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러시아의 민족]][[분류:북아시아의 민족]][[분류:축치캄차카어족]] [include(틀:동아시아와 북아시아의 민족)] [include(틀:러시아의 민족)] || [YouTube(dThMWyfYutU)] || * [[러시아어]]: Чукчи[* [[축치어]] 단어인 "Chachu"에서 유래됐다. 해당 단어는 "[[순록]]이 풍부한"이란 뜻을 담고 있다.] * [[축치어]]: Ԓыгъоравэтԓьэт, оравэтԓьат[* 전자는 "르그오라베틀엣", 후자는 "오라베틀앗"이라 읽는데 의미는 둘다 '''진정한 [[사람]]'''이란 뜻이다.] [목차] == 개요 == [[러시아 극동]]의 최동단에 위치한 [[축치 반도]]에 살아가는 [[시베리아 원주민|민족]]으로 대부분이 [[추코트카 자치구]]에 거주하고 있다. == 특징 == [[파일:축치인.jpg|width=300]] [* 출처는 [[러시아]] 출신 호주 사진 작가 알렉산더 히무신(Alexander Khimushin)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12779295&memberNo=4444311|더 월드 인 페이시스: The World in Faces]].] 2021년 러시아 내 인구는 약 16,200명.[* 이중 12,000여 명이 [[추코트카 자치구]]에 거주하며, 이외에도 [[캄차카 지방]], [[사하 공화국]], [[마가단]], 심지어 [[추코트카 자치구|추코트카]]과는 문화권 자체가 다른 머나먼 서쪽의 '''[[다게스탄 공화국]]'''에도 일부 거주한다.] 축치캄차카어계 민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민족이기도 하다. 이들이 쓰는 언어는 [[축치어]]로 [[축치캄차카어족]]에 속하며 이텔멘어, 코랴크어가 이 어족에 속한다. [[파일:Genetic Distance of 39 Asian populations.png]] 중간 chukchi라고 써져 있는 것이다. 보면 알겠지만 퉁구스나 튀르크와 가까운 계열이란 걸 알수 있다, 축치인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툰드라]] 지대에서 [[순록]]을 기르는 유목그룹, 또 하나는 해안가에서 정착한 정주그룹[* 이들은 생활방식이 다른 만큼 자신을 지칭하는 말 또한 달랐는데, 유목그룹은 자신을 '순록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의 '차우추'(Чаучу)라 불렀고, 정주그룹은 자신을 '바다 사람'이라는 의미의 '안칼른'(Анкалын) 또는 '바닷가 사람'이라는 의미로 '라말근'(Рамалгын)이라고 불렀다.]으로, 이들은 유전적으로 서로 거리가 있는 관계에 속한다고 한다. 게놈 연구에 따르면 [[아메리카 원주민]]과 제일 가까운 친척뻘 되는 민족이라고 한다. 오늘날 축치인 대다수는 이동식 천막인 야란가가 아닌 현대식 주택에 살면서 주로 [[서비스업]] 쪽으로 일한다. 하지만 [[아나디리]]의 물가는 비싸고 급여는 낮아[* 약 2만 루블 정도로 2020년 기준 원화로 약 330,800원 정도이다.] [[청년]]들은 [[이촌향도|일자리와 더 나은 환경을 위하여 다른 곳을 찾아 떠난다.]] 사실 [[추코트카 자치구|추콧카]]의 봉급 수준은 러시아에서 가장 높지만 [[광업]]에 종사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축치인처럼 1차 산업 위주로 일하는 사람들은 높은 물가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추코트카 자치구]] 자체가 [[모스크바]]에서 상당히 먼 지역이란 것과[* 동쪽으로 약 '''6000km 이상'''이라고 한다.] 험악한 기후환경+열악한 보건시설+수준낮은 사회환경이 더해져 현대 축치인의 평균 수명은 65세로 러시아 평균인 72세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특히 남성의 경우에는 60.6세로 러시아의 남성 수명이 한창 낮았던 2000년대 초반 정도에 머물고있다. === 호전성 === || [[파일:Choris,_Tschuktschen.jpg|width=90%]] || || [[1816년]]에 그려진 베링 해협 근처 전통가옥 야란가 앞에 위치한 축치인 [[가족]] 그림.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극북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과 이웃한 극동 민족들 사이에서 상당히 호전적인 [[전투민족]]으로 유명했다. 축치인들은 [[순록]]과 목초지 점유 문제로 인해 예전부터 자주 충돌하던 [[코랴크인]], [[유카기르]], 시베리아 유픽과 달리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을 지닌 편이었으며,[* 춥고 혹독한 기후을 자랑하는 추코트카에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장신|키가 6피트에 달했다고 한다]]. 