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덕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 ||<-3> {{{#ffd700 {{{+1 '''창덕궁 애련정'''}}}[br]{{{-1 昌德宮 愛蓮亭}}}}}}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창덕궁 애련정,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 2-71번지) || ||<-2> {{{#ffd700 '''건축시기'''}}} || [[1692년]] {{{-1 (창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log.joinsmsn.com/4c0baea36f3cb.png|width=100%]]}}} || || {{{#gold ''' 애련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6toX0TOziO0)]}}} || || {{{#gold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애련정 3D 영상. 의두합과 같이 다룬다. '''}}} || [목차] [clearfix] == 개요 == [[창덕궁#s-4.4.4|창덕궁 후원]]의 [[정자]]이다. == 이름 == '애련(愛蓮)'은 '[[연꽃]](蓮)을 사랑한다(愛)'는 뜻이다.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돈이가 쓴 글인 《애련설》에서 이름을 따왔다. [[https://youtu.be/ZEVxxjnP500|애련지에 가득 찬 연잎]] [[숙종(조선)|숙종]]은 애련정에 대해 쓴 글인 《애련정기(愛蓮亭記)》에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고 지었다.”고 이름의 뜻을 적었다.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qa9khbIuzJ1AEBG2k7D2KcK19r1dFrfHEpx04ZlFnoJ1J9YS4s8nRTkAarfQNs7n.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93299§ionId=ocp&pageIndex=11&pageUnit=10&strWhere=&strValue=&sdate=&edate=&category=&mn=NS_01_02|#]] 현재 [[현판]]은 1903년([[광무]] 7년)에 창덕궁 후원의 감독직을 맡았던 [[김가진|동농 김가진]]이 썼다. == 역사 == 1692년(숙종 18년)에 건립되었다. 《궁궐지》와 《애련정기》에 따르면, [[연못]] 가운데에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섬은 없고 정자도 북쪽 연못가에 걸쳐있다. 언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1828년 ~ 1830년 사이에 그린 《[[동궐도]]》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그려져있는 것을 보아 이미 그 이전에 변한 것으로 추측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동궐도 애련정.png|width=100%]]}}} || || {{{#gold ''' 《동궐도》의 애련정 권역. 오른쪽 위의 정자가 애련정이고 연못이 애련지이다.[br]애련지 서쪽의 건물이 어수당이며 맨 아래의 건물 2채가 의두합과 운경거이다. '''}}} || [[헌종(조선)|헌종]] 대에 지은 《궁궐지》에 따르면, 애련정 서쪽에는 어수당(魚水堂)이 있었다고 한다. 《[[동궐도]]》에도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 애련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창덕궁_후원군역_애련지.jpg|width=100%]]}}} || || {{{#gold ''' 애련지[*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6413892&ccbaKdcd=13&ccbaAsno=01220000&ccbaCtcd=11|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 {{{+1 昌德宮 愛蓮池}}} 애련정의 연못이다. 애련정과 역사가 같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애련지의 서북쪽은 3단짜리 단으로 되어있다. 이중 가운데 층의 제일 왼쪽 돌에 전서체로 새겨진 '태액(太液)'이라는 글씨가 있다. 이로 보아 애련지의 다른 이름이 '태액지(太液池)'였을 가능성도 있다. 태액은 '큰(太) 연못(液)'이란 뜻이고, 옛 [[중국]] [[황궁]]의 연못 이름에서 유래했다.[* [[당나라]] [[대명궁]], [[금나라]] 대녕궁에 같은 이름의 연못이 있었다. 현재 [[베이징]]의 [[중난하이]]도 태액지로 불렸었다.] 근처에 있는 [[창덕궁 부용정#s-4|부용지]]의 별칭도 태액지였다. == 구조 == * 애련지의 북쪽에 있다. 네 개의 [[암석|돌]][[기둥]] 위에 [[건물]]이 서있는데 남쪽의 기둥 2개는 길이가 길며 [[연못]]에 잠겨있고 북쪽의 기둥 2개는 길이가 짧으며[* 기둥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주춧돌]]이라고 봐야한다.] 축대 위에 걸쳐져 있다. 꼭 마치 [[연못]]에 발 담그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qa9khbIuzJ1AEBG2k7D2KcK19r1dFrfHEpx04ZlFnoJ1J9YS4s8nRTkAarfQNs7n.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93299§ionId=ocp&pageIndex=11&pageUnit=10&strWhere=&strValue=&sdate=&edate=&category=&mn=NS_01_02|#]] *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추녀마루는 [[기와]]를 얹어 마감했다. [[처마]]는 겹처마이다. [[공포(동음이의어)#s-2|공포]]는 이익공으로 익공의 끝을 둥글게 처리한 몰익공 형식이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237827028&categoryNo=21&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0&postListTopCurrentPage=&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0|#]] 공포 사이에는 소로를 두었다. [[단청]]은 모루단청이다.[* 부재 끝 부분만 화려하게 칠하는 단청.] * 모든 칸에는 [[창문|창호]]를 달지 않아 외부와 바로 통하게 되어있다. [[기둥]] 사이에 낙양각을 설치하여 한껏 운치있게 했다. 북쪽 칸을 제외한 나머지 칸의 아랫 부분에는 '亞'자형 난간을 둘렀다. * 안쪽의 마루는 난간을 두른 쪽마루보다 한단 낮게 설치되었다. 그래서 쪽마루가 걸터앉아 쉴 수 있는 [[의자]]의 기능을 할 수 있다. * [[현판]]은 북쪽에 걸려 있다. 그리고 바깥쪽 기둥마다 주련을 써붙여 놓았다. 주련의 내용은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qa9khbIuzJ1AEBG2k7D2KcK19r1dFrfHEpx04ZlFnoJ1J9YS4s8nRTkAarfQNs7n.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93299§ionId=ocp&pageIndex=11&pageUnit=10&strWhere=&strValue=&sdate=&edate=&category=&mn=NS_01_02|이 곳]]을 참조. == 여담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oZxoTyr61k)]}}} || || {{{#gold ''' 〈창덕궁 달빛기행〉 영상 '''}}} || 〈창덕궁 달빛기행〉 코스 중 한 곳이다.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