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cc00 {{{+3 칼마르 (스웨덴)}}}}}}|| ||<-3><:> [include(틀:지도, 장소=스웨덴 칼마르)] || * [[스웨덴어]]: Kalmar [목차] === 개요 === [[스웨덴]]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칼마르 주]]의 주도. [[발트해]]와 인접한 항구도이며, 욀란드(Öland) 섬과는 [[대교]]로 이어진다. === 역사 === 전설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바이킹]] 왕 [[올라프 2세]]가 배를 타고 이곳에 당도했다고 한다. 11세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며, 12세기에 마을의 기반이 세워졌다. [[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 1세]]는 이 도시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귀족들을 불러모아 [[칼마르 연합]](Kalmarunionen)을 창설했고, 그녀의 후계자인 [[에리크 7세|포메른의 에리크]]는 1397년 6월 17일, 칼마르의 시립교회[* 1678년 파괴되어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3국의 왕으로 즉위했다. 당시 칼마르는 덴마크령 스칸디나비아 영토인 [[스코네]], 블레킹에, 할란드와 인접한 국경도시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수 차례 덴마크에게 피해를 받았다. 1557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1세 바사]]는 죽기 전 맏아들 [[에리크 14세|에리크]]에게 스웨덴 태자 자리와 스몰란드 공작령을 주었고, 에리크 14세는 왕이 되기 전 칼마르 성(Kalmar Slott)과 [[스톡홀름]]을 왔다갔다했다. 이후 이복동생 [[요한 3세(스웨덴)|요한]]이 칼마르를 접수한 후 칼마르 성을 현재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꾸었다. 1611~13년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일으킨 칼마르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58년 로스킬레 조약이 체결되며 스코네, 블레킹에, 할란드가 스웨덴 영토로 편입되자 군사적인 요충지로서의 입지를 상실하였고, 1689년에는 [[칼 11세]]가 [[스웨덴 해군]]의 모항이 될 새로운 도시로 [[칼스크로나]]를 건설하면서 완전히 빛이 바랬다. === 현재 === [[봉바르디에]]와 [[볼보]] 공장이 빠져나가며 많이 침체된 상황. 지금은 9,000여명의 대학생들과 연구원들이 겨우 먹여살리는 소도시이다. === 기타 === 1603년부터 1915년까지 존속했던 칼마르 [[교구]]의 중심지였다. 동네에 [[자전거도로]]가 정말 많다. 볼거리는 칼마르 성이 유일하다. 다만 스웨덴에서는 몇 안되는 바사 왕조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이고, [[스웨덴인|스웨덴 사람]]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분류:칼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