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경궁)] [include(틀:조선 왕궁의 동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3호 창경궁}}}]]''' || ||<-3> {{{#ffd700 {{{+1 '''창경궁 낙선당'''}}}[br]{{{-1 昌慶宮 樂善堂}}}}}}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창덕궁 낙선재,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br]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종로구)|와룡동]]) || ||<-2> {{{#ffd700 '''건축시기'''}}} || 창건연대 미상 [br][[1647년]] {{{-1 (중수)}}}[br] [[1756년]] {{{-1 (소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낙선당 터로 추정되는 곳.png|width=100%]]}}} || || {{{#gold ''' 낙선당 터로 추정하는 곳. 저 영역 중 한 곳에 있었다.[* 사진 출처 - 카카오맵.] '''}}} || [목차] == 개요 == [[창경궁]]의 [[동궁]]으로, [[왕세자]]의 [[공부방]]이었다.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위치]]는 정확히 모른다. 지금의 [[창덕궁 낙선재|낙선재]] 자리나 수강재 뒤 뜰로 추정한다. 확실한 것은 [[창덕궁]]과 [[창경궁]]이 만나는 영역 중 한 곳이다. == 이름 == '낙선(樂善)' 뜻은 '선(善)을 즐긴다(樂)'이다. 《[[맹자]]》에 나온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으로 선을 즐겨(樂善) 게으르지 않는 것(不倦)을 천작(天爵)[* 남에게서 존경을 받을 만한 타고난 덕행.]이라고 한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름 '낙선(樂善)'은 [[헌종(조선)|헌종]] 연간에 옛 낙선당 부근에 세워진 '[[창덕궁 낙선재|낙선재(樂善齋)]]'가 계승했다. == 역사 == [[동궐]] 영역([[창덕궁]], [[창경궁]])에 동궁이 생긴 것은 [[성종(조선)|성종]] 재위 기간이던 1485년 경이었다. 그러나 그 때 낙선당도 지었는지는 모른다. 1647년([[인조]] 25년) [[동궁]]의 처소인 [[창경궁 저승전|저승전]]을 고쳐 지은 내용을 담은 《저승전의궤》에 저승전과 같이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에 창건한 듯 하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낙선당(樂善堂)|#]] 이후 [[왕]]과 [[세자]]가 이 곳에서 [[신하]]들을 만나고[[http://sillok.history.go.kr/id/ktb_10108020_001|#]][[http://sillok.history.go.kr/id/kua_12804010_001|#]] [[공부]]를 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1756년([[영조]] 32년) 낙선당의 부속 건물 양정합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낙선당과 부속 건물들이 전부 불 타 사라졌다. 이후 [[경술국치|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재건하지 않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3205001_004|#]] == 여담 == === 낙선당 화재의 이유 === 낙선당이 불탄 것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지나치게 갈군 것과 그로 인한 사도세자의 [[정신 질환]] 때문이었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때, 어느 날 [[불심검문|영조가 사도세자가 있던 낙선당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런데 이 때 하필 사도세자는 막 자고 일어난건지 꾀죄죄한 몰골에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있었다. 이를 본 영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앞 뒤 사정 안 따지고, 사도세자가 [[술]]을 마셨다고 생각하여 버럭 화를 냈다. 마침 [[금주령]]을 시행하던 때라 영조는 사도세자를 뜰에 세워놓고, 누가 술을 줬는지 호되게 추궁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도세자]]가 저 때 술을 안 마셨었다.''' 그러나 [[영조|아버지]]가 하도 몰아대며 물으니까 사도세자는 밧소주방 [[나인]] 한 명이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보다 못한 사도세자의 [[보모]] 최 상궁이 영조에게 '''술 냄새가 나는 지 맡아보라'''며 사도세자를 [[변호]]해주었다. 