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여자 대표팀, rd1=중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other2=풋살 대표팀, rd2=중국 풋살 국가대표팀)] [include(틀:아시아축구연맹 회원국)] [include(틀:동아시아축구연맹 회원국)]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30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0 0%, #F00 20%, #F00 80%, #FF0)" [[파일: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height=2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0 0%, #F00 20%, #F00 80%, #FF0)" {{{#FF0 {{{+2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 ||<-2> '''{{{#DF0101,#FF0 中国国家足球队}}}'''[* 중국국가족구대. 중국에서는 축구를 족구라 한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족구]]라 부르는 놀이는 한국에만 있는 것. football의 어원을 보면 족구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하긴 하다.] || || [[FIFA 코드|{{{#FF0 '''FIFA 코드''' }}}]] ||'''CHN''' || || {{{#FF0 '''축구 협회''' }}} ||[[중국축구협회|중화인민공화국 축구 협회]] (CFA) || || {{{#FF0 '''대륙 연맹''' }}} ||[[https://www.the-afc.com/|[[아시아 축구 연맹|아시아 축구 연맹 (AFC)]]]] || || {{{#FF0 '''지역 연맹''' }}} ||[[https://eaff.com/index_k.html|[[동아시아 축구 연맹|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 || {{{#FF0 '''홈구장''' }}} ||[[베이징국가체육장]] {{{-2 (91,000석)}}} || || {{{#FF0 '''별명'''}}} ||龙之队 (용의 팀), 万里长城 (만리장성), 짜장 축구 || || {{{#FF0 '''감독'''}}} ||[include(틀:국기,국명=세르비아,출력= )] [[알렉산다르 얀코비치]] {{{-2 (Aleksandar Janković)}}} || || {{{#FF0 '''주장단'''}}}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9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5em" {{{#ffffff '''C'''}}}}}} [[장린펑]] {{{-2 (Zhāng Línpéng)}}} || || [[FIFA 랭킹|{{{#FF0 '''FIFA 랭킹'''}}}]] ||'''79위''' (2023년 11월 2일 기준 / [[https://www.fifa.com/fifa-world-ranking/CHN|#]]) || || [[Elo 레이팅|{{{#FF0 '''Elo 랭킹'''}}}]] ||'''91위''' (2023년 11월 21일 기준[* Elo 레이팅스는 상시 나오는 것이므로, 가장 최근 A매치와 그 직전 A매치 사이의 순위변동을 기입함.] / [[https://www.eloratings.net/|#]]) || || {{{#FF0 '''공식 웹사이트'''}}} ||[[https://www.thecfa.cn/NationalTeam/index.html|[[파일: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width=20]]]] | [[https://www.weibo.com/nanzu?refer_flag=1005050010_|[[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width=30]]]] || ||<-2><^|1> {{{#!wiki style="color: #FFF; margin: 5px -10px -5px" {{{#FF0 {{{#!folding [ 대표팀 기록 보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2 {{{#FF0 ''' A매치 최다 출전 '''}}}}}} ||[[리웨이펑]] {{{-2 (Lǐ Wěifēng)}}}[br]- '''112경기''' / 14골 || || {{{-2 {{{#FF0 ''' A매치 최다 득점 ''' }}}}}} ||[[하오하이둥]] {{{-2 (Hǎo Hǎidōng)}}}[br]- 106경기 / '''41골'''[* 하오하이둥이 중국의 공산당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자 [[중국축구협회]]는 그의 모든 기록을 말소하여 인정하지 않고 있다.] || || {{{-2 {{{#FF0 ''' 첫 국제 경기 출전 '''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width: 27px; padding:1px;background:rgba(45,47,52,.2); vertical-align: middle"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width=100%]]}}} 중화민국 vs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wiki style="display: inline-flex; width: 27px; padding:1px;background:rgba(45,47,52,.2); vertical-align: middle"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width=100%]]}}} 필리핀]] 1:2 '''{{{#ff0000 패}}}'''[br]{{{-1 ([[필리핀]] [[마닐라]] / [[1913년]] [[2월 1일]])}}} || || {{{-2 {{{#FF0 ''' 최다 점수차 승리 '''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width: 27px; padding:1px;background:rgba(45,47,52,.2); vertical-align: middle" [[파일:중국 국기.svg|width=100%]]}}} 중국 vs [[괌 축구 국가대표팀|{{{#!wiki style="display: inline-flex; width: 27px; padding:1px;background:rgba(45,47,52,.2); vertical-align: middle" [[파일:괌 기.svg|width=100%]]}}} 괌]] 19:0 '''{{{#0000ff 승}}}'''[br]{{{-1 ([[베트남]] [[호찌민시|호찌민]] / [[2000년]] [[1월 26일]])}}} || || {{{-2 {{{#FF0 ''' 최다 점수차 패배 '''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width: 27px; padding:1px;background:rgba(45,47,52,.2); vertical-align: middle" [[파일:중국 국기.svg|width=100%]]}}} 중국 vs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wiki style="display: inline-flex; width: 27px; padding:1px;background:rgba(45,47,52,.2); vertical-align: middle"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100%]]}}} 브라질]] 0:8 '''{{{#ff0000 패}}}'''[br]{{{-1 ([[브라질]] [[헤시피]] / [[2012년]] [[9월 10일]])}}}[* 이 경기에서 [[네이마르]]가 A매치 첫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 }}}}}}}}}}}} || ||<-2><^|1> {{{#!wiki style="color: #fff; margin: 5px -10px -5px" {{{#FF0 {{{#!folding [ 대회별 성적 보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 {{{#FF0 '''세계대회'''}}} || || {{{-2 [[FIFA 월드컵|{{{#FF0 ''' 월드컵 ''' }}}]]}}} ||'''[진출]''' 1회[* 진출율 '''4.5%''' (1/22)][br]'''[최고]''' 31위/조별리그 {{{-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 || {{{-2 [[올림픽 축구|{{{#FF0 ''' 올림픽 ''' }}}]]}}} ||'''[진출]''' 3회[br]'''[최고]''' 12위/16강 {{{-1 ([[1936 베를린 올림픽/축구|1936]])}}} || ||<-2> {{{#FF0 '''대륙대회'''}}} || || {{{-2 [[AFC 아시안컵|{{{#FF0 ''' 아시안컵 ''' }}}]]}}} ||'''[진출]''' 13회[br]'''[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width=20]]{{{-1 ([[1984 AFC 아시안컵 싱가포르|1984]], [[2004 AFC 아시안컵 중국|2004]])}}} || || {{{-2 [[아시안 게임 축구|{{{#FF0 ''' 아시안 게임 ''' }}}]]}}} ||'''[진출]''' 11회[br]'''[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width=20]]{{{-1 ([[1998 방콕 아시안 게임|1998]])}}} || || {{{-2 [[EAFF E-1 풋볼 챔피언십|{{{#FF0 ''' EAFF컵 ''' }}}]]}}} ||'''[진출]''' 5회[br]'''[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width=20]]{{{-1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2005]], [[2008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2008]],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2010]])}}} || ||<-2> {{{#FF0 '''기타대회'''}}} || || {{{-2 [[차이나컵|{{{#FF0 ''' 차이나컵 ''' }}}]]}}} ||'''[진출]''' 3회[br]'''[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width=20]]{{{-1 (2017)}}} || || {{{-2 [[다이너스티컵|{{{#FF0 ''' 다이너스티컵 ''' }}}]]}}} ||'''[진출]''' 4회[br]'''[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width=20]]{{{-1 (1990, 1998)}}} || || {{{-2 [[킹스컵|{{{#FF0 ''' 킹스컵 ''' }}}]]}}} ||'''[진출]''' 4회[br]'''[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width=20]]{{{-1 (1993)}}} || || {{{-2 [[네루컵|{{{#FF0 ''' 네루컵 ''' }}}]]}}} ||'''[진출]''' 6회[br]'''[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width=20]]{{{-1 (1982, 1983, 1984. 1986)}}} || || {{{-2 [[머라이언컵|{{{#FF0 ''' 머라이언컵 ''' }}}]]}}} ||'''[진출]''' 2회[br]'''[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width=20]]{{{-1 (1986)}}} || || {{{-2 [[극동 선수권 대회|{{{#FF0 ''' 극동 선수권 대회 ''' }}}]]}}} ||'''[진출]''' 10회[br]'''[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width=20]]{{{-1 (1915, 1917, 1919, 1921, 1925, 1927, 1930, 1934)}}} || }}}}}}}}}}}} || ||
{{{#FFFFFF '''유니폼 컬러'''}}} || {{{#FFFFFF '''홈'''}}} || {{{#FFFFFF '''어웨이'''}}} || || {{{#C8AB37 '''상의'''}}}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50000 1.5%, #ff0 1.5%, #ff0 2.5%, #e50000 2.5%, #e50000 4%, #f00 4%, #f00 10%, transparent 10%, transparent 90%, #f00 90%, #f00 96%, #e50000 96%, #e50000 97.5%, #ff0 97.5%, #ff0 98.5%, #e50000 98.5%), linear-gradient(to bottom, #e50000 10%, #f00 10%)" [[나이키|[[파일:나이키 로고 화이트.svg|align=left&width=15]]]][[중국축구협회|[[파일: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align=right&width=12]]]][br][[우레이|{{{+1 {{{#FF0 '''7'''}}}}}}]][br][br]}}}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79dfc9 4%, transparent 4%, transparent 96%, #79dfc9 96%), repeating-linear-gradient(to bottom, transparent 5%, #bcecd4 10%, transparent 15%, #bcecd4 20%, transparent 25%), repeating-linear-gradient(to right, #bcecd4 0%, #8ee5c2 2%, #8ee5c2 3%, #bcecd4 5%, #8ee5c2 7%, #8ee5c2 8%, #bcecd4 10%)" [[나이키|[[파일:나이키 로고.svg|align=left&width=15]]]][[중국축구협회|[[파일: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align=right&width=12]]]][br][[우시(축구선수)|{{{+1 {{{#F00 '''15'''}}}}}}]][br][br]}}} || || {{{#C8AB37 '''하의'''}}}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50000 4%, #f00 4%, #f00 96%, #e50000 96%)" [[우레이|{{{#FF0 ''',,7,,'''}}}]]}}}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79dfc9 4%, #bcecd4 4%, #bcecd4 96%, #79dfc9 96%)" [[우시(축구선수)|{{{#F00 ''',,15,,'''}}}]]}}} || || {{{#C8AB37 '''양말'''}}}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20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00 20%, #ff0 20%, #ff0 25%, #f00 25%)"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20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bcecd4 20%, #79dfc9 20%, #79dfc9 25%, #bcecd4 25%)" }}} || [목차] [clearfix] == 개요 == 메인 컬러는 [[적색]]. 아르헨티나([[하늘색]] 줄무늬), 네덜란드([[주황색]]), 크로아티아(적색 체크무늬) 등과 함께 종목 불문하고 유니폼 컬러가 뚜렷한 팀 중 하나이다.[* 아시아의 최강이라는 한국과 일본은 모든 종목 기준으로는 뚜렷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 [[축구]]는 적색이지만 [[야구]]를 비롯해서 [[청색]]을 쓰는 종목도 상당히 많고, 일본은 축구는 청색이지만, 다른 종목들을 보면 적색, [[흑색]]도 있는 등 중구난방이다.] 현재 성인 대표팀 감독은 세르비아 출신의 [[알렉산다르 얀코비치]]다. 2010년대 후반 들어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벤치마킹해서 약한 실력을 강력한 경기장으로 커버하고 있다. 그 미친 [[라파스]]의 [[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스타디움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꽤나 골치아픈 [[쿤밍]]의 퉈둥 스포츠 센터 스타디움의 고지대에서 경기를 벌인 바 있다. 2021년부터 중국축구협회는 [[문신]]을 새긴 선수들을 국가대표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https://m.yna.co.kr/view/AKR20211230131900083?section=international/all|#]]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나이키다. 주요 선수로는 [[우레이]], [[장린펑]], [[황보원]] 등이 있다. 현재 자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까이고 있는 국가대표팀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축구는 정치, 사회랑 관련이 없어서 어떤 욕을 해도 허용되기에 중국 국민들의 주된 화풀이 대상이라고 한다. 심지어 국영방송인 CCTV에서도 유머소재로 공공연하게 방송할 정도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bK1ZcKKVmOU&t=181s|#]]] 타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는 등의 호성적을 꼬박꼬박 내는 반면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렇게 지원을 많이 받아먹고도 월드컵에 진출도 통 못하고 있고, 그 외에도 올림픽은 물론이고 아시안컵, 아시안 게임 같은 아시아권 대회에서조차도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치며 성장은 커녕 오히려 더 약체화만 되는 등 좀체 성적을 못 내기 때문이다. 비단 타 종목 뿐만 아니라 여자 축구대표팀이나 시각장애인 축구대표팀 등과도 비교되어서 예산낭비라면서 엄청나게 까이며, 치우미라고 불리는 중국 축구팬들도 아시안컵 준우승도 이제는 까마득한 옛말이 되었다고 자책하면서 해탈하거나 자국리그나 보는 신세다. 또한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한국과 일본이 유럽의 강팀들을 꺾어 조별리그를 당당하게 뚫고 16강에 진출하면서 본선은 커녕 예선에서만 놀고 있는 중국의 자존심은 더더욱 하락하는 중이다.[* 물론 라이벌 운운하는 건 어디까지나 중국 축구계의 뻔뻔함일 뿐이며 정작 한국과 일본은 중국을 잔챙이로 여길 뿐 절대 라이벌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당시 축제 분위기였던 한국과 일본과 달리 중국은 [[https://www.youtube.com/watch?v=9DtkFFjcyDA|이런 기사]]까지 나면서 암울한 상황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또 축구를 무슨 마치 [[격투기]]를 하는 것 마냥 [[쿵후 축구|심각한 수준의 살인 태클과 몸싸움을 하는 상당히 거칠고 과격한 플레이]]를 일삼는데다 동업자 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누구 하나 보내버리려고 작정하는 등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나라이니, 이런 나라와 경기라도 하다간 주축 선수가 중상이라도 당할 우려가 있어서, 외국들은 더더욱 중국과 경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며, 이러니 외국에서도 중국 축구에 대한 평이 나쁠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다. 2023년 3월에 뉴질랜드가 중국과 2번의 평가전을 가졌는데, 그야말로 살인 태클 남발에 거친 플레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문제는 그러고도 중국은 뉴질랜드와 2연전 모두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1차전은 0대0으로 무승부를 거뒀고, 2차전은 1대2로 패배했다. 한술 더 떠 올림픽 대표는 두 경기 다 졌다. 심지어 연령도 더 많았는데도 말이다.] 이는 성인, 올림픽, 유소년 대표 셋 다 마찬가지다. == 역사 == === 20세기 전반 ([[중화민국]] 시절) (1913~1949) === [[중화민국]] 시절부터 축구는 인기스포츠였다. [[신해혁명]]으로 건국된 지 2년만인 1913년 [[아시안 게임]]의 전신인 극동 선수권 경기대회(Far Eastern Championship Games)에 축구대표팀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중국의 라이벌은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 지금은 막장이지만 그 당시 필리핀은 [[파울리노 알칸타라|알칸타라]] 같은 당대 초대형 축구스타를 배출했던 축구 강국이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2차 대전]] 전 시기의 아랍을 제외한 아시아 [[A매치]] 기록을 정리해보면 당시 최강팀은 중국이었고 그 밑에 필리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이 각축을 벌이던 모양새였다. 1931년 중화민국은 [[FIFA]]에 가입하였다. [[1936 베를린 올림픽]]에 참여하여 잉글랜드 축구대표팀과 1경기를 치렀으며, 0-2로 패했다.[* 당시의 잉글랜드 축구팀은 지금과는 달리 지상 최강의 팀이었고 [[1930년 월드컵]] 우승국 [[우루과이]]를 비웃고 [[1934년 월드컵]] 우승국 [[이탈리아]]와 직접 맞붙어 발라버렸다. 당시 잉글랜드는 월드컵이 너무 질이 떨어져서 불참하던 그런 팀이었다.][* 이 당시에 출전한 선수 중에는 [[홍콩]] 배우 [[알란 탐]]의 아버지인 담강백이 있는데, 아시아 축구왕이라고 불리던 선수였다. 이 사람은 중국이 공산화되자 홍콩에 정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 런던 올림픽에 참여하여 튀르키예 축구대표팀과 1경기를 치렀으며, 0-4로 패했다. === 1951년~1970년 ([[중화인민공화국]] 시절) === 1949년 12월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사실상 승리하며 중국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고, [[국민당]]의 [[중화민국]]은 타이완 섬으로 도피하였다. 여느 공산주의 국가가 그렇듯 중국 또한 체육, 특히 축구는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 체제를 증명해야 하는 장이라 여겼고, 중국 정부는 압도적인 인구를 바탕으로 중국이 세계 정상급 축구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중국이 수많은 스포츠 중에 가장 먼저 육성을 시작한 것이 바로 축구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국공내전 이후 스포츠 중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축구 대표팀이었으며, 농구 대표팀보다도 훨씬 먼저 정책적으로 육성되었다. 마오쩌둥의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소련에 이은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그 존재 자체로서 무결성과 무오류성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물론이고 같은 공산권 국가라 하더라도 위대한 마오쩌둥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다른 공산국가들에게 패한다는 것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중국 대표팀은 태생부터 패배해서는 안된다는 압박감이 컸고, 패배 이후 몇년간 국제 무대에서 잠적했다가 나타는 것을 수차례 거듭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국 대표팀의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점차 약소국들하고만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1970년까지 계속되었다. 공산화 이후 중국은 1951년 같은 공산권 국가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축구 대표팀을 보냈다. 하지만 중국은 불가리아에 1:9로 대패했고 이어 체코슬로바키아에 1:17로 대패했다. 동유럽의 높은 벽을 실감한 중국은 체계적으로 대표팀을 선발, 육성, 운영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다. 이에 전중국체육연맹 관리하에 체계적으로 국가 대표 선수들을 선발, 훈련시키기 위해 1951년 11월 중앙체육반(국가대표팀)을 설립했다. 1951년 12월, 축구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할 목적으로 [[텐진]]에서 제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를 열었으며, 이 대회에서 신(新) 중국[* 이전 중화민국 대표팀과 구별하는 의미에서] 축구 국가 대표팀 선수 30명(최종 29명)을 정식 선발했다. 이 대회에 참여한 중국 8개 지역팀 중 동북3성([[만주]]) 연고의 동북팀이 우승을 차지했으며, 동북팀 주전 11명은 전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중에는 이봉춘, 김룡호, 김병균, 최중석 등 연변 조선족 출신 선수가 4명 포함되어 있었다. 아울러 중국은 과거 중화민국에서 운영했던 축구협회와 단절된 새로운 [[중국축구협회|중화인민공화국 축구협회]]를 구성하여 1952년 6월 14일 정식 발족시켰고 같은 해 FIFA에도 가입했다. 중공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출전하길 원했지만,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국제 사회에서 기존에 중국 정부로 인정받았던 대만과 중공의 대표성 문제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중공 정권이 중국 본토를 장악한지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아 발생한 한국전쟁에 중공은 UN의 결의를 무시하고 침략자 북한편에서 전쟁에 참여 중인 전범국이라는 상황도 존재했다. 여기에 당시 대만과의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보이콧을 반복하던 중국 역시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냐 보이콧할 것이냐하는 결정이 늦어져 거의 대회 직전에 참가하기로 확정하는 등 너무 결정이 늦게 이루어졌고, 여기에 국제사회를 의식하던 IOC 역시 처리가 늦어지기도 하였다. 결국 올림픽 개막식 이후 선수단 40명을 헬싱키에 파견했지만, 단체 종목은 너무 늦게 도착하여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개최국인 핀란드가 올림픽 폐막식 다음날에 중국 축구 대표팀과 친선전을 열어줬다. 그리하여 1952년 8월 4일 핀란드와 친선 경기가 신 중국 대표팀(China PR)의 첫 공식 A매치 경기로 열렸으며, 0-4로 패했다. 유럽 축구 약소국인 핀란드에 대패하자 그 충격으로 이후 중국은 1956년까지 국제 무대에서 잠적했다. 첫 A매치에서 유럽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는 핀란드에게 대패하자 중국 공산당 정부는 또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1951년 체코, 불가리아에게 대패한 것은 당시 중공 정부가 수립된지 얼마되지도 않아 어수선하여 제대로 된 선발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출전했지만, 1952년 올림픽 대표팀은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선발한 중국 최정예팀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팀도 출전이 되지 않았다. 제때 도착하지 못했던 데다 아예 신청도 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 정부는 망신을 우려하여 [[1954 스위스 월드컵]] 불참을 결정했고, 맹훈련을 거쳐 6년 후에 열리는 [[1958 스웨덴 월드컵]]을 노리기로 결정했다. 기존 대표팀은 완전히 해산되었으며, 6년 후를 위해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새로운 대표팀을 선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1953년 2월 전국청년축구선수권대회를 열어 젊은 선수들을 대거 발탁하여 새로 대표팀를 구성했으며, 여기에는 박만복, 김창길, 최호균, 최증석, 김인걸, 박증철 등 연변 조선족 선수 6명이 포함되었다. 중국 정부는 같은 공산국가인 헝가리에 1954년 4월부터 1955년 10월까지 1년반 동안 대표팀 전체를 유학 보내 훈련시켰다. 