반대로 축치인들에 의해 끊임없는 [[침략]]과 [[학살]]에 시달리던 [[케레크]]는 키가 눈에 띄게 작았다고 한다.] [[겁쟁이]]로 멸시당하며 사는 것을 죽음보다 훨씬 두려워하는 고대 [[스파르타]]를 연상케 하는 사회에서 살았던 점과 뛰어난 싸움 실력이 합쳐져 당시 축치인들과 전투를 벌인 이들은 축치인들과의 전투에서 승패 상관없이 큰 피해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드넓은 [[시베리아]]를 손쉽게 정복했던 그 [[러시아 제국]]조차도 축치인들을 상대로 1748~1755년 동안 총 7번의 군사 작전을 실행했으나 큰 피해만 입고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러한 점 때문에 [[선민사상|주변 민족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성향]]이 강했다고 하며, 전투에서 승리할 시 남자는 죽여버리고 오직 여자만 [[포로]]로 잡아가 [[납치혼]]을 치르거나 [[성노예]]로 삼은 탓에 17-18세기 사이 [[베링 해협]]을 건너온 축치인들의 침공을 당했던 [[유픽]] 부족들의 전설에서 축치인들은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여겨졌다. 오래전 추코트카에서 벌어진 150년 간의 전쟁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잡힐 경우 [[자살|자결]]을 시도하는 등 상당히 호전적으로 대항한지라 이러한 [[https://www.khan.co.kr/article/200308081747461|얘기]]가 있다고 한다. >어느날 축치족이 [[중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중국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사절단을 보내어 “중국 인구가 10억명[* 1980~1990년대 사이에 생겨난 이야기로 보인다.]이라는 걸 아느냐. 그래도 싸우기 원하느냐”고 묻자 축치족은 대답했다. >'''[[상남자|“그게 정말이냐. 그럼 너희들 모두를 어디에 묻어주랴?”]]''' == 기원과 역사 == || [[파일:Wrangel_Island_Inhabitants_on_board_Krasnyj_Oktiabr_1924.jpg|width=90%]] || || [[1924년]] [[소련 해군]] [[건보트]]에 탑승한 [[브랑겔 섬]]의 축치인 주민들. ||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약 6,000년 전부터 축치 반도에 이들 조상이 살기 시작했으며, 그 후 기원후 1천년대 전반기에 기후 및 자연조건 변화, 인구증가가 이뤄지면서 축치인의 조상들은 가축으로 길들여진 순록 떼를 이끌고 [[https://en.wikipedia.org/wiki/Siberian_Yupik|시베리아 유픽]]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축치인 일부는 해안가에서 정주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 [[기록]]된 건 1640년대이며, 당시 기록에 따르면, 유목그룹은 알라제야(Алазея) 강과 콜리마(Колыма) 강 사이의 북빙양 해안 툰드라 지역을 중심으로 순록을 유목했고, 정주그룹은 데주뇨프(Дежнёв) 만과 크레스트(Крест) 만 사이 지역과 아나디르 강(Анадырь) 및 칸찰란 강(Канчалан) 하류 지역에서 에스키모와 더불어 해양 동물을 사냥하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17세기]] 후반에 러시아인[* 또는 [[카자크]].]과 축치인의 접촉이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축치인과 코랴크인들로부터 [[러시아인]] [[공동체|커뮤니티]]를 보호하고자 1700년경에 교전이 발발했다. 첫 교전은 [[1701년]]이었으며, [[1708년]], [[1709년]], [[1711년]]에도 정복을 시도했으나 상당한 유혈사태만 거뒀을 뿐 정복에 성공하질 못했다. [[1729년]]에 다시 한번 시도했지만, [[역관광|원정대는 축치인들에게 역으로 박살나고 지휘관까지 살해당했다.]] 사령부로부터 명령을 받은 [[https://en.wikipedia.org/wiki/Dmitry_Pavlutsky|드미트리 파블루츠키 소령]]은 축치인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거나 주거지를 불태우고, 여자와 아이들을 포로로 잡거나, [[순록]]을 몰아내는 등의 상당한 강경책을 내세웠다. 그 후 [[174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쪽에서[* [[모스크바]]가 아닌 이유는 당시 [[러시아 제국]] 수도가 이쪽이였기 때문이다. 모스크바가 다시 수도가 된 것은 [[소련]] 시절 때이다.] 