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오서)] [include(틀:강동십이호신)]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B0000 0%, #8B0000 20%, #8B0000 80%, #8B0000)" '''{{{#fecd21 {{{+1 [[강동십이호신|{{{#fecd21 강동십이호신(江東十二虎臣)}}}]]}}}[br]陳武[br]진무}}}'''}}}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진무.jpg|width=100%]]}}} || ||<:> '''[[직위|{{{#FEDC21 최종직위}}}]]''' ||<(> 편장군^^(偏將軍)^^ || ||<:> '''[[성씨|{{{#FEDC21 성씨}}}]]'''||<(> 진^^(陳)^^ || ||<:> '''[[휘|{{{#FEDC21 휘}}}]]'''||<(> 무^^(武)^^ || ||<:> '''[[자(이름)|{{{#FEDC21 자}}}]]'''||<(> 자열^^(子烈)^^ || ||<:> '''[[키(신체)|{{{#FEDC21 키}}}]]'''|| 177cm || ||<:> {{{#FEDC21 '''생몰기간'''}}} ||<(> 177년? ~ 215년 || ||<:> '''{{{#FEDC21 고향}}}''' ||<(> 양주 여강군 송자현^^(松滋縣)^^ || [목차] [clearfix]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삼국시대)|손오]]의 장수이며 [[자(이름)|자]]는 자열(子烈). [[진수(손오)|진수]](陳脩)와 [[진표(삼국지)|진표]]의 아버지로 양주 여강군 송자현 사람. == [[삼국지(정사)|정사]] == [[손책]]이 수춘에 있을 시절 손책을 찾아가 스스로 그 가신이 되었는데, 당시 18세였으며 신장이 7척 7촌[* 당시의 1척은 23cm였으므로 177.1cm에 해당한다.]에 달했다. 이후 손책을 따라 [[장강]]을 건너 정벌에 공을 세워 별부사마가 되었다. 199년, 손책이 여강태수 [[유훈]]을 격파하고 여강 사람 중 정예한 자들을 묶어 진무에게 거느리게 했다. 손권의 친애를 받고, 공적이 있어 편장군으로 승진했다. 215년, 손권을 따라 2차 [[합비 공방전]]에 참전하였으나, 난전 중에 전사한다. 손권은 이를 애통히 여기며 직접 장례에 참가하고 빈객 2백여 명의 부역을 면제한 다음 진무의 애첩을 [[순장]]한다. 이를 두고 잔인하다는 등 말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 능통전에 달린 [[손성]]의 평이 있다. || 손권은 훌륭한 인물을 기르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을 위해 사력을 다하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보였다. 가령 주태가 부상을 당했을 때는 눈물을 흘렸고, 진무가 죽자 첩을 순장시켰으며, 여몽이 위독해지자 신들에게 빌었고, 능통의 고아들을 기르는 등, 직접 고통스런 마음을 다함에 있어서 이와 같이 열심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아름다운 덕이 알려지지 않았고, 은혜와 덕택은 안에서만 드러났으나, 굽히며 형(荊), 오(吳)를 단단하게 하고, 분수에 넘치게 연호를 본뜰 수 있었던 것 또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패왕의 도는, 크고 심오한 것을 기약하니, 이 때문에 선왕(先王)은 덕의의 토대를 세우고, 진심으로 복종하는 천하를 갖추었으며, 경략의 근본을 만들고, 귀천의 차례를 밝혀, 평이하고 간단하면서도 일가가 오래 갈 수 있었고, 몸이 온전하면서도 공이 커질 수 있었는데, 어찌 사소한 것에 치중하여 가까이하며 힘써, 그 해에 이로움을 구한 것인가? 어(語)에서 이르길 “비록 작은 도라도, 반드시 볼만한 것이 있으나, 원대함에 이르는데 지체될까 두렵다”, 이가 이것을 이른 것이로다! || 즉, 부하를 위하는 행위지만 왕이 하기에는 너무 작은 행위라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하작이라는 사람은 평을 달아 말한다. || 중모(仲謀)의 일은, 오직 첩을 순장하며 예를 잃었을 뿐이고, 기타는 또한 임금이 그만두지 못할 바이나, 근본은 아니다. 일부 주례(周禮)는, 지극히 자세하면서 다 갖춘 내용이나, 손성의 견해는, 뜻이 차이가 심하면서도 세밀하지 못하다. || [[손성]]은 진무전에는 또 다시 이 일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목공]]과 두회의 예를 들어 손권의 행동이 너무 잔인하다는 평을 내렸다. || 옛날 삼량이 진 [[목공]]을 따라 순장되자 진의 군대가 정벌하지 않았고,[* 진나라 목공때 진나라의 국세가 강했으나, 진 목공이 죽을 때 차씨 삼형제인 삼량을 비롯해 중신 170명이 순장되어서, 그 여파로 이후 진나라는 중원의 패권 다툼에 끼이지 못한 일이다.] 위씨의 첩을 출가시키자 두회는 전장에서 고꾸라졌으니,[* [[결초보은]]의 얘기. 진나라 사람 [[위과]]의 아버지는 자기가 죽을 때 자기 애첩인 서모를 같이 순장시켜 달라고 했는데, 위과는 아버지가 정신이 혼미했을 때 한 망언이라 생각해 출가시켰고, 후에 진나라가 역사 두회를 앞세어 쳐들어 왔을 때 서모의 아버지의 혼령이 풀을 매어 두회가 걸려 넘어지게 하여 은혜를 갚았다는 고사다.] 화복의 응보의 효험는 이와 같다. 손권이 계교에 맡기고 술책에 의지하고, 삶으로써 죽음을 따르게 했다가, 대대로 이어질 제위를 재촉하게 되었으니, 또한 의당하지 않는가? || 그런데 이 첩이 진수나 진표의 어머니도 아닌데 서자 진표가 진수가 죽었을 때 진수의 어머니를 섬기겠다고 겨우겨우 허락을 맡은 것을 보면 순장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살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 [[삼국지연의|연의]] == 얼굴은 황색, 눈은 적색으로 괴이한 용모라고 서술된다. [[손책]]이 강동에 진출했을 때 등용되어 [[유요]] 휘하의 [[장영#s-1]]을 죽였다. 그 후 [[적벽대전]], 남군 공략전에 참가. [[유비]]와 [[손부인|손상향]]이 형주로 귀환할 때 [[반장(삼국지)|반장]] 등과 함께 데리고 돌아오려 하다가 손상향의 일갈에 물러났다. 정사와는 달리 합비 공방전이 아닌 215년, [[유수구 전투]]에서 [[조조]]군과의 전투에서 [[방덕]]과 격렬하게 싸우다 윗도리가 나무에 얽혀 움직일 수 없게 된 바람에 전사한다. == 미디어 믹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진무(삼국지)/기타 창작물)]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진무,version=44)] [[분류:손오의 인물]][[분류:215년 사망]][[분류:전쟁 사망자]][[분류:안칭시 출신 인물]] [include(틀:포크됨2, title=진무(삼국지), d=2023-01-29 03:5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