 재혼했다. 부부관계는 매우 좋았다고 하며 세평도 괜찮았다. [[1930년]] 여름, 크레이터는 부인과 함께 [[메인 주]]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8월 3일]]부터였다. 이날 크레이터는 뉴욕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는 부인에게 며칠 뉴욕에 다녀오겠다고 말한뒤 별장을 떠났다. 이것은 결국 부인이 본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크레이터는 부인에게 왜 뉴욕에 갔다오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후 크레이터는 뉴욕에 위치한 자신의 자택에 들어갔다. 크레이터는 여기서도 이상한 행보를 보였는데 [[8월 4일]]과 [[8월 5일|5일]] 이틀 동안 자택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별다른 일도 없이 보냈다. 이후 실종 당일인 [[8월 6일]] 아침에는 법원의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 재판 기록을 뒤지면서 2시간 정도를 보낸 후 [[비서]]를 시켜 수표 2장을 현금 5,150달러로 바꿔오게 했다. 12시가 지나서 크레이터는 [[비서]]와 함께 [[열쇠]]로 잠긴 2개의 서류가방을 자택으로 들고 갔고 이후 크레이터는 비서를 돌려보냈다. 그날 저녁에 크레이터는 [[브로드웨이]] 벨라스코 극장의 매표소에서 그날 밤에 공연되는 [[뮤지컬]] 표를 1장 산 뒤 45번가의 "빌리 하스"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크레이터는 식당에서 2명의 [[친구]]를 만났는데 한 명은 친한 [[변호사]]였고 다른 한 명은 쇼걸이었다고 한다. 크레이터는 두 [[사람]]과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나중에 동석했던 [[변호사]]는 크레이터에게서 별달리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식사가 끝나고 크레이터는 두 사람과 식당 정문에서 헤어진 뒤 21시 10분쯤, [[지나가던]] [[택시]]를 불러 세워 타고는 어디론가로 갔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크레이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게다가 21시 10분은 크레이터가 구매한 표의 뮤지컬이 이미 시작하고도 꽤 시간이 지난 뒤였는데, 이상하게도 크레이터는 기껏 표를 사놓고서는 [[노쇼|공연을 보러 가지 않았다]]. == 대대적인 수색 == 안타깝게도 크레이터의 실종에 대한 본격적인 대처는 상당히 늦게 이루어졌다. 며칠 후에 돌아오겠다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부인 스텔라 크레이터는 남편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묘하게도 남편의 친구들은 '''아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 기다리다 보면 돌아올 것이다.'''라면서 안일하고 태평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스텔라 크레이터는 남편을 기다렸지만, 여름 휴가기간이 끝나고 법원이 열리는 [[8월 25일]]이 되어도 크레이터가 돌아오지 않자 그제서야 법원 차원에서 크레이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동료 판사들이 사설[[탐정]]을 고용해 행방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결국 [[9월 3일]]에야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크레이터가 8월 6일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을 생각하면 거의 한달여 만에야 실종수사가 시작된 셈이었다. 이후 10월에 대배심이 열렸고 크레이터의 실종을 전면 조사했다. 95명의 [[증인]]이 소환되었고 그들의 증언청취를 기록한 문건만 해도 무려 975페이지에 달할 정도였다. [[경찰]]도 크레이터 판사의 [[금고]]를 수색해본 결과 '''금고가 텅 비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서재에 있던 2개의 서류가방도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전 [[미국]]이 이 실종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경찰]]에는 수천 건의 장난제보가 들어와서 수사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결국 대배심은 크레이터의 행방이나 생사에 대해서 '증거가 불충분하여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메인 주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스텔라 크레이터는 이듬해인 [[1931년]] [[1월]]에 뉴욕의 자택으로 돌아왔다. 