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국관광100선)]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차이나타운 패루.jpg|width=100%]]}}} || || '''차이나타운 입구''' || ||<-2> {{{+1 '''차이나타운(인천)'''}}}[br]Incheon China Town || || '''영업시간''' ||24시간 영업[* 특정 [[공휴일]] 제외]|| || '''주소''' ||[include(틀:지도, 장소= 인천차이나타운)] ---- [[인천광역시]] [[중구(인천광역시)|중구]] 차이나타운로 59번길 || || '''연락처''' ||'''032-777-1330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f7P-xL5mm7E)] [[중화민국]]([[대만]]) 본적을 가진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인천광역시|인천]]의 [[차이나타운]]이다. 인천항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개항]] 당시 [[청나라|청]]의 조계지로 지정되었던 데에서 기인한다. == 상세 == 명실상부 [[인천광역시]]와 [[중구(인천광역시)|중구]]를 대표하는 [[인천광역시/관광|랜드마크 관광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차이나타운'이라고 말하면 이곳을 꼽는 이들이 많다. 서울, 부산, 대구 등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넓은데다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으로 꼽는 중국 음식인 '''[[짜장면]]의 탄생지'''가 이곳이라서[* 엄밀히 말하면 짜장면은 정통 중국 음식이 아니다. [[산둥 반도]]에서 면장을 볶아서 먹던 [[작장면]]이 한국에서 변형된 것이 오늘날 짜장면의 유래라고 알려져 있다. 그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한 곳'''이 인천 차이나타운의 식당이던 [[공화춘]]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그저 한적한 해안가 어촌이었다. 조용하던 어촌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후반부터다. [[강화도 조약]]에 의해 1883년 [[인천항]]이 이 지역 바로 옆에 강제 개항되고[* 인천항 내항 부두 중에서 원도심과 가장 가까운 8부두가 차이나타운 바로 서쪽에 있다.] 인천항을 통해 [[청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은 물론 [[서양]] 사람까지도 몰려들면서 세계 각국의 문화가 유입됐다. 구한말에는 [[일본인]]과 [[화교/대한민국|화교]]들이 섞여 살았고[*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에 각국 조계지 계단이 있는데 오늘날의 차이나타운이 있는 계단 서쪽(북성동·선린동)이 청나라 조계 지역이라 청나라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계단 동쪽(송학동·관동) 지역이 일본 조계 지역이라 일본 사람들이 살게 됐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뒤 화교들이 주로 거주하면서 차이나타운으로 바뀌게 됐다. 인천에서 가장 먼저 근대 외국 문물이 도착한 지역답게 [[자유공원|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과 [[관세청|최초의 세관]] 등이 이 지역 부근에 있었다. 아울러 이 지역에 있던 중국요리 식당 [[공화춘]][* 현재의 [[짜장면박물관]]. 차이나타운 내에서 '공화춘'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중식당과는 무관한 곳이다. 실제 공화춘 주인의 후손은 차이나타운 아랫쪽에서 신승반점이라는 이름의 중국요리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에서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했다. 오늘날의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까지는 다소 음침한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구한말에 지어진 중국식 건물이 세월의 흐름 속에 낡아졌고 그 건물에 다수 화교들이 거주하던 상황에서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사이에 [[중국/문화|중화권적인 조형물]]이 듬성듬성 설치된 곳이 1990년대까지의 차이나타운이었다. 현재의 짜장면 거리에 있는 중국요리 식당도 이 시기에 운영됐지만 지금처럼 유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들의 거주 여건 개선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인천시와 중구가 나서서 대대적인 정비 사업과 구한말 개항장 문화재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그 결과 지역 분위기가 매우 깔끔해졌다. 깔끔해진 지역 분위기와 함께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종착역인 [[인천역]]이 코앞에 있는 접근성이 장점으로 작용하면서 [[월미도]]와 개항장 거리를 잇는 인천 원도심의 대표적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됐다. 