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덕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 ||<-3> {{{#ffd700 {{{+1 '''창덕궁 낙선재'''}}}[br]{{{-1 昌德宮 翠雲亭}}}}}}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한정당,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 2-71번지) || ||<-2> {{{#ffd700 '''건축시기'''}}} || [[1686년]] {{{-1 (창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취운정.png|width=100%]]}}} || || {{{#gold ''' 취운정[*A 사진 출처 - [[카카오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taAVweHfYQs)]}}} || || {{{#gold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 || [목차] [clearfix] == 개요 == [[창덕궁 낙선재|창덕궁 낙선재 구역]]에 있는 [[정자]]이다. [[창덕궁 수강재|수강재]]의 북쪽 화계 위, [[창덕궁 한정당|한정당]]의 동남쪽에 있다. 비공개 구역이라 일반 관람객들은 가까이서 볼 수 없다. == 이름 == '취운(翠雲)' 뜻은 '푸른(翠) 구름(雲)'이다. '취'는 '[[비취]]'란 뜻인데 여기서는 의미가 넓어져 비취색, 즉 [[푸른색]]을 나타낸다. == 역사 == 1686년([[숙종(조선)|숙종]] 12년)에 지었다. 이후 큰 변화없이 오늘에 이른다. == 구조 == * 남향(南向)한 1층[*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 [[목조]] [[건물]]로 2고주 5량가 [[구조]]이다. 장대석 2단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둥]]과 [[주춧돌]]은 사각이다. 기단 앞에는 두 단 짜리 [[계단]]을 두 벌 놓았다. [[현판]]은 걸어두지 않았다. * 정면 4칸, 측면 3칸이다. 가장자리를 둘러싼 칸은 툇간이고 안쪽에 [[온돌|온돌방]]이 2칸 있다. 툇간의 넓이는 온돌방 칸보다 좁다. 툇간은 밖과 통해있으며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온돌방 정면과 후면의 외벽은 머름을 두고 그 위에 [[창문]]을 올린 형태이다. 그러나 측면의 외벽은 가운데에 창을 두고 나머지를 흰 [[벽]]으로 마감한 모습이다. * [[온돌|온돌방]]의 [[천장]]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했다. 툇간의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가 다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 온돌방 정면과 후면에 달은 [[창문]]은 사분합이다. 안쪽 문은 '용(用)'자살이고, 바깥쪽 문은 띠살이며, 들어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홑처마, [[공포(동음이의어)#s-2|공포]]없는 민도리집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기와]]로 마감했다. [[용두]], [[잡상]], 취두를 올리지 않았다.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칠했다. * 툇간 바깥쪽에는 [[난간]]을 설치했다. 난간은 '아(亞)'자 형 교란으로, 그 위에 하엽동자 형태의 난간기둥과 돌란대를 얹은 형태이다. 툇간으로 드나드는 가운데 2칸에는 기둥 끄트머리에 짧게 난간을 두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함인정 취운정.png|width=100%]]}}} || || {{{#gold ''' 창경궁 함인정(맨 오른쪽 건물) 마당에서 바라본 취운정 지붕과 동쪽 담의 문(붉은색 원 안)[*A 사진 출처 - [[카카오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취운정에서_본_낙선재.jpg|width=100%]]}}} || || {{{#gold ''' 취운정에서 바라 본 낙선재 화계[*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615028&ccbaKdcd=12&ccbaAsno=17640000&ccbaCtcd=11|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창덕궁 낙선재.]]] '''}}} || 건물 주위 동, 서, 북쪽에 [[담|담장]]이 있고 서쪽과 동쪽, 그리고 동남쪽에 작은 일각[[문]]이 하나씩 있다. 그러나 정남쪽은 트여있어 수강재 뒤편과 낙선재 쪽 화계를 장애물 없이 볼 수 있다. 서쪽 문으로 나가면 [[창덕궁 한정당|한정당]]이 나오고, 동남쪽 문으로 나가면 [[창덕궁 수강재|수강재]]가 나온다. 그리고 동쪽 문으로 나가면 [[창경궁 함인정]] 마당이 바로 나온다.[* 사실 [[창덕궁 낙선재|낙선재]] 구역이 원래는 [[창경궁]]이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동궐도 취운정.png|width=100%]]}}} || || {{{#gold ''' 《동궐도》의 취운정 '''}}} || 《[[동궐도]]》를 보면 서쪽과 남쪽에 [[나무]] 판장을 두었으며, 서쪽 판장 옆에는 취병[* 翠屛. 나무로 뼈대를 세운 뒤 뼈대 사이마다 키 작은 나무나 덩굴 식물을 심어 자라게 하는 형태의 담을 말한다.]을 두고, 취병 가운데에 [[아치]] [[문]]을 설치한 모습이 나온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 여담 == * [[숙종(조선)|숙종]]이 유독 이곳을 좋아하여 《취운정제영시(翠雲亭題詠詩)》와 《취운정육영시(翠雲亭六詠詩)》, 《9일에 취운정에 올라(九日登翠雲亭)》 등 취운정을 소재로 한 [[시]]를 여러 편 지었다.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