집을 정리하던 부인은 장롱 서랍에서 몇 장의 수표와 [[주식]], [[채권]], [[생명보험]] 증서 3장과 크레이터가 직접 쓴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메모는 크레이터의 재산 현황을 쭉 적어놓은 다음 마지막에 '''"나는 매우 피곤하다"'''라는 말로 끝나있었다. == [[실종]]의 이유 == 전도유망한 판사의 실종에 미국 사회는 크게 주목했고 크레이터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평소 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던 크레이터였던지라 갑자기 사라진 데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었다. 부인 스텔라와 평소 크레이터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크레이터가 어떤 정치적 비리나 범죄에 연루되어서 납치, 살해된 게 아닌가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크레이터가 뉴욕 주 판사가 되는데 힘을 써준 [[미국 민주당]] 실력자들에게 사례를 제대로 못해서 그들이 제거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심지어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4차원]] 공간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있었다. 확실히 크레이터의 실종 전후의 행적은 여러가지로 수상하기 짝이 없다. 한창 휴가 중에 부인에게도 확실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뉴욕으로 돌아간 것도 그렇거니와 [[수표]]를 5,150달러의 [[현금]]으로 바꾼 이유라든지, 보지도 않을 뮤지컬의 표를 구매한 것(다르게 말하면 표를 사놓고서는 보러가지 않은 것), 비어있던 금고와 사라진 서류가방 등등. 정황상 크레이터가 어떤 문제에 휘말려 있었고 그것을 해결해보려다가 실종된 후 영원히 자취를 감춘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크레이터가 5,150달러의 [[현금]]을 마련한 것을 두고 브로드웨이의 어떤 쇼걸과 [[불륜]]을 저질렀다가 쇼걸이 협박하자 입막음용으로 5,150달러를 마련해 쇼걸에게 건넸지만 쇼걸이 액수가 적다는 이유로 자신이 아는 폭력배를 동원해 크레이터를 살해한 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암매장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는 없다. 흥미롭게도 마피아 [[전문가]]들은 [[1975년]]에 실종된 미국 노조 지도자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지미 호파]]와 이 사건이 유사한 실종이라고 분석했다. 지미 호파 역시 의문의 실종을 당했는데 마피아 전문가들은 크레이터 판사의 실종 뒤에도 마피아가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명확하지는 않다. == 실종 이후 == 실종 9년째인 [[1939년]] [[6월 6일]], 법정은 크레이터에게 사망선고를 최종적으로 내려서 법률상으로 크레이터는 [[사망]]처리되었다. 크레이터의 이름은 실종의 [[대명사]]가 되어 회자되었다. 물론 실종선고 이후에도 뉴욕 경찰은 계속 수사를 종결하지 않고 제보를 받았다. 크레이터를 [[북아프리카]]에서 봤다, [[하바나]]에서 봤다는 등의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크레이터를 찾을 명확한 단서가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실종 49년째인 [[1979년]], 뉴욕 경찰은 공식적으로 크레이터의 실종사건 수사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2005년]], 한 할머니의 죽음 이후 크레이터의 실종사건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어떤 할머니가 죽으면서 한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그 편지에 따르면 자신의 [[남편]]이 젊은 시절에 술집에서 들은 이야기라면서 크레이터가 4명의 남자들에게 살해된 뒤에 브루클린의 코니 아일랜드 브로드워크에 [[암매장]]되었다는 것이다. 편지는 또한 크레이터를 살해하는데 가담한 자들로 뉴욕 경찰관 로버트 굿즈, 찰스 번스, 악명을 떨친 유대인 갱 조직 살인 주식회사의 행동대장 에이브 릴리즈, 찰스 번스의 동생이자 택시 기사였던 프랭크 번스의 실명을 거론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망]]한 상태였고 간접적으로 들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어서 결국 또 다시 사건의 진상은 알 수 없게 되었다. [[CSI : NY]]의 한 에피소드에서 이 사건이 언급된다. 뉴욕의 지하에서 유물을 발견하던 [[사람]]이 살해되었는데 그가 초반에 지하에서 발견한 것이 크레이터의 [[시계]]였다. [[분류:1930년/사건사고]][[분류:미국의 미제사건]][[분류:후버 행정부]][[분류:미국의 실종사건]][[분류:미스터리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