물론 관광지로 개발된 이후에도 여전히 화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2015년 집계치 기준으로 북성동 전체 인구의 15%는 화교라고 한다. 최근에는 [[화교/대한민국|재한화교]] 거주지, [[화교학교|인천화교소학교·인천화교중산중고등학교]], [[중국 요리|중화요리점]], [[만두|만두집]], [[도교]] 사원, [[불교/대한민국|불교]] 사찰, [[유교|공묘]], 중화감리교회[* [[가톨릭]]을 믿는 화교들은 지역 [[교구]] [[성당]]에 출석한다. [[교적]] 시스템 때문이다. 이 지역에 거주 중인 화교 신자들과 한국인 신자들을 위해 세워진 성당이 차이나타운 한복판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해안성당이다.], 짜장면박물관, [[화교/대한민국|화교역사관]], [[한국-대만 관계|한중문화관]] 등 [[중화권]]과 관련된 곳 외에도 [[대한제국|개화기]] 시절 건설된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성당]], [[대한성공회 내동성당]], 구 선교사 자택 등 서양식 건물, [[적산가옥]] 등 [[일본/문화|일본식]] 건물이 남아있다. 처음에는 성공적이지만은 않았지만 도심 재개발 이후 인근 동화마을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관광객 수가 늘어 성공하게 되었다. 특히 [[차이나타운]]의 경우 관광상품화가 되면서 [[짜장면]]의 개발지, 전례지로 하려는 인천시 자체의 노력, [[화교/대한민국|재한화교]]의 노력 및 일부 귀국 등으로 인해 [[중국요리|중화 요리]]가 유명하다. 주변에 맛있는 [[만두]] 가게, [[월병(과자)|월병]] 가게 등이 있다. 참고로 정말 맛있는 짜장면을 먹는 것이 목적이라면 차이나타운 밖으로 나가 화교가 운영하는 오래된 가게를 가는 것이 성공 확률이 더 높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대대적으로 확산되면서 인천 차이나타운 역사상 유례없는 [[불황]]에 시달렸다. 다른 원도심 내 [[재래시장]]들과 비슷하게, [[사스]]나 [[메르스]] 때도 이 정도 불황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심각하다며 해당 구역 상인들은 그야말로 사업이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상당수는 휴업 중이고 일부 가게는 폐업도 고려했다.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온상처럼 혹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국 공산당]]과 연관되었다는 오해를 받아 [[제노포비아]]와 [[대한민국/인종차별|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냉전]] 시기에 쓰이는 [[중공]]이라는 단어가 다시 쓰일 정도였다. 특히 [[화교/대한민국|화교 역사]], [[양안관계]]를 모르는 [[한국인]]들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 거주민들은 [[대한민국 여권|한국 여권]]과 [[대만 여권|중화민국 여권]]을 보유하는 [[복수국적|이중국적자]]나 [[대한민국 여권|한국 여권]]과 [[대만 여권|중화민국 여권]] 중 하나만 갖는 단일국적자의 비중이 높으며, [[대만|중화민국]]과 관계가 깊고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공산당]]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리고 거리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가 아닌 중화민국의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다수 눈에 띌 정도인데다 [[간체자]] 간판이 하나도 없고 [[정자(한자)|정체자]] 간판만 있다. 이러한 광경이 목격되고 하면서 이제는 오해가 풀려서 [[대만|중화민국]] 출신의 [[화교/대한민국|한국 화교]]를 중국 공산당과 엮는 사람은 없다. [[2022년]] 4월 이후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인천 차이나타운도 소생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전철 수인선]]의 개통으로 그간 [[인천광역시|인천]]에 오기 힘들던 [[용인시|용인]], [[성남시|성남]], [[수원시|수원]], [[화성시|화성]], [[오산시|오산]] 등 경기 남부 지역 사람들까지 찾게 되어 더욱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 === [[공화춘]] 관련 유의사항 === 인천차이나타운에 [[공화춘]]이라는 식당이 있다. 그러나 그 공화춘은 1911년 개업한 [[공화춘]]이 아닌 판권을 구입하고 부지를 고친 공화춘이며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 [[차이나타운]]에 큰 건물을 세워 영업 중인 공화춘은 원조 공화춘이 폐업하고 난 후 한 사업가가 상표만 가로채서 [[2004년]] 개점한 곳이며 이런 사정을 아는 [[인천광역시|인천]] 토박이들은 절대로 그 가게에 가지 않는다. [[송도국제도시|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청라신도시]]로 이주하는 [[서울특별시|서울]]과 [[경기도|경기]] 출신 외지인들이 이 곳에 가서 낭패보는 상황이 생긴다. 진짜 [[공화춘]] 창업자 가문이 운영하는 가게는 인천역 인근 신승반점이다. [[1983년]] 원조 [[공화춘]]이 폐업하기 3년 전에 [[공화춘]] 주방에서 일하던 창업주인 우효광의 막내딸 우란영과 사위 왕입영이 독립하여 세운 가게가 신승반점이다.[* 인천역 앞 패루와 가깝다.] 