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덕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 ||<-3> {{{#ffd700 {{{+1 '''창덕궁 이문원'''}}}[br]{{{-1 昌德宮 摛文院}}}}}}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창덕궁 규장각,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 2-71번지) || ||<-2> {{{#ffd700 '''건축시기'''}}} || [[1781년]] {{{-1 (창건 추정)}}}[br][[2004년]] {{{-1 (복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창덕궁 규장각.jpg|width=100%]]}}} || || {{{#gold ''' 이문원 청사. 현판 글씨는 '규장각'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Ysls9SWEC8)] }}} || || {{{#gold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규장각 3D 영상 '''}}} || [목차] [clearfix] == 개요 == [[창덕궁#s-5.2.2|창덕궁 규장각 구역]]에 있는 [[건물]]이다. [[조선]]의 [[왕실]] [[도서관]] 및 학술연구기관 [[규장각]]의 사무청사이다. 규장각 기구에 대한 설명은 [[규장각]] 문서 참조.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동궐도 규장각.png|width=100%]]}}} || || {{{#gold ''' 《동궐도》의 이문원 일대. 붉은색 원 안이 이문원이다. '''}}} || [[정조(조선)|정조]]는 즉위 직후인 1777년(정조 1년)에 [[창덕궁#s-5.4.1|창덕궁 후원]]에다 [[창덕궁 주합루|주합루]]를 짓고 그곳에 규장각을 두었다. 그러나 규장각의 규모가 커져서 주합루에 많은 [[책]]과 [[문서]]를 보관하기 힘들자, 1781년(정조 5년)에 옛 오위도총부 자리에 규장각을 새로 지어 이전시켰다. 이 때 사무청사로 지은 것이 이문원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궁0565.jpg|width=100%]]}}} || || {{{#gold '''일제강점기 철거 및 개조 후 모습을 담은 엽서[* [[http://www.gogung.go.kr/imgView.do?title=%25EC%25B0%25BD%25EB%258D%2595%25EA%25B6%2581%2520%25EC%2582%25AC%25EC%25A7%2584%25EC%2597%25BD%25EC%2584%259C&cultureSeq=00019409LC&imgSeq=1|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 ||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일제]]가 헐었다가 [[문화재청]]에서 2000년 ~ 2004년에 [[복원]]했고 2005년부터 일반에 개방하여 오늘에 이른다. == 구조 == * 1층[*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 [[목조]] [[건물]]로 남향(南向)이다. * 긴 [[암석|돌]][[기둥]] 위에 [[건물]]을 올렸다. 정면 기둥 사이는 외부와 통해있으나, 나머지 돌기둥 사이에는, 장대석 한단을 깔고 그 위에 사고석과 [[벽돌]]로 고막이벽을 두었다. 뒷면 고막이벽에는 구멍을 뚫었다. 보관하던 [[책]]과 문서가 좀슬지 않게 환기와 통풍을 시키기 위한 용도인 듯 하다. 뒷면 가운데 3칸의 구멍은 벽돌에 2개 씩 뚫었고, 양 옆 칸의 구멍은 사고석에 1개 씩 뚫었다. *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이다. 앞면 5칸은 툇간이고, 가운데에 [[대청]] 6칸, 대청 양 옆에 [[온돌|온돌방]]이 각각 2칸 씩 있다. 대청 칸은 전부 뚫려있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 [[공포]]는 이익공[* 창방과 직접 만나 보를 받치는, 쇠서(소 혀 모양의 자재)를 두 겹으로 낸 공포.]이다. 공포 사이에 장화반을 설치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양성바름을 하고, [[용두]]와 취두, 잡상을 올렸다. 지붕 측면의 합각은 나무판으로 마감했다. * 출입문은 정면 가운데 3칸에 있으며, 그 앞에 [[나무]]로 만든 [[계단]]을 놓았다. 나무 계단 양 옆에는 [[난간]]을 설치했다. 난간은 풍혈을 뚫은 궁판 위에 하엽동자 모양의 난간기둥을 두고 그 위에 돌란대를 설치한 형태이다. * 양측면과 뒷면의 외벽은, 하단부에 머름을 두고 그 위에 띠살창을 둔 모습이다. == 여담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국보331호창덕궁이문원측우대01.jpg|width=100%]]}}} || || {{{#gold ''' 이문원 측우대 '''}}} || 이문원 앞 마당에 있던 [[측우기]] 받침대는 현재 [[틀: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331호]]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문서 참조.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