당시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은 '마자르 군단'으로 불리던 세계 최강의 축구팀으로 1950년 이후 195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서독에 패하기까지 30여경기 A매치 무패를 기록했으며, 1954년 결승전 패배 이후에도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로 와해될 때까지 2년간 패하지 않았던 자타가 공인하던 세계 최강의 축구 대표팀이었다. 당시 헝가리에 파견된 중국 국가 대표팀에는 7명의 조선족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친김에 중국은 헝가리 축구 레전드를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이러한 맹훈련을 거친 중국은 스웨덴 월드컵 지역예선에 나서기 위해 4년여간의 잠적을 끝마치고 다시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은 1957년 5월, [[1958 스웨덴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 출전했으나, 예선 첫 관문인 1차 예선[* 당시 1958 스웨덴 월드컵 아시아 예선은 3차 예선까지 있었다.]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하며, 조기 탈락했다. 웃픈 사실은 당시 아시아 지역예선을 최종 통과한 이스라엘은 부전승으로 단 한경기도 치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초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 불참한 나라도 많았고, 그나마 참가한 팀들도 중단에 이런저런 이유로 다 기권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54년 월드컵 때 아시아 지역 예선을 최종 통과한 대한민국은 심지어 신청서를 잃어버려 월드컵 지역예선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이때 중국을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한 인도네시아도 다음 라운드에서 기권해 버렸다... 스웨덴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직후 중국은 FIFA가 [[중화민국]]의 회원국 자격 유지를 구실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FIFA가 주최하는 축구 대회를 모두 보이콧했다. 이렇게 중국은 1970년대까지 공식적인 국제축구대회에서 모두 잠적하게 된다. 이렇게 중국 축구 국대는 1958년 이후 FIFA나 IOC가 주관하는 국제대회를 모두 보이콧하며 나서지 않게 되었고, 대신 공산권 우방국들과의 친선전에만 나서게 되었다. 친선전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말그대로 친선과 우호 증진을 위한 친선경기 같은 것은 아니었고 나름 공산권 국가들간의 국제축구대회들이었다. 단지 FIFA 및 산하 AFC(아시아 축구 연맹)과는 무관한 대회였기에 FIFA 입장에서 친선 A매치로 분류되었을 뿐이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중국은 공산권 국가들하고 경기를 가졌지만 동유럽의 벽은 높았다. 동구권에서 가장 약체였던 루마니아에게 패배한 것은 중국의 자존심에 다시 한 번 큰 상처가 되었다. 결국 1959년 이후 중국은 소련과의 국경 분쟁 악화를 구실로 소련은 물론이고 동유럽 국가들과의 친선전도 완전히 중단하며 이쪽 무대에서도 완전히 잠적하게 되었다.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의 친선전을 단절한 이후 중국은 아시아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 북베트남, 몽골을 규합하려 하였고, 이에 1959년 북한 평양과 1960년 북베트남 하노이에서 아시아 공산국가 4개국을 규합하여 축구 대회를 열었다. 이 4개국 대회에서 중공은 몽골을 상대로 6:1 대승을 거두며 큰 자신감을 얻기도 했지만, 북한과 북베트남과는 엇비슷한 경기력을 보이면서 패하거나 신승을 거두었다. 게다가 중국 대표팀 창단 이래 최대의 대승을 안겨주며 향후 중국의 양민학살 먹이감이 될 것 같았던 몽골은 소련 편에 붙었고, 결국 중국과의 축구 역시 중단되었다. 이제 몽골이 나가리되면서 중국이 같이 축구를 할 수 있는 나라는 기껏 아시아의 공산국가 북한, 북베트남 정도였는데, 중국 입장에서 이 나라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들 국가를 상대로 중국은 이겨야 본전, 지면 체면이 구겨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959년과 60년에 열린 아시아 공산국가 4개국 축구대회에서 중국은 북한, 북베트남에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이는 아시아 공산국가들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중국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다. 결국 아시아 공산국가 4개국 축구대회는 1960년을 끝으로 중단되었고, 중국 축구 대표팀은 이후 3년간 다시 잠적했다. 그런데 60년대 동남아에서 공산주의가 크게 흥하면서 버마(미얀마), 북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 잇달아 공산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은 동남아 공산국가들의 종주를 자처하며 이들을 규합하려 하였고 중국 축구 대표팀은 3년 동안의 잠적을 중단하고 복귀하여 1963년부터 아시아 공산권 국가들과 친선전을 가지며 활성화되었다. 나아가 당시 인도와 대립하며 중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던 파키스탄과도 접촉하며 친선전을 가지기도 했다. 1965년부터는 역시 비동맹을 표방하던 말리, 기니아,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들에 접촉, 이들 국가들과 경기를 확대해 나갔다. 또 1966년에는 중동의 중소 국가들과 접촉하여 시리아, 팔레스타인, 남예멘 등과 경기를 가졌다. 중국은 이런 약소 국가들과 주로 경기를 가지며 북한, 북베트남, 파키스탄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국가들을 압도적인 전력차로 발라버리며 자신감이 상승하고 있었다. 사실 중국은 위에 언급된 1960년 몽골에 창단 이래 최초 대승을 거두면서 그 파급력을 확인한 이래 이후 의도적으로 신생 아프리카, 중동 약소국으로 범위를 확대했고, 이들 나라들에 압승을 거두며 중공 인민들에게 국뽕을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중국과 가장 가까운 북한, 북베트남은 전력상 만만치 않은 상대였고 이는 중국에 큰 시름을 안겨주었다. 외교적으로도 중국은 가장 가까운 공산권 국가인 북한과 북베트남을 확실하게 휘어잡을 필요가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북베트남은 친소 정책을 추진하며 중국과 갈등이 깊어졌고, 북한 역시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외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중국은 축구에서도 이들을 상대로 우월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은 내상을 입었고 있었다. 중국이 60년대 초 한때 국가대표팀을 거의 접다시피 한 것도 북한, 북베트남의 강한 전력 때문에 이겨야 본전, 지면 손해인 상황에서 일부러 경기를 기피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60년대 중반 중국이 축구 약소국들을 쳐바르는 와중에도, 미국과 전쟁 중인 와중에 있던 북베트남과 1965년 비기거나, 당시 전력이 급격히 강해졌던 북한에게 0:3으로 대패한 것은 상당히 치욕적인 일이었다. 이 와중에 1966년 5월 [[문화대혁명]]이 발생했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마자 중국 대표팀이 중단된 것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은데,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문화대혁명 초기는 오히려 중국국가대표팀이 가장 활성화되었던 시기였다. 당시 중국 대표팀은 북한, 북베트남만 안만난다면 다른 축구 약소국들을 상대로 우월한 경기력을 펼치며 중공 인민들에게 국뽕을 선사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6년 7월 ~ 8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중국은 신생 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동 약소 국가들을 초청하여 경기를 가졌고, 축구 약소국들을 상대로 연이어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며 중공 인민들을 열광케 했다. 1966년말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된 대회에 참여하여 여전히 타팀들을 압살하였고, 베트남 전쟁 중인 숙적 북베트남을 2:0으로 꺾으며 설욕했다. 여기까지는 매우 좋았다. 1966년말까지 중국은 A매치 10연승을 달리고 있었고, 전부 2점 ~ 7점차 대승을 거둔 경기였고, 또한 대다수가 무실점 경기였다. 하지만 결국 북한에게 또다시 패한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10연승을 한들 북한에게 한번 패하면 그것으로 도루묵이었다. 당시는 문화대혁명으로 마오쩌둥이 신격화되었던 때였다. 마오쩌둥의 지도로 이룩된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시아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그 존재 자체로서 무결성과 무오류성을 가져야 하는데, 마오쩌둥으로부터 사상적 가르침을 받은 일개 북한에게 패한다는 것은 위대한 혁명 역사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북한한테 한번도 아니고 연패한 것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었고, 이것으로 축구가 중국에서 단죄받아야 할 이유는 충분해졌다. 1966년 12월 6일 프놈펜에서 북한에 패한 이후 중국 국가대표팀은 또다시 5년간 국제무대에서 잠적하게 된다. 축구는 자본주의의 오락으로 단죄되었고, 축구선수들 중 일부는 "혁명의식"이 부족하다며 시골 오지로 끌려갔다. === 1971년~2001년 === 중국 대표팀은 1971년에야 재개되었다.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주도한 [[데탕트]] 정책으로 1971년초부터 중국은 [[핑퐁 외교]]를 통해 국제 무대에 다시 나서게 되었고, 1971년 10월 [[UN]]이 [[중화민국]](대만)을 제명하고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China)의 유일한 합법국가로 승인하자,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71년 [[마오쩌둥]]은 올림픽을 제패하라는 교시를 내렸고, 이에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이후 자본주의 적폐로 공격당하며 강제 노역으로 끌려갔던 스포츠인들은 마오쩌둥의 말 한마디에 혁명 전사로 지위가 180도 바뀌게 되었다. UN이 중화민국(대만)을 축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대표 정부로 인정하자, IOC와 FIFA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국가 대표로 선언하였고 중화민국은 축출되었다. 1971년부터 A매치를 재개한 중국은 60년대 약소국들과 축구를 하며 큰 재미를 본 것처럼 70년대에도 의도적으로 약팀들하고만 경기를 가졌다. 그리하여 중국은 1971년부터 1974년 아시안 게임 직전까지 3년간 18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이 3년간 18경기 동안 중국이 맞붙었던 나라는 [[쿠바]](1승), [[탄자니아]](1승 1무), [[잠비아]](1무), [[소말리아]](2승), [[남예멘]](2승), [[스리랑카]](2승), [[네팔]](1승), [[가이아나]](1승 1무), [[세네갈]](1승 1무), [[알바니아]](1무), [[시에라리온]](1승)와 같은 축구 약소국 일색이었다. 이렇게 약팀과 골라 경기하며 3년 간 18경기 무패를 자랑하며 자신감이 충만해진 중화인민공화국은 197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아시아 축구 연맹]]에 재가입하여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 올림픽 대표팀이 출전했다. 그러나 아시안 게임 첫 경기인 북한전(10월 2일)에서 0:2로 '''북한에게 패배'''하면서 1966년 12월 북한에게 패한 이후 18경기 무패 행진이 중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게 A매치 3경기 연속 패배'''의 굴욕을 맛보았다. 2차전인 이라크전에도 0:1로 패하며 충격이 더해졌으나, 마지막 3차전에서 축구 약체인 인도와의 경기에서 7:1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전환한 채 귀국할 수 있었다. 1958년 FIFA와 IOC를 보이콧한 이후 10여년만에 처음 출전한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중국 대표팀이 1960년대 중반과 1970년대 초반에 북한전을 제외하고 30여경기 무패를 이어갔던 것도 축구 약소국들만 골라서 경기했던 결과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점 하나는 패배했다고 다시 잠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이 올림픽에서 세계를 제패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후 죽이되든 밥이되든 중국은 계속 국제 무대에 섰다. 1970년대 중국의 목표는 아시아 정상권 축구 강국이 되는 것이었다. 사실 몇몇 2~3개국 강팀을 제외하면 아시아 정상권은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1970년대 북한, 그리고 나중에는 대한민국에게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에 계속 대표팀을 출전시켰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아시아 밖의 세계무대에서는 망신을 당할 것이 두려워 FIFA 월드컵과 올림픽에는 여전히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 70년대에 중국이 월드컵과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것은 지역예선에서 떨어져서가 아니라 지역예선에 참여조차 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국은 세계 무대에서는 잠적을 유지한 채 일단 아시아 무대를 평정하고 이후 세계 무대에 진출하려 했다. 물론 중국의 이런 전략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다. 1974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1승2패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예전처럼 잠수타지 않고 A매치 친선을 계속했으며, 1975년 6월에 홍콩에서 열린 1976 아시안컵 지역예선에도 정식으로 참가했다.[* 이 때 쫓겨난 중화민국(대만)은 1973년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의 이름으로 재가입했고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1975년부터 1989년까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 소속하기도 하였다.] 1974 아시안게임 3차전에서 인도에 7:1 대승을 거운 것은 중국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고 중국은 1975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4승 1패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중에는 난적 북한과 일본에게 거둔 승리도 포함되었다. 특히 숙적 북한을 오랜만에 꺾어며 중국은 열광했으나 지역예선 5차전이자 북한과의 2차전에서 '''북한에 다시한번 0:2로 패'''하면서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게 되었고 중국의 A매치 7경기 무패 행진도 또다시 북한에 의해 중단되었다. 7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아시안컵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에게 패한 후 중국은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친선전에서도 뉴질랜드와 호주 등에 연패를 거듭했고, 1976년 아시안컵 본선에서도 1승1무2패를 기록했다. 이후 1977년에는 친선전만 가졌는데, 자이레, 모로코, 자메이카, 태국 같은 약체들을 상대로 연승행진을 벌이는 와중에, '''베이징 홈에서 [[홍콩]]에게 1:2로 패배하는 충격'''을 겪었다. 한편 당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이루며 1977년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3연전을 갖고 1무2패를 거두기도 했다. 이 경기는 1959년 중국이 소련에게 패배한 직후 동구권을 보이콧한 이후 처음으로 아시아권(오세아니아 포함)과 아프리카 이외의 국가들과 가진 경기였으며, 1952년 중공의 첫 A매치였던 핀란드(중립국)을 제외하면 서구 국가들과는 처음 가진 축구 경기였다. 1976년 마오쩌둥이 죽었고, 이후 물밑 권력 암투 끝에 마침내 1978년 덩샤오핑이 정권을 장악하고 집권을 시작했다. 젊은 시절 프랑스에 유학가서 끼니를 굶으면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을 정도로 축구광이었던 덩샤오핑은 죽기 전에 중국 축구의 월드컵 진출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 축구에 열성적이었다. 덩샤오핑은 자신이 축구광이기도 했지만, 축구에 열광하던 중국 인민들을 보면서 중국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 중국인들의 마음을 결집하고 당에 대한 충성심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인 의도도 깔려 있었다.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은 중국 축구를 대대적으로 육성시키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은 집권하자마자 당시 열리고 있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경기 중계를 지시했고 이에 중국중앙TV는 월드컵 위성 중계 신호를 훔쳐 중계했다. 당시까지도 중국은 FIFA에서 탈퇴해 있었고 대만 문제로 월드컵은 중국에서 금기 사항이었다. 이후 FIFA 재가입을 신청하여 1979년 공식적으로 FIFA 회원국 지위를 회복했다. 덩샤오핑은 중국 국가대표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국 축구 리그가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당시 아마추어 리그였던 중국 리그를 대대적으로 개편 프로리그로 전환시켰다. 이에 1980년 마침내 [[중국 슈퍼리그]]의 전신인 중국 갑A 리그가 출범했다. 아울러 중국 축구 저변 확대를 위해 2군 리그를 창설했고 이어 3부 리그까지 창설했다. 또한 단순히 선수들의 기량만 높인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축구 심판들을 육성하기 위해 대거 유학보내는 등 축구 발전을 위한 덩샤오핑의 관심은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세심한 곳까지 꼼꼼하게 이어졌다. 이처럼 축구광 덩샤오핑의 맹렬한 지원을 등에 업고 중국은 각종 국제대회 및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나, 번번히 떨어졌다. 특히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은 후 중국 국가대표팀 최초의 빅매치인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A매치가 1978년말 성사되었다. 이전까지 한국과 중국 국대가 축구에서 맞붙은 적은 없었다. 1978년 12월에 방콕 아시안 게임 및 아시안컵 예선으로 '''한국과 3주 간격으로 2연전을 가졌지만 2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공한증]]의 시작'''을 알렸다. 비록 한국에게 패배했지만 [[마카오]], [[필리핀]] 같은 양민을 제물로 [[1980 AFC 아시안컵 쿠웨이트|1980 쿠웨이트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4위에 그치며 큰 실력차를 절감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덩샤오핑은 1982 스페인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관계자들이 피를 말리며 월드컵 예선을 준비했다. 1981년 열린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중국은 초기에 [[홍콩]], [[마카오]], [[쿠웨이트]] 등 약팀들을 이기며 한껏 기세를 올렸고 이에 10억 중국 인민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어 난적 [[북한]]과 [[사우디]]까지 꺾으며 월드컵 본선 진출 3부 능선을 넘으며 중국 인민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결국 [[뉴질랜드]]에 패하면서 월드컵 진출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래도 다음 대회에는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984년 아시안컵에서 마침내 덩샤오핑의 중국 [[축구굴기]]가 빛을 보는 듯 했다. 중국은 지역예선을 자국 광저우에서 유치하여 10일간 10경기, 팀당 평균 2~3일마다 경기를 치르는 막장 일정 속에서 당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이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 요르단, 홍콩, 카타르를 차례로 이기며 드디어 본선에 진출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안컵 본선 조별예선에서 이란에게 패했지만 싱가포르와 UAE를 이기면서 4강에 진출, 쿠웨이트와 연장전 승리로 결승까지 올랐다. 비록 결승전은 사우디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지만 준우승을 차지한 중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드디어 아시아 정상권의 축구 강국이 되었다고 자평하던 중국 인민들과 중앙당 간부들은 한껏 고무되어 [[1986 멕시코 월드컵]] 본선 진출을 낙관했다. 특히 1986 월드컵부터 아시아 진출권이 2장으로 늘어나면서 이번에는 월드컵에 진출할 것이라 고무되었다. 1라운드 1조에서 약체 중에 약체인 홍콩, 마카오, 브루나이 같은 미니 도시국가들과 같은 조가 되면서 1라운드 통과를 기정사실화하며 2라운드에 어떤 나라가 올라올지 경우의 수를 따지며 김칫국을 실컷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1985년 5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홍콩에게 박살나며''' 지역예선 1라운드 통과하지 못하고 광탈해 버리고 말았다. 경기를 관람하던 8만 베이징 관중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경기장을 비롯해서 주변 건물 시설물이 파괴되고 방화가 일어났으며 차량 수십대가 파손되었다. 소요는 이틀간 지속되다가 공안에 의해 진압되었다. 베이징에서만 이런 소요가 일어난 것이 아니었고 지방에서도 곳곳의 시설물이 파괴되기도 했다. 중국 대표팀 감독과 중국축구협회 회장은 경기 직후 사임했다. ([[5.19 사건]]) 2라운드도 아니고 1라운드에서 그것도 홍콩에게 패해 광탈하며 당시 중국 축구계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되었다. 사실 중국이 홍콩에게 패한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고, 중국의 역대 전적을 보면 지역예선 광탈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유독 폭동이 일어났던 것은 그만큼 1984년 아시안컵에서 약체들을 제물삼아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근자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1988 서울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당시 중국은 차기 올림픽 개최를 노리며, 올림픽을 체제 경쟁의 무대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불운하게도 1988 올림픽 축구 한정으로 IOC가 '''FIFA 월드컵 출전 경험이 없는 프로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하면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1.5군으로 대표팀을 편성하며 공산권 국가 못지 않은 전력을 구축한 것이다. 결국 서독, 스웨덴 1.5군에 털리고 튀니지와 무승부를 거두면서 1무 2패를 기록하며 무승으로 조 최하위로 광탈했다. 1990년에는 한중일과 북한, 홍콩이 참여하는 동북아 4개국 대항전인 다이너스티컵 창설하여 1회 및 2회 대회를 연속 개최하였고, 3회 대회는 반환을 앞둔 홍콩이 개최하도록 밀어주는 등 노력했지만 4개국 중 평균 3위라는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다. 결국 1998년 4회 대회를 끝으로 다이너스티컵은 폐지되었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그러다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의 지휘 하에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중국은 큰 승점차로 B조 1위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역대 중국 축구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월드컵 진출이며, 최종 예선에서 이와 비슷한 성적조차 낸 적이 없다. 대진운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운빨을 잘 받았다. [[대한민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예선에서 빠지고[* 만약 개최국을 제외하고 아시아에 4.5장을 주었다면 총 6.5장을 준 셈이니 그 자체로 진출 확률이 올라가는 거지만, 본선은 32개국만 나가니 그렇게 아시아에 몰아주진 않았다. 4.5장 중 한국과 일본이 미리 2장을 가져갔으니 남은 티켓은 2.5장뿐.] 남아있는 다른 강팀들이 죄다 다른 조에 배정되는 바람에 여유롭게 본선에 왔다. 이 때 최종예선이 어땠냐면 강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한 조에 들어갔다.[* 그래서 중동에서는 [[FIFA]]가 돈줄을 노리고 조편성을 조작했다고 믿고 있다.] 사우디, 이란, 바레인 등이 피터지게 싸우는 동안 중국은 상대적으로 쉬운 아랍에미레이트와 우즈베키스탄과 경쟁을 했다. 만약 사우디와 이란이 각각 다른 조였다면 이들이 무난히 조 1위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중국은 잘 해야 2위로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노려봐야 했을 텐데, 당시 대륙간 PO에 진출한 이란이 만난 팀은 아일랜드였다.[* 당시 아일랜드는 얼마 뒤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하고 스페인과 혈투를 벌인 끝에 승부차기로 아쉽게 탈락한 돌풍의 팀이었다.] 