현재는 외손녀 왕애주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수요미식회]]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며, [[탕수육|찹쌀탕수육]]과 더불어 반숙 [[계란]]이 올려져 있는 유니짜장이 유명하다. 그리고 본점은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고, [[서울특별시|서울]]에 프랜차이즈 지점도 있다.[[http://ss-chinese.com|#]] == [[중화민국]]의 정체성을 가진 거주민 == [[파일:20201015_125555.jpg]] [[파일:인천차이나타운청천백일만지홍01.jpg]] 중국 하면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중화민국]] 국적을 가진 [[화교/대한민국|화교]]들이며'''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국인들 중에는 [[양안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중국]]과 [[대만]]의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아 최근 반중 감정을 등에 업은 [[제노포비아]]의 희생양이 자주 되고 있다.[* 다만 대만과 중국의 차이를 알면서도 같은 중국계로 묶어 혐오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들은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을 지원했고, [[중국공산당]] 때문에 [[국공내전|졸지에 실향민이 된]] 피해자이다. 그렇다 보니 [[대만|중화민국]]에 우호적이고 [[반공]], [[반중/국가별 사례/대한민국|반중]]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들은 [[주한대만대표부|주한 대만 대표부]]와 교류가 많고 [[주한중국대사관|주한 중국 대사관]] 측과는 교류가 거의 없다.[* [[주한중국대사관|주한 중화인민공회국 대사관]]의 부지는 [[중국]]이 [[주한대만대표부|주한 중화민국 대사관]] 부지를 사실상 강탈한 것이다. [[한국-대만 관계|단교 시기]]에 가장 슬퍼했던 사람들이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들이었다.] 이 지역의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들은 대체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 단 [[대한민국|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만 해당 선거에 대한 선거권을 행사한다.]에서는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당을 지지하고[* 안그래도 인천 해안가~원도심 지역이 보수정당의 세가 강하다.] [[대만 정부총통 선거]], [[대만 입법위원 선거]],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 단 [[대만 정부총통 선거|이 선거]]에서는 [[타이완 지구|중화민국 자유지구]]에도 호적이 있는 주민들이 선거권을 행사한다.]에서는 대만 보수 정당인 [[중국 국민당|국민당]]을 지지한다. [[차이나타운]]이지만 일부는 [[중화민국|본국]]의 실효지배 지역인 [[대만]]으로 귀국하거나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으로 이민을 갔고, 나머지 대부분은 [[대한민국|한국]] 국적으로 귀화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해서 [[한국인]] 혹은 [[대만인|중화민국 공민]]으로 분류되거나 이중국적을 가져서 [[대한민국 여권|한국 여권]]과 [[대만 여권|중화민국 여권]]을 모두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다른 조선족 거주지에 [[간체자]] 간판이 흔한 것과 달리 이곳에는 [[한국어]]나 [[정자(한자)|정체자]]로 쓰인 간판이 많고 오히려 [[대만]]의 [[타이베이시|타이베이]], [[가오슝시|가오슝]] 등과 비슷하다. 주민들 대부분이 [[한국어]]에 능숙해 다른 한국 마을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깔끔하고 치안 상태가 좋다는 것 역시 차이점으로 작용한다. 물론 [[대만/문화|중화권 문화]] 요소가 있고, [[중국요리|중화요리]] 식당이 많이 있지만, [[한국어]]로 능숙하게 주문하고 주방에서 [[표준중국어|중국어]]로 대화하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한국어]]를 모르는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보다 [[한국어]]를 잘 하고 [[표준중국어|중국어]]를 못 하는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들도 있다. 일단 [[중국 대륙]]이 고향 땅이기는 한데, 최소 40대 이하 한국 화교 대부분은 [[중국 대륙]]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평균적으로는 [[한국인]]으로 동화된 사람의 수가 대부분이며 [[한국인]]과 화교 사이 태어난 2세들이 나오는 [[1980년대]] 출생 이후 세대부터는 적어도 [[한국어]]를 모르는 [[화교/대한민국|화교]]는 없고 국적도 [[대한민국]] 혹은 [[대만|중화민국]] [[복수국적|이중국적]]이거나 [[대한민국|한국]] 단독 국적의 비율이 높다. 남자들은 군복무까지 한다. === [[조선족]]과의 관계 === [[조선족]]이 많다는 편견과 달리 인천 차이나타운의 경우 [[조선족]] 대신 [[대만인]]이나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등 [[화교|해외 화교]]들이 더 많다. 