이에 사도세자는 서둘러 "먹고 아니 먹고 내 먹었노라 아뢰었으면 자네 감히 말을 할까 싶은가. 물러가라."[* 그러니까 '내가 먹었다고 얘기하면 '''용기있게 내 편에 서서 나섰겠냐''''는 뜻.] 며 최 상궁을 물리쳤지만, 영조는 '''"너, 내 앞에서 상궁을 꾸짖냐? 어른 앞에서는 개랑 말도 꾸짖지 못하는데 (감히 내 앞에서) 누굴 나무라냐?"''' 라고 사도세자를 또 혼내며(...) 세자시강원[* [[왕세자]]의 [[교육]]을 맡아보던 관청.] 관원들에게 세자를 훈계하라 명했다. 참고로 사도세자가 거짓 자백하며 언급한 해당 소주방 나인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거제도로 유배갔다.]] 시강원 관원들이 방에 들어가자 감정이 터져버린 [[사도세자]]는 '왜 부자 사이를 안 도와주냐'며 심하게 화를 내며 쫓아냈다. 그런데 '''하필 이 때 촛대가 쓰러지며 [[건물]]에 불이 붙었다.''' 이미 이전부터 있었으나 주변 사람들만 알던 사도세자의 [[정신 질환|광증]]을 이 사건으로 [[조정]] 신료들까지 알아 버렸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일부러 [[방화|불을 지른 줄 알고]] 폭발해서 --아니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데-- [[창경궁 함인정|함인정]][* [[창경궁]] 환경전의 남쪽, [[창경궁 명정전|명정전]]의 서북쪽에 위치한 [[정자]]. 지금도 남아있다.]으로 [[사도세자]]를 불러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또 갈궜다.''' 이에 결국 [[인내심|참는 데에]] 한계가 온 사도세자는 [[창경궁 저승전|저승전]] 앞 뜰의 [[우물]]에 뛰어들었으나 경악한 신하들과 나인들이 가까스로 구해서 겨우 살아났다. 부자 간의 [[갈등]]이 [[건물]]의 [[화재]]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http://egloos.zum.com/rozanov/v/810325|#]] == 부속 건물 == * 낙선당 남쪽에 양정합(養正閤)이 있었고 양정합에는 손지각(孫志閣)이란 건물이 딸려 있었다. 이외에도 덕성합(德成閤)과 관희합(觀熙閤)이 있었다. 낙선당 화재 당시 관의합에는 [[혜경궁 홍씨]]와 [[황태손|세손]]이던 [[정조(조선)|정조]]가 머물렀다. == 대중 매체에서 == [[영조]] 때 불 탄 이후 다시 짓지 않았기에 당연히 실제 낙선당의 모습이 나온 적은 없었다. * 1998년 MBC에서 방영한 《[[대왕의 길]]》에서 화재사건을 자세히 재현했으며 전체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대사들도 위에 언급한 기록을 거의 그대로 반영했다. 다만 장소가 낙선당이 아닌, 취선당 바깥 소주방으로 나오며 [[사도세자]]([[임호]] 분)가 그 곳에 틀어박힌 것을 안 [[숙의 문씨]]([[윤손하]] 분)가 [[영조]]([[박근형]] 분)에게 술마셨다고 모함하여 영조가 찾아간 것으로 묘사했다. 화재 이후 잠시 세자가 사라졌으나 곧 궁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영조가 사도세자를 보자마자 갈궜다. 단, 함인정 뜰이 아닌 침전에서, 신하들 앞이 아닌 [[화완옹주]]([[김지연(1978)|김지연]] 분) 앞에서 야단친 것으로 나왔다. 건물 외관은 [[창덕궁]] [[후원]] 내에 있는 [[창덕궁 희우정|희우정(喜雨亭)]]에서 촬영했다. * [[영화]] 《[[사도(영화)|사도]]》에서는 [[창경궁 낙선당#s-3.1|위에 언급한]] 낙선당 화재 사건의 원인을 각색한 [[장면]]이 나온다. [[인원왕후]]([[김해숙]] 분)가 죽은 이후 [[영조]]([[송강호]] 분)의 학대에 정신이 피폐해진 [[사도세자]]([[유아인]] 분)가 [[공부]]고 [[대리청정]]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정말로 [[술]]을 마셨고, 이를 보고 분노한 영조는 귀 씻은 물을 세자에게 끼얹으며 [[막말|폭언]]을 퍼붓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세자는 세자대로 영조가 내동댕이친 [[사발]]로 주변의 [[신하]]들을 내리치면서 "일개 아녀자도 목숨걸고 나서는데 내 편을 들어 주는 건 어떻게 한 놈도 없냐"며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 [[작가]] 김정화(카밀)가 글을 쓰고 [[만화가]] 나래가 그림을 그린, 2016년에 연재되었던 [[네이버 웹소설]] 《[[승은궁녀스캔들]]》에서는 [[주인공]]인 생과방 [[나인]] [[승은궁녀스캔들#s-2.1|김순심]]의 처소로 나온다. 단, 실제 낙선당인지 아니면 [[모티브|이름만 딴]] 가상의 [[전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각주]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창경궁 저승전, version=35, title2=사도세자, version2=975, paragraph2=2.2)] [[분류:창경궁]][[분류:조선 시대의 없어진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