만약 조추첨 결과가 달라져 중국이 2위로 PO까지 갔다면 이란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본선에 진출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시드 배정을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에서 거둔 성적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만약 현행 방식인 FIFA 랭킹 순서대로 시드를 배정할 경우, 1차 예선 종료 후인 2001년 6월과 7월 기준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태국에 밀려 2시드가 됐을 것이다. 게다가 총 8경기를 치르며 2위와 승점 8점차로 여유있게 1위를 차지할 만큼 중국축구의 전력이 꽤 좋은 시절이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실력 자체가 없으면 어느 나라고 본선 진출은 어림도 없다. 북한이 남조선에 가기 싫다고 불참한 것도 한몫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최종예선은 곧잘 올라오던 전력이었고 특히 동아시아 국가 한정으로 전투력이 더 상승하는 팀이기 때문에 북한까지 꼈으면 저런 꿀조자체가 안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재 월드컵 본선 단골손님인 호주는 당시 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이 아니라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 소속이었다.[* 호주는 2005년 여름에 아시아로 이적했고, 2007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부터 아시아 소속으로 참가한다. 만약 호주가 저때부터 아시아 소속이었다면 중국 같은 약팀으로선 본선 진출은 꿈도 못 꿨을 것이고, 설상가상으로 호주가 아시아로 이사온 지금은 월드컵 진출이 더 어려워졌다.] 이렇게 좋은 상황들이 겹쳐서 중국의 월드컵 진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에서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브라질, 튀르키예, 코스타리카가 있는 C조에 들어가 '''3전 전패 무득점 9실점'''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세우면서 탈락했다.]] 그것도 경기마다 3골씩 퍼주면서 죄다 완패했다. 그저 브라질같은 세계적인 팀과 월드컵에서 싸워본 것만으로도 영광인 수준.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 똑같이 3패를 찍고 독일에게 0:8로 대패하면서 최다 실점까지 깔아준 덕분에 최종 꼴찌만 면했을 뿐이다.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도 그랬지만 한국이 4강까지 가버리자 시샘하는 눈이 많았는데, 특히 중국은 세계축구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 멘탈이 가루가 되었기 때문에 이게 심했고 중국 관영 언론에서도 자극적인 기사를 내면서 반한감정을 신나게 퍼뜨렸다. 그리고 한국 관중들이 중국팀을 딱히 응원해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웃나라끼리 이러기냐며--(?)-- 여기에서도 삐졌다고 한다.[* 한국 관중들이 일본 관중들처럼 남의 경기에서 강팀, 인기팀을 일방적으로 편들지는 않았지만, 쟤보다 못하면 안되는데 생각으로 지켜봤던 일본팀과는 달리 중국팀에게는 관심 자체가 없었다. 중국 원정팬들을 제외하면 재한 중국인이나 화교, 조선족들이 소소하게 모여서 응원한 정도. 그리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중공|역사적인 이유]]로 묻지마 까임을 당하기도 했다.(비슷한 이치로 미국팀도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파다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의적인 국민들이 많아 대접은 잘 받았다) 당시 한국인들 중 4강까지 갈 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조별리그만 통과하자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 대회가 개최국이 2개였기 때문에 종전 방식으로 토너먼트를 하면 한국에서 경기한 팀은 계속 한국에, 일본에서 경기한 팀은 계속 일본에 있게 되는 문제가 있어서 A조와 C조, E조와 G조는 조별리그를 통과한 후 다른 국가에 가야 했다. 그래서 D조의 한국이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든 2위로 통과하든 C조의 중국과 만날 일은 두 국가 모두 결승전에 진출하는 방법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C조에는 6.25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해 도와준 튀르키예(당시 터키)가 있었기 때문에 C조의 스포트라이트는 세계 최강급 팀인 브라질과 상기의 이유가 있는 튀르키예가 양분했다. 튀르키예와 중국의 경기에서 중국을 응원한 한국인보다 튀르키예를 응원한 한국인이 더 많은 이유였다.] 그래서 지금도 2002 월드컵 얘기가 나오면 계속 조작, 편파판정 드립을 치면서 한국을 깎아내리는 중국인이 많다. 중국 국대가 본선 진출에 성공한 국제 대회는 전부 한국에서 열린 대회들이다. [[1988 서울 올림픽]]과[* 지금 올림픽은 23세 이하 대표팀이 출전 하지만 88년 서울 대회 까지는 일반 국대가 올림픽에 출전했다. 연령별 대표팀이 출전한 건 다음 대회인 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인데, 월드컵은 일본과의 공동 개최지만 조별리그 전 경기를 한국 경기장에서만 치렀다. === 2003년 이후 === 2004년에는 자국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에서 일본에게 결승전에서 3-1로 패배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회 내내 중국에 유리한 편파판정이 난무했기 때문에 그다지 인정받지는 못한다. 게다가 대회 후 극성 치우미들은 결승전 일본 대표팀의 신의 손 사건만 부각시키는 뻔뻔함을 보였다. 일부 축구팬들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가 중국팀의 전성기였고,[* 그나마 중국 축구의 전성기는 2000년 ~ 2004년까지로 볼 수있으며, 이 시기에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2000년 아시안컵]] 4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월드컵]] 본선진출, [[2004 AFC 아시안컵 중국|2004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해냈다. 2005년엔 해외파를 제외한 한일 양국을 제치고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동아시안컵 우승]]까지 해냈다.] [[중국화/축구|중국화]]의 미신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선수들이 유럽에 꾸준히 진출해서 실력이 상승했는데, 중국만은 [[중국 슈퍼 리그]]가 출범(2004)한 후에 도리어 실력이 퇴보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드는 근거는 중국 국대가 아시안컵에서도 조별예선 통과 이상의 성적은 꾸준히 내고 있었고, 월드컵 본선도 어쨌거나 한 번 밟아 봤다는 것. 그리고 이 당시 중국의 여러 선수([[둥팡줘]](맨유), [[정즈]](찰턴), [[리톄]](에버튼), [[리웨이펑]](에버튼), [[쑨지하이]](맨시티)[* 이 항목에서 같이 언급된 5명 중 가장 큰 활약을 했다. EPL무대에서 100경기를 넘게 뛰었고, 그만큼 실력도 좋았기 때문에 만수르가 구단을 인수하기 이전의 암흑기 시절 맨시티 레전드로 기억하는 현지 팬도 많다.], [[하오하이둥]](셰필드))이 [[EPL]]에 진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사실이 아니다. 현재 중국이 이 당시보다 피파랭킹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이나 일본도 랭킹이 2002-04년보다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이니, 딱히 중국만 퇴보했다고 보긴 힘들다. 아래 나오지만 최종예선까지는 간 1998년[* 1차 예선 8조에서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베트남을 밀어내고 최종예선에 올라갔으며, 최종예선 A조에서 사우디, 이란, 카타르, 쿠웨이트라는 중동 강호들과 한 조가 되었다. 이 조에서 3승 2무 3패를 기록하며 3승 3무 2패를 기록한 이란에 승점 1점차로 밀리며 탈락했다. 사실 이란을 넘었다 해도 일본과의 플레이오프를 이겨야 했고 여기서 패배시 오세아니아 1위인 호주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야만 했기에 본선 진출은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과 여러가지 특수한 상황이 겹친 2002 월드컵 이후 중국은 2006, 2010, 2014년 모두 최종예선에 발을 딛지 못했으나, 2018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드디어 최종예선에도 나갔다.[* 물론 최종예선이 12개국 체제로 확대된 덕도 있다. 하지만 득실차로 아쉽게 밀린 2006년 예선이라면 모를까, 2010년, 2014년 예선 때 보여준 퍼포먼스로는 아시아 12위 안에 들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 전에도 몇 번인가 최종예선에 올라온 적이 있기는 한데, 당시 중앙아시아 국가들(우즈베키스탄 등의 강호들)은 소련에 소속되어 있어 존재 자체가 없었고, 아예 월드컵 예선에 불참하는 국가들도 상당히 많았다. 때문에 경쟁이 지금만큼 치열하지 않아서 지금과 1대 1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중국이 아시안컵에서 실력에 비해 매우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아시안컵 승점수로만 따지면, 중국은 이란, 한국, 일본에 이어 4위다. 본격적으로 중화민국을 축출하고 나온 1976년부터 따지면, 준우승(1984, 2004)에 3위(1976, 1992), 4위(1988, 2000). 이 기간동안 한국(준우승 3번(1980, 1988, 2015), 3위(2000, 2007, 2011), 4위(0번)과 비교해보라.] 2004년 준우승(그것도 홈개최)을 했는데 이후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더 안 나온다는 이유로 퇴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리그가 워낙 돈이 몰려서 고연봉을 받기 때문에, 중국 선수들이 해외진출을 기피하고, 이렇게 고인물이 되다보니 고연봉에 비해 실력이 별로라는 지적은 맞다. 중국리그와 중국 국대가 [[EPL]]과 잉글랜드의 나쁜 점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냥 아시안컵 위상이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점점 실력대로 성적이 결정되어 갔다고 보는 편이 옳다. 또한 2000년대 초반 [[EPL]]에 진출한 중국 선수들은 중국시장 개척전략 및 스폰서빨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 벤치신세를 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쑨지하이]]는 리그에서 강팀은 아니었지만 [[맨시티]]에서 몇 년간 주전으로 상당한 활약을 했고, [[리톄]]는 [[에버튼]]에서 어느정도 활약했다.] 온전한 실력으로 진출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중국 리그에서 오가는 돈이 커치고, 빅리그에 가 봤자 몇년간 경기에 뛰지도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진출을 안 하게 되었다.[* 중국인 선수 입장에서는 스폰서 빨로 빅리그나 빅클럽에 가봤자 [[둥팡줘|벤치 신세만 지고]], 그보다 수준이 낮은 유럽 리그들에서 천신만고 끝에 주전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10~20억의 연봉이 보장된 중국 리그 주전보다 돈을 훨씬 적게 준다. 거기다가 [[세금]]도 엄청나게 떼인다. 이런 리스크를 보면 개인 입장에선 답이 나온다. 축구팬들 입장에선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또는 "도전이 아름답다"고 쉽게 말하지만, 선수 본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 합리적일지는 불문가지다. 일부 축구팬들이 주장하듯이 딱히 중국인들의 멘탈이 나빠서가 아니다.] 2004년에는 고작 7만 명의 인구를 가진 [[안도라 축구 국가대표팀|안도라]]를 상대로 0대0으로 비기는 굴욕을 당한 적도 있다. 200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2차 예선 4조에 포함, 홍콩, 말레이시아, 쿠웨이트와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5승 1패로 쿠웨이트와 동률을 이뤘으나, 다득점에서 뒤진 바람에 최종 3차 예선에 올라가지 못했다. 설사 올라갔다고 해도 한국, 사우디, 우즈벡, 쿠웨이트(A조)[* 일본, 이란, 바레인, 북한(B조)]로 구성된 최종 3차 예선에서 A조로 가든 B조로 가든 쉽게 뚫기 힘들었을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축구 본선에서는 1무 2패, 조 3위로 탈락했다.[* 4위는 같은 1무 2패지만 골득실에서 밀린 뉴질랜드.] 사실 국대가 아닌 연령별 대표팀이었던 데다가 개최국빨로 자동진출했지만, 이 조는 브라질과 벨기에라는 2강 국가들이 있어서 8강은 보나마나였다. 브라질은 다 알다시피 올림픽과 월드컵의 전통적 강호이고, [[호나우지뉴]]와 [[마르셀루]]가 포함되어 있었다. 벨기에는 당시 피파랭킹에는 중위권이었지만, 이후 황금세대의 주축이 되는 선수들이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이기는 것은 힘들었다. 즉, 당시 벨기에는 [[마루앙 펠라이니]](맨유), [[무사 뎀벨레]](토트넘), [[얀 베르통언]](토트넘), [[케빈 미랄라스]](에버튼), [[뱅상 콩파니]](맨시티), [[토마스 베르마엘렌]](아스널) 등등의 미래 특급선수들이 다수 포함된 팀이었다. 이들이 이 다수 들어간 2014 월드컵의 벨기에팀에게 대한민국 [[홍명보호]]도 벨기에가 한 명 퇴장당했음에도 일방적으로 밀리는 졸전을 하다가 ~~운좋게~~ 1-0으로 졌을 정도였기 때문에, 2008년 당시의 중국은 더 이기기 힘들었다. 결국 [[둥팡줘]]의 한 골로 뉴질랜드와 1-1로 비기는 것으로 전패는 면했다. 2010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3차 예선 1조(중국, 카타르, 이라크, 호주)에 포함되었으나, 1승 3무 2패의 조 최하위로 4차 최종예선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사실 이때 프랑스를 이긴 것도 중국이 잘 해서 이겼다기보다는 당시 프랑스가 중국보다도 더 [[개노답]]이라서 그나마 이겼던 것이다. 이후 프랑스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월드컵 본선]]에서 '''[[남아공 쇼크]]'''라는 대사건을 일으킨다.] 201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3차 예선 A조(중국, 싱가포르, 요르단, 이라크)에 포함되었으나, 3승 3패 3위로 4차 최종 예선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2015년 아시안컵에서는 사우디, 우즈벡, 북한을 이기며 조 1위로 8강에 올랐으나 8강전에서 개최국 호주에게 패배하였다. 2018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그동안 번번히 2-3차 예선에서 고배를 마시던 전통을 깨고 '''최종예선까지 올라왔으나''' 2차 예선 치르고 최종예선 올라온 것이고 2차 예선에서는 홍콩, 몰디브, 부탄을 상대하여 5승 1무를 거뒀다. 그리고, 카타르에게 1무 1패를 당해 조 2위를 거둔 것이었다. 그나마, 최종예선 한국, 이란, 카타르, 시리아, 우즈벡이 포함된 A조에서 카타르를 꼴지로 밀어내고 5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가오훙보가 사퇴한 이후 명장 [[마르첼로 리피]]가 새로운 감독이 되면서 경기력이 급상승하여 한국, 카타르, 우즈벡을 이김으로써 비록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떨어졌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다. 아시안컵을 앞둔 평가전에서 소위 23억의 지구매치라고 불린 2018년 10월 13일의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인도 대표팀]]과 비겼는데 가능성 있는 팀에서 다시 허접한 팀으로 돌아왔다고 비하당했다. 인도는 그동안 약체였지만, 2013년 인도 슈퍼 리그 출범 후 서서히 축구실력이 올라오고 있으며, 특히 2019년 인도팀이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나름 동남아의 맹주였던 태국을 4-1로 대파한 것을 봐서는 인도가 중국과 비긴 것이 딱히 중국팀이 졸전을 벌였다고 볼만한 근거는 되지 않는다. 2022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먼저 월드컵 2차 예선 조별국가로 시리아, 필리핀, 몰디브, 괌이라는 비교적 수월한 팀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같은 조에 편성된 괌이 중국과의 경기 전 자신들이 잡아본 인도도 중국을 상대로 선전한만큼 자신들도 해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아무리 톱시드 최약체라도 중국이 호구급은 아닌지라 무난하게 밟혔다.] 리피감독 아래서는 필리핀과 무재배를 하고, 시리아에 패해 최종결선 진출이 암담했으나, [[코로나 19]]사태 이후 2021년 5월 재개된 2차 예선에서 자국의 감독인 [[리톄]]감독 지휘하에서 4연승 (괌 7-0, 몰디브 5-0, 필리핀 2-0, 시리아 3-1) 을 하여 각조 2위팀 중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하였다. 최종예선에서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오만, 베트남과 함께 B조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종예선에서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베트남에게 승리한 1승을 제외하면 모두 비기거나 패하며 사실상 월드컵 직행은 요원해보이는 상황. 그나마 귀화선수들의 가세로 순위 싸움에 나름 태클을 거는 정도는 가능해보였으나, 이마저도 귀화선수들 대부분이 고국으로 돌아가버려서 이후로는 이조차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일본에 일방적으로 흐름을 내주며 2-0으로 패배했고, 이어 '''베트남에게 마저 3-1로 패배'''하는 졸전을 하며 결국 최종예선 탈락을 확정짓고 말았다.[* 게다가 저 1골도 승부처에서 들어간 골이 아니라 경기 흐름이 완전히 넘어간 후반전 추가시간에 간신히 넣은 골이기 때문에 [[스탯관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베트남[* 그런데 사실 축구의 불모지라고는 하지만 저 베트남은 '''일본과 무승부'''를 기록한 나름 강팀인 '''박항서호 베트남'''이었다.]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에 중국 축구팬들은 분노하다 못해 해탈해버렸다. 결국 B조 6팀 중 5위로 가볍게 탈락하였다.[* 6위가 베트남이긴 하지만, 베트남은 최종예선은 난생 처음인데다가 중국보다도 더 약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사실상 이 조 꼴찌인 셈이다. 게다가 중국은 예선 도중 베트남한테 사상 최초로 패하는 굴욕까지 당했었다.] 그렇게 대륙별 카타르 월드컵 예선도 다 끝나고 이제 본선까지 남는 기간 동안 다른 나라들은 A매치 친선경기를 가지면서 대표팀 별로 실력을 점검해보는 반면 중국은 그 어떤 나라와도 친선경기는 커녕 요청도 받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나라들도 중국을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하도 실력이 없다 보니 해도 별 의미도 없어서인지 아예 무시당하는 수준이 되었다. 또한 2022년 12월 26일에는 유소년 축구에서 [[승부조작]]이 적발됐다는 소식까지 보도되면서 중국 내에서는 '이러니까 중국 축구가 발전을 못하는 것이다'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437&aid=0000326537|기사]]. 내부에서부터가 얼마나 심각하게 부패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 2023년 3월에는 뉴질랜드 원정 2연전을 치렀는데 0:0 무승부, 1:2 패배를 당하며 또다시 중국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6월에는 다른 아시아 팀들과 달리 받아주는 팀이 없어서(...) 미얀마와 팔레스타인과 2연전을 해야 했다. 결과는 무난하게 4:0, 2:0 완승. 9월에는 김판곤 감독의 말레이시아와 1:1로 비기며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까지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고,([[https://youtu.be/bK1ZcKKVmOU?si=wNR_z_TN0z5Rugc0|참고 영상]])[* 영상에도 나왔다시피 한 관중은 [[우레이]]의 삽질에 열받아 화가 치밀어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거기에 이어 다음 경기인 시리아전은 경기 내내 슈팅을 난사하다가 90분 동안 유일했던 시리아의 1번의 유효슛에 실점을 내준 다음 후반 막판 이어진 침대축구까지 겹치며 또 0:1로 패했다. [[2026 FIFA 월드컵/지역예선/아시아]]에서는 2 포트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했는데 설상가상으로 [[2026 FIFA 월드컵/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에서 아시아에서 최상위권 팀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앞날이 어두워졌다. == 월드컵 진출의 좌절사 == >중국 선수들은 정신력이 없다. 중국 대표팀 선수들이라고 해도 A매치에서 선제 실점을 하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버린다. 한국이나 일본 대표팀처럼 팀이 지고 있을 때 하나로 합심해서 역전골을 넣어보자는 자세가 없다. 중국 선수들은 기본기도 부족하다. 수비수는 수비할 때 공을 내 몸 안쪽으로 유도해야 할지 바깥쪽으로 튕겨내야 할지도 판단하지 못한다. 요즘 외국인 감독들은 중국인 선수에게 자율적으로 훈련하라고 하는데 중국 선수들은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독일에서 뛸 때에는 감독이 동아시아의 문화를 이해했다. 그래서 선수들을 끈으로 묶어서 팀 훈련을 하면서 대형에 맞추어 간격을 지키도록 했는데 감독들이 누구든 그렇게 디테일한 터치가 있으면 선수들이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 >[[양천(축구선수)|양천]] 중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 때가 유일하다. 그나마 이것도 자국의 잠깐의 전성기와 상당한 운이 겹친 결과다. 일단 중국 월드컵 진출의 가장 큰 벽인 한국과 일본은 홈 어드밴티지로 빠져나갔고, 또다른 벽인 이란과 사우디와도 다른 조에 편성되는, 그야말로 기막힌 대진운 덕에 진출한 것이다. 1980년대 이전에는 [[중화민국]]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이유로 피파를 보이콧했고, 이후 피파가 중화민국을 축출하자 그제서야 피파에 가입해서 세계 축구 무대에 데뷔했다. 아시아권에서조차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한국, 일본, 호주, 이란과 같은 4강은 물론, 그 아래의 중동 - 중앙아시아보다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중화사상]]이 절대 적용될 수 없는 유일한 분야가 축구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 처음으로 진출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시드를 받아[* 한국과 일본이 있으면 중국은 웬만해서는 시드를 받기 힘드므로 자칫 잘못하면 이 두 팀, 혹은 이 두 팀에 필적하는 이란이나 사우디 등과 한 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강팀인 한국 일본이 없고 진출권 2장이 줄어드는 상황이 조편성에 더 유리한 것.] 자동적으로 진출하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같은 강호들을 피하고 상대들이 싸그리 약체, 그나마 상대적으로 강호도 [[아랍에미리트]]가 고작이던 환상의 꿀조를 만나 운좋게 겨우 진출했다. 이 대회에서 C조에 배정받았으나 [[브라질]], [[튀르키예]], [[코스타리카]] 등을 상대로 무득점 9실점,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였다. 최종 순위는 뒤에서 2위.[* 뒤에서 1위는 [[독일]]에게 0:8로 털린 [[사우디아라비아]]였다.] 특히 비록 이 대회의 우승국이긴 했지만, 지역 예선에서는 [[에콰도르]]에까지도 밀릴 정도로 죽을 쑨 브라질한테는 당연하게도 0:4로 압살을 당했다. 그나마 브라질전과 튀르키예전은 충분한 변명이 되는 게 원래 남미 지역예선이 치열한 건 일상 다반사인데다가 어쨌든 간에 브라질은 당시 대회 우승팀이었으니 중국도 0:4로 압살당한 게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고, 오히려 첫 대회 출전에서 전통의 강호이지 우승국인 브라질에게 4점만 내주는 선에서 끝낸게 선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당장 4년 전 대회에서 중국보다도 훨씬 강한 대한민국이 네덜란드에게 5:0으로 처참하게 박살난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으로선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물론 당시 개최지가 네덜란드와 인접한 프랑스여서 중립 경기장이지만 사실상 원정 경기였음은 감안해야 한다.] 튀르키예 역시 우승국인 브라질을 상대로 두 경기 모두 졌지만, 거의 접전을 펼쳤으며 또 다른 돌풍의 팀인 대한민국, 그리고 개최국 어드밴티지를 얻은 일본을 제치고 대회 3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기에 이런 팀한테 0:3으로 압살당한 것 역시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며 나름 중국치고는 선전했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그냥 못해서 패배했다. 결국 이 조의 순위는 [[승점자판기]]를 넘어 "득점자판기"였던 중국에게 골을 얼마나 잘 털어냈느냐에 따라 갈린 셈이었다. 당시 코스타리카는 [[파울로 완초페|완초페]], 폰세카 등을 앞세워 인상적인 공격축구를 했다. 터키와도 접전 끝에 1:1로 비겼으며, 브라질전에서도 막판에 무너지면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만찮은 화력을 뽐낸 바 있다. 2004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에 힘입어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진출하겠다고 선수단과 팬들은 자신했는데, [[쿠웨이트]] 원정에서 0-1로 패한 것이 끝내 발목을 잡아 5승을 거두고도 2차 예선에서 미끄러졌다. 하필이면 같은 조의 [[말레이시아]]와 [[홍콩]]이 승점자판기였던 탓에 쿠웨이트와 같은 5승 1패를 거두고 결국 다득점에서 14점을 기록해 15점을 거둔 쿠웨이트에게 밀려 탈락한 것이다.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는 [[호주]]·이라크·[[카타르]] 등과 묶이는 [[죽음의 조/축구|죽음의 조]] 편성이 나오는 바람에 광탈 크리를 맞고 말았다. 당시 호주와 안방경기를 벌일 당시 일부러 [[http://en.wikipedia.org/wiki/Kunming_Tuodong_Sports_Center|1,900미터 높은 고지에 위치한 경기장]][* [[윈난 성]] 성도 [[쿤밍]](해발 1,891m)에 위치해 있다.]에서 경기를 했지만[* 홈&어웨이 방식의 A매치에서 경기장 선택은 홈팀의 권리이다. 