오히려 이 지역에는 [[조선족]]이나 [[중국인|중국 대륙인]]의 비율이 낮은 곳이다. 이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가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이겼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중국 공산당]]이 [[중국 대륙|대륙]]을 장악하고 신생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사실상 한국 화교들의 귀국을 금지했기 때문에 [[실향민]]이 되고 고향인 [[산둥성]], [[베이징]], [[톈진]], [[허베이성]] 등으로 가지도 못하고 [[중국 대륙]]과의 무역도 끊긴 상황이었다. 그나마 [[중화민국]]이 [[국부천대|이주한]] [[대만]]과 교류해서 생계를 이어간데다, [[화교/대한민국|재한화교]]에 대해 [[대만]] 측에서 지원을 퍼주다시피 해줬다. 그리고 [[영미권|영어권]], [[서유럽]],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의 [[화교]]들이나 [[홍콩]], [[마카오]] 등에서도 지원을 해줘서 그나마 숨통이 틔였다. 결국 [[국공내전]]으로 인해 살던 고향도 중국 본토에 남겨놓은 재산도 다 뺏기면서 [[중국공산당]]과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반중/국가별 사례/대한민국|반감]]이 심해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출신 대륙 주민들과 관계가 나쁘다. 그렇기에 [[조선족]]이나 [[중국 대륙|대륙]] 출신 한족 등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화교/대한민국|재한화교]]들은 모국인 [[대만|중화민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과의 [[한국-대만 관계|외교 관계]]나 [[중국공산당]]과 [[조선로동당|북한 정권]]에 대한 [[반중/대한민국|반감]]으로 인해 [[6.25 전쟁]] 당시 [[중국인민해방군|중국군]] 대상 심리전에 참가하거나 포로 심문을 지원한 적이 있다. 이는 21세기에 와서 [[한중관계|한중수교]] 후 [[중화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를 활발히 하는 와중에도 똑같아서 [[조선족]], [[중국인]]과 [[화교/대한민국|한국 화교 사회]]는 사이가 나쁘고 서로 상극이다. [[화교/대한민국|화교]]들은 [[조선족]], [[중국인]]을 뒷통수 치는 잡놈들 정도로 보고 조선족은 [[화교/대한민국|화교]]들을 뿌리만 [[중국]]인 [[한국인]], [[한국어]] 하는 외국인으로 본다.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이나 [[인천항]]의 경우 고도숙련노동자나 [[전문직]], [[공무원]] 등이 많으며, 인근 남동공단의 경우 단순 조립이기는 하나 굳이 [[조선족]]을 고용하지 않으며 [[동남아시아]] 출신 주민들의 비율이 높다. 그리고 [[표준중국어|중국어]] [[원어민 강사]] 역시 [[화교/대한민국|재한화교]], [[대만인]], [[홍콩인]],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나 외국계 [[화교]]들이 차지하고 있어 대륙 중국인들이 찾을 자리가 없다. 오히려 [[서울특별시|서울]]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 인근의 [[경기도]] [[부천시]], [[안양시]], [[안산시]], [[김포시]] 등에서 인천의 공단지대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이 지역보다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연선에서는 [[서울특별시|서울]] [[영등포구]], [[구로구]] → [[인천광역시|인천]] 남동공단과 [[송도국제도시]] 등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 [[경기도]] [[부천시]] → [[서울특별시|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구(서울특별시)|중구]], [[종로구]] 쪽으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차이나타운과 그 주변인 인천 동구 및 중구 일대는 관광지 및 도심 지역인데다 [[인천광역시|인천]]의 원도심으로 유동인구가 많아 이런 곳은 보통 주거지로 선호되지 않는다. 그나마 고도제한으로 거의 단독 주택으로 토박이, [[황해도]], [[경기도]] [[미수복 경기도|미수복 지구]] [[실향민]],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 위주로 거주하는데다 역세권이라는 것을 고려해도 지가가 비싸며 연립주택, 빌라들이 적어 소득수준이 대체로 낮은 [[조선족]]들의 집단 거주지로 적합하지 않다. 조선족들 역시 그나마 [[대림동(서울)|대림동]]이 가까운 [[부평역]] 인근 일부에나 거주하고 있고 그마저도 대규모의 집단 거주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도시 규모를 고려할 때 주변 도시인 [[안산시]], [[부천시]]에 비해 절대적인 수, 상대적인 수 모두 적다. 