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분류:제3공화국/살인사건]][[분류:춘천시의 사건사고]][[분류:1965년 범죄]] [목차] [[https://blog.naver.com/heronam78/222541392434|[[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width=22]]]][* 아래에 후술할 내용은 신문과 이 사이트에 도움을 받았다.] == 개요 == [[1965년]]에 발생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토막 살인]]사건'''. == 사건 내용 == [[1965년]] [[5월 16일]] 오후 4시 반 무렵 [[강원도]] [[춘성군]][* 지금의 [[춘천시]].] [[사북면]] [[춘천호]]에서 보트를 타고 [[화전(농업)|화전]] 사이를 옮겨 다니며 [[나물]]을 캐던 처녀들이 [[참수|목 잘린]] 여인의 몸뚱아리가 나체로 물속에 꼿꼿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겁하였다. 처녀들이 부리나케 마을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왔더니 [[시체]] 주변에서 악취가 났다. 시체를 확인만 하고 건지지 않은 채 경찰에 신고했으며 시신을 인양해 보니 참혹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신원은 [[춘성군]] 출신이며 술집 접대부로 일했던 당시 32세였던 이강순(李康順)[* [[부검]]했을 때 경찰은 숨진 여인이 20~23세, 아기를 낳은 적이 없다고 했고 25일 전쯤 숨진 것으로 추정했으나 사실 피해자는 숨진 지 4개월 만에 발견되었으며 20대가 아닌 30대였다. 이는 본부에서 한 간부가 기자에게 흘려서 신원이 금방 확인되었다.]이었다. 머리가 잘려 있었으며 몸에도 큰 칼질을 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양손은 [[칡]]넝쿨로 묶었고 [[양말]]만 신은 채로 양발이 새끼로 묶여 있었으며 그 새끼줄에 큰 돌이 매여 있었다. 몸통을 발견한지 이틀이 지나서 스웨터에 싸인 머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얼굴은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치정이나 원한에 의한 살인이 분명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경찰은 주변 진술을 통해 전, 현 남편 등 3명을 지목하고 전국에 공개수배하였으나 사실 그 3명 모두 범인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범죄와 관계 없는 남편을 호송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진짜 진범이 검거되기 전 남편은 형사들에게 온갖 수모를 다 당했다고 한다. 이 사건의 진짜 범인은 주막 주인이자 목수로 일하던 당시 45세 남성 임동익(林東益)이었다. == 사건의 전말 == 1965년 1월 27일 밤, 이강순 씨는 남편 정찬명 씨[* 이사가기 전 남편에게 농사자금을 만들어 오라고 남편의 고향인 [[경상남도]] [[남해군]]에 내려보냈었다.]가 고향으로 간 사이에 거주지인 춘성군 사북면 지암리에서 이삿짐을 나르기 시작하였으며 이날 밤 [[춘천호]] 일대 날씨는 눈이 내려 밤길이 몹시 차가웠다고 한다. 이강순 씨는 20여리 떨어진 춘성군 사북면 용산리에 있는 김모 씨 집으로 이사가려다 힘이 들어 한 집에 사는 김모 씨에게 부탁하였으나 거절당하였으며 혼자 갔다 오는 길에 빈 지게를 지고 있던 최 모씨를 만나 같이 짐을 나르다 임동익이 있는 주막 앞에서 최 씨를 보냈고 이강순 씨는 임동익의 주막으로 들어갔다. 주막 안에는 임동익이 혼자 있었으며 처와 딸은 조카 집 결혼식에 보냈다. 이강순 씨는 술을 자청했으며 이 여인의 모습에 반한 임 씨와 4되를 함께 마시고 한방에 따로 누웠으니 임 씨가 이 여인을 건드리는 것이 화근이었다. 이강순 씨는 임동익의 뺨을 한 대 후려치고 방 옆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와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하지만 임동익은 이불을 들어 이강순 씨를 덮어 씌우고 식칼을 뺏은 다음 이강순 씨와 주막을 같이 나왔다. 하지만 임동익은 이강순 씨 몰래 헛간에 있던 낫을 허리춤에 감추는데… 임동익은 이 씨와 같이 300여 m쯤 갔을 때 이 여인은 잘못했다고 도로 돌아가자고 하자 임동익은 이를 거절하고 살해 협박과 함께 이 씨를 강제로 끌고 갔다. 눈으로 덮인 [[춘천호]] 얼음장 위를 걸어갈 때 임동익은 이 씨를 살려줄 경우 강간미수 혐의로 고발을 당할 것이 뻔하기에 고함을 지르려는 이 씨의 목을 오른손으로 누르고 오른발로 이 씨의 두 발을 누르며 목을 졸라 죽였다. 