물론 2010년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당시 [[마라도나]]는 이걸 오히려 악용하는 바람에 브라질과의 홈 경기에서 1-3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결과는 조 꼴찌로 탈락하고 만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이라크]]·[[요르단]]·[[싱가포르]] 등과 한 조에 묶여서 비교적 무난하게 최종예선까지 진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4년 전 카타르와 이라크에 고전하던 것을 생각하면 중국 축구팬들도 어렵다고 평했고, 예상대로 싱가포르에만 2승을 거뒀고 마지막 6차전에서 요르단을 이겼지만, 이미 최종예선으로 진출 확정이 된 요르단이 마지막 경기는 쉬엄쉬엄 진행한 탓에 이긴 승리였기에 결국 3위로 또 다시 광탈하고 말았다. 게다가 아시안컵에서도 2007, 2011년 8강조차 가지도 못 하고 연속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해버렸다. 두 대회 모두 조별예선에서 만난 복병 [[우즈베키스탄]]에 덜미를 잡히고 탈락하면서 아시아 대회에서도 별것 아니라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6월에 가진 스페인과 친선경기에서 의외로 0-1로 패하는 통에 이걸로 당시 스페인에[* 2012년 5월 30일 친선경기.] 1-4로 대패한 한국보다 낫다고 우쭐거리긴 했지만, 1년만인 2013년 6월 6일, 또 우즈베키스탄에 평가전에서 1-2로 패했다.[* 다만 우즈베키스탄은 중국에서 치러진 2007년 친선경기에서 3-1로 이기긴 했다.] 그러나 며칠도 안 가서 가진 경기에서 우즈벡전 패배는 '따위'로 보일 정도의 대 굴욕을 당하는데, 바로 2013년 6월 15일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무려 '''1:5'''라는 믿기 어려운 스코어로 대참패를 당한 것이다. 태국과의 역대 전적은 그동안 12승 3무 2패였으니 명백한 중국의 우세고, 최정예로 나온 중국팀이었지만 태국 선수진들은 대부분이 23살 이하 올림픽 대표팀급이었다. 게다가 그나마 얻은 1점도 심판이 [[할리우드 액션]]에 넘어가 패널티 킥을 주는 바람에 간신히 넣은 오심이었다. 중국의 홈 경기[* [[허페이]](합비) 경기장에서 진행하였다.]였음에도 아시아 2류도 아니고 3류팀 정도에 불과한 태국, 그것도 U-23팀에게 이런 대패를 거두면서 현지 반응은 분노 그 자체.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관중들이 줄줄이 나가거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감독]]을 욕하더니 경기가 끝나자마자 팬들이 대표팀 차량을 에워싸며 단체로 항의를 했다.[[https://youtu.be/xaADA8-rR-k|#]][* "下课!(감독 짤라라!)", "解散!(대표팀 해산하라!)", "傻屄!(X신!)"를 외쳤다.] '''심지어 축구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시진핑]]도 참패 소식에 노발대발했다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였다.[[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3/07/04/0603000000AKR20130704083000103.HTML|#]]'''[* 다만, 이 기사는 대만 언론을 옮긴 거고, 그 대만 언론조차도 [[카더라 통신]]이라 신빙성은 그다지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 언론들보다도 신빙성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게 대만 언론이다. 또한 중국은 전통적으로 지도자가 대놓고 정서를 드러내는 걸 굉장히 꺼린다는 점도 있다.] 고작 한 경기의 후유증은 커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 3차 예선도 못 뚫은 이후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날로 입지가 위태롭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감독이었던 그 사람 맞다. [[http://ko.wikipedia.org/wiki/%ED%98%B8%EC%84%B8_%EC%95%88%ED%86%A0%EB%8B%88%EC%98%A4_%EC%B9%B4%EB%A7%88%EC%B4%88|#]] 1970~1980년대 현역 선수 시절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동했으며, [[울리 슈틸리케#s-2.2|울리 슈틸리케의 팀 동료였다]].]은 이 대패로 인해 계약 기간이 1년 남짓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경질당했다. 이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16강전에서 태국에 0:2로 패배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이 패배들을 잊지 못한 중국은 2014년 10월 10일, 태국과 재평가전을 가져서 안방에서 3:0으로 이기며 일단 설욕은 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C조#s-3.1.3|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에서는 조 톱시드를 받아놓고 홈경기에서 [[홍콩 쇼크|홍콩을 상대로 무를 캐며]] 자국팬들에게 또 욕을 먹었다. 굴욕을 당한 중국 국대는 홍콩과의 2차전 직전에 홍콩은 강하지 않다고 입을 털었지만, 원정에서 또 비겼다. 결국 [[알랭 페랭]] 감독은 전격 해임되고 후임으로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공한증을 깨는데 성공했던 [[가오훙보]] 감독이 재선임되었다. 다만 월드컵 지역 2차 예선까지만 맡기고 이후에는 외국인 사령탑을 재선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조 1위 자리를 카타르에 압도적으로 넘긴 터에 홍콩에 고전 끝에 2위를 차지한다고 쳐도, 꼴찌 부탄 전의 득점을 빼고 골득실을 계산한다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홍콩 쇼크|최종예선조차 못 가고 탈락할 가능성이 높았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카타르를 잡고 [[북한]]이 [[필리핀]]에 역전패를 당하는 기적으로 간신히 최종예선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월드컵 본선의 길은 멀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최종예선 3차전에서는 홈에서 조 최약체 '''[[시리아]]에 0:1로 패배했다'''. 이 패배로 중국은 A조 5위로 떨어지면서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결국 리피를 스카우트 해오는 감독 교체 초강수를 두었고, 이게 통했는지 한국도 잡고 우즈베키스탄도 잡더니 최종전도 이기며 PO티켓을 노려볼 만 했다. 그러나 초반에 하도 털린 것도 있고 막판에 조 상위에서 놀던 이란과 한국이 같이 삽질을 하면서 대륙간 플레이오프 티켓은 시리아가 가져갔다.[* 하지만 시리아에게 진게 비웃을만큼 시리아가 아주 약팀은 아닌 게 [[슈틸리케호]]도 2016년에는 0-0으로 비겼고 2017년 3월 홈에서 겨우 1:0으로 승리했다. 말하자면 중동축구에 약한 것은 한중일 동아시아 팀이 가진 징크스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최종예선까지는 갔지만 역시나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호주 등에 밀리며 일치감치 하위권에 맴돌다가 조 최약체 '''[[베트남]]에게 3:1로 패배하면서''' 결국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 당시 [[베트남]] 원정에서 치른 경기였다.] 한국에서는 클릭장사 때문에 중국 축구가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말한 한일+호주+중동국가의 다음으로 아시아 중위권 정도는 된다. 당장 2021년 10월 기준 AFC 랭킹에서는 회원국 45개국 중 9위였다. 사실 아시아 축구 강국들인 한국, 일본, 호주나 피지컬이 서구와 맞먹는 중동국가에게 번번히 덜미를 잡혀서 그렇지 [[동남아시아]] 상대로는 역대 전적상 극강이긴 하다. 2018년까지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치른 A매치는 총 123경기로, 중국은 이들 국가를 상대로 88승 19무 16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자랑하고 있다. 사례별로는 대 태국 28전 18승 5무 5패, 대 말레이시아 20전 12승 5무 3패, 대 싱가포르 20전 11승 6무 3패, 대 필리핀 19전 16승 1무 2패, 대 인도네시아 15전 10승 2무 3패이고, 캄보디아, 미얀마, 브루나이, 라오스 상대로는 각 5, 4, 4, 2번을 만나 전승을 거두었다. 의외로 일본 상대로도 역대 A매치 전적이 그렇게 밀리지 않는다.[* 27전 7승 7무 13패.] 그러나 뜯어보면 1917년부터 1980년까지 학살해 놓은 옛날의 영광이 대부분이다. 중국이 마지막으로 일본을 격파한 것이 무려 25년 전인 1998년 다이너스티컵 2:0 승리이다. 이후 25년 동안 '''11전 5무 6패'''로 승리가 없다. 참고로 중국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만나 [[공한증|승리를 거두지 못한 기간]]이 1978년부터 2010년까지 32년이다.[* 다만 이 기간은 이견이 있다. 1980년대 중국이 한국을 격파한 경기는 1983년 12월 17일 머라이온컵(2-0), 1984년 9월 3일 메르데카컵(1-0), 1986년 1월 18일 네루컵(2-1)인데, A매치 기록에는 올라 있으나 당시에는 프로의 출전 자격이나 규정 등의 미비함 때문에 현재의 A매치와는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어렵다.] == 부진의 원인 == [youtube(EBxIsCBLfeo?si=jW2MdyNLuJbXTdjr)] [youtube(-AAuvcmlEac)] >[[시진핑]] : (태국 총리에게) "총리님도 축구 좋아하십니까?" >[[세타 타위신]] : (시진핑에게) "네. 좋아합니다. [[2026 FIFA 월드컵/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C조|어제 중국이 태국을 이겼잖아요.]]" >시진핑 : (통역사에게 중국이 태국을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이거 실화냐|정말요?]] [[뽀록|그런데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됩니다|왜냐하면, 저는 지금 우리 축구 대표팀의 수준에 대해 (잘 한다고) 확신할 수 없어요. 기복이 있습니다.]]"''' >---- > - [[2023년 APEC 미국 샌프란시스코 정상회의|2023년 APEC 정상회담]]에서 [[시진핑]]과 [[세타 타위신]]의 대화에서 나온 장면이다. 그 [[중국 내셔널리즘|오만하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데다]] 축구를 좋아해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시진핑조차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실력을 믿지 못하면서 형편없다고 겸허하게 인정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물론, 중국 축구의 전반적인 평가를 감안한다면 "기복이 있다" 같은 표현도 최대한 순화해서 하는 말이다. 일단 표면적으로만 보면 중국은 뛰어난 축구 선수를 배출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여럿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인구''' 중국은 14억에 달하는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나라로, 이는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즉, 이론상으로는 중국 안에서 축구를 잘 하는 23인을 모으기가 어지간한 인구 대국들보다도 쉬워야 한다. 비록 빈부격차가 심하고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어 있기에 모든 중국 국민들이 스포츠를 향유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걸 감안해도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스포츠가 제대로 발전할 정도의 계층을 추려내도 스포츠 빅마켓이라는 [[미국]] 인구의 3배, 축구에 가장 열성적인 두 대륙들인 [[유럽]]과 [[남아메리카]]의 인구를 합친 수준에 달한다. 참고로 축구 이외의 종목들에서는 이것이 실제 성과로 이어져서, 중국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최강국인 [[미국]] 다음가는 [[올림픽 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 안에서는 2, 3위의 스포츠 강국을 다투는 한국, 일본과 함께 3강이라고 할만하지만, 한국, 일본같은 스포츠 강국과의 격차는 실로 엄청나다. 이들은 같은 아시아권 팀이 아니라 러시아나 미국같은 스포츠 초강대국을 라이벌로 여긴다. *'''막대한 경제력''' 중국은 GDP 2위 국가이며, 이러한 경제적 규모를 바탕으로 G2를 자처하고 있다. 물론 1인당 국민소득은 이제야 1만 달러를 겨우 찍었고 상술했듯 양극화도 심하지만, 그래도 국가 전체의 돈만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으므로 축구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도 그만큼 많다. 러시아나 인도처럼 정부 자체의 예산이 매우 풍족하고 중앙정부의 힘이 그야말로 막대하기 때문에 국책사업을 벌이기에도 최적의 조건이다. 적어도 돈이 없어서 안 되는 건 아니란 것이다. 게다가 국가대표팀은 인구가 어떻든 간에 23명 스쿼드로 구성된 단 하나의 팀만 있으면 되므로, 막대한 인구와 GDP를 모두 갖춘 중국은 이런 점에서도 국가대표팀을 운영하기에 유리하다. *'''중국 지도층의 축구에 대한 열정''' 국가에 충분한 돈과 사람이 있어도, 그 국가의 지도층들이 축구에 관심이 없다면 축구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것도 아닌 게, 중국 지도층들의 상당수는 열정적인 [[축빠]]다. 생전에 축빠로 유명했던 [[덩샤오핑]]의 소원 중 하나도 자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FIFA 월드컵]]에 나가는 걸 보는 것이었고, 현재 중국 주석 [[시진핑]]도 축구광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부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자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육성하는 데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 *'''외국 축구 관계자들의 중국 축구에 대한 관심''' [[FIFA]]를 비롯한 세계 많은 축구 관계자들이 진심으로 중국 축구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에서 축구가 흥하면 그만큼 축구시장의 파이도 커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2016년에 FIFA 회장인 [[잔니 인판티노]]는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48장으로 늘리겠다는 말을 했으며, 중국의 월드컵 진출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국 48개국 확대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줬을 정도다. 물론 이는 FIFA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 시장 전반을 염두에 둔 발언이지만, 중국의 비중과 영향력이 큰 것도 사실이다. *'''[[중국 슈퍼 리그]]의 존재''' 중국에는 중국 슈퍼 리그라는 거대한 축구 리그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중국 슈퍼 리그에는 [[디디에 드록바]], [[에세키엘 라베시]] 등 쟁쟁하고 위상 높은 선수들도 뛴 적이 있으니 슈퍼스타들의 좋은 플레이를 보고 배울 기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여러 유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축구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외국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중국 축구의 약세를 세계 최대의 미스터리라고 칭할 정도다. 물론 이러한 양상이 정말로 오리무중인 건 아니고, 중국이 축구를 못하는 것에 대해 아래의 이유들도 거론되고 있다. *'''인구와는 무관한 스포츠 인재''' 단거리 육상 강국 [[자메이카]]의 인구는 300만 명 정도뿐이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국 [[크로아티아]]의 인구는 400만 명, 남미의 축구 강국 중 하나이자 월드컵에서 두 번(1930, 1950)이나 우승한 [[우루과이]]는 인구가 300만 명대에 불과하다. 70년대부터 수많은 월드 클래스들이 즐비한 유럽 전통의 강호 [[네덜란드]]도 인구가 1700만 명 정도이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는 [[포르투갈]]도 1000만 명 정도이다. 월드컵에서 우승 3번 이상 달성한 4개국인 [[브라질]](2억 1600만 명 정도), [[이탈리아]](5880만 명 정도), [[독일]](8400만 명 정도), [[아르헨티나]](4500만 명 정도) 중에서 인구가 1억 명이 넘는 나라는 [[브라질]] 뿐이다. 즉, 어떤 스포츠에서 배출되는 뛰어난 선수의 수는 그 나라의 인구만으로 단정짓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 물론 중국은 사람이 워낙 많은 만큼 신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수로만 따졌을 때는 많겠지만, 그들이 축구를 최우선으로 선택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상술했듯 중국은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들에서는 올림픽을 비롯한 여러 국제 대회에서 상위권에 드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시작된 현대적인 축구 문화'''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던 1949년에 중화민국은 타이완 섬으로 후퇴([[국부천대]])했는데, 중국의 축구 지도자들 대부분도 이를 따라 [[대만]]으로 가버린 탓에 중국 축구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중국축구협회]]가 와해되고 말았다. 거기다 중공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대만 지위 문제를 두고 국제 사회에서 갈등을 빚었고, 이러한 불편한 상황 속에서 자국의 대표팀이 부진하자 [[FIFA]]에서 탈퇴해버렸다. 이로 인해 중국의 FIFA 재가입 전까지 중국 축구의 국외 교류는 공산권 국가들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문화대혁명]]이라는 악재까지 닥치면서, 중국의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축구 역시 전통이 깡그리 단절되기에 이른다. 즉, 중국의 현대적인 축구 문화는 1980년대에 비로소 새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중국의 굴곡진 축구 근현대사의 여파로 인해, 중국에는 유능한 축구 지도자들이 많지 않다. *'''축구 인원 부족''' 중국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 2013년까지 [[계획생육정책]]을 강도 높게 시행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중국 학부모들은 하나뿐인 귀한 자식이 불안한 운동선수의 길보다는 안정적인 학업을 선택하길 원한다. 그래서 중국의 어린이들은 축구선수가 되려는 꿈을 가지기 어렵다. 중국에서 감독을 했던 [[이장수]]는 "중국 유소년 축구 인구는 겨우 몇 천명 수준으로, '''한국보다 적다.'''"라고 밝힌 적이 있으며, [[스웨덴]] 출신의 [[스벤예란 에릭손]]도 "중국의 유소년 축구 인구가 터무니없이 적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의 부재''' 중국은 [[육상]], [[수영]], [[체조]], [[탁구]] 등, 올림픽 메달을 따기 용이하고 적은 비용으로도 성과를 보기 쉬운 개인 종목 위주로 엘리트 체육을 육성해왔다. 그러다 보니 축구처럼 돈이 많이 들고 선수 하나가 아니라 리그를 키워야 하는 단체 종목의 육성은 오랫동안 무관심했고, 자연스레 유소년 육성 시스템도 자리잡지 못했다. 당시에는 체육부도 구성되지 않은 일반 학교에서 재능이 특출난 유망주들을 발굴하는 식으로 선수를 수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중국은 자국 대표팀이 여러 굴욕을 당한 201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소년 시스템을 정비하며 축구에 온갖 투자를 하고 있는데, 7~8년 정도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프로 선수의 해외 진출 동기 부족''' 대부분의 축구 선수들은 축구판 메이저리그라 불리는 유럽에 진출하는 것을 소원이자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원인은 다름아닌 자국 리그인 [[중국 슈퍼 리그]]의 막대한 연봉 때문이다. 상술한 중국 정부의 축구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로 인해, CSL의 연봉은 2010년대부터 K리그와 J리그를 뛰어넘어 아시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때 중국의 국민 소득이 4,700달러, 한국이 23,000달러, 일본이 37,000달러 정도였다는 걸 감안하면, 자국 리그에서 뛰는 중국 선수들은 실력에 비해 엄청난 고연봉을 받고 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중국 축구 선수들은 언어, 현지 문화 적응 등 외국인으로서 겪을 어려움을 감내하면서까지 해외로 진출할 동기가 사라져버렸고, 그 결과 중국 축구는 세계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중국 슈퍼 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 선수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실력 저하로 이어지게 되었다. [[디디에 드록바]]의 경우만 하더라도 [[중국 슈퍼 리그]]에서 주급을 엄청 많이 준다는 이유로 이적했으나 정작 가서 생활해보니 돈만 많이 주지 게으르고 체계적이지도 못한 훈련을 하는 탓에 선수생명 버리기 딱 좋은 조건인지라 얼마 동안 선수로 뛰어 보더니 바로 도망쳐버렸다. *'''선수들의 부실한 자기관리''' 본래 체육인은 철저한 식단 관리 및 근력 운동 등을 통해 몸관리에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중국의 축구선수들은 이에 게으른 모습을 자주 보이는 바람에 자국민들의 비판을 듣곤 한다. 중국에서는 자국 국대 선수의 형편없는 실력을 비하하는 '궈쭈(国猪)'[* 국가대표 [[돼지]]라는 뜻이며, 한국어로는 '국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닭[[백숙]](白斩鸡)'[* 구글에 白斩鸡를 입력하면 자동완성으로白斩鸡 国足이 뜰 정도다.[[https://www.google.com/search?q=%E7%99%BD%E6%96%A9%E9%B8%A1%E5%9B%BD%E8%B6%B3&sca_esv=584789655&tbm=isch&source=lnms&sa=X&ved=2ahUKEwiJjMeWwdmCAxUUVN4KHcKXASYQ_AUoAXoECAIQAw&biw=1920&bih=937&dpr=1|#]]] 같은 멸칭까지 있을 정도다. [[이장수]]의 증언에 의하면 중국의 [[꽌시]] 문화에선 [[술]]과 [[담배]]가 보편적인 관계형성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이게 축구선수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경기 전날에도 술판을 벌이거나 평소 흡연을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하며, 본인이 감독이 된 후 이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중국 축구가 도통 발전을 못 하는 이유에 대해 한 국내 매체에서 정리한 [[http://www.sports-g.com/2016/08/30/%EC%A4%91%EA%B5%AD%EC%9D%B4-%EC%B6%95%EA%B5%AC%EB%A5%BC-%EB%AA%BB%ED%95%98%EB%8A%94-7%EA%B0%80%EC%A7%80-%EC%A7%84%EC%A7%9C-%EC%9D%B4%EC%9C%A0|칼럼]]이 있다. 축구 전문 기자 [[김현회]]에 의해 2016년에 작성된 칼럼이지만, 2023년에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즉, [[제자리 걸음#s-1|7년이 지났지만 발전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https://blog.naver.com/finalboss124/221257641102|중화사상과 한자가 선진축구 흡수를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과, 중국 지도부의 과한 관심이 오히려 [[https://brunch.co.kr/@kys401/111|중국축구를 망치고 있다]]는 분석 등도 있다. 하지만 중국 국내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가장 크고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중국 특유의 '''[[꽌시]] 문화에 의한 부정부패'''를 원인으로 거론한다. 심지어 2022년에는 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유소년 리그에서 노골적으로 [[승부조작]]을 하다가 적발되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로 중국 축구계는 정말 위아래 가릴 것 없이 완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어 있는 상태이다. [[https://youtu.be/gWPbTNrCRRs?t=430|꽌시(关系)문화는 어떻게 유소년 축구를 망치고 있을까?]] 현재 중국 민중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심정은 가히 애증(愛憎)에 가깝다. 이웃집 아저씨부터 CCTV 앵커까지 공공연히 중국 대표팀 이야기가 나오면 씹어대기에 바쁘며[* 이러다 보니 중국인들은 "중국 축구란 독재국가인 중국에서 유일하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욕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인으로 위장하고 잠입하여 대표팀 경기를 관람한 한국인 유튜버 [[캡틴따거]]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쪽에서는 이른바 "환불해!"(退钱!) 따거가 유명하다. 과거 중국 국대의 경기가 졸전으로 끝난 뒤 한 앵커가 관중과 인터뷰를 하던 중 졸전에 극대노했던 남성 하나가 "우리를 볼 면목이 있냐! 씨발놈들아! 환불해!"라며 욕을 퍼붓고 이에 앵커가 벙쪄버린 일이 있었는데, 당시 영상이 중국 웹에서 유명해졌다. 아이러니한 건 해당 발언 직전 앵커의 발언이 "축구 팬들은 마지막 1초까지 국가대표 축구팀의 곁을 지켰습니다"였다는 것. ~~욕 퍼붓기 위해 끝까지 참고 남아있는 거라 카더라~~ 참고로 해당 남성은 실제로 거의 모든 중국 국대전에 찾아갈 정도로 축구 광팬이라고 전해진다.] 국가대표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중국 대표팀을 향해 쌍욕을 퍼붓거나 심지어 타국 대표팀에게 응원을 보내는 극단적인 경우까지 쉽사리 관측된다. == 험난한 도전기 == >중국의 유소년 축구 선수들도 재능이 출중하다. 스프린트도 잘하고 턴 동작도 빠르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 유럽파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속도는 10~12세 선수들이 가장 빠른데 이때 기본기를 쌓아야 하고 14~16세 시기에는 벌크업하기보다 스프린트를 연습해야 한다. 내 청소년기에는 이것을 몰라서 근육부터 키우기도 했지만 최근의 프로팀 유스 지도자들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축구가 일반에 보급되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리그들을 만들고 충분한 지원이 있어서 향이나 촌 단위에서도 축구팀이 있고 그들이 1부리그 팀이 될 수 있다면 [[손흥민]]만한 선수나 [[리오넬 메시]] 같은 중국인 선수를 10명 만드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양천(축구선수)|양천]] 중국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광저우 헝다|우승한 팀도 생겼고]], 세계 최고의 인구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시장성을 지닌 국가다. 