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군]] [목차] [clearfix] == 개요 == 摠戎廳 [[조선]]의 [[오군영]]을 구성하는 [[군영]]. [[북한산성]]을 방위했다. == 역사 == 1624년, 전해에 발발했던 [[이괄의 난]] 때 [[반군]]이 관군의 저지선을 너무도 쉽게 뚫고[* 사실 [[이괄]]의 난 당시 반군은 조선이 [[후금]]에 맞서기 위해 육성했던 북방의 최정예 병력이었던만큼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한성]]을 점령하자 이에 대한 반성(...)으로 도성의 북부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국제정세에서 [[조선]]과 [[후금]]의 사이가 날이 갈수록 영 악화일로를 걸었던 만큼 총융군은 처음부터 수도를 직접 방위하고 [[왕]]을 [[호위]]하는 목적이라기보다, 후금과 조선 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를 전쟁에 대비해 수도 방어를 증강하기 위한 목표로 설립되었다. 보유병력이 설립당시에는 겨우 2천에 불과하였으나, [[병자호란]] 직전에는 2만명으로 확정된 총융청은 [[북한산성]] 방어를 담당하며 약 200여년간 조선의 도읍이었던 한양의 북부 방어선을 책임졌다. [[헌종(조선)|헌종]] 연간에 국왕 주도하에 [[총위영]](摠衛營)으로 개편되어 정조 연간의 [[장용영]](壯勇營)처럼 다른 군영들의 병력을 이전받아 세를 확장하기도 하였으나, 헌종이 사망하고 [[철종(조선)|철종]]이 즉위하자 원상 복구되었다. 1884년 [[고종(조선)|고종]]의 개혁정책에 따라 폐지되었다. 총융청의 [[대장]]은 총융사(摠戎使)였다. 장부 상 병력은 2만여명에 달할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규모를 자랑하였다.[* 북한산성 일대는 지금도 군사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더 말할 것도 없이 '''[[청와대]]'''가 위치해있으며 여기를 넘으면 종로 시가지와 광화문광장이 코앞인데다 [[남산(서울)|남산]]을 제외하면 방어선이 사실상 없어서 [[한강]]까지도 손쉽게 진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제56 보병사단 및 제1경비단 등 [[수방사]] 직할부대 및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 [[경찰]] 소속의 101경비단, 202경비단 및 서울기동본부 병력, 종로경찰서 산하 병력 등 수많은 [[국군]] 및 경찰병력이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산]] 일대 방어를 위해 상시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가 [[속오군]]으로 구성되었던 수도 외곽 방어 군영이었던만큼 '실제 전력'이 2만 3,500여명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이는 [[남한산성]]을 보위했던 [[수어청]]도 비슷하다.), 주력군인 [[속오군]]이 후기로 갈수록 유명무실화되가는 것을 감안하면 총융청의 병력은 별무사 750명, 별파진 100명을 포함해 약 2~3,000여명 정도에 불과하였다고 보는게 옳다. 나머지 병력은 유사시에만 소집되어 북한산성 방위를 맡았으나 정기적인 훈련이 갈수록 줄어들어 결국 ~~군기가 빠져~~ 수포군화 되었다. [[탕춘대성]]에 본부가 있었다. == 복식 == [[파일:청전복.png]] 총융청의 군사들은 당시 조선군의 표준 복장이였던 전립과 청전복[* 마병의 경우 홍색 소매]을 착용하였으며 갑옷은 입지 못했던것으로 보인다.(기록에 없음) == 여담 == '총융청'이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고려]] 관련 문제의 오답 선지로 출제되었는데, 모르는 수험생들이 많아서 오답자를 양산했다.(...) 정답 선지는 역분전의 지급이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오군영, version=211, paragraph=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