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프랑스군]] [목차] == 개요 == '''Zouaves''' [[19세기]] 서양에 존재하던 병종. [[구르카]], [[구미에]], 아스카리와 같은 [[식민지인 부대]]로 [[경보병]]의 일종이다. 투르크 및 북아프리카식의(이슬람식 바지, 조끼, 직물로 된 폭넓은 허리띠, 외투, [[페스(모자)|페스]]와 같은) 이국적인 복장을 착용하였다. == 기원 == 주아브의 역사는 [[프랑스]]가 1830년대 벌인 [[알제리]] 침공에서 시작한다. 침략 중 [[베르베르]]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프랑스는 [[전투민족|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 결과 1831년 현지 베르베르를 소집한 두 개 대대가 창설되었다. 이때 소집된 베르베르들이 주르주라 산맥(Jurjura Mountains)에 살던 주와와(Zuwawa)라는 부족 연합체 소속이었기에 주아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런데 창설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계 부대가 되어버린다. [[피에 누아르]]들이 많이 복무했다고. 진짜 원주민들은 티라이외르 부대에서 복무했다. 주아브들은 알제리 침공, [[크림 전쟁]], [[이탈리아 통일|이탈리아 통일전쟁]] 등에서 큰 활약을 한다. 당시 유럽인들은 주아브를 용맹하며 공포를 모르는 정예 부대로 여겼다. == 전파 == === [[미국]] === 주아브의 명성은 미국에도 전파되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 편으로 싸웠던 조지 맥클레런(Geroge B. McClellan) 장군은 주아브를 "이상적인 병사의 최고봉"이라 표현했다.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주아브 지지자로는 엘머 엘스워스(Elmar E. Elsworth) 대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친구로 그에게 법을 배우기도 했다. 1861년 5월 24일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여관에 게양된 [[아메리카 연합국]] 국기를 내리려다가 여관 주인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렇게 [[남북전쟁]]에서 최초로 사망한 장교로 알려졌다.]이 있다. [[크림 전쟁]]에서 프랑스군 주아브가 세운 전공에 감명 받은 엘스워스는 [[시카고]]에서 주아브 중대를 창설해 주아브식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https://archive.org/details/zouavedrillbeing00ells|엘스워스가 쓴 주아브 훈련 교본]] 역시 존재한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연방과 연합 양 측에서 주아브 의용연대가 창설되었다. [[뉴욕시]] 소방관들로 이루어진 [[https://en.wikipedia.org/wiki/11th_New_York_Infantry|제11뉴욕의용연대]]나 [[루이지애나]]의 아일랜드계로 이루어진 [[https://en.wikipedia.org/wiki/Louisiana_Tigers|루이지애나 타이거즈]] 같은 많은 의용연대가 이국적인 주아브 옷을 입고 싸웠다. 1863년, 뉴욕에서 발생한 징병거부 폭동때 제11 의용연대가 진압군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 [[교황령]] === '''Pontifical Zouaves''' 혹은 '''Papal Zouaves''' 1861년 [[교황령]]은 [[이탈리아 통일|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주아브를 창설하였다. 이 부대는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온 [[가톨릭]] 의용병으로 구성된 프랑스-벨기에 티라이외(Tirailleurs Franco-Belges)를 재편한 부대였다. 다양한 국가의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된 교황령 주아브는 주로 치안 유지 임무에 투입되었지만 몇몇 전투에 참가하였다. 대표적 사례가 1867년 있었던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Mentana|멘타나 전투]]로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교황령 주아브는 [[주세페 가리발디]]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1870년 [[이탈리아 왕국]] 군대가 [[로마]]를 점령해 교황령을 멸망시킬 때도 교황령 주아브는 그 곳에 있었다. 이탈리아 왕국군은 고대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세운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일부를 무너뜨리고는 정예 경보병인 [[베르살리에리]]를 앞세워 로마를 점령하려 하였다. 교황령 주아브는 무너진 장벽 틈으로 밀려들어오는 베르살리에리를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들은 [[비오 9세]]의 명령을 받고 항복한다. 교황령 주아브의 프랑스인 생존자들은 본국으로 귀환한 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서부 의용군(Volontaires de l'Ouest)이라는 이름으로 참전했다.[*출처 MARTIN SIMPSON.〈From Zouaves Pontificaux to the Volontaires de l’Ouest: Catholic Volunteers and the French Nation, 1860–1910〉. 《Canadian Journal of History》Vol. 53 Issue 1. 2018] == 19세기 이후 == 프랑스군 주아브는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통해 알록달록하고 이국적인 의상은 현대전에 알맞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자 1915년부터 외인부대 등 식민지 병사들과 같은 색상의 군복이 지급되었다(프랑스 정규군 군복이 푸른색인 반면에 주아브 군복은 [[카키색]]이었다). 철모나 페스에 부착하는 모장도 초승달과 별 도안으로 일반 프랑스군 보병 모장과 달랐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알제리 전쟁]]으로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립하며 주아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 매체에서의 등장 ==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주아브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 그림들은 국내에서 알제리 병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때문인지 [[뮤지컬]] <반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에서도 주아브 병사가 등장한다. [[러빙 빈센트]] 맨 처음 씬에서 아르망에게 쳐맞고 뻗던 주아브 군인은 이 그림에서 따와 그대로 그렸다. [[미니어처 게임]] [[인피니티(게임)|인피니티]]에서는 주아브의 정신적 후계자인 [[주아브(인피니티)|주아브]]가 [[아리아드나]] 소속 보병대로 등장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결정판]]의 미국 DLC에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용병|용병]]으로 등장했다. == 참고 자료 == * Digby Smith, et al., 《An Illustrated Encyclopedia of Military Uniforms of the 19th Century: An Expert Guide to the American Civil War, the Boer War, the Wars of German and Italian Unification and the Colonial Wars》. Lorenz Books. 2010. * DE MAEYER, JAN, et al., editors. 〈 LIONS AND LAMBS AT THE SAME TIME!: BELGIAN ZOUAVE STORIES AND EXAMPLES OF RELIGIOUS MASCULINITY〉. 《Gender and Christianity in Modern Europe: Beyond the Feminization Thesis》 by THOMAS BUERMAN et al., 1st ed., Leuven University Press, Leuven, Belgium, 2012, pp. 107–119. * [[https://www.nytimes.com/1860/07/20/archives/the-zouaves-their-drill-at-the-academy-of-music-an-immense-and.html|뉴욕 타임즈 - The Zouaves: Their Drill at the Academy of Music (1860년도 기사, 영문)]][*주의사항 [[뉴욕 타임즈]]는 비회원이 한 달에 볼 수 있는 기사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들어가기 전 꼭 봐야하는 기사인가 생각하자.] * [[http://www.pbs.org/wgbh/roadshow/stories/articles/2015/5/18/who-were-zouaves/|PBS - Who Were the Zouaves?(2015년도 기사, 영문)]]