미래에는 중국 축구가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축구 진흥책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해가 2015년이었고, 당연히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가 1-2년만에 빠르게 성과를 내기는 불가능하다. 중국 측도 50년 후를 바라보고 추진하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만약 그런 식으로 단기간에 국가대표팀의 축구 실력이나 리그의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프로젝트 자체도 필요없을 것이다. 특히 위에서 기술한 대로 중국의 현대 축구 역사는 1980년부터 시작됐다. 2015년부터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팀들이 선전하고 있으며, [[마르첼로 리피]], 그리고 [[리톄]] 부임 후 몇 가지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중국 축구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축빠]]가 많은 자국인들의 열성적인 응원 역시 중국 축구를 앞으로 더 성장하게 만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이미 여러 전문가들도 다시는 중국 축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 축구가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라는 [[https://www.sports-g.com/2016/09/01/%ec%b9%bc%eb%9f%bc-%ec%a4%91%ea%b5%ad%ec%9d%b4-%ec%b6%95%ea%b5%ac%eb%a5%bc-%ec%9e%98-%ed%95%a0-%ec%88%98-%ec%9e%88%eb%8a%94-7%ea%b0%80%ec%a7%80-%ec%a7%84%ec%a7%9c-%ec%9d%b4%ec%9c%a0|언론 매체의 분석]]도 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 현재 이런 장미빛 전망은 빛이 많이 바랜 것은 물론 사실상 [[일장춘몽]]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그간 [[축구]]에 뭉칫돈을 투자했던 중국 거대 기업들이 경영 실적 악화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로 축구에 투자를 많이 줄인 상황. 때문에 중국의 프로축구 구단에서는 옛날처럼 거액의 [[연봉]]을 지급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외국인 지도자와 유명 선수들이 속속들이 중국을 떠나 버렸다. 게다가 중국 국가대표팀은 용병 선수를 대거 귀화시켜서 전력 강화를 시도했지만, 이 귀화 선수들은 전혀 시너지를 보여주지 못했고, 이것들이 원인이 되면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지역예선(아시아)/최종예선|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도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그간 역대전적 무패였던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과의 원정경기에서 졸전 끝에 1대3으로 최초로 참패하기도 했다.[* 또한 이 경기는 중국의 지역예선 탈락 확정 경기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외신들은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됩니다|중국 축구는 앞으로도 평생 안 될 것]]이라면서 부정적으로 보고 있고, 자국인들도 [[우린 안될 거야 아마|우린 앞으로도 평생 안될 거야 아마]] 식으로 한탄만 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은 1998년에는 [[다이너스티컵]]에서 홈팀 일본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었고, 2002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며, 1984년과 2004년 아시안컵에서도 결승에서 사우디나 일본에게 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하긴 했지만 1984년엔 대표팀이 부상하기 직전이었고, 다음 홈에선 홈빨로 준우승이라는 기적같은 성적을 거둔 적이 있었다. 즉, 중국 축구는 지금처럼 축구에 그렇게 거액을 들이지도 않았고 국민들의 관심도 그렇게 높지 않았던 20년 전에 오히려 더 강했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일본의 축구 전문가나 매니아들도 차라리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중국 축구가 지금보다 훨씬 강했다는 의견을 많이 내비친다.[* 실제로 이 시기에만 [[양첸]], [[쑨지하이]] 등 유럽에서 나름의 성과를 낸 선수들이 나왔다.] 현재 중국 축구의 상황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또한 너무 과한 투자가 항상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 [[마르첼로 리피]]호 === 2016년 10월 22일, [[FIFA 월드컵]]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횟수가 무려 4회에 빛나는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마르첼로 리피]]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전까지의 전적은 1무 3패로 자력진출은 힘든 상황. 하지만 250억 연봉의 리피감독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일신하는데 성공한다. 대표적 사례가 창사에서 치러진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로 공한증의 한국을 1-0으로 꺾어버렸다. 게다가 그 1골도 정교한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나온 것. 리피감독은 [[가오훙보]] 감독의 색깔을 완벽하게 지워버리고, 공격과 역습이 가능한 팀으로 변모시켰다. 월드컵 최종예선 전반에서 1무 3패를 기록한 가오훙보호를 물려받은 리피호는 3승 2무 1패를 기록, 중국팀을 일신시키는데 성공한다. 비록 A조 최강이었던 이란에게는 패배했지만, 어떻게 보면 중국팀에게 있어서 이란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한국을 1:0으로 이겼고, 카타르 원정에서는 첫골을 얻어먹고도 2-1로 역전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전반기의 부진을 떨쳐내지 못하고 최종예선 5위로 탈락했지만 2위인 한국과 승점 3점차, 시리아와 우즈벡과는 1점차로 아쉽게 탈락했다는 점에서 중국 측으로서는 희망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리피 감독은 "중국팀의 문제는 자신감이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며 패배에 주눅든 선수들의 승리 본능을 일깨워주는데 힘썼다. 2017년 여름 U-20 국가대표팀이 독일의 4부리그 [[레기오날리가]]의 남서부지구에 참여하려 했으나, 논란을 일으키며 결국 정식 리그전이 아닌 친선전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마저도 일부 관중이 경기장에 [[티베트]] 깃발를 내건 것에 대해 반발, 1게임 마치고 참여를 포기했다. 2017년 11월, 한국대표팀과 똑같은 상대인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졌다. 0-4, 0-2로 각각 참패했는데, 한국 대표팀이 2-1 승리, 1-1 무를 기록한 것을 보면, 중국 국대가 잠시 피파랭킹에서 한국을 앞서긴 했지만 실력면에서 앞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 패배로 다시 11월 피파랭킹에서 한국 국대는 59위, 중국은 60위로 한국이 앞서기 시작했다. 한편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2020년까지 재계약을 했다. 축구감독으로는 [[무리뉴]]에 뒤이어 2000만 유로로 세계 2위의 연봉을 받는 리피가 얼마나 중국 축구의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8년 3월 22일 [[차이나컵]] [[웨일즈 축구 국가대표팀|웨일즈]]전에서는 [[가레스 베일]]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6-0으로 참패했다. 리피도 화가 났는지, "선수들의 정신력이 문제있다."고 일갈. 뒤이어 체코와 치른 3위 결정전도 편파판정의 힘입어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후반전에만 4골을 먹혀 패배했다. 2018년 5월부터 태국, 미얀마 등과 꾸준히 치러온 평가전은 승리하였으나 하필 9월에 카타르와 치룬 평가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점점 리피 감독에 대한 투입 비용 대비 성과와 관련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U-21감독으로 부임한 [[히딩크]] 감독을 리피 감독의 삽질이 더더욱 심해질 경우 바로 성인대표팀 감독으로 써먹는 대체자로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2018년 10월 소위 지구매치라고 불린 인도팀과 무승부, 2018년 12월에는 이라크에게 1-2로 발리고 요르단에게도 1-1로 간신히 비기는 등 좋지 않은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2019년 아시안컵을 보면 인도는 2013년 인도 슈퍼 리그가 출범한 이후 실력이 급상승, 최근에 동남아팀은 압살할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고, 이라크는 몰락했어도 중동팀중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팀이고, 요르단은 2019년 아시안컵에서 보듯이 다크호스팀의 하나였기 때문에 중국이 쉽게 이길만큼 약팀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경기기록을 보면 리피가 각 평가전마다 계속 포메이션과 선수 포지션을 바꾸는데, 카타르(4-3-3), 바레인(4-4-2), 인도전(4-2-3-1, 위다바오 원탑), 팔레스타인전(3-4-3), 주공격수(좌, 우 모두 기용) [[우레이]], [[가오린]], 수비수(or 미드필더) [[펑샤오팅]], 골키퍼 [[옌준링]]의 붙박이를 제외하면 멤버를 계속 바꾸면서 테스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리피가 이런 평가전 와중에서 "아시안컵 본선에서만 잘하면 된다"고 하면서 여러 선수들을 엔트리에 넣다 뺐다하면서 테스트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런 시도나 발언은 당연히 한국에서는 소개안되고, 일부 기레기들에 의해 마치 리피가 계약만료를 앞두고 [[백인천|팀에 관심이 없거나 태업을 벌이는 것처럼 보도되었다.]][* 아무리 리피가 전성기가 지났어도, 월드컵과 챔스 우승경력이 있는 초일류 감독인데 자신의 말년을 먹칠하는 태업을 벌일 정도로 무개념한 사람은 아니다.] 어쨌든 리피호의 2018년 A매치의 총 전적은 11전 3승 4무 4패로 승률이 30%도 되지 않았는데, 리피는 계속 "팀의 최종목표는 아시안컵이다"라며 불만에 찬 중국팬들을 달랬다. 한편 중국축협은 교육상 이유로 A매치에 내온 선수들의 팔문신을 가리라며 붕대로 감거나 스티커를 붙이게 해서 선수들의 불평을 샀다. 슈퍼리그에 문신을 즐겨하는 브라질리언이 많이 진출하면서 중국선수도 이를 모방, [[장린펑]]처럼 아예 팔뚝을 모조리 문신으로 덮은 중국 선수들이 많아졌다. 2019년 아시안컵 1차전에서 [[키르기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키르기즈스탄]]에 2-1로 이기고, 필리핀은 3-0으로 이겨서 조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조1위를 둔 최종전에서 벤투호의 한국한테 2-0으로 복수당하게 된다. 16강전에는 태국을 간신히 이기고 내부적인 목표인 8강에 도달했다. 문제는 다음 상대가 우승후보 이란이었다는 것. 결국 이란을 상대로 수비수가 알아서 골을 먹혀주는 예능축구를 선보인 끝에 0-3으로 완패하면서 탈락했다. 경기 종료 후 완전히 해탈한 듯한 리피의 표정은 덤이다. 결국, 리피 감독은 이날의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과의 계약을 끝내고 중국 대표팀을 떠나게 되었다. 2년 3개월 남짓하게 대표팀을 맡았던 기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한때 한국을 상대로 승리도 거둔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었으나 결국 16년 만의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고 동아시안컵 3위의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순위와 중국의 아시안컵의 목표였던 8강에는 들었지만, 그 8강 경기에서 철저하게 이란에 지배당하면서 중국대표팀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세대교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못했는데, 이번 대회에 출전국중 평균나이가 29.1세로 가장 나이가 들었으며 29세가 7명, 30세 이상의 선수가 10명이나 되었던 경험으로 상쇄하기에 중국대표팀은 노쇠한 팀이었다. === [[파비오 칸나바로]]호 === 결국 아시안컵을 끝으로 리피 감독이 중국을 떠나고 후임 감독으로 파비오 칸나바로가 선임되었다. 헌데 2019년 3월 21일, 데뷔전인 차이나컵에서 태국에게 0-1로 지고 말았다. 이어 3, 4위전에서 우즈벡에게도 0-1로 졌다. 이 2연패와 칸나바로가 이끌던 광저우가 대구 FC에 1:3으로 패배한 일 때문에 중국 언론에서는 이른 경질설을 살포하고 있다. 4월 29일에 결국 2경기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마르첼로 리피]]호 2기 === 결국 칸나바로의 사임 후 리피 감독을 다시 불러들였다. 중국 혼혈 출신이거나 슈퍼 리그에서 5년 이상 활동한 용병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귀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중화사상]]으로 대표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빠져있던 중국이라서 상당히 의외의 행보고 그만큼 오직 월드컵 진출에 눈이 돌아갔다는 소리다. 언론에서도 '''"중국이 언제부터 한민족 국가였냐? 중국은 원래 다민족 국가고 당연히 역사적으로 중국은 타민족의 인재도 중국의 발전을 위해 잘 받아들였다. 언젠가 라틴계도 중국의 57번째 민족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칼럼도 나왔다. 사실 중국 국대의 문호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1990년대까지는 순수 한족 아니면 축구 국대가 되는 것이 힘들었지만 2010년대부터는 [[조선족]]([[진징다오|김경도]], [[지충국]] 등등) 및 [[회족]]([[우레이]], [[장린펑]])이 국대에 올라타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는 [[미라흐멧잔 무제페르]]가 위구르계 최초로 국가대표에 승선했고,[* 농구는 이미 1980~90년대부터 [[아딜잔 쉴레이만]] 등 여러 위구르계들이 국가대표 주축으로 활동했었다.][* 이런 위구르 선수들은 국제무대에서 쓸 이름도 라틴 문자 스펠링이 한어병음과 너무 다르다보니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 기자들마저 애먹인다. 모르는 사람들한텐 외국에서 온 귀화선수라 오해받기도 다반사. [[http://naver.me/xWF3rPnZ|이 기사]]에 따르면 한국 기자가 중국 선수 이름을 못 읽고 쩔쩔매다 [[엘케손]] 같은 귀화선수냐고 중국인 기자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들도 잠시 뜸 들이다가 신장 출신이라서 그렇다고 답을 해줬다고 한다. ] 2019년에는 혼혈 2세 [[니코 예나리스]][* 중국명 리커]가 6월부터 국가대표에 들어왔으며 9월에는 중국 축구 최초의 귀화 국가대표 [[엘케손]]이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으며 10월에는 [[히카르두 굴라르]], [[알랑 카르발류]], [[알로이시우]]의 귀화가 완료되면서 2020년부터 이들의 중국 국가대표 데뷔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2020년에는 화교 2세 [[장광타이]],[* 본명 타이어스 브라우닝, 조부가 중국인인 혼혈3세다.] 브라질 국적의 [[페르난지뉴 엔히키|페이난둬]][* 본명 페르난지뉴]의 귀화가 끝났다. 하지만 리피 감독이 월드컵 2차 예선 도중 갑작스레 사임하며 리피호 2기도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리피 감독은 장린펑의 자살골로 시리아에게 1-2로 패한 후 기자회견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며 "나는 고연봉을 받기 때문에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 나는 사임할 것"이라며 "중국 대표팀의 플레이는 열정도 투지도 아무것도 없었다. 선수들이 질까봐 두려워 할 정도면 다 내 잘못"이라며 우회적으로 선수들을 비판했다. 중국축구협회(CFA) 역시 그의 사임을 받아들일 계획이다. 사임 기자 회견 직후 리피 감독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중국 대표팀이 묵던 호텔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리피감독은 귀국 후 "자격에 비해 돈을 많이 받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 사퇴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겸손함의 행간을 읽어보면 중국팀을 월드컵에 진출시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느낀 듯하다.[[https://youtu.be/c4r3RIY3nY4?si=hDj2hgGvcxBk8Uuc|당시 경기 영상 요약 및 리피 기자회견]] 덤으로 시리아전 패배 이후, 반발 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국 시나닷컴 및 여러 언론에서는 중국 선수들의 몸값 거품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을 패배시킨 골을 넣은 시리아 스트라이커 오사마 오마리가 받는 월봉은 1,600위안(약 26만 8,000원)에 불과함에도 중국 선수들은 그저 1,000만 위안(한화 약 16억 원)을 넘는 돈을 받는 달마다 받는 선수들이 여럿 있다고 지적.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이 정도 받는 선수는 극소수인데 중국 리그 물거품이 너무 심하고 이런 물거품이 심한 선수들을 국대라고 하니 희망이 안 보인다고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서 중국 축구협회에서 샐러리캡을 도입, 중국선수 수입을 깎을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중국 축구협회는 이를 시행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1부인 슈퍼리그부터 3부리그인 을급 리그까지 속한 모든 프로축구 선수 계약 협상을 중단하라고 각 팀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재 중국 클럽들은 자국 선수들과 연봉 협상을 멈추고 중국축구협회가 제시할 다음 정책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이뤄질 경우. 브라질 선수로서 연봉 5,000만 위안(약 83억 8,000만 원)을 받던 엘케손같이 귀화한 선수는 더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니 연봉이 대폭 삭감될 수밖에 없다. (다만 엘케손의 경우는 규정이 발효되기 전에 이미 다년계약을 했기 때문에 당장 몇년간은 상관 없다.) 중국 인터넷 언론 <화체망>은 엘케손이 1/5 수준인 1,000만 위안 정도 밖에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인이 됐다는 이유로 기존 연봉의 80% 가량을 강제적으로 삭감당하는 셈이다. 실제로 <화체망>은 중국축구협회의 이번 조치 때문에 지나칠 정도였던 중국 슈퍼리그 내 외국인 선수들의 귀화 러시에 제동이 걸렸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될 경우 황사머니에 혹해 중국 선수로 귀화한 외국 선수들이 포기하거나 귀화를 알아보던 선수들이 그만둘 경우가 많으리라 전망된다. === [[리톄]]호 (2020~2021) === 리피 감독이 사임한 이후 2020년 [[에버튼 FC]]에서 뛰었던 [[리톄]] [[우한 줘얼]] 감독이 국대 감독에 선임되었다. 일부에서는 위에 적힌 기술처럼 귀화 열풍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리톄 감독은 단시일에 성적을 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듯, 적극적으로 귀화 선수를 기용한다고 한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48699|그리하여 중국 축협에 귀화선수만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든다고 한다]]. 2기 리피호가 2022년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삽질했지만 리톄 감독 하에서는 어느정도 팀을 안정화시킨듯, 2021년 5월-6월 재개된 월드컵 2차 예선에서 4연승을 거두어 조 2위들 중 승점 1위로 무난히 통과하여 12개팀이 겨루는 최종예선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최종예선에서 일본, 호주, 사우디, 오만, 베트남이 속한 죽음의 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팀인 일본, 호주, 사우디야 말할 것 없고 그나마 오만, 베트남 정도가 중국이 해볼만한 상대인데 그나마도 오만은 중동의 다크호스로 불릴 정도로 저력있는 팀이고 베트남도 [[박항서]] 감독의 지휘아래 상승세를 타고있기 때문에 만만하게 볼 정도는 아니다. 그리하여 벌어진 1차전 예선 경기에선 호주를 충분히 이긴다고 온갖 큰 소리를 치고 준비를 엄청 오래하고 많은 돈을 들였음에도 호주에게 3-0으로 참패했다. 그야말로 슈팅 수에서 23-7로 뒤쳐졌다. 중국은 이 경기 이전에 벌어진 평가전에서 필리핀, 몰디브, 괌, 시리아를 상대로 모두 이기고 3차 예선에 올라왔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홈게임이어야 하지만 중립지역인 카타르에서 치러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전]]'''은 0:1 패배로 끝나게 되었다. 상대 감독인 [[모리야스 하지메]]도 위치가 간당간당한 상황에 양쪽 다 밤 11시[* 중국시간]나 12시[* 일본 및 한국시간]에 하는 경기 치고 졸전을 펼치는 등 험난해 보이기만 하다. 2021년 10월 7일 벌어진 박항서가 지휘하는 베트남과의 경기에게는 3-2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 일본-호주전에서 별 활약을 못했던 [[우레이]]가 두 골을 넣는 대활약을 하여 그나마 이름값을 했다.[* 참고로 이 경기가 이번 대회 예선에서의 중국의 유일한 승리 경기다. 그나마도 원정에서는 패했다.] 그러나 4차전인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 2:3으로 패하며 앞으로도의 전망이 어둡게 되었다. 스코어만 보면 중동의 강호 사우디를 상대로 2골이나 넣은 게 준수해 보이지만, 첫번째 골은 귀화선수인 알로이시오가 개인기로 만든 골이고 두번째 골은 사우디 골키퍼의 실수였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성적 부진의 이유로 중국인들의 비난을 받으며 2021년 12월 1일 사퇴했다. === [[리샤오펑]]호 (2021~2023) === 감독이 바뀌긴 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암담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첫 상대는 하필 20년 넘게 승리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 설상가상으로 귀화 선수 대부분이 지난 예선전 종료 이후 [[브라질]]로 돌아가버렸고, 재소집하는 과정에서 알로이시우와 페르난두는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도쿄]]로 가는 항공편까지 취소되어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14시간을 넘게 대기해야 했다. 이에 참다 못한 알로이시우는 공항 벤치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사진을 [[웨이보]]에 올리며 [[중국축구협회]]의 한심하기 그지없는 운영 능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후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39&aid=0002161783|충동 발언이라며 웨이보에 사과문을 올렸으나]],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프로선수들을 저렇게 방치하는 행보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장거리 비행을 2번이나 하고 와야 하는 선수들을 경기가 치러지기 며칠 전에야 소집하고,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43&aid=0000110432|심지어 페르난두는 암스테르담에서 가족의 병환 소식을 듣고 귀국길에 오르는 등]] 경기 전부터 제대로 꼬인 모양새다. 결국 천슈안 중국축구협회 회장이 공개 사과를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으나, 이 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린 일부 중국 매체들은 선수들의 준비 부족이라며 선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역시나 일본에게 공수 양면에서 완벽하게 농락당하며 2-0 완패를 당했다. 무승부도 안 되고 반드시 승리만이 필요했던 일본전을 패배하면서 중국은 3위 호주와의 승점 차가 무려 9점, 골 득실 차도 무려 15점 차까지 벌어지면서 사실상 탈락이 99.9% 확정되었는데... 며칠 후 최하위인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과의 최종예선 8차전 원정에서 일치감치 3골 먹고, 종료 직전 만회골로 영패만 간신히 면하는 완패를 당하며 [[확인사살|탈락이 100% 확정되었다]]. 게다가 이 패배는 중국의 [[흑역사]]로 길이 남을 가능성이 높은데[* 당장 중국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하노이]] 참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패배로 베트남에게 새해를 기념해 월드컵 최종 예선 사상 첫 승리 첫 승점, 대 중국전 첫 승리라는 종합선물세트를 증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종예선 첫 승리는 베트남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으로 그나마 동남아시아를 상대로는 전통적으로 강했음에도 제물이 된 중국으로서는 굴욕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중국 축팬들이 TV를 부수고, "귀국하지 말라.