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사군)] [[파일:한사군.jpg]] [목차] == 개요 == {{{+1 眞番郡 }}} 애초 [[고조선]]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고조선 멸망(BC 108) 이후 설치된 [[한사군]](漢四郡) 중 하나이다. 전한 [[무제(전한)|세종 무황제 유철]]이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기원전 108년에 세워졌으나 얼마 못 가 기원전 82년에 폐지되었고 이후 [[낙랑군]]에 흡수됐다. 명칭은《[[사기(역사책)|사기]]》(史記) <조선전>(朝鮮傳) 등에 보이는 [[진번국]]에서 유래했다. 기록이 워낙에 없기 때문에 기원전 3세기 이전의 [[고조선]]과의 관계가 불분명하지만 기원전 3세기경에는 고조선의 영향권 밖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에 [[위만]]이 고조선의 왕으로 등극하여 영토 확장 정책을 펴자 고조선에 복속했다. 치소는 잡현(霅縣)[* 여기서 거리 기록이 좀 이상한데, 현대 위치 비정상 임둔군보다 더 중원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치소의 위치가 낙양을 기준으로 1,500리 가량 더 떨어진 것으로 나온다. 해당 구절을 그대로 신뢰한다면 현도군으로부터 낙랑군이 떨어진 것 만큼 낙랑군으로부터 임둔군이 떨어져 있으며, 이 거리의 1.5배가 임둔군으로부터 진번군이 떨어진 거리와 같으므로 치소는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것 같으며, 음운상으로는 [[접도국]]이 가장 가까운 편이다. [[낙랑군]] 남부도위에 포함되지 못한 8개 현 또한 그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으로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 잡현이 [[서울특별시]] 인근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 근거는 "잡"이라는 지명이 현재의 "서울"이라는 지명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기술되어 있다.]이었고 15개 현이 있었다. 하지만 낙랑군에 흡수된 이후 낙랑군 남부도위가 관리한 현이 소명(昭明)·대방(帶方)·함자(含資)·열구(列口)·장잠(長岑)·제해(提奚)·해명(海冥) 7개뿐이었던 것을 보면, 잡현을 포함한 나머지 8현은 귀속을 알 수 없지만 폐지된 걸로 보인다. 이후 서기 204년 진번군의 옛 자리에는 [[대방군]]이 설치되어 314년 [[고구려]] 제15대 [[미천왕]]에 의하여 정복될 때까지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대방군이 분리되면서 낙랑군이 맡고 있던 [[삼한]]과 [[왜]]의 내속업무를 포괄하게 된 것을 보면 진번군 또한 삼한과 왜와의 교섭을 담당하거나 직접 통할했던 것 같다. 위치 비정은 [[황해도]]설, [[요동]]설, [[고구려]] 지역설, [[숙신]] 지역설 등이 있다. 대략 [[낙랑군]] 남쪽, [[임둔군]] 서쪽인 현 [[황해도]]에 위치한 걸로 보는 게 유력하며, 남쪽 경계는 [[경기도]] 북부인 [[예성강]] 또는 [[임진강]]으로 파악된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원삼국시대 한반도 세력)] [[분류:한사군]] [[분류:한나라의 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