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쑨원)] [[분류:중국의 무덤]][[분류:영묘]][[분류:중화민국]][[분류:난징시]][[분류:쑨원]] [[파일:중산릉 난징 중국.jpg]] ||[[파일:external/www.keyunzhan.com/4504.jpg|width=550]]||[[파일:난징 중국 중산.jpg|width=350]]|| |||| 능으로 향하는 계단과 기념관 내의 쑨원 동상. 그 위에는 중국 본토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중국국민당 휘장이 새겨져 있다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5%E3%82%A1%E3%82%A4%E3%83%AB:Ryoumon02.jpg|능문]] [[https://ja.wikipedia.org/wiki/%E3%83%95%E3%82%A1%E3%82%A4%E3%83%AB:Sunzhongshan.jpg|쑨원의 관]] {{{+1 中山陵 / Sun Yat-sen Mausoleum }}} [[중화민국]]의 [[인물]]이자 현대 [[중국]]의 국부인 [[쑨원]]이 안장된 [[무덤]]으로 [[장쑤성]] [[난징시]]에 위치해 있다. [[1926년]] 착공되어 [[1929년]] 완공되었다. 입장료는 무료다. 쑨원이 사망하고 두 달이 지난 [[1925년]] [[5월 15일]], 공모전을 통해 디자인이 선정되었으며 이 양식은 [[대만]]의 [[중정기념당]]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중국의 [[국부]]이며 [[중국국민당|국민당]]과 [[중국공산당|공산당]] 모두에게 추앙받는 쑨원의 영묘인 만큼 [[국공내전]]으로 [[국부천대|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난 후]]에도 유지되었으나 기록에 따르면 한동안은 중산릉의 국민당기가 제거되었다가 추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청천백일만지홍기]] 문서에도 있지만 중국 공산당은 [[신해혁명]]~[[국부천대]] 사이 시기의 역사물에 한해서는 청천백일만지홍기나 중국 국민당 국장(청천백일)에 대해 크게 제재하지 않는데, 중국 공산당 입장은 중화민국은 1949년에 망해버린 국가고 그 이후는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즉 역사기념물로 청천백일만지홍기는 손대지 않지만 현재의 대만을 상징하는 표상으로서는 철저히 탄압한다. 중산릉의 경우 1925년 건축물이라 이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천자]]도 아닌 이의 무덤이나 능([[陵]])의 명칭을 가진 무덤인데 이러한 명칭이 쑨원이 [[건국]]한 [[중화민국]] 시기 뿐만 아니라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하에서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 사이 쑨원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장제스]]는 쑨원의 [[후계자]]였던 만큼 특히 중산릉의 방문이 잦았다. 잘 알려진 공식 방문 사례들로는 쑨원의 숙원이었던 [[북벌]]을 [[장제스의 북벌|끝마친]] [[1929년]]과 [[중일전쟁]]의 종전 후인 [[1946년]]이 있다. 국부천대 후 56년이 지난 2005년에는 당시 [[중국국민당]] 주석(당수)이었던 [[롄잔]]이 중국 본토를 방문하여 [[후진타오]] 주석과 회동하고 중산릉을 방문해 참배한 바 있다. 이후 2023년에는 [[마잉주]]가 대만 전현직 총통 중에서는 처음으로 본토를 방문하여 중산릉을 참배했는데, 방문 당시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언급하여 관심을 끌었다.[* 한편 마잉주는 [[후난성]] [[샹탄시]]에 있는 조부의 무덤을 찾아 성묘를 하면서 '자신이 [[대만 총통|중화민국 총통]]에 두 차례나 당선됐다'고 대놓고 말하는 패기를 보였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3350728?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