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from=창도, other1=창조도시, rd1=창조도시)] [include(틀:강원도(북한)의 시군)] ||<-2> {{{+2 창도군}}} [br] 昌道郡 / Changdo County || || 국가 || [[북한]] || || 면적 || 370.36㎢ || || 광역시도 || [[강원도(북한)|강원도]] || || 행정구역 || 1읍 16리 || || 인구 || 51,319명 || || 시간대 || UTC+9 || ||<:><-2>[include(틀:지도, 장소=창도군, 높이=224px, 너비=100%)] || {{{+1 昌道郡 / Changdo County}}} [목차] [clearfix] == 개요 == [[북한]] [[강원도(북한)|강원도]]의 행정구역 중 하나로, 과거 [[김화군]]의 동부 지역에 해당하는 군. 김화군 [[창도면]]의 이름을 따서 신설한 군 이다. ‘창도’라는 지명은 과거 나라의 큰 군량창고 뒤에 있던 마을이라 하여 ‘창뒤’라고 불리던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창도(昌道)’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창도군의 경제는 지방공업과 농업이 중심을 이룬다. 지방공업은 식료품, 방직 및 피복, 일용, 기계, 제약, 종이, 건재 공업으로, 이 가운데 식료품공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품종은 간장, 된장, 기름, 당과류 등이며, 식류품 이외에도 혼방천을 비롯한 옷, 도자기, 가구, 문화용품, 약품 등이 생산되며 농기계수리기지도 갖춰져 있다. 그리고 군 전체면적의 11.6%를 차지하는 농경지에서는 주로 옥수수, 벼, 콩, 수수 등이 재배되며, 무, 배추, 양배추, 시금치 등의 채소업도 재배된다. 밭에 뽕밭을 새로 조성하여 누에고치도 생산하고 있다.군의 교통은 주로 도로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원산∼김화, 창도∼금강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다. 창도읍과 금강읍은 단발령(818m)을 넘어 연결된다. 단발령은 태백산맥의 지맥인 먹포령산맥이 금강천과 장현천의 지류들에 의해 깎이면서 낮아진 고개로, 신라말 마의태자가 부왕에게 하직하고 개골산으로 입산할 당시 이 고개에서 불타의 도움을 받고자 멀리 금강산의 여러 봉우리를 바라보며 출가를 다짐하는 뜻에서 삭발을 하였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밖에 창도∼명우 간 도로를 비롯하여 각 읍과 리를 서로 연결하는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현재 창도군에는 26개의 중학교와 28개의 소학교를 비롯하여 각급 교육기관이 있으며, 창도군인민병원을 비롯한 30여 개의 전문예방치료기관과 창도도서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 그리고 창도군 지석리에는 청동기시대의 탁자식고인돌(국가지정문화재보존급 제1157호)이 남아있다. == 역사 ==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강원도]] [[금성(동음이의어)|금성]]군의 동부 지역이었고, 1914년 금성군이 [[김화군]]에 통합된 이후 [[6.25 전쟁]] 전까지는 김화군에 속해 있었다. [[1952년]] 12월에 [[북한]]이 대대적인 ~~[[마개조]]~~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김화군의 김화군 창도면·원북면·금성면·통구면·임남면(11개리)·근북면(5개리)·원동면(1개리), 그리고 [[양구군]]의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 해당하는 수입면(13개리)을 조합하여 신설되었다. 이름을 김화군이라고 짓지 않고 창도군이라고 지은 이유는 김화읍이 남한으로 넘어갔기 때문[* 남한의 김화군은 1963년에 [[철원군]]에 합쳐졌다.]. 그러나 북한은 1954년에 창도군의 서쪽 반을 떼어내서 김화군을 다시 만들었다. 군청이 있던 구 창도면이 김화군에 편입되어 통구면 중심지로 군청을 옮겼다. 현재 북한 김화읍이 위치한 곳은 옛 금성군의 중심지였던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때 [[금강산선|금강산 전철]]이 지나갔는데 일제가 1940년대에 전쟁 물자 공출로 철도를 뜯어가면서 금강산선 구간이 이곳까지 단축되었으나, 6.25 전쟁으로 금강산선 운행은 전면 중단되었다. [[31번 국도]]가 이곳을 통과한다. 1980년대까지는 ◇ 형태로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이었으나 1987년 [[회양군]]에서 일부 지역이 편입되었으며 90년대 [[금강산댐]]을 건설하면서 통구면 일대가 수몰되었다. 2000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창도군의 남부 지역을 금강군과 김화군으로 편입하여 △ 형태로 바뀌며 1987년 [[회양군]]에서 편입된 지역으로 군청이 옮겨졌다. 그런데 군청이 옮겨진 곳은 말이 좋아 회양군에서 편입된 지역이지, 바로 옛 회양면 지역에 해당된다(...). 그리고 창도군 내에 있는 교주리라는 지명이 '''회양군의 역사적 이름'''인 건 덤. 참고로 구 회양군의 군청소재지인 회양면 읍내리는 거의 면의 서쪽 끝이었다. 북한 회양읍은 구 하북면과 회양면의 경계가 되는 북한강에 걸쳐 있는데, 시가지의 중심은 강 서쪽 지역, 즉 하북면 초일리 쪽이다. 북한 행정구역상 회양읍과 창도읍은 약 12km 정도 떨어져 있다. 통일 후 남한식 읍면제가 실시된다면 현재의 창도읍 지역을 원래의 김화군 창도면과 구분해 신안이나 신창도, 교주 등으로 불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 실제 소련군정 당시 회양면을 분리해서 신안면을 신설했던 적이 있다. 신안리는 현재의 창도읍 지역이기도 하다.] == 지리 == 창도군의 면적 90%는 해발 200m~800m의 고원이다. 주요하천은 북한강 본류와 그 지류로, 사동천, 장현천, 금강천, 신안천 등등이 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를 보이며, 연평균 기온 8.3℃, 1월 평균 기온 -8.2℃ , 8월 평균 기온 22.8 ℃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199.7mm로 도의 평균값보다 적은 편이다. 북한이 거대한 [[금강산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된 지역이 많다. 군의 중심지인 통구면 일대도 수몰. 옛 금강산선이 지나가는 지역 중에도 수몰지역이 있다. == 대한민국과 창도군 == 위에서 설명했지만 창도군의 최남부 지역(2000년에 김화군과 금강군으로 편입)은 원래 강원도 양구군이었다. 대한민국의 [[이북 5도|이북5도위원회]] 기준에 의하면 김화군과 양구군에 해당하므로,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이 되면 옛 수입면 지역을 양구군에 반환하고 나머지 지역은 김화군에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구읍에서 [[수입면]]이 너무 멀다는게 걸린다. 다만 금성군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 경우 금성군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창도군 지역이 고향인 실향민들은 1974년에 미수복 강원도 김화군 창도면민회를 만들어 현재까지 모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남북통일]]이 되어도 고향이 [[금강산댐]] 때문에 물에 잠겨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통구면]] 쪽에 비해 창도면 쪽은 물에 덜 잠기긴 했지만. [[금강산선]]의 복원 문제도 얽혀 있는 만큼 통일 이후 금강산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고민해 보아야겠다. 다만 현재 옛 창도면의 일부만 창도군에 남아있는 실정이다. == 출처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창도군(昌道郡))] [[분류:강원도(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