조선족 거주지의 특징인 역, 관공서의 [[중국어]] [[간체자]] 현수막 역시 이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애초 대림동이 발달한 계기가 [[수도권 전철 1호선]] 연선인 [[영등포역]] 및 [[신도림역]]이 가깝고 비숙련 일자리도 많고 거주요건도 저렴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족]]과 인천 차이나타운은 아무 상관없는 곳이며 사실 인천 차이나타운에 살아오는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들]]은 [[대림동(서울)|대림동]]이나 [[가리봉동]] 등 [[조선족]] 집단 거주 지역에 선입견을 갖고 형편없는 곳이라며 욕하기 바쁘다. [[조선족]]도 [[화교/대한민국|화교]]들을 싫어하는 건 똑같아서 한국인인 척 하는 외국인이라고 욕한다. == 주요 볼거리 == 이름에 걸맞게 많은 [[중국요리|중화요리점]], [[화교학교|인천화교소·중산중고등학교]], [[만두|만두집]], [[도교]] 사원, [[불교/대한민국|불교]] 사찰, [[유교|공묘]], 중화감리교회, 짜장면박물관[* 구 공화춘], [[화교/대한민국|화교역사관]], [[한국-대만 관계|한중문화관]], [[자유공원]], [[인천항]],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성당]], [[대한성공회 내동성당]], 구 선교사 자택, [[적산가옥]] 등 볼거리가 많다. 여기는 [[화교/대한민국|재한화교]]들이 많이 거주하고 이들이 [[중화민국]] 국적을 가지며 [[대만]]과 교류가 많기 때문에 [[중국|중국 대륙]]보다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비슷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거리 자체가 깔끔하고 질서정연해서 [[중국]]에 대해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면 인천 차이나타운이 그 선입견을 해소할 좋은 장소이다. 주말에 방문하면 거리를 가득 채운 관광객들과 여러 이름난 [[중국집]] 앞에 길게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표 메뉴에는 백짜장, 백년짜장(옛날짜장) 등이 있으며 백년짜장을 시키면 중국의 [[작장면|작장면(炸醬麪)]]의 모습과 한국의 [[짜장면]]의 맛을 가진 요리를 만날 수 있다. 현재의 짜장보다 조금 더 짜고 [[춘장]] 맛이 강하고 물기가 없다.[* 백년짜장은 중식당 만다복의 시그니쳐 메뉴로 롯데마트 요리하다의 PB상품으로도 출시된 바 있다.] 거리가 깔끔하고 중국 분위기로 잘 조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다만 중국집 메뉴가 천편일률적이고 호객행위가 다소 있는 편인데, 백짜장은 몇몇 음식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형태는 음식점마다 다르다.] 한편으로는 중국과 별 관련없는 [[튀르키예]]식 [[아이스크림]] [[돈두르마]]나 [[사탕수수]] 음료수 가게도 보인다. 물론 [[중국]]에서도 [[투르크]]계 소수민족 [[위구르족]]이나 [[카자흐족]] 등이 [[튀르키예/문화|튀르키예식 문화]]를 갖고 있긴 하지만, 소수민족들하고 별 관련이 없어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나의 특색이 돋보이기보다 장사가 잘 되는 아이템에 몰리는 모습은 한국의 다른 관광지의 문제점을 그대로 닮아있다. 한편 차이나타운 뒤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자유공원에 [[조미수호통상조약|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과 [[인천상륙작전]]의 지휘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다. 벽화 거리에 [[초한지]] 및 [[삼국지]]의 주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서양 미술에서 보던 작품과 구도를 공유한다. 이를테면 6번 그림은 [[진승·오광의 난]]을 묘사하는데,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오마주]](Homage)했다. 15번 '''항우의 무용'''은 말탄 나폴레옹 황제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51번 그림 [[패왕별희]]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본떴다. == 인근 조계(인천 개항 당시 행정구역) 및 볼거리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3_인천개항장_문화재_야행_행사장_안내.jpg|width=100%]]}}} || * 각국 [[조계]] : [[자유공원]] * 일본 [[조계]] :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 중국 [[조계]] : 인천 차이나타운 * [[인천역]], 송월동 동화마을 [[자유공원]], [[송월동 동화마을]], [[개항장문화지구]]과 연결되어 있다. 외지인이 인천에 오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앞에서 설명한 세 장소와 차이나타운, [[월미도]]를 묶어서 방문하는 편이다. 가까운 위치에 [[신포국제시장]]도 있다. ==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 === 버스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2>
{{{+1 {{{#373A3C,#dddddd '''인천역(차이나타운)/송월동동화마을(35178·35179·35189·35190)'''}}}}}} || || [[좌석버스(인천)|{{{#ffffff 좌석}}}]] ||{{{+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d5bab; font-size: .95em" [[인천 버스 307|{{{#ffffff 307}}}]]}}} || || [[간선버스(인천)|{{{#ffffff 간선}}}]] ||{{{+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366cc; font-size: .95em" [[인천 버스 2|{{{#ffffff 2}}}]]}}} {{{+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366cc; font-size: .95em" [[인천 버스 10|{{{#ffffff 10}}}]]}}} {{{+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366cc; font-size: .95em" [[인천 버스 15|{{{#ffffff 15}}}]]}}} {{{+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366cc; font-size: .95em" [[인천 버스 26|{{{#ffffff 26}}}]]}}} {{{+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366cc; font-size: .95em" [[인천 버스 45|{{{#ffffff 45}}}]]}}} || || [[지선버스(인천)|{{{#ffffff 지선}}}]] ||{{{+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fbf2d; font-size: .95em" [[인천 버스 인천e음11|{{{#ffffff 인천e음11}}}]]}}} {{{+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fbf2d; font-size: .95em" [[인천 버스 인천e음12|{{{#ffffff 인천e음12}}}]]}}} ||}}} === 지하철 === || 역 이름 || 노선 || ||<|1> [[인천역]][* 한때 부역명이 "차이나타운역"이었다.] || [[파일:Seoulmetro1_icon.svg|width=17]]·[[파일:SBLine_icon.svg|width=17]] [[수도권 전철 1호선]]·[[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 == 기타 == * [[조선족]]들이 [[중국]]으로 가기 위해 [[인천항]]이 위치한 [[인천]]을 자주 드나들고 차이나타운은 국제여객터미널로 가는 길목인 [[인천역]]과 매우 가깝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과 [[인천국제여객터미널]]과 가깝고 이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해서 차이나타운에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족]]의 경우 여객터미널 근처보다는 교통이 편리하면서 지대가 싼 환승역 근처에 밀집하는 경향이 있다. 잘 알려진 [[대림동(서울)|대림동]] 차이나타운이 그렇게 조성된 것인데 이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수도권 각지로 날품을 팔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대림동(서울)|대림동]] 일대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연선으로 [[신도림역]], [[구로역]] 등 인천과 가까운 서울시 전철역들이 역세권에 포섭되고 [[서울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 서울시 곳곳은 물론 버스 환승으로 [[고양시]], [[파주시]], [[수원시]], [[안양시]], [[남양주시]], [[구리시]], [[성남시]] 등 타 수도권 도시들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당장 대림에서 2호선 타고 10분 남짓 가면 [[당산역]]이 나오는데 여기서 [[서울 지하철 9호선]] 환승으로 김포로 가거나 광역버스로 일산, 파주로 갈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옌지]]로 돌아가 [[PC방]] 사장님으로 대성한 조선족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나오는 판국이라 다 옛날 얘기기는 하다만 아직도 이렇게 날품 팔러 다니는 조선족들도 많다. 특히 수도권 각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경우는 대게 이렇다. * 차이나타운 산책영상 [youtube(k0Sl0RHfg44)] * [[수도권 전철 수인선]] 개통 이후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26/0200000000AKR20160326028900065.HTML|관련기사]]. [[수도권 전철 분당선]]과의 직결로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이 되어 그간 인천에 오기 힘들던 [[용인시]], [[성남시]],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등에서 접근성이 편리해지고, 재난지원금도 풀려 [[2020년]]보다 [[2021년]]이 더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리고 [[2022년]] 4월 이후 과도방역조치가 대거 철회되고 [[오미크론]]도 주춤하면서 상권이 급속히 부활하고 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차이나타운, version=170)]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중구(인천)/관광, version=6)] [[분류:인천 중구 원도심]][[분류:중화민국의 문화]][[분류:이주민 밀집지역]][[분류:대한민국의 문화]][[분류:한국-대만 관계]][[분류:대한민국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