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멕시코의 정치인]][[분류:멕시코시티 출신 인물]][[분류:1934년 출생]] ||<-2> '''멕시코시티 초대 시장'''[br]'''{{{+1 콰우테목 카르데나스 솔로르사노}}}[br]Cuauhtémoc Cárdenas Solórzano'''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콰우테목카르데나스.jpg|width=100%]]}}}|| ||<|2> '''출생''' ||[[1934년]] [[5월 1일]] ([age(1934-05-01)]세) || ||[[멕시코]] [[멕시코시티]] || ||<|4> '''재임 기간''' ||[[미초아칸]] [[주지사]] || ||[[1980년]] [[9월 15일]] ~ [[1986년]] [[9월 14일]]|| ||||[[멕시코시티]] 초대 민선 [[시장(공무원)|시장]] || ||[[1997년]] [[12월 5일]] ~ [[1999년]] [[9월 28일]]||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멕시코)]|| || '''직업''' ||[[정치인]]|| || '''학력''' ||콜레지오 윌리엄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교육하는 [[사립학교]]이다.][br][[파일: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로고 남색.png|width=18]][[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 '''정당''' ||[include(틀:무소속)] || || '''부모''' ||아버지 '''[[라사로 카르데나스]]'''[br]어머니 아멜리아 솔로르사노 || || '''배우자''' ||셀레스트 바텔^^(1963년 결혼, 2021년 사별)^^ || || '''자녀''' ||3명 || [목차] [clearfix] == 개요 == [[멕시코시티]]의 첫 선출직 [[시장(공무원)|시장]]. 제51대 [[멕시코 대통령|대통령]]인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아들이다. [[멕시코]] [[좌파]]의 대부이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하다. == 생애 == 이름은 [[아스텍 제국]]의 마지막 [[틀라토아니|황제]] [[콰우테목]]에서 따왔다. 생후 7개월 때 아버지가 [[멕시코 대통령|대통령]]에 취임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를 졸업하고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 [[미초아칸]] 주에서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뒤이어 1980년부터 6년간 [[주지사]]를 역임했다. === 제도혁명당 탈당 === 하지만 [[제도혁명당]]은 [[1980년대]]부터 [[우경화]]되어 가고 있었고, 경제 관료인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를 대선후보로 지명하자 이에 반발하여 탈당해 국민민주전선(FDN)[* 여러 좌파 정당들의 연합체로, 정당은 아니었다. 대선 후 [[민주혁명당]]으로 합쳐진다. 한편 콰우테목은 정통 멕시코 혁명당 소속이었다.]을 결성하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살리나스의 경우 순수 관료 출신이라 행정 경험이 부족했고 반면 콰우테목은 상원의원 출신에다가 미초아칸의 주지사를 지내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야권의 세가 늘어나고 있었고,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에서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제도혁명당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을 시기였다. 투표 결과 살리나스는 50.7%를 득표해 바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거꾸로 콰우테목은 31.1%만을 득표했다. 그러나 이 선거는 문제가 많았다. 개표 중반까지 콰우테목이 앞서가자 제도혁명당에서 의도적으로 정전을 시킨 후에 투표함 바꿔치기를 통해서 살리나스를 50%를 겨우 넘는 득표율로 당선시켰다. 후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미겔 데 라 마드리드]] 대통령은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이 선거가 [[부정선거]]가 맞고 당시에 사용되었던 [[투표용지]]는 [[1991년]]에 [[증거인멸|전부 소각했다고]] 밝혔다. 비록 부정선거로 패하긴 했으나 개표 초반까지 야당 후보가 우세했던 것은 멕시코에서 엄청난 일이었고 부정선거로 엄청난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이후 선거개혁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야권의 세가 넓어지는 계기도 되었다. === 계속되는 도전과 낙선 === [[1994년]] 대선에 다시 출마했지만 이번에는 우파 성향의 국민행동당 후보에게도 밀리며 3위로 낙선했다. 본인이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사파티스타]]의 발흥이 좌파 성향인 콰우테목에게 영향을 끼쳤다. 거기다 여당 후보가 암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다만 이후 사파티스타와의 협상에서 역할을 했다. 이 무렵 민주혁명당 대표로 선출된 콰우테목의 정치적 제자였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아예 사파티스타와와 동맹하려 했다. 1997년 [[에르네스토 세디요]] 정부는 그동안 임명직이었던 멕시코시티 시장직을 선출직으로 전환했다. 콰우테목은 여기에 출마해 47.7%로 당선되어 1999년까지 역임했다. 1999년 중도사임하고 이듬해 치러진 대선에 출마했지만 또 3위로 낙선한다. 이후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2014년 [[민주혁명당]]은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정부의 대연정에 참여하며 친정부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권을 차지한 당내 우파 세력이 외연 확장을 위해 참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기존 민주혁명당 지지층들의 이반을 불러일으키며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2014년 [[멕시코 아요트시나파 사범대학교 학생 실종사건]]이 터졌는데 이 사건에 민주혁명당 소속인 이괄라 시장과 [[게레로]] 주지사가 연루되면서 지지율이 크게 추락했고, 친정부 행보에 싫증이 났던 상당수의 지지층이 오브라도르가 세운 [[국가재건운동]]으로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무렵 콰우테목도 민주혁명당을 탈당했다. 2012년 오브라도르의 탈당과 함께 콰우테목마저 떠난 민주혁명당은 구심점이 사라져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