축치와 코랴크를 '''완전히 제거할 것'''을 명하였고 이로 인해 1744년에 시작된 약 3년 동안의 잔혹한 전쟁이 일어났으나 1747년 3월 파블루츠키가 결국 [[https://ru.m.wikipedia.org/wiki/%D0%91%D0%BE%D0%B9_%D0%BD%D0%B0_%D1%80%D0%B5%D0%BA%D0%B5_%D0%9E%D1%80%D0%BB%D0%BE%D0%B2%D0%BE%D0%B9#:~:text=%D0%91%D0%BE%D0%B9%20%D0%BD%D0%B0%20%D1%80%D0%B5%D0%BA%D0%B5%20%D0%9E%D1%80%D0%BB%D0%BE%D0%B2%D0%BE%D0%B9%20(%D0%B1%D0%B8%D1%82%D0%B2%D0%B0,%D1%81%D1%82%D0%BE%D1%80%D0%BE%D0%BD%D1%8B%20%D0%B8%20%D1%87%D1%83%D0%BA%D1%87%D0%B0%D0%BC%D0%B8%20%E2%80%94%20%D1%81%20%D0%B4%D1%80%D1%83%D0%B3%D0%BE%D0%B9.|전투 중 전사]]하면서 전쟁은 다시 한 번 러시아 원정대의 패배로 끝났다. [[1762년]] 러시아 측은 다른 정책을 취했으나 [[적자|아나디르스크 요새 유지비만 1,380,000루블이 나오는데 비해 거둬들여지는 세금을 꼴랑 29,150루블이었던지라 2년 뒤, 아니디르스크를 포기했다.]] [[1822년]] [[제정 러시아]]의 결정에 따라 축치인은 러시아에 편입되지 않고, 러시아에 원하는 만큼의 야삭(ясак)을 납부하는 것으로 봉합되었다. [[시베리아]] 전체가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러시아 제국]]에 완전히 정복되었지만, 축치인들의 영역만큼은 소련에 의해 추코트카 국립 자치구가 만들어진 [[1930년]]까지도 완벽하게 점령되지 않았다. == 문화 == || [[파일:Chukchi_boats.jpg|width=90%]] || || 축치 전통 보트 "[[https://ru.wikipedia.org/wiki/%D0%91%D0%B0%D0%B9%D0%B4%D0%B0%D1%80%D0%B0|르그트벳(Лыгъытвъэт)]]". || 이들의 전통의상은 [[후드티]]와 흡사하며, [[에스키모]]들과 오랜 시간 접촉해온 탓에 의복이 서로 유사한 모습을 지녔다. 이들의 의복문화는 [[케레크]][* 축치인과 코랴크인 영역 사이에 살던 민족으로 현대에는 축치인들에게 거의 동화되어 사실상 사멸한 민족이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정주그룹 축치인들은 작살, 창, 가죽으로 만든 그물로 봄겨울에는 [[물개]], 가을에는 [[바다코끼리]]와 [[고래]]를 사냥했다고 한다.[* 물개 사냥의 경우 혼자서 잡고, 바다코끼리나 고래는 몇척의 배가 그룹을 이뤄서 잡았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총을 쓰기 시작했다.] 원통형 또는 원뿔형의 [[천막]] '야란가'(яранга)를 [[툰드라]]에선 [[순록]] 가죽으로, [[해안]]에서는 [[바다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 또한 해안그룹 "안칼른"의 야란가는 유목그룹 "차우추"의 야란가와는 달리 [[굴뚝|연기를 빠져나가게 할 구멍]]이 없었다. [[19세기]] 말까지 "안칼른"은 [[에스키모]]의 고래 턱뼈로 만드는 집 '발카란'(валкаран)을 모방하여 고래뼈로 틀을 만들고 떼나 흙을 덮은 [[반지하]]에 살기도 했다. 해당 집은 여름에는 지붕을 통해서 드나들었고, 겨울에는 긴 터널을 만들어 드나들었다. 또한 몇 가닥의 줄에 추를 매달아 만든 방식의 [[볼라]]를 사용해 날아가는 [[새]]를 사냥하기도 하였다. 축치인들은 겨울철 이동을 위해 [[썰매]]를 타고 다녔는데 이를 위해 썰매를 끌던 견종이 바로 '''[[시베리안 허스키]]'''이다. [[노인]]들이 [[자살|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나를 죽여줘|친척이나 지인에게 자신을 창으로 찌르거나 밧줄로 목을 졸라서 죽여달라 청했던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축치인들이 [[툰드라|사는 곳]] 자체는 [[한대기후|환경이나 기후가 너무나도 춥고 척박]]하다보니 생활 조건이 너무 열악해서 그렇다고 한다.[* [[고대 로마]]에서도 노인들이 스스로가 쇠약해졌다고 생각하면 아사를 택하는 풍습이 있었다.] ~~어딘가 씁쓸해진다...~~ [[유빙]] 위에서 여름과 가을 동안 해양동물을 사냥하던 축치인들 중 유빙이 육지와 갈라지는 바람에 야쿠티야 해안가까지 떠내려간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옛 축치 전통에선 유빙에 의해 바다로 흘러들어간 순간부터 가족과 친척들은 해당 인물을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고 살아있어도 [[고향]]으로의 [[존재의 부정|귀환을 금지하는 풍습]]이 있었다. 