이 씨를 살해한 임동익, 하지만 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200여 m 떨어진 북쪽 산록에서 새끼줄과 칡덩굴을 가져왔으며 낫으로 꽁꽁 얼어 있는 호수를 깨부쉈다. 낫으로 이 씨의 코와 귀, 목을 잘라 버렸으며 이 여인의 옷을 발가벗기고 음부를 손바닥만큼이나 도려내 물속에 버렸으며 잘린 머리는 이 씨가 입고 있던 도꾸리샤쓰[* 폴라티. 직역하면 "긴목 셔츠"라는 뜻으로 목티를 뜻한다.]에 싸서 물속에 유기하였다. 여인의 두 손을 [[칡]]덩굴로 묶고 두 발을 새끼로 꽁꽁 묶은 다음 어른의 머리만한 돌을 주워와 발을 묶은 새끼줄에 달아매어 물 속에 넣었다. 시신을 유기한 다음은 깨버린 얼음장을 제자리에 덮었으며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범행에 사용한 낫을 집으로 가져와 물에 씻었으나, 피의 흔적이 그대로 남기 때문에 부엌불에 낫을 아예 고철로 만들어 [[엿]]으로 바꿔 먹으면서 피의 흔적을 없앴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과 그녀를 덮은 이불마저도 춘천 장에 나가 팔아 버렸다. 이렇듯 임동익은 완전범죄를 꿈꾼 듯했다. 하지만 덜미가 잡혔다. 대부분의 춘성군 경찰이 이 모씨의 남편을 의심하였던 반면 박성근 형사와 최기석 형사는 또 다른 범인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며 이 여인이 살고 있던 집의 김 모씨로부터 '''"이 여인의 이삿짐을 날라주려 했다"'''는 진술을 들으며 남편 장천명의 알리바이를 확보했다. 그리고 김승원 씨를 계속 추궁하여 이 여인의 행적을 알아낸 결과 마지막 행적이 임동익의 주막에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였으며 임동익의 자백을 받아내 이 사건은 4개월 만에 해결되었다. == 판결 == 살인·시체유기·횡령 등 죄목이 붙었으며 피고인 임동익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임동익은 감옥에서 종교생활을 하며 아내와 딸에게 참회의 편지를 보냈지만 [[광복|해방]] 이후 최악의 흉악범죄를 저지른 살인자에게 아무런 동정도 하지 않았다.[* 1965년 이전까지는 [[토막살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가 이 사건 이후 토막살인이라는 개념이 생겼으며 [[유교]]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시체를 훼손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천인공노할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토막살인이라는 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결국 임동익은 1968년 4월 23일 [[서울구치소]]에서 처형되었다. 향년 46세.[* [[1922년]]생이다.][[https://news.joins.com/article/1158677|#]] == 모방범죄 == 살인까지 모자라 시신을 토막내는 끔찍한 토막살인 사건이 최초로 보도되면서 [[모방범죄]]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67년 6월 2일 [[경상남도]] [[창원시|창원군]]에서 머리와 손과 발이 잘린 16~17세 소년이 발견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머리와 손과 발이 없어서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고 범인을 잡지 못하여 [age(1967-06-0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구미제 사건이다. [[일본]]에서도 발생하였는데 1967년 11월 6일 [[재일 한국인]]이었던 한화의(韓和義, 당시 23세)가 [[조센징]]이라는 멸칭에 격분하여 나이트클럽 호스티스를 죽인 후 토막내 스미다가와(隅田川)에 버린 혐의로 구속되었다. 1967년 12월 12일 [[인천]]에서 돈 문제 시비 끝에 우발적으로 동거한 여인을 과도로 찔러 죽이고 토막내 종이상자에 넣었으며 시체가 있는 종이 상자를 홍마루에 둔 것을 수상히 여긴 안집 주인의 신고로 우 모씨의 집에 세들고 있던 박도식(당시 35세)이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 기타 == 범인 임동익은 [[황해도]] [[재령군]] 장동면 출신으로 재령농업실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제국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오장]]에까지 진급했는데 [[태평양 전쟁]] 때 [[남양군도]] 전투에도 참전했다고 한다. [[8.15 광복]] 후 1947년 월남해 [[충청남도]] [[서산시|서산군]] 인근에서 [[뱃사공]] 일을 하며 어업에 종사하다가 목수 일을 배워 생업으로 삼기도 했다. 