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외치며 격앙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게 명분상의 피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로까지 이어졌는데 이 패배 때문에 이후 중국은 [[2026 FIFA 월드컵/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에서 1포트에서 탈락당하고 2포트로 강등당하는 바람에 2차 예선부터 아시아 예선에서는 최강급인 강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과 같은 조가 되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당했다. 2022년 2월 16일에는 상술한 귀화 선수들의 임금 지급 문제가 지속되면서 [[광저우 FC]]가 결국 엘케손을 포함한 귀화선수 5명을 모두 방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원래 이들을 귀화시켜 리그는 물론 대표팀에서도 핵심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중국이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을 확정지은데다, 임금까지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니 귀화 선수들로서는 더 이상 중국에 남을 동기부여가 없을 것이다. 동시에 잔류한 자국 선수들에게는 '''최대 60만 위안'''의 자체 샐러리캡을 부여하여 연봉을 엄청나게 후려쳤다. 그런데 예선 탈락이 확정된 이후 귀화선수들이 모두 빠진 라인업으로 오히려 선전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와 1:1로 비겼다! 물론 저 1골도 후반 막판 페널티킥으로 간신히 얻어낸 것이고, 양팀 다 베스트 멤버로 나오지 않은 경기로 볼 점유율 24% 슈팅수 16:2로 처참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다. 이후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상대였던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오만]]에게 2:0으로 완패했다. 오만전에서 중국은 스코어 뿐 아니라 경기 내적으로도 유효슈팅 0개 등 역시나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카타르 월드컵 예선경기를 마무리했다. 더 코미디인 건 이렇게 시종일관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는데도 2018년부터 [[FIFA 랭킹]]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거다. 이런 이유로는 FIFA가 돈줄인 중국의 눈치를 보기에 이런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참고로 중국의 역대 최저 랭킹은 2013년 기록한 109위. 그렇게 끔찍했던 예선이 끝나고 최대 4경기로 예정되어 있는 2022년 6월 A매치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중국을 상대해주겠다는 국가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서[* 심지어 중국보다 더 약체인 나라들조차도... 이는 중국 국가대표팀 자체도 상대할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약체인 점도 있고, [[쿵후축구|중국 축구가 반칙에 무심해서]] 부상을 입을 우려가 있다는 점, 최근 [[코로나19]]와 더불어 자국은 높이고 타국은 무시하는 [[국수주의]] 행보에 전세계 모두가 반발감을 가진 점도 한 몫 했다.] 위상이 많이 추락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이대로 6월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경우 FIFA 랭킹이 왕창 하락할 수 있으며, 결국 대한민국도 일본도 6월 동안 4경기의 A매치를 소화한 것과 달리 중국은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게다가 야심차게 준비하려고 했던 [[2023 AFC 아시안컵]]도 개최권을 반납한데다[* 해당 대회는 당해 가을, 카타르가 개최국으로 확정되었다.] 많은 수의 자국 프로 구단들도 재정난을 이유로 줄줄이 해체 선언을 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어두운 미래는 상당히 더 어두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2022년 6월 FIFA 랭킹에서 최종예선에 진출하지 못했던 77위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우즈베키스탄]]에 밀린 78위를 기록하며 아시아 랭킹 11위로 추락했다. 그리고 한달 후 [[2022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 출전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A매치]]를 치르게 되었는데, 2진급 엔트리를 구성했으며, 선수들이 아무래도 경험이 많지 않은 신예 위주인데다 팀 자체도 오랫동안 A매치를 못 치른 상태라 컨디션들도 하나같이 정상들이 아니었으며, 그런 것들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1차전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을 만나 90분 내내 신나게 얻어맞으며 3-0 완패를 당했다. 심지어 선제 실점은 가만히 놔두면 오프사이드가 될 공을 굳이 머리로 건드려 골대 구석으로 정확하게 밀어넣는(...) 자책골로 그야말로 14억 인민들의 눈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심히 한심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게다가 성숙하지 못한 경기 태도를 보이면서 매너에서도 패했음을 적나라하게 인증하였다. 2차전 상대는 바로 앞 경기에서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홍콩]]을 6-0으로 대파했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 직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에게 3:0으로 패한것과 마찬가지로 다실점이 나오리라 예상되었으나 일본을 상대로 0-0 무승부를 만드는 이변을 연출했다! 중국의 [[버스 세우기|만리장성 세우기]](...)와 일본의 고질적인 골 결정력이 이뤄낸 환상의 콜라보였다는 반응이 많았으며, 우주방어 속에서 신들린 선방을 선보인 [[한자치]] 골키퍼는 한국 팬들로부터 '''[[위고 요리스|중화요리스]], [[티보 쿠르투아|위구르투아]], [[잔루이지 부폰|취두부폰]], [[에드빈 판데르사르|반대사드]], [[페트르 체흐|팔보체흐]]''' 등 다양한 별명을 얻었다. 3차전 상대는 홍콩. 1대0으로 이기면서 도합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경기도 썩 만족스런 경기가 아니었으며, 또한 상대가 상대인지라 인정을 안 해 주는 분위기다. 한편 대회는 3위로 마쳤다. 이렇게 리그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 귀화 선수 영입, 합숙 훈련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했음에도 국제무대에서의 부진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중국인들은 분노를 넘어 체념한 상황에 이르렀다. 국민들이 자국 축구의 문제점에 지쳐 외면하게 되는 심각한 단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축구가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럴 줄 알았다', '이미 관심을 끊었다', '이제 더 이상은 언급하기도 싫다', '계속 얘기해 봤자 내 입만 아프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등과 같은 냉담한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중국 축구계에도 영향이 있는지 이미 자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AFC 아시안컵의 개최도 포기한 상태였다. 방역 문제 때문이라는 이유를 걸었지만, 2년 넘게 남은 시점에서 개최를 포기한 것으로 보아 설득력이 없고, 실상은 홈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포기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중국의 1위가 사실상 보장된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정상적으로 개최된 것을 감안하면 기정사실이다. 게다가 [[2026 FIFA 월드컵]]부터는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팀이 48팀으로 확대되면서 아시아의 배정 티켓도 8.5장으로 증가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중국 내에서는 기뻐하기는 커녕 월드컵에 가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한탄만 나왔다. 이유인 즉슨, 이미 카타르 월드컵 지역에선에서도 5위로 탈락해버렸고, 한국, 일본, 호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피파랭킹 상위 나라들과의 대결에서도 경쟁력이 전혀 없고, 이런 수준이니 여기보다 한 수 밑이라고 평가받는 북한, 우즈베키스탄,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레바논, 오만, 카타르, 요르단, 쿠웨이트, 바레인 같은 팀들도 이길 가능성이 낮으며 이젠 태국, 베트남, 필리핀 같은 동남아 팀들에게도 밀리기 시작한 것이 자국 언론들이 찝은 내용들이며,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은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까지 하였다. 실제로 그동안 중국은 아시아 상위 피파랭킹 나라들보다 중위권 나라들인 카타르, 요르단, 이라크 등등에게 지역예선에서 덜미를 잡혔고, 모처럼 최종예선에 올라와서도 차이는 없었는데다가, 2022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조차 [[베트남]]에게 3-1로 원정에서 참패하여 이젠 동남아팀들을 상대로도 고전을 걱정해야 할 판국에 월드컵은 무슨 놈의 얼어죽을 월드컵이냐고 그만 꿈 깨라고 할 법하다. 2023년에 후임 선정 중 외국인 지도자들을 검토 대상에 올려놓고 있는데, 연봉 예산으로 최대 세후 200만 달러(약 24억 원)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https://m.yna.co.kr/view/AKR20230202083700083?section=international/all|#]] 2023년 2월 24일 U-23 대표팀 감독이던 알렉산다르 얀코비치가 중국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며 리샤오펑호도 베트남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흑역사만 추가하며 막을 내렸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13778436|#]] === [[알렉산다르 얀코비치|얀코비치]]호 (2023~) === 이번 3월 [[A매치]] 기간 중에는 중국도 마침내 A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3월 23일[* 이 날 경기는 얀코비치의 데뷔전 경기이기도 하다.]과 3월 26일, [[뉴질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뉴질랜드 현지에서 2연전을 치렀다. 1차전은 슈팅 14:6, 유효슈팅 8:2라는 비율로 뉴질랜드를 압도했으나 뉴질랜드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하는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골 결정력으로 0-0 무승부로 끝났다. 그러나... 나름 수비가 잘 버텼던 1차전과 달리 2차전에서는 주도권도 못 가져가고 수비수의 자책골과 어이없는 실수들로 인해 결국 뉴질랜드한테 30년만에 2-1로 패배하면서 아직도 멀었음을 증명하였다. 뉴질랜드 선수들에게 시전하는 온갖 살인태클은 덤.[* 더불어서 뉴질랜드 역시 경기력이 좋지 않았던 것은 [[도찐개찐]]이었다.] 경기 끝나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1골이라도 넣었다는 인터뷰로 감독이 어거지스런 칭찬을 하는 터라 중국 누리꾼들조차도 칭찬할 게 없어 뉴질랜드처럼 중하위권에 속하는 나라에게 겨우 1골 넣은 것으로 칭찬을 다 하는 거 보면 감독이 다 안쓰럽다고 한탄할 지경이었다. 그 동안 중국 축구팬들이 농담삼아 월드컵에 나가려면 오세아니아로 편입해야 가능하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 경기들을 보니 그마저도 안 되겠다며 한탄하는 모습이 압권. 비슷한 시기 중국 U-24 대표팀도 뉴질랜드 U-22 대표팀과 2번의 맞대결을 가졌으나, 0:2, 1:2로 두 경기 다 패배했다. 그것도 중국이 2살이나 연령이 많은데도 말이다. 역시나 이 쪽도 온갖 더티플레이를 한 것도 똑같다. 4월 5일, 중국 시나스포츠는 한국의 전직 축구선수인 [[이천수]]가 [[유튜브]]에서 중국 축구를 비아냥거렸다고 보도했다. 근데 사실 이천수는 무작정 비난하고 깎아내리기만 한 게 절대로 아니라 중국은 앞으로 막대한 시장이나 투자로 발전될 여지는 분명히 있다고도 덧붙였지만, 그저 비난한 것에만 촛점을 맞춰 보도하는 치사하고 전형적인 [[기레기]] 행위를 보였다. 하지만 이 보도에서도 결국 그의 비난에 대해서 한 마디도 반론을 못 하는 게 중국축구의 씁쓸한 현실이라고 인정해버렸다. 2026 월드컵에서 아시아 참가국이 늘었어도 정말 중국은 2022 월드컵에 같이 못 나온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오만, 레바논, 그리고 개최국이었던 카타르 같은 아랍권 나라들이나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같은 유라시아 나라들,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동남아 나라들조차 무조건 다 이긴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이천수가 꼬집은 사항에 대하여 이들도 이길 수 있다고 뭐라고 자신있게 말은 못했다. [[https://youtu.be/V2-pePoXiH8|#]]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카타르]]와 같은 조가 되자 카타르 측이 "중국이라면 쉽다!"라고 언론이 평하자 중국 소후닷컴은 굴욕이라면서 "이제는 카타르에게도 무시를 당하냐?"라고 비난했다. 이에 중국 누리꾼들도 덩달아 비난했지만, "저번의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에게도 졌던 걸 그새 잊었어?"라며 카타르가 우습게 볼 만하다고 역비난하는 누리꾼도 많다. 그리고 카타르는 객관적인 전력이 베트남보다도 앞서고, 감독도 아시아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카를로스 케이로스]]라 절대 중국에겐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중국 축구의 위상이 안 그래도 낮던 몇 년 전에 비해 더 낮아졌다는 것은 친선경기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돈으로 유혹한 것이긴 해도 [[차이나컵]]을 통해 중상위권 강호들 중 중국과 붙고 싶어하는 팀들도 있어 이를 통해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웨일스]],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 등과 붙기도 했고, [[마르첼로 리피|리피호]] 시절 한국을 1:0으로 꺾을 때는 아예 한국과 A매치 상대를 공유하며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세르비아]],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와 붙기도 했다.[* 물론 경기 결과는 처참했다. 웨일스에겐 0-6으로 박살났고, 크로아티아는 2진을 상대했는데도 1-1 졸전 끝에 승부차기로 간신히 이겼다. 세르비아에겐 0-2, 콜롬비아에겐 0-4로 갈려나가며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러나 갈수록 중국 축구의 안 그래도 낮은 수준은 더 퇴보하는 반면 타국들의 수준은 점점 올라가는 상황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 2023년 타 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친선 경기 성사 일정을 보면 그 차이가 실감이 난다. 6월 : 대한민국, 일본 : 페루, 엘살바도르 / 호주, 인도네시아 : 아르헨티나 / 카타르 : 자메이카, 뉴질랜드 / 요르단 : 세르비아 / 이라크 : 콜롬비아 9월 ~ 10월 : 대한민국 : 웨일스 / 호주 : 잉글랜드 / 일본 : 독일 / 요르단 : 노르웨이 반면 중국의 상대는 6월에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인 [[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팀|팔레스타인]]과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미얀마]]를 만난다. 9월에는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말레이시아]]를 만난다. 심지어 호주와 인도네시아가 아르헨티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중국이 비싼 돈 들여 아르헨티나를 중국으로 초청해 놓고는 정작 본인들이 아닌 호주와 인도네시아가 중국에서 아르헨티나와 맞붙는 괴상한 대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미얀마를 4:0으로 압살했고, 이어진 팔레스타인전은 2:0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여론도 있는 반면 겨우 약체들 이겼을 뿐인데 벌써부터 만족하냐면서 인정을 안 해 주는 여론도 있다. 9월의 홈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친선전에서는 1:1로 비겼다. 참고로 말레이시아의 감독은 전에 홍콩을 이끌고 중국을 상대로 선방했던 김판곤이다. 말레이시아 다음으로는 시리아를 상대하는데, 문제는 시리아는 말레이시아보다는 강하고 무엇보다 2018 월드컵 예선에서 홈에서 중국에게 패배를 안겼다는 점이다. 참고로 명장 마르첼로 리피가 이 경기 때문에 사임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큰 문제는 2023년 가을부터 치러지는 2026 월드컵 2차 예선인데, 과연 홈에서 말레이시아와도 비긴 중국이 동남아시아 최강인 태국을 이길 수 있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머지 팀들 중 하나가 아시아에서는 최강 라인에 속하는 팀인 한국이라는 것. 승리는 둘째치고 3차 예선에나 가볍게 진출할 수 있을지부터가 문제다. 한편 말레이시아전을 치르고 며칠 뒤에 치른 시리아와의 경기에서는 0:1로 패배하였다. 10월 A매치 상대 중 하나는 시리아보다 백배 천배는 훨씬 쎈 상대인 우즈베키스탄이기에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었으나, 1:2로 또 패배하면서 감독 경질론이 올라오고 있다. 2023년 10월 9일에는 [[최강희(축구인)|최강희]]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76&aid=0004064638|기사]]. 그러나 최강희 본인은 2023년 10월 24일, 고려해 본 적도 없다면서 전격 부인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241&aid=0003307990|기사]]. [[2026 FIFA 월드컵/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C조|아시아 2차예선 C조]]에서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태국]]을 상대로 2:1로 승리했지만,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을 필두로 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대한민국]]을 상대로 0:3으로 무난히 패했다. 이날 손흥민은 425일 만의 [[헤더#s-5]] 골, [[라보나 킥]] 패스 등 평소에 보여 주지 않았던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 그래도 [[중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여자 축구 대표팀]]과 시각장애인 축구는... == 남자축구는 아시아권에서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국제무대에 나가지도 못하지만, 여자축구는 세계수준의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한때 여축에서는 미국과 더불어 양강체제를 이루었을 정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지금도 중국 여자 축구는 여전히 세계 수준의 강자다. 지금의 유럽으로 치면 사실상 [[스웨덴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과 비슷하다. 여자 축구만큼은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잘한다. 하지만 남자 축구에서 나타난 것처럼 여자 축구도 기반이 튼튼하지 못해 2010년 이후로 전력이 흔들리는 중이다. 지역에서 전통의 강호였던 북한과 일본에게 툭 하면 차이기 일쑤고, 왕년에 동네북으로 여겼던 한국 여자 축구도 발전하여 안방에서 열린 [[동아시안컵|대회]]에서 0대 1 패배를 당했을 정도. 하지만 이보다 심각한 건 2015년 8월에 열린 U-19 아시아 예선. 3-4위전에서 한국에 0:4로 발리면서 세계대회 출전권을 잃었다. 사실 여자 축구에 투자 많이 하고 발전을 시킨 국가들이 많지 않다. 남자 축구에서는 극강의 전통강호인 [[아르헨티나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만 해도 여자대표팀 피파랭킹은 오히려 중국보다 낮은 40위권이다. 미국, 일본, 잉글랜드, 프랑스, 스웨덴 등 여자 축구 강호들을 보면 국가의 경제 구조가 안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은 의외의 케이스다. 중국은 국가의 경제규모가 굉장히 커서 여자 축구에도 투자할 여유가 있는 케이스. 여성 스포츠 자체가 남성에 비해 경기력이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고 때문에 상업성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스포츠 시장 파이 자체가 커야만 가능하다. 최근 유럽의 여자축구 파이가 커지면서 세계무대에서는 꽤 고전 중이지만, 아시아 무대에서는 다시 최강급 전력을 회복했다. 2021년 올림픽 예선에서는 한국을 꺾고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더 나아가 [[2022 AFC 여자 아시안컵 인도]]에서는 8강에서 베트남을 꺾은 데 이어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일본까지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대한민국과의 결승전에서는 전반전을 0-2로 뒤지다가 후반에만 3골을 몰아치는 대역전승으로[* 당시 한국 팀은 왼쪽 수비 라인에서 약점을 보이고 있었는데, 중국 팀은 전반에 두 골을 얻어맞아가면서까지 이를 간파하고 공략해 결국 역전승을 거머쥐었다. 여자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 다운 노련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통산 9번째 아시안컵 우승을 거머쥐면서 비슷한 시기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일본과 베트남에 연패한 남자 대표팀과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 남자 대표팀은 앞서 언급했던 여자 대표팀과는 달리 베트남 원정경기에서조차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오죽했으면 여자 대표팀 선수가 남자 대표팀 선수의 머리를 떼어 축구공으로 쓰는 픽토그램이 유행을 탔을 정도다.] 그리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5인제 시각장애인 축구에서도 중국은 세계적 강호에 속한다. 당연히 아시아에서는 적수가 없을 정도며, 패럴림픽이나 세계 선수권대회를 나가도 4강 이상은 하고 올 정도의 실력이다. == 역대 감독 == [include(틀: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FIFA 센추리 클럽|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include(틀:중국의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현재 선수 명단 == || '''포지션''' || '''등번호'''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간체자 성명''' || '''생년월일''' || '''출장''' || '''득점''' || '''클럽''' || '''비고''' || ||<|3> '''GK''' || || [[옌쥔링]] || Yan Junling || 颜骏凌 || 1991년 1월 28일 || 43 || 0 || [[상하이 하이강]] || || || || 왕다레이 || Wang Dalei || 王大雷 || 1989년 1월 10일 || 27 || 0 || [[산둥 타이산]] || || || || 류뎬쭤 || Liu Dianzuo || 刘殿座 || 1989년 1월 10일 || 3 || 0 || [[광저우 FC]] || || ||<|9> '''DF''' || || [[장린펑]] || Zhang Linpeng || 张琳芃 || 1989년 5월 9일 || 92 || 5 || [[광저우 FC]] || || || || [[위다바오]] || Yu Dabao || 于大宝 || 1988년 4월 17일 || 65 || 19 || [[베이징 궈안]] || || || || 정정 || Zheng Zheng || 郑铮 || 1989년 7월 11일 || 23 || 2 || [[산둥 타이산]] || || || || 왕선차오 || Wang Shenchao || 王燊超 || 1989년 2월 8일 || 19 || 0 || [[상하이 하이강]] || || || || [[주천제]] || Zhu Chenjie || 朱辰杰 || 2000년 8월 23일 || 14 || 1 || [[상하이 선화]] || || || || [[류양]] || Liu Yang || 刘洋 || 1995년 6월 17일 || 14 || 0 || [[산둥 타이산]] || || || || 가오준이 || Gao Zhunyi || 高准翼 || 1995년 8월 21일 || 11 || 0 || [[광저우 FC]] || || || || [[타이어스 브라우닝|장광타이]] || Jiang Guangtai || 蒋光太 || 1994년 5월 27일 || 11 || 0 || [[광저우 FC]] || || || || 퉁레이 || Tong Lei || 童磊 || 1997년 12월 16일 || 0 || 0 || [[다롄 프로]] || || ||<|10> '''MF''' || || [[하오준민|하오쥔민]] || Hao Junmin || 蒿俊闵 || 1987년 3월 24일 || 90 || 12 || [[우한 FC]] || || || || [[우시(축구선수)|우시]] || Wu Xi || 吴曦 || 1989년 2월 19일 || 80 || 9 || [[상하이 선화]] || || || || [[장시저]] || Zhang Xizhe || 张稀哲 || 1991년 1월 23일 || 37 || 7 || [[베이징 궈안]] || || || || [[진징다오]] || Jin Jingdao || 金敬道 || 1992년 1월 18일 || 18 || 1 || [[산둥 타이산]] || || || || 지샹 || Ji Xiang || 吉翔 || 1990년 3월 1일 || 11 || 1 || [[산둥 타이산]] || || || || 류빈빈 || Liu Binbin || 刘彬彬 || 1993년 6월 16일 || 11 || 1 || [[산둥 타이산]] || || || || 쉬신 || Xu Xin || 徐新 || 1994년 4월 19일 || 6 || 1 || [[산둥 타이산]] || || || || 랴오리성 || Liao Lisheng || 廖力生 || 1993년 4월 29일 || 6 || 0 || [[광저우 FC]] || || || || [[다이와이춘]] || Dai Weijun || 戴伟浚 || 1999년 7월 25일 || 4 || 0 || [[선전 FC]] || || || || 가오톈이 || Gao Tianyi || 高天意 || 1998년 7월 1일 || 1 || 0 || [[베이징 궈안]] || || ||<|2> '''FW''' || || [[장위닝]] || Zhang Yuning || 张玉宁 || 1997년 1월 5일 || 22 || 5 || [[베이징 궈안]] || || || || [[탄룽]] || Tan Long || 谭龙 || 1988년 4월 1일 || 7 || 1 || [[창춘 야타이]] || || [* 2022년 3월 29일 기준.] == 역대 성적 == === [[FIFA 월드컵]] ===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76위''' || '''{{{#fff 대회}}}''' || '''{{{#fff 결과}}}''' || '''{{{#fff 순위}}}''' || '''{{{#fff 경기}}}''' || '''{{{#fff 승점}}}''' || '''{{{#fff 승}}}''' || '''{{{#fff 무}}}''' || '''{{{#fff 패}}}''' || '''{{{#fff 득점}}}''' || '''{{{#fff 실점}}}''' ||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br] [[1930 우루과이 월드컵|1930년 우루과이]] ||<-9><|5> 비회원국[* 1949년 이전의 중국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없었다.] ||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br] [[1934 이탈리아 월드컵|1934년 이탈리아]] ||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30]][br] [[1938 프랑스 월드컵|1938년 프랑스]] ||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br] [[1950 브라질 월드컵|1950년 브라질]] || || [[파일:스위스 국기.svg|width=30]][br] [[1954 스위스 월드컵|1954년 스위스]] || || [[파일:스웨덴 국기.svg|width=30]][br] [[1958 스웨덴 월드컵|1958년 스웨덴]] ||<-9> {{{#f00 본선 진출 실패}}}[*16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예선 1차 1조 탈락으로 인도네시아와 1차전 0:2 패배, 2차전 4:3 승리를 거두었으나 골 득실 차이로 탈락하였다.] || || [[파일:칠레 국기.svg|width=30]] [br][[1962 칠레 월드컵|1962년 칠레]] ||<-9><|5> 비회원국[* FIFA와 AFC를 함께 탈퇴했으나 1976년에 [[마오쩌둥]] 사망한 직후 [[FIFA]]와 [[AFC]]에 재가입했다.] ||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br] [[1966 잉글랜드 월드컵|1966년 잉글랜드]] || || [[파일:멕시코 국기.svg|width=30]] [br][[1970 멕시코 월드컵|1970년 멕시코]] ||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br][[1974 서독 월드컵|1974년 서독]] ||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br]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1978년 아르헨티나]] ||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br][[1982 스페인 월드컵|1982년 스페인]] ||<-9> {{{#f00 본선 진출 실패}}}[*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 아시아가 타대륙과 같이 경쟁한 마지막 합동예선이었고 86월드컵 지역예선부터 아시아는 단독으로 월드컵 2장 가지게 된다. 