때문에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 없던 축치인들은 [[잃을 게 없다|현지인들을 약탈하였고, 스스로를 망자라 여기고는 공포심을 더욱 조장하기 위해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불거나 비명을 지르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야쿠티야 북부와 마가단에 거주하는 [[유카기르]] 전설에서 "떠도는 축치"라는 뜻의 '수키드제브레이 추프체(Сукиджэврэй чупчэ)'라는 존재가 있는데, 북부 사하인과 인디기르카와 야나 및 레나 강 하류 지역의 [[https://ru.m.wikipedia.org/wiki/%D0%A0%D1%83%D1%81%D1%81%D0%BA%D0%BE%D1%83%D1%81%D1%82%D1%8C%D0%B8%D0%BD%D1%86%D1%8B|러시아 거주민]]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전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사례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픽]]처럼 [[순록]]과 사냥하면서 얻은 바다코끼리같은 동물들의 모피나 뼈, 상아 등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문화가 있다.[* 주로 남자는 뼈나 상아에 문양 및 그림을 새기고, 여자는 순록 모피를 가공하거나 바늘꽃 섬유를 엮어 가방을 만들었다.] 정부에서 학교 등록 및 이들에 관한 서류작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축치인들에게 [[성씨]]와 부칭을 강요하기 전까지는 이들에게 [[20세기]]까지도 성씨라는 개념이 없었고, 오로지 [[이름]]밖에 없었다. 이름들은 남녀상관없이 대부분이 망자가 저승으로부터 되돌아온다는 전통적인 관념과도 관계가 있었다. 태어났을 때 일어난 자연현상에 따라 짓거나[*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동틀녘이 뜰때 태어났으면 이름이 동틀녘(Tynga-gyrgyn)이 되고, 어떤 여자가 봄에 태어났으면 이름이 봄(Gyrongav)이 되는 식이다.] 추코트카에 사는 동물의 명칭에서 가져와서 짓는 식이다. 또는 [[부모]]가 희망하는 자질에 따라 이름을 짓기도 했다.[* 딸이 예쁘게 크길 바라면 이름을 미녀로 짓는 식이다. 현대에는 러시아식 이름도 병행한다. [[https://www.everyculture.com/wc/Norway-to-Russia/Chukchi.html#ixzz6d7oVobHv|링크]]] 그외에도 체큠, 콰플레크, 콰티크, 페리 등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들을 이름으로 썼다. == 종교 == 일반적으로 축치인들은 [[애니미즘|모든 자연은 살아있고, 사물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행동하거나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사물에 대해서 게틴빌렌[* Getinvilen, 뜻은 "주인이 있는".] 또는 게큘릴린[* Gequlilin, 뜻은 "목소리를 가진".]이라고 불렀다. [[샤먼]]의 힘은 남자도 여자도 가질 수 있으며, 여성들이 더 자주 힘을 가질 수 있지만, 남자들보단 작다고 여겨진다. 또한 [[출산]]은 샤먼이 가진 힘을 잃게 한다 믿으며, 강한 능력을 가진 여성 샤먼이 아이를 낳으면 힘의 대부분을 잃지만, 수년 뒤 아이를 돌보는 기간이 끝나게 되면 다시 회복된다고 믿었다. 또한 출산 시에 썼던 물건은 여성 샤먼의 힘을 감소시키며, 남자도 그 물건에 손댈 경우 힘을 감소시킨다고 여겼다. == 출신 인물 == *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B%A6%AC_%EB%A6%BF%ED%97%A4%EC%9A%B0|유리 릿헤우]]: 러시아의 문학가. * [[https://www.youtube.com/channel/UCQ8MDXDNopGgCJ0AxXGbAsQ|블라디미르 푸야]]: 러시아의 [[영화감독]]. * [[https://ru.wikipedia.org/wiki/%D0%9A%D1%8B%D0%BC%D1%8B%D1%82%D0%B2%D0%B0%D0%BB%D1%8C,_%D0%90%D0%BD%D1%82%D0%BE%D0%BD%D0%B8%D0%BD%D0%B0_%D0%90%D0%BB%D0%B5%D0%BA%D1%81%D0%B0%D0%BD%D0%B4%D1%80%D0%BE%D0%B2%D0%BD%D0%B0|안토니나 키미트발]]: 러시아의 [[시인(문학)|시인]]이자 [[아동문학]]가. == 관련 문서 == * [[추코트카]] * [[축치 반도]] * [[축치어]] * [[축치캄차카어족]] * [[코랴크인]] * [[케레크]] * [[유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