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춘향전 시리즈)] [[파일:춘향전(1923) 한 장면.jpg]] 어사가 춘향의 집을 찾아가 월매를 만나는 장면[* 출처: [[매일신보]] 1923년 8월 24일 제3면] [목차] == 개요 == 고전 [[춘향전]]을 영화화한 최초의 영화로 1923년 개봉했다.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다. * 감독: 하야카와 고슈(早川孤舟)[* 본명은 하야카와 마스다로(早川增太郞)]. * 제작사: 동아문화협회. * 출연: 김조성, 한명옥, 최영완 * 개봉일: [[1923년]] [[10월 18일]] 군산좌에서 개봉. 서울은 [[12월 5일]] 황금좌에서 상영. == 상세 == 당시 연쇄극[* 연극 중간에 스크린을 통해 촬영된 장면을 비춰주는 방식으로 극영화의 전 단계.]의 제작비는 피트 당 1원이라는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외국 영화만 보아 왔던 관객은 처음으로 한국 사람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에 이끌려 극장을 찾았고 개봉관은 제작비를 회수하고도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이런 연쇄극의 동향을 보고 있던 하야카와는 1923년 조선 영화제작사인 동아문화협회를 설립, 자신이 운영하던 황금관 안에 두고 첫 작품으로 [[춘향전]]을 선정했다. 하아캬와 본인이 각색, 제작, 연출을 담당하고 이몽룡 역에 김조성, 성춘향 역에 한명옥이 출연했다. 월매와 향단 역은 일반 가정 부인 중에서 발탁하고 단역과 엑스트라는 남원 사람들로 충당했다. 예명이 한룡인 한명옥은 [[개성시|개성]]의 이름난 기생으로, 춘향이가 기생의 딸이라는 점과 눈에 띄는 미모를 갖고 있어 발탁되었다. 김조성은 당시 조선극장의 주임변사로 대중의 인기가 높은 정상급 변사였으며 이후 연극계에서는 춘광(春光)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최영완은 조선극장 음악대 중의 한 명이었다. 지나치게 비싼 입장료와 사극으로서 시대적 고증의 부실, 모진 매를 맞고 나온 춘향을 월매가 안고 울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등 연기력 부재가 지적되었지만 흥행 면에서는 서울 흥행만으로도 제작비를 뽑았고 [[대구광역시|대구]], [[평양시|평양]] 등지로 순회 영사를 다녀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성공 이후, 춘향전은 [[조선총독부]]의 검열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컨텐츠로 취급받았다. 이로 인해 훗날 제작된 영화 [[반도의 봄]]에서도 극중극 형식으로 춘향전이 등장할 수 있었다. [[분류:한국 영화]][[분류:1923년 영화]][[분류:없어진 영화]][[분류:무성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