그 뒤 [[연평도]] 주재 대(對) [[북한]] 공작대원으로 근무하다가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해 [[6.25 전쟁]] 에 [[제1군단]] 소속으로 참전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5052900239103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65-05-29&officeId=00023&pageNo=3&printNo=13565&publishType=00010|#]] 그는 수년간 여러 소속을 전전하며 전쟁에 참여했던 탓인지 평소 [[살인]]에 거리낌이 없고 난폭한 성격을 지녔다고 하며 집념과 고집 또한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의 전처는 6.25 전쟁 때 [[납북]]당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50528003292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5-28&officeId=00032&pageNo=3&printNo=6033&publishType=00020|#]] == 관련 기사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5-24&officeId=00032&pageNo=7&printNo=6029&publishType=00020&articleId=1965052400329207001|解放(해방)후 처음,악랄하기 비길데없는 天人共怒(천인공노)할 變態性手法(변태성수법) 兇惡(흉악)도 못따른 犯行(범행)]]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5-31&officeId=00032&pageNo=7&printNo=6035&publishType=00020&articleId=1965053100329207023|낫은 発見(발견)못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5-26&officeId=00020&pageNo=3&printNo=13412&publishType=00020&articleId=1965052600209203007|身元(신원)은判明(판명) 春川湖(춘천호)의 被殺女人(피살여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5-28&officeId=00032&pageNo=3&printNo=6033&publishType=00020&articleId=1965052800329203001|春川湖畔(춘천호반) 女人(여인) 토막 殺害(살해)사건 眞犯林東益(진범림동익)을 체포]]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6-02&officeId=00032&pageNo=7&printNo=6037&publishType=00020&articleId=1965060200329207007|證據(증거) 못찾는犯行(범행)]]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5-28&officeId=00032&pageNo=3&printNo=6033&publishType=00020&articleId=1965052800329203020|짓 밟힌 人權(인권)]]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7-06-02&officeId=00020&pageNo=3&printNo=14038&publishType=00020&articleId=1967060200209203023|머리手足(수족)끊긴變屍(변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7-11-07&officeId=00020&pageNo=7&printNo=14173&publishType=00020&articleId=1967110700209207022|『조센징』욕설에激憤(격분) 在日韓人(재일한인)이日女給(일여급)토막殺害(살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7-12-14&officeId=00032&pageNo=3&printNo=6824&publishType=00020&articleId=1967121400329203016|仁川(인천)에 토막殺人(살인) 犯人(범인)검거]] == 관련 문서 == * [[토막 살인]] * [[이팔국 아내 살인 사건]] * [[콘힐 남편 살인사건]]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