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Jean Rhys. 1890년 8월 24일 ~ 1979년 5월 14일. [[카리브해]]의 [[도미니카 연방]](출생 당시 [[영국]] 속령)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 《[[광막한 바다 사르가소]]》, 《[[한밤이여, 안녕]]》 등이 있다. 카리브 도서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식민주의와 여성의 문제에 천착하여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비평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생애와 문학 == 도미니카의 수도 [[로조]]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의 이름은 엘라 윌리엄스(Ella Gwendolyn Rees Williams)였다. 아버지는 웨일스인이었고 어머니는 스콧계 크레올 3세였다. 16세가 될 때까지 도미니카에서 생활하다 영국 본토로 가서 친척과 살면서 [[케임브리지(영국)|케임브리지]] 소재 퍼스 여학교를 다녔는데, 억양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 졸업 후 배우가 되고자 [[런던]]의 [[왕립연극학교]]에 진학하였지만 역시 억양 문제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다. 부모는 카리브로 돌아갈 것을 권했으나 거절하고 본토에 남아 합창단원으로 일한다. 20세가 되던 1910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로 잠시 부유한 주식중개인 랜슬럿 그레이 휴 스미스(Lancelot Grey Hugh Smith)와 사귀다 헤어졌다. 스미스와는 나중에도 친교를 유지하며 간혹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받는다. 이후에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하는 과정에서 사경을 헤맨 뒤로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 이 무렵 《어둠 속의 여행》(Voyage in the Dark)의 초안을 썼다. 그러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하여 1913년에는 잠깐 [[누드모델]]로도 일했고, 1차대전 와중에는 병사 식당에서 자원봉사를 하였다. 1919년 프랑스-네덜란드계 저널리스트 빌럼 요한 마리 랑글레(Willem Johan Marie Lenglet)와 결혼한 후에는 [[유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1933년에 랑글레와 이혼하고 1934년 잉글랜드인 편집자 레슬리 틸던스미스(Leslie Tilden-Smith)와 재혼한다. 1939년에는 [[데번]]에 정착하여 여러 해를 살았다. 틸던스미스가 1945년 죽은 후 1947년 틸던스미스의 친척 맥스 해머(Max Hamer)와 재혼하나 해머는 사기죄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해머가 1966년에 죽은 뒤로 재혼하지 않았다. 자식으로 랑글레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요절), 딸 하나를 두었다. 1924년 [[파리(프랑스)|파리]]에서 [[포드 매덕스 포드]]를 만난 후 그의 후원으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포드는 리스의 카리브 체류 경험이 독특한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리스를 격려하였으며, 이 무렵 포드의 제안으로 엘라 윌리엄스에서 진 리스로 개명하였다. 1934년 본인의 합창단원 경력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어둠 속의 여행》을 출판한다. 1939년작 《한밤이여, 안녕》에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등 보다 원숙한 글쓰기를 선보인다. 그 후 수십 년간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1966년 오랜 퇴고를 거친 역작 《광막한 바다 사르가소》를 발표한다. 40년대, 50년대 중반까지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50년대 [[프랜시스 윈덤]]의 호평을 받고 재평가가 시작되어 1958년 BBC에서 《한밤이여, 안녕》이 극화되는 등 늦게나마 높은 평가를 얻는다. 60년대 《광막한 바다 사르가소》를 발표하고 나서는 명성의 정점에 이르렀다. 1978년 대영제국 훈장(C.B.E.,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았다. [[분류:영국의 소설가]][[분류:1890년 출생]][[분류:1979년 사망]][[분류:로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