최종예선 3위로 탈락했으며, 당시에는 최종예선 1위가 월드컵 직행, 2위와 3위는 단판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에 직행하였는데, 2위 뉴질랜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1로 패배하여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2002년 본선 진출 이전에 가장 월드컵에 근접한 지역예선이었다.] || || [[파일:멕시코 국기.svg|width=30]] [br][[1986 멕시코 월드컵|1986년 멕시코]] ||<-9> {{{#f00 본선 진출 실패}}}[*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예선 1라운드 4그룹 A조 2위로 탈락했으며, 중국한테 비빌수는 있냐고 무시했던 홍콩한테 져서 탈락했다. [[5.19 사건]]] ||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br][[1990 이탈리아 월드컵|1990년 이탈리아]] ||<-9> {{{#f00 본선 진출 실패}}}[*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4위로 탈락했다. 월드컵에 직행할 수 있는 2위와는 승점이 2점차였으며, 당시에는 승리시 승점 2점/무승부시 승점 1점이었다.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5차전 카타르 전 승리시 UAE 제치고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br][[1994 미국 월드컵|1994년 미국]] ||<-9> {{{#f00 본선 진출 실패}}}[*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 아시아 지역 예선 1라운드 1조 2위로 탈락했다. 이라크, 중국, 예멘, 요르단, 파키스탄이 조를 이뤄 1차리그 요르단, 2차리그 중국에서 경기하였다. 2차리그에서 4승을 거뒀으나 1차리그에서 예멘에게 충격패를 당하여 그 여파로 최종예선에 올라오지 못했다. 대신 이라크가 올라와 우리 입장에서는 이라크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30]] [br][[1998 프랑스 월드컵|1998년 프랑스]] ||<-9> {{{#f00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3위로 탈락했으며, 당시에는 최종예선 A-B조 2위 간 플레이오프를 통하여 승자에게 월드컵 직행 자격을 주었고, 패자에게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자격을 통한 월드컵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 중국은 이때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2위]]와 승점 1점 차이로 탈락하였다.]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br][[2002 한일 월드컵|2002년 한일]] || 조별리그[* 대한민국과 일본이 빠진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까지 올라가 B조 1위로 진출 자격을 부여받았다. 당시 FIFA랭킹은 사우디, 이란, 태국에 이어 4위였으나, FIFA에서 흥행을 위하여 1차예선 성적을 기준으로 시드를 부여 사우디와 함께 1번 시드를 부여받아 운 좋게 사우디와 이란을 피했다. 당시 최종예선 진출팀 10팀 중 각각 1무 또는 1패가 있었으나 사우디, 중국, 이란 3팀만 전승이었다.] || '''31위'''[* 최하위 32등 사우디는 제쳤다.] || 3 || 0 || 0 || 0 || 3 || 0 || 9 ||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br][[2006 독일 월드컵|2006년 독일]] ||<-9> {{{#f00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예선 2라운드 4조 2위로 탈락했다. 2차예선 4조에서 쿠웨이트 5승1패 15득/2실, 중국 5승1패 14득/1실로 다득점에서 밀려 탈락하였다.] || ||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width=30]][br] [[2010 남아공 월드컵|2010년 남아공]] ||<-9> {{{#f00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예선 2라운드 1조 4위로 탈락했으며, 3차예선에서 각조 4팀중 1,2위 두팀씩 최종예선에 올라가는 구조였으나 이때부터 아시아 예선에 참가한 호주,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하여 국가대표팀에 투자하는 카타르, 이라크 등과 1조에 편성 최하위로 탈락한다. 이미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되어 힘을 뺀 6차전 호주 원정경기를 승리하는 등 원정경기 1승2무로 선전하였으나 홈경기를 1무2패로 말아먹었다.] ||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 [br][[2014 브라질 월드컵|2014년 브라질]] ||<-9> {{{#f00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예선 3라운드 A조 3위로 탈락했다. 3차예선에서 이라크, 요르단, 싱가포르 한조였다. 이라크, 요르단에 밀려 탈락하였다.] || || [[파일:러시아 국기.svg|width=30]][br] [[2018 러시아 월드컵|2018년 러시아]] ||<-9> {{{#f00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5위로 탈락했으며, 2차예선 각조2위 8팀 중 4개팀만 최종예선에 오르는 순위에서 북한에 앞서기 위하여 조1위인 카타르가 일부러 패하였다는 루머가 있었다. 이로 인하여 북한이 필리핀 원정에서 패하는 경기력을 보였으나 간접적으로 피해를 보았다. 이로 인하여 2차예선 같은조였던 홍콩과의 경기가 주목을 받았고 이후 중국 프로축구 리그에서 홍콩인을 내국인에서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홍콩이 카타르에게는 2패, 중국에게는 2무를 거뒀기 때문인데, 리그가 홍콩보다는 큰 무대에서 선수를 성장시켜줬더니 중국의 월드컵 발목을 잡았다는게 이유였다. 최종예선에서는 조 3위간 플레이오프를 치룰 수 있는 3위와 승점 1점 차이였다. 홈 우즈베키스탄/대한민국, 어웨이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도 승리, 3승을 하는 등 선전하였다.]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2022 카타르 월드컵|2022년 카타르]] ||<-9> {{{#f00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B조 5위로 탈락했으며, 이 대회를 치르면서 체면을 구겼다. 월드컵 최종예선에 처음 진출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을 상대로 코로나19로 홈 경기로 치렀어야 할 제3국 경기에서 3:2로 진땀승을 거뒀으며, 원정에서 1:3으로 완패했다. 이로 인해 베트남에게 월드컵 최종예선 첫 승리 및 승점을 내준 상대 팀, 그리고 동남아 팀에게 월드컵 최종예선 첫 승리를 내준 상대 팀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게다가 중국은 이 대회에서 유일한 승리가 베트남을 상대로 거둔 1승이 전부였다.] || || [[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30]]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파일:멕시코 국기.svg|width=30]] [br][[2026 FIFA 월드컵|2026년 캐나다/멕시코/미국]] || ? || ? || ? || ? || ? || ? || ? || ? || ? ||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파일:포르투갈 국기.svg|width=30]] [[파일:모로코 국기.svg|width=30]] [br][[2030 FIFA 월드컵|2030년 월드컵]] || ? || ? || ? || ? || ? || ? || ? || ? || ?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br][[2034 FIFA 월드컵|2034년 사우디]] ||<:> ? ||<:> ? ||<:> ? ||<:> ? ||<:> ? ||<:> ? ||<:> ? ||<:> ? ||<:> ? || || {{{#fff 합계}}} || 본선진출 1회 || 1/21[*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 || 3 || 0 || 0 || 0 || 3 || 0 || 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중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중국의 월드컵 역사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중국이 월드컵 무대를 밟아본 건 [[2002년 한일 월드컵]] 32강 본선 단 한 번 뿐이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무승부 이상의 전적을 낸 적도, 득점을 기록해본 적도 없고, 반대로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를 해본 적도 없다. 통산 전적은 '''3전 3패 31위[* 최하위 32위 사우디는 제쳤다.]''' '''무득점 9실점'''이다. 월드컵 전적은 [[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코스타리카]]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튀르키예]]를 상대로 각각 1패씩 기록중이다. 스코어는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0:2, 브라질을 상대로 0:4, 터키를 상대로 0:3으로 패배했다. 득점자는 단 한 명도 없으며 최다 실점 기록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기록한 4실점이다. 2026년 월드컵부터는 월드컵 48강 본선으로 확대되어 아시아 티켓이 8장 이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중국을 월드컵에서 보게 될 가능성이 더 올라갔기는 하지만, 이것도 중국 시장을 의식하는 [[FIFA]]의 희망사항일 뿐이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 8장이라면 많아 보이지만 [[AFC]]에는 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아세안이라는 5개 산하 연맹이 있고 여기에 속한 국가들을 모두 합치면 거진 50개에 육박한다. 이 중에서 중국 축구가 8위 안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다.[* 당장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만 봐도 각조 1~4위는 각각 A조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UAE]],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이라크]] 순이며, B조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호주]],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오만]] 순이다. 아시아 지역에 티켓을 8장으로 확대해도 중국이 쉽게 이 안에 들 것이라고 낙관하긴 어렵다.] 심지어 "따지고 보면 FIFA가 중국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을 더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다. 당장 아시아 전통의 5강 한국, 이란, 호주, 일본, 사우디는 확정이고 거기다가 카타르, 바레인, UAE, 쿠웨이트,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오만 등 중동 국가들은 중국을 상대로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 2006 월드컵 이후 지역예선에서도 중국을 광탈시킨 게 바로 이라크나 쿠웨이트 같은 나라였다. 게다가 중동 팀은 아니나 우즈벡과 북한도 중국보다는 전력이 위일 수 있고, 한 술 더 떠서 중국은 동남아 최상위 국가들이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손쉽게 이길 수 있었을 태국과 베트남을 상대로도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당장 중국 언론들과 많은 수의 중국인들도 배정 티켓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 당시 보여줬던 안 좋은 모습들 때문에 월드컵 가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탄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아시아 진출권이 늘어나자 그동안 한국, 이란, 호주, 일본, 사우디에게 밀려 번번이 탈락하던 이라크나 아랍에미리트, 우즈베키스탄 등이 더 좋아라 하는 상황이다. === [[올림픽]] === * 1936베를린올림픽 12위[*16개팀 본선][* 영국에 0:2 패하였고 대회 16강 토너먼트전 최종순위에서 노르웨이 4:0 터키, 페루 7:3 핀란드, 폴란드 3:0 헝가리의 타 경기 실점차이에서 앞서서 최종 12위 기록] * 1988서울올림픽 14위[*16개팀 본선] *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U-23 대회로 변경. * 2008베이징올림픽 13위[*16개팀 본선] === [[AFC 아시안컵]] ===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 5위 || '''{{{#fff 대회}}}''' || '''{{{#fff 결과}}}''' || '''{{{#fff 순위}}}''' || '''{{{#fff 경기}}}''' || '''{{{#fff 승}}}''' || '''{{{#fff 무}}}''' || '''{{{#fff 패}}}''' || '''{{{#fff 득점}}}''' || '''{{{#fff 실점}}}''' || '''{{{#fff 승점}}}''' || ||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width=30]] [br] [[1956 AFC 아시안컵 홍콩|1956년 홍콩]] ||<-9><|2> {{{#F0C420 불참}}}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br][[1960년 AFC 아시안컵|1960년 대한민국]] || || [[파일:이스라엘 국기.svg|width=30]][br] [[1964년 AFC 아시안컵|1964년 이스라엘]] ||<-9><|3> 비회원국(AFC 탈퇴) ||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br] [[1968년 AFC 아시안컵|1968년 이란]]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br] [[1972년 AFC 아시안컵|1972년 태국]] ||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br] [[1976년 AFC 아시안컵|1976년 이란]] ||<:><-2>3위[*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3위] || 4 || 1 || 1 || 2 || 2 || 4 || '''4''' ||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30]] [br][[1980년 AFC 아시안컵|1980년 쿠웨이트]] || 조별리그 || 7위 || 4 || 1 || 1 || 2 || 9 || 5 || '''4''' ||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width=30]] [br][[1984년 AFC 아시안컵|1984년 싱가포르]] || '''준우승''' || '''2위''' || 6 || 4 || 0 || 2 || 11 || 4 || '''12'''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br] [[1988년 AFC 아시안컵|1988년 카타르]] ||<:><-2>4위[*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4위] || 6 || 2 || 2 || 2 || 7 || 5 || '''8'''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br][[1992년 AFC 아시안컵|1992년 일본]] ||<:><-2>3위[*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3위] || 5 || 1 || 3 || 1 || 6 || 6 || '''6'''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br][[1996년 AFC 아시안컵|1996년 아랍에미리트]] || 8강 || 8위 || 4 || 1 || 0 || 3 || 6 || 7 || '''3''' || || [[파일:레바논 국기.svg|width=30]][br] [[2000년 AFC 아시안컵|2000년 레바논]] ||<:><-2>4위[*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4위] || 6 || 2 || 2 || 2 || 11 || 7 || '''8''' ||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br][[2004년 AFC 아시안컵|2004년 중국]] || '''준우승''' || '''2위''' || 6 || 3 || 2 || 1 || 13 || 6 || '''11''' ||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파일:베트남 국기.svg|width=30]] [br] [[2007년 AFC 아시안컵|2007년 아세안]] || 조별리그 || 9위 || 3 || 1 || 1 || 1 || 7 || 6 || '''4'''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2011년 AFC 아시안컵|2011년 카타르]] || 조별리그 || 9위 || 3 || 1 || 1 || 1 || 4 || 4 || '''4''' || || [[파일:호주 국기.svg|width=30]][br] [[2015년 AFC 아시안컵|2015년 호주]] || 8강 || 7위 || 4 || 3 || 0 || 1 || 5 || 4 || '''9'''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br][[2019년 AFC 아시안컵|2019년 아랍에미리트]] || 8강 || 6위 || 5 || 3 || 0 || 2 || 7 || 7 || '''9'''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2023년 AFC 아시안컵|2023년 카타르[* 본래 개최국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하여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개최 포기했다.]]] || ? || ? || ? || ? || ? || ? || ? || ? || ?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br] [[2027년 AFC 아시안컵|2027년 사우디아라비아]] || ? || ? || ? || ? || ? || ? || ? || ? || ? || || {{{#fff 합계}}} || 준우승(2회) || 13/18 || 56 || 23 || 13 || 20 || 88 || 65 || '''82''' || 현재까지 중국의 아시안컵 통산 성적은 56전 23승 13무 20패로 승점 82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총 88득점 65실점을 기록해 득실 차는 +23을 기록 중이다. 아시안컵 본선 진출국 중에선 최다 패배 및 최다 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우승이 없는 팀 중에선 가장 순위가 높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대 전적은 아래와 같다. || 국가명 || 전적 || 대회연도 || || 이란 || 4무 3패 || 1976, 1980, 1984, 1988, 2004, 2007, 2019 || || 대한민국 || 1무 3패 || 1988, 2000(2회), 2019 || || 일본 || 4패 || 1992, 1996, 2000, 2004 || || 사우디아라비아 || 1승 1무 3패 || 1984, 1988, 1992, 1996, 2015 || || 쿠웨이트 || 2승 2무 1패 || 1976, 1984, 1988, 2000, 2011 || || 이라크 || 2승 || 1976, 2004 || || 아랍에미리트 || 1승 1무 || 1984, 1992 || || 우즈베키스탄 || 1승 1무 2패 || 1996, 2007, 2011, 2015 || || 호주 || 1패 || 2015 || || 카타르 || 3승 1패 || 1996, 2000, 2004, 2011 || || 시리아 || 2승 1패 || 1980, 1988, 1996 || || 바레인 || 1승 1무 || 1988, 2004 || || 태국 || 1승 1무 || 1992, 2019 || || 북한 || 1승 1패 || 1980, 2015 || || 인도네시아 || 2승 || 2000, 2004 || || 인도 || 1승 || 1984 || || 말레이시아 || 1승 1무 || 1976, 2007 || || 싱가포르 || 1승 || 1984 || || 키르기스스탄 || 1승 || 2019 || || 필리핀 || 1승 || 2019 || || 방글라데시 || 1승 || 1980 || 지역별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 지역 || 전적 || || 동아시아 || 1승 1무 8패 || || 서아시아 || 12승 5무 6패 || || 중앙아시아 || 2승 5무 5패 || || 동남아시아 || 6승 2무 1패 || || 남아시아 || 2승 || 중국이 패배를 기록한 나라들은 '''일본(4패), 대한민국(3패), 이란(3패), 사우디아라비아(3패), 우즈베키스탄(2패), 쿠웨이트(1패), 호주(1패), 카타르(1패), 시리아(1패), 북한(1패)'''로 총 10개 팀이다. 이 중 일본과 호주 2팀을 상대로 전패를 기록 중이다. 중국이 승리를 기록한 나라들은 '''카타르(3승), 쿠웨이트(2승), 시리아(2승), 이라크(2승), 인도네시아(2승), 아랍에미리트(1승), 바레인(1승), 말레이시아(1승), 태국(1승), 인도(1승), 싱가포르(1승), 키르기스스탄(1승), 필리핀(1승), 북한(1승), 사우디아라비아(1승), 우즈베키스탄(1승), 방글라데시(1승)'''으로 총 17개 팀이다. 이 중 이라크, 인도네시아, 인도, 싱가포르, 키르기스스탄, 필리핀까지 총 6팀을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이 아시안컵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팀은 '''카타르'''로 4경기 9점을 획득했다. 그 뒤를 이어 쿠웨이트가 5경기 8점으로 뒤를 잇고 있다. 중국이 상대 전적에서 열세를 보이는 나라는 대한민국, 이란, 일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까지 총 6팀이며 호각세를 이루는 나라는 북한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 팀을 상대로는 모두 우세를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중동 팀과 동남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비교적 강세를 보이지만 동아시아 팀과 중앙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매우 열세를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에는 중국의 천적인 대한민국과 일본이 있고 중앙아시아에도 또 다른 천적인 이란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80아시안컵 10강 조별리그 방글라데시전 6:0 승으로 여섯 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중국의 아시안컵 최다 점수차 승리기록이기도 하다. 반면에 한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96아시안컵 8강 사우디아라비아전 3:4 패로 4실점을 한 것이 최다 실점 기록이다. 