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목차] == 개요 == 周利貞 [[당나라]]의 간신. == 생애 == 주이정은 측천무후 시기에 전당현위(錢塘縣尉)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신룡(神龍) 연간[* 705년~707년]에 시어사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무삼사]]에게 의탁하다가 [[신룡정변]]의 공신들이었던 [[환언범]], [[경휘]], [[장간지]], [[원서기]], [[최현위]] 등으로부터 시기를 받아 가주(嘉州) 사마로 좌천되었다. 당시 환언범 일파는 중서사인(中書舍人) [[최식(당나라)|최식]][* 당나라의 대신인 최인사의 손자이다.]과 친하였는데, 이들은 무삼사를 두려워하여 무삼사의 동정을 살피려고 최식을 무삼사에게 보냈다. 그러나 최식은 도리어 환언범 일파의 계획을 무삼사에게 폭로하였고 그들을 유배시켰다. 뒤에 최식은 무삼사에게 유배를 간 환언범 일파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진언하였는데, 무삼사가 적합한 인물을 최식에게 묻자, 최식은 외사촌형인 주이정을 무삼사에게 소개하였다. 과연 주이정은 무삼사가 환언범 일파를 제거하는 데 일조하였고, 좌대어사중승(左臺御史中丞)으로 발탁되었다. 712년 [[현종(당)|현종]]이 즉위한 뒤 주이정은 광주(廣州) 도독이 되었다. 현종이 즉위할 때 최식이 중서령이 되었는데, 최식은 [[유유구]]와 불화하여 유유구를 유배시키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최식은 다시 주이정에게 유유구를 죽여달라고 이야기했으나, 유유구가 계주(桂州) 도독 [[왕준(당나라)|왕준]]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다. 주이정과 최식은 왕준에게 유유구를 넘길 것을 요구했지만 왕준이 이 요구를 계속 외면하고 계주에서 유유구를 계속 보호하고 있었기에 유유구를 살해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후 주이정은 백성들을 잔혹하게 착취하고 뇌물을 받은 죄로 부주(涪州) 자사로 좌천되었다. 주이정은 [[선천정변]] 이후 진주(珍州) 사마로 임명되었다가 이주(夷州) 자사, 검주(黔州) 도독으로 제수되었으며 조산대부가 더해졌다. 하지만 현종 시기의 대신인 장정규(張廷珪)는 주이정에게 관직을 주는 것에 반대하였다. 장정규가 파직된 뒤, 주이정은 진주(辰州) 장사로 임명되었는데 위주(魏州) 장사 경양(敬讓)과 함께 상주문을 올렸다. 그런데 경양은 주이정과 무삼사가 제거했던 경휘의 아들이었다. 주이정은 경휘의 잘못을 현종에게 상주하였고 현종은 주이정을 옹주 장사로 강등시켰다가 이후 오주(梧州)에서 사사시켰다. [[분류:수당시대/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