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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모리스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5> '''{{{#ffffff [[탬파베이 레이스|{{{#ffffff 탬파베이 데빌 레이스}}}]] 등번호 63번}}}''' || || 팀 창단 || {{{+1 →}}} || '''{{{#ffffff 짐 모리스[br](1999~2000)}}}''' || {{{+1 →}}} || [[크리스 지메네즈]][br](2012) || }}} || ---- ||<-2>
[[파일:짐모리스.jpg|width=250]] || || 이름 || 제임스 새뮤얼 "짐" 모리스 주니어 [br] (James Samuel Morris Jr.) || || 생년월일 || [[1964년]] [[1월 19일]] || || 국적 ||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width=28]] || || 신장 || 192cm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좌투좌타]] || || 프로입단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1983년''' 1월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순위]]([[밀워키 브루어스|MIL]]) || || 소속팀 || '''[[탬파베이 레이스|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1999~2000''') || [목차] == 개요 == 전 메이저리그 투수, 고교 체육교사. 부상 때문에 젊은 나이에 야구선수에서 은퇴해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선수에서 은퇴한지 10년만인 35세의 나이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 어린 시절 == 텍사스주 브라운우드가 고향이지만 해군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에는 여러 차례 미국 각지로 이사를 다니다가 다시 브라운우드로 돌아와 정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야구는 3살 때 시작했는데, 브라운우드 고교로 진학하지만 학교에 야구부가 없어서[* 모리스가 재학할 당시에는 없었지만 이후 생긴 모양. [[셸비 밀러]]가 고교 후배다.]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야구선수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 마이너리그 시절 == 1982년 드래프트 때 18라운드 전체 466순위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지만 입단하지 않았고, 이듬해인 1983년 1월 드래프트[* 원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MLB 드래프트]]는 6월에 하지만, 1986년까지는 이미 고교를 졸업한 선수, 전문대학 선수, 4년제 대학에서 중퇴한 선수 등을 대상으로 한 드래프트도 있었다.] 때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밀워키 브루어스]]의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부상과 부진으로 좀처럼 싱글A 위로 올라가지 못하다가 1986년에는 1경기도 못 나왔고 1987년에는 4경기 등판에 그치면서 그 해 6월 브루어스에서 방출됐다. 1989년 9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지만 역시나 부상의 여파로 2경기 밖에 나오지 못하면서 1달만에 다시 방출됐다. 7년간 마이너리그 생활 동안 여러 차례 부상을 당한 끝에 모리스의 팔꿈치 인대는 끊어지고 말았고, 의사는 더이상 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결국 싱글A 위로는 올라가보지도 못한 채 모리스는 선수 생활을 포기했다. == 고등학교 교사 == 모리스는 야구선수의 경험을 살려 텍사스주의 빅레이크에 있는 레이건 카운티 고등학교[* 영화 루키에서는 빅레이크 고등학교로 나오는데, 실제 [[텍사스]]에는 빅레이크 고등학교가 없다.] 화학 교사 겸 체육 교사로 재직하며 레이건 카운티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학생을 지도했다. 그러나 레이건 카운티 고등학교 야구부는 리그 최하위를 심심찮게 기록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다만 영화 루키에서 묘사된 정도로 열악한 환경은 아니었다. 모리스의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50여명의 야구부원이 있었다고 한다.], 1999년 봄에 모리스는 부진에 빠진 학생들에게 '''지역예선을 통과한다면 다시 야구선수로 도전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에 데뷔하겠다'''라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정말 레이건 카운티 고등학교 야구부는 지역예선을 통과하더니 3승 2패로 우승했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시절 == 모리스는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메이저리그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는데, 다른 선수들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다 보니 스카우트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 시절 망가졌던 모리스의 팔은 그동안 받았던 여러 번의 수술로 인해 기적적으로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게 바뀌었고, 12차례나 157km/h의 구속을 찍는 모리스의 모습에 스카우트는 돌변했다. 그리고 1999년 6월, 모리스는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와 계약하면서 35세에 다시 야구선수가 됐다. 모리스는 과거 마이너리거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올라와보지 못했던 더블A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더블A는 물론이고 트리플A도 단숨에 거치면서 확장 엔트리가 적용되는 9월에 메이저리그로 올라와 9월 18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데뷔전을 가졌다. 1-6으로 뒤지고 있던 8회말 2아웃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와 타석에 들어선 로이스 클레이튼을 [[삼진(야구)|삼진]]으로 처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끝내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원 포인트 릴리프]]로 2000년에는 시즌 초부터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5월 9일 [[뉴욕 양키스]]전에서 연장 10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해 [[폴 오닐]]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팀에 패배를 안긴 이후로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면서 남은 시즌 동안은 등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모리스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등판이었다. 2시즌 동안 21경기에 등판했다.[* 1999년 5경기, 2000년 16경기] == 은퇴 == 2000년 11월 데블레이스에서 방출되면서 한 달 후인 12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지만, 2001년 스프링캠프 도중에 방출되면서 은퇴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은 21경기 0승 0패 15이닝 13탈삼진 ERA 4.80. 은퇴 후 자서전을 냈으며[* 'The Oldest Rookie'라는 제목인데, 실제 역대 메이저리그 선수 중 최고령 데뷔 기록은 [[사첼 페이지]]가 [[https://kini.kr/1802|갖고 있다]]. 다만 페이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임에도 극심한 인종차별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지만, 모리스는 정말 아무도 기대도, 예상도 안하던 선수의 인간승리이기 때문에 페이지와 다른 의미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페이지가 인종차별조차 끝내 덮을 수 없었던 전설이라면 모리스는 위대한 도전자 정도다.], 짐 "더 루키" 모리스(JTRM) 재단을 만들어 강연을 한다. 영화 [[루키#s-5.1]]의 주인공으로 알려져있다. [각주] [[분류:미국의 야구 선수]][[분류:좌완 투수]][[분류:좌투좌타]][[분류:1964년 출생]][[분류:1999년 데뷔]][[분류:2001년 은퇴]][[분류:브라운 카운티(텍사스) 출신 인물]][[분류:탬파베이 레이스/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