최다 점수 차 패배 기록은 2007아시안컵 16강 조별리그 우즈베키스탄전과 2019년 8강 이란전에서 기록한 0:3 패배이다. === [[EAFF E-1 풋볼 챔피언십]] === || '''{{{#fff 대회}}}''' || '''{{{#fff 결과}}}''' || '''{{{#fff 순위}}}''' || '''{{{#fff 경기}}}''' || '''{{{#fff 승}}}''' || '''{{{#fff 무}}}''' || '''{{{#fff 패}}}''' || '''{{{#fff 득점}}}''' || '''{{{#fff 실점}}}''' || '''{{{#fff 승점}}}'''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2003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0275d8 2003년}}}]] || 결선리그 || 3위 || 3 || 1 || 0 || 2 || 3 || 4 || 3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0275d8 2005년}}}]] || '''우승''' || '''1위''' || 3 || 1 || 2 || 0 || 5 || 3 || 5 ||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2008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0275d8 2008년}}}]] || 결선리그 || 3위 || 3 || 1 || 0 || 2 || 5 || 5 || 3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0275d8 2010년}}}]] || '''우승''' || '''1위''' || 3 || 2 || 1 || 0 || 5 || 0 || 7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2013 EAFF 동아시안컵|{{{#0275d8 2013년}}}]] || 준우승 || 2위 || 3 || 1 || 2 || 0 || 7 || 6 || 5 ||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2015 EAFF 동아시안컵|{{{#0275d8 2015년}}}]] || 준우승 || 2위 || 3 || 1 || 1 || 1 || 3 || 3 || 4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2017 EAFF E-1 풋볼 챔피언십|{{{#0275d8 2017년}}}]] || 결선리그 || 3위 || 3 || 0 || 2 || 1 || 4 || 5 || 2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0275d8 2019년}}}]] || 결선리그 || 3위 || 3 || 1 || 0 || 2 || 3 || 3 || 3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2022 EAFF E-1 풋볼 챔피언십|{{{#0275d8 2022년}}}]][* 순번상 중국 개최였으나 코로나 정책으로 인하여 개최권을 반납, 일본이 대신 개최하였다.] || 결선리그 || 3위 || 3 || 1 || 1 || 1 || 1 || 3 || 4 || || 합계 || 우승(2회) || 9/9 || 27 || 9 || 9 || 9 || 36 || 32 || 36 || == 연령별 대표팀 == === U-23 대표팀 === ==== [[AFC U-23 아시안컵]] ==== || '''{{{#fff 연도}}}''' || '''{{{#fff 결과}}}''' || '''{{{#fff 순위}}}''' || '''{{{#fff 승점}}}''' || '''{{{#fff 경기}}}''' || '''{{{#fff 승}}}''' || '''{{{#fff 무}}}''' || '''{{{#fff 패}}}''' || '''{{{#fff 득점}}}''' || '''{{{#fff 실점}}}''' || || [[파일:오만 국기.svg|width=30]] [br] [[2014 AFC U-22 챔피언십 오만|오만 2014]] || 조별리그 || 14위 || 0 || 3 || 0 || 0 || 3 || 2 || 5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2016 AFC U-23 챔피언십 카타르|카타르 2016]]''' || 조별리그 || 14위 || 0 || 3 || 0 || 0 || 3 || 4 || 9 ||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br] [[2018 AFC U-23 챔피언십 중국|중국 2018]] || 조별리그 || 10위 || 3 || 3 || 1 || 0 || 2 || 4 || 3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2020 AFC U-23 챔피언십 태국|태국 2020]]''' || 조별리그 || 16위 || 0 || 3 || 0 || 0 || 3 || 0 || 4 || ||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width=30]] [br] [[2022 AFC U-23 챔피언십 우즈베키스탄|우즈베키스탄 2022]] ||<-9> {{{#C8A2C8 기권}}}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2024 AFC U-23 아시안컵 카타르|카타르 2024]] || ? || ? || ? || ? || ? || ? || ? || ? || ? || ||||<-12> 굵은 글씨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는 대회 || || {{{#fff 합계}}} || '''{{{#black 조별리그}}} (4회)''' || 4/5[* AfC U-23 아시안컵 본선 진출 비율] || '''3''' || '''12''' || '''1''' || '''0''' || '''11''' || '''10''' || '''21''' || === U-20 대표팀 === ==== [[FIFA U-20 월드컵]] ==== || '''{{{#fff 연도}}}''' || '''{{{#fff 결과}}}''' || '''{{{#fff 순위}}}''' || '''{{{#fff 경기}}}''' || '''{{{#fff 승점}}}''' || '''{{{#fff 승}}}''' || '''{{{#fff 무}}}''' || '''{{{#fff 패}}}''' || '''{{{#fff 득점}}}''' || '''{{{#fff 실점}}}''' || || [[파일:튀니지 국기.svg|width=30]] [br][[1977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튀니지|1977년 튀니지]] ||<-9><|2> {{{#F0C420 불참}}}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br][[197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일본|1979년 일본]] || || [[파일:호주 국기.svg|width=30]] [br][[198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호주|1981년 호주]] ||<-9> {{{#f00 예선 탈락}}} || || [[파일:멕시코 국기.svg|width=30]] [br][[1983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멕시코|1983년 멕시코]] || 조별리그 || 12위 || '''3''' || 3 || 1 || 0 || 2 || 5 || 8 ||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br][[1985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소련|1985년 소련]] || 8강 || 6위 || '''6''' || 4 || 2 || 0 || 2 || 5 || 5 || || [[파일:칠레 국기.svg|width=30]] [br][[1987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칠레|1987년 칠레]] ||<-9><|5> {{{#f00 예선 탈락}}}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br][[198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사우디아라비아|1989년 사우디]] || || [[파일:포르투갈 국기.svg|width=30]] [br][[199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포르투갈|1991년 포르투갈]] || || [[파일:호주 국기.svg|width=30]] [br][[1993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호주|1993년 호주]]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1995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카타르|1995년 카타르]] ||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br][[1997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말레이시아|1997년 말레이시아]] || 조별리그 || 18위 || '''2''' || 3 || 0 || 2 || 1 || 2 || 3 || ||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width=30]] [br][[199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나이지리아|1999년 나이지리아]] ||<-9> {{{#f00 예선 탈락}}} ||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br][[200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아르헨티나|2001년 아르헨티나]] || 16강 || 15위 || '''4''' || 4 || 1 || 1 || 2 || 2 || 3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br][[2003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아랍에미리트|2003년 아랍에미리트]] ||<-9> {{{#f00 예선 탈락}}} ||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30]] [br][[2005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네덜란드|2005년 네덜란드]] || 16강 || 10위 || '''9''' || 4 || 3 || 0 || 1 || 11 || 7 || || [[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30]] [br][[2007 FIFA U-20 월드컵 캐나다|2007년 캐나다]] ||<-9><|8> {{{#f00 예선 탈락}}} || || [[파일:이집트 국기.svg|width=30]] [br][[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2009년 이집트]] || || [[파일:콜롬비아 국기.svg|width=30]] [br][[2011 FIFA U-20 월드컵 콜롬비아|2011년 콜롬비아]] || || [[파일:튀르키예 국기.svg|width=30]] [br][[2013 FIFA U-20 월드컵 터키|2013년 터키]] ||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width=30]] [br][[2015 FIFA U-20 월드컵 뉴질랜드|2015년 뉴질랜드]]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br][[2017 FIFA U-20 월드컵 코리아|2017년 대한민국]] ||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br][[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2019년 폴란드]] ||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br][[2023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2023년 아르헨티나]][* 2021년 대회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취소] || || {{{#fff 합계}}} || 8강(1회) || 5/23[* FIFA U-20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 || '''24''' || '''18''' || '''7''' || '''3''' || '''8''' || '''25''' || '''26''' || ==== [[AFC U-20 아시안컵]] ==== || '''{{{#fff 연도}}}''' || '''{{{#fff 결과}}}''' || '''{{{#fff 순위}}}''' || '''{{{#fff 승점}}}''' || '''{{{#fff 경기}}}''' || '''{{{#fff 승}}}''' || '''{{{#fff 무}}}''' || '''{{{#fff 패}}}''' || '''{{{#fff 득점}}}''' || '''{{{#fff 실점}}}''' || ||<-12> {{{#234794 AFC youth championship 대회}}} ||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br] 1959 말레이시아 ||<-9><|16> {{{#F0C420 불참}}} ||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br] 1960 말레이시아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61 태국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62 태국 ||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br] 1963 말레이시아 || ||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width=30]] [br] 1964 남베트남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br] 1965 일본 || || [[파일:필리핀 국기.svg|width=30]] [br] 1966 필리핀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67 태국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br] 1968 대한민국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69 태국 || || [[파일:필리핀 국기.svg|width=30]] [br] 1970 필리핀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br] 1971 일본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72 태국 ||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br] 1973 이란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74 태국 ||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30]] [br] 1975 쿠웨이트 || 8강 || 6위 || 8 || 5 || 2 || 2 || 1 || 6 || 3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76 태국 || 8강 || 8위 || 5 || 4 || 1 || 2 || 1 || 7 || 8 ||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br] 1977 이란 ||<-9> {{{#F0C420 불참}}} || ||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width=30]] [br] 1978 방글라데시 || 조별리그 || 10위 || 3 || 3 || 1 || 0 || 2 || 3 || 4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80 태국 ||<-9> {{{#f00 예선 탈락}}}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82 태국 || 준우승 || 2위 || 5 || 3 || 1 || 2 || 0 || 4 || 3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br] 1985 UAE || '''우승''' || '''1위''' || '''7''' || '''3''' || '''2''' || '''1 ''' || ''' 0 ''' || '''5''' || '''3'''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br] 1986 사우디 ||<-9> {{{#f00 예선 탈락}}}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1988 카타르 || 조별리그 || 8위 || 0 || 3 || 0 || 0 || 3 || 3 || 9 ||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br] 1990 인도네시아 ||<-9><|3> {{{#f00 예선 탈락}}}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br] 1992 UAE ||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br] 1994 인도네시아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br] 1996 대한민국 || 준우승 || 2위 || 15 || 6 || 5 || 0 || 1 || 16 || 9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98 태국 || 조별리그 || 6위 || 4 || 4 || 1 || 1 || 2 || 7 || 8 ||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br] 2000 이란 || 4강 || 3위 || 11 || 6 || 3 || 2 || 1 || 7 || 5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2002 카타르 || 8강 || 6위 || 4 || 4 || 1 || 1 || 2 || 7 || 10 ||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br] 2004 말레이시아 || 준우승 || 2위 || 13 || 6 || 4 || 1 || 1 || 10 || 3 ||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br] 2006 인도 || 8강 || 5위 || 9 || 4 || 3 || 0 || 1 || 5 || 3 || ||<-12> {{{#234794 AFC U-19 챔피언십 대회}}}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br] 2008 사우디[* 이 대회부터 3.4위전 폐지] || 8강 || 5위 || 8 || 4 || 2 || 2 || 0 || 9 || 1 ||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br] 2010 중국 || 8강 || 7위 || 7 || 4 || 2 || 1 || 1 || 6 || 4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br] 2012 UAE || 조별리그 || 15위 || 0 || 3 || 0 || 0 || 3 || 2 || 5 || || [[파일:미얀마 국기.svg|width=30]] [br] 2014 미얀마 || 8강 || 7위 || 5 || 4 || 1 || 2 || 1 || 5 || 6 || || [[파일:바레인 국기.svg|width=30]] [br] [[2016 AFC U-19 챔피언십 바레인|2016 바레인]] || 조별리그 || 13위 || 1 || 3 || 0 || 1 || 2 || 0 || 3 ||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br] [[2018 AFC U-19 챔피언십 인도네시아|2018 인도네시아]] || 조별리그 || 11위 || 3 || 3 || 1 || 0 || 2 || 2 || 2 || ||<-12> {{{#234794 AFC U-20 아시안컵}}} || ||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width=30]] [br] [[2023 AFC U-20 아시안컵 우즈베키스탄|2023 우즈베키스탄]] || 8강 || 7위 || 4 || 4 || 1 || 1 || 2 || 5 || 6 || || {{{#fff 합계}}} || '''{{{#gold 우승}}} (1회)''' || 19/41[* AFC U-20 아시안컵 본선 진출 비율] || '''112''' || '''76''' || '''31''' || '''19''' || '''26''' || '''109''' || '''95''' || === U-17 대표팀 === ==== [[FIFA U-17 월드컵]] ==== || '''{{{#fff 연도}}}''' || '''{{{#fff 결과}}}''' || '''{{{#fff 순위}}}''' || '''{{{#fff 승점}}}''' || '''{{{#fff 경기}}}''' || '''{{{#fff 승}}}''' || '''{{{#fff 무}}}''' || '''{{{#fff 패}}}''' || '''{{{#fff 득점}}}''' || '''{{{#fff 실점}}}''' ||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br] 1985 중국 || 8강 || 8위 || 7 || 4 || 2 || 1 || 1 || 8 || 7 || || [[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30]] [br] 1987 캐나다 ||<-9> {{{#f00 예선 탈락}}} ||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width=30]] [br] 1989 스코틀랜드 || 조별리그 || 10위 || 4 || 3 || 1 || 1 || 1 || 1 || 3 ||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br] 1991 이탈리아 || 조별리그 || 14위 || 1 || 3 || 0 || 1 || 2 || 4 || 7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br]1993 일본 || 조별리그 || 14위 || 1 || 3 || 0 || 1 || 2 || 2 || 5 || || [[파일:에콰도르 국기.svg|width=30]] [br]1995 에콰도르 ||<-9><|4> {{{#f00 예선 탈락}}} || || [[파일:이집트 국기.svg|width=30]] [br] 1997 이집트 ||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width=30]] [br] 1999 뉴질랜드 || ||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width=30]] [br]2001 트리니다드 토바고 || || [[파일:핀란드 국기.svg|width=30]] [br]2003 핀란드 || 조별리그 || 14위 || 1 || 3 || 0 || 1 || 2 || 5 || 7 || || [[파일:페루 국기.svg|width=30]] [br]2005 페루 || 8강 || 7위 || 5 || 4 || 1 || 2 || 1 || 4 || 7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br][[2007 FIFA U-17 월드컵 대한민국|2007 대한민국]] ||<-9><|8> {{{#f00 예선 탈락}}} || ||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width=30]] [br]2009 나이지리아 || || [[파일:멕시코 국기.svg|width=30]] [br]2011 멕시코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br]2013 UAE || || [[파일:칠레 국기.svg|width=30]] [br][[2015 FIFA U-17 월드컵 칠레|2015 칠레]] ||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br][[2017 FIFA U-17 월드컵 인도|2017 인도]] ||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 [br][[2019 FIFA U-17 월드컵 브라질|2019 브라질]] ||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br][[2023 FIFA U-17 월드컵 인도네시아|2023 인도네시아]] || || [[파일:국기.svg|width=30]] [br][[2025 FIFA U-17 월드컵]] || || || || || || || || || || || {{{#fff 합계}}} || '''8강'''(2회) || 6/19[* FIFA U-17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 || '''19''' || '''20''' || '''4''' || '''7''' || '''9''' || '''24''' || '''36''' || ==== [[AFC U-17 아시안컵]] ==== || '''{{{#fff 연도}}}''' || '''{{{#fff 결과}}}''' || '''{{{#fff 순위}}}''' || '''{{{#fff 승점}}}''' || '''{{{#fff 경기}}}''' || '''{{{#fff 승}}}''' || '''{{{#fff 무}}}''' || '''{{{#fff 패}}}''' || '''{{{#fff 득점}}}''' || '''{{{#fff 실점}}}''' || ||<-12> [[AFC U-17 아시안컵|AFC U-16 Championship]]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1985 카타르 || 조별리그 || 6위 || 2 || 3 || 0 || 2 || 1 || 2 || 3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1986 카타르 ||<-9> {{{#f00 예선 탈락}}}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88 태국 || 4강 || 3위 || 10 || 6 || 2 || 4 || 0 || 7 || 4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br] 1990 아랍에미리트 || 4강 || 3위 || 10 || 5 || 3 || 1 || 1 || 11 || 2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br] 1992 사우디아라비아 || '''우승''' || '''1위''' || '''11''' || '''5''' || '''3''' || '''2''' || '''0''' || '''9''' || '''4'''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1994 카타르 || 조별리그 || 5위 || 6 || 4 || 2 || 0 || 2 || 14 || 5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1996 태국 || 조별리그 || 6위 || 4 || 4 || 1 || 1 || 2 || 5 || 10 ||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br] 1998 카타르 ||<-9> {{{#f00 예선 탈락}}} || || [[파일:베트남 국기.svg|width=30]] [br] 2000 베트남 || 조별리그 || 5위 || 6 || 4 || 2 || 0 || 2 || 13 || 12 || ||<-12> [[AFC U-17 아시안컵|AFC U-17 Championship]] ||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br] 2002 아랍에미리트 || 4강 || 3위 || 15 || 6 || 5 || 0 || 1 || 13 || 4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br] 일본 2004 || '''우승''' || '''1위''' || '''15''' || '''6''' || '''5''' || '''0''' || '''1''' || '''10''' || '''5''' ||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width=30]] [br] 2006 싱가포르 || 8강 || 6위 || 7 || 4 || 2 || 1 || 1 || 10 || 5 || ||<-12> [[AFC U-17 아시안컵|AFC U-16 Championship]] || ||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width=30]] [br] 2008 우즈베키스탄 || 조별리그 || 9위 || 4 || 3 || 1 || 1 || 1 || 4 || 4 || ||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width=30]] [br] 2010 우즈베키스탄 || 조별리그 || 13위 || 1 || 3 || 0 || 1 || 2 || 1 || 4 ||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br] 2012 이란 || 조별리그 || 9위 || 3 || 3 || 0 || 3 || 0 || 4 || 4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2014 태국 || 조별리그 || 11위 || 3 || 3 || 1 || 0 || 2 || 2 || 6 ||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br] 2016 인도 ||<-9><|2> {{{#f00 예선 탈락}}} ||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br] 2018 말레이시아 || ||<-12> [[AFC U-17 아시안컵|AFC U-17 아시안컵]] ||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br] [[2023 AFC U-17 아시안컵 태국|2023 태국]] || 조별리그 || 13위 || 1 || 3 || 0 || 1 || 2 || 4 || 9 || || {{{#fff 합계}}} || '''{{{#gold 우승}}}''' (2회) || 15/19[* AFC U-17 아시안컵 본선 진출 비율] || '''98''' || '''62''' || '''27''' || '''17''' || '''18''' || '''109''' || '''81''' || == 관련 문서 == * [[공한증]] *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 * [[마카오 축구 국가대표팀]] * [[차이나컵]] * [[축구굴기]] * [[쿵후축구]] *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 둘러보기 == [include(틀:중국 관련 문서)] [